# 21 < 바람이 분다 (6) >
노인과 아이라는 차이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어서였을까. 최미경의 할머니는 자신의 탄생부터 성장기, 일제 강점기 이야기, 6·25전쟁 때 이야기 등등 끝없이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하늘두 무심허지. 내 하나뿐인 오래비가 이 산이서 호랭이라는 눔헌티 물려 죽었어. 안개 낀 날 뭔 눔의 나무를 허겄다고 산이 겨들어가서는. 그때가 나 열두 살 때여.”
늙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면서도 소맷자락으로 연신 눈가를 찍었다.
진혁은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땀이 식고 안개가 몸을 감싸며 한기가 스며든 탓이었다. 유진이가 태어날 때 받아준 고마운 할머니다. 하소연 듣는 셈 치고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명상호흡법으로 체온을 올리며.
“장환이 아배는 동란 때 죽창 피해 댕긴다구 나 혼자 일 다했지. 어쩌겄어? 자식 새끼랑 먹구는 살으야는디. 저짝 재동마을이 청년회가 죄다 죽창이었어. 그늠덜 무슨 그, 머여, 그 당인지 단인지 들어오라구 횃불 들구 죽창 들구 노상 쳐들어오구. 그러먼 서방은 이 산으루 숨구, 담날이는 저산으루 숨구. 농사나 짓던 냥반이 뭘 알간? 좋은 게 아니라는 것만 아니께 숨은 거지.”
호흡이 가빠서인지, 아니면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할머니는 어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멈출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장환이 형이 하나 있었는디 동란 때 인민군헌티 죽은 칭구덜 복수헌다구 국군으루 들어가서 이 산이서 싸우다 죽었지. 여가 원래 이름이 십봉산이여. 그때 하두 포격을 맞어가꾸 봉우리 하나가 웁써졌지. 그래서 시방이는 구봉산이라구 허는 겨. 우리 장남 시신은 건졌는디, 서방이든 아들이든 시신두 뭇건진 여편네두 많었어-.”
할머니 나이 열아홉에 낳은 아들이 그의 나이 스물 되던 해에 전사했다고 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진혁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며 입술을 굳게 닫았다.
그런데 이 산이 그리 치열한 전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역사 공부를 하며 접하지 못한 내용이었으니까. 잠시 의심을 했다. 어쩌면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듯 만들어내신 이야기는 아닐까. 하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할머니 표정과 음성이 너무도 진지했다. 기록과 사람이 서로 다른 증언을 하니 혼란스러웠다.
아니, 그보다 지금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진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내가 장환이를 서른여섯에 낳스니께 지 동상 믿구 간 겨 그늠은. 그늠 밑으루 딸만 내리 낳다가 막내 아들 둔 게 장환이여. 장환이두 태양이랑 미경이, 두 자식새끼 까구 사니께 할아배 볼 면은 슨 겨 나두. 다 켰지 잘 켰어, 아주. 이이-. 내 헐 일은 다 헌 겨.”
뭔가 비장한 듯하면서도 후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을 언제 봤더라. 떠올리려 애써보았으나 차창에 흐르는 빗물처럼 가물가물했다.
아직 겨울인데 할머니 혼자 어딜 가시려던 걸까. 어딜 가든 지름길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높고 험한 길이다. 날씨도 좋지 않다. 지금도 사방이 안개 아닌가.
“그런데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요 산 다른 이름이 북맹산여.”
붕맹산?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어찌 죄다 가물가물한 것들뿐이다. 그건 마치 꿈꾸는 듯한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설어 뭘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정신은 깨어있으되 바보가 된 느낌.
종종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아빠는 서울에서 겪지 못했던 일들을 접하며 잠시 바보가 되었던 거야.
이럴 때 어리바리하다는 표현을 쓰던가?
‘어디 가셨지?’
잠시 딴생각을 한 사이 할머니는 저만치 가고 계셨다.
휘적휘적 걷는데 그 속도가 가히 상식을 초월했다.
“할머니! 저랑 같이 가세요. 날씨 안 좋아서 위험해요.”
진혁은 장기를 살려 재빨리 할머니를 따라갔다.
집에서 나온 건 아침인데 주위가 온통 어둑어둑했다. 일몰 후 어스름이 깔린 것처럼. 안개도 아까보다 자욱해졌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 겨울이고 날도 이리 어두운데. 발이라도 잘못 딛으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의 정체를 의심하면서도 걱정이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업어드릴까요?”
헉-허억-, 절로 호흡이 가빠졌다. 진혁이 그럴 정도인데 할머니는 힘든 기색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으셨다. 마치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처럼.
‘쪼금 무서운데?’
이제야 슬슬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묘한 기시감이었다. 긴 잠에서 깨어 과거로 돌아오던 순간과 흡사했다.
할머니 팔을 잡아도 될까, 잠시 멈추시게 해도 될까. 아무리 불러도 듣지 않으시는데 어쩌지.
그리 고민할 때였다.
우뚝 멈춰 선 최미경의 할머니가 진혁을 홱 돌아보았다.
눈에는 의뭉스러운 웃음이 초승달처럼 걸려 있었다.
“같이 갈쳐?”
등골부터 뺨까지 오소소 소름이 올라왔다.
각오와 직관의 괴리가 주는 충격이란 강심장의 정신 방벽을 단번에 허물만큼 고강한 것이었다.
‘뭔가 주시려고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머뭇거리며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기연은 기연인데 진혁이 알던 기연과 많이 달랐다.
***
흙냄새가 올라온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 시원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워진다.
개들은 그런 땅을 좋아해서 코를 박고 논다.
장군이는 오늘도 신나게 뒹굴며 흙목욕을 즐겼다.
헤헤헥-.
아이가 운동을 가는구나.
그러나 당분간은 따라갈 수 없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개의 본능이다.
한때 화장실로 사용하던 고랑에 뭔가 변화가 오고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똥싼 정도 정이라고 옛 화장실을 지키는 중이다.
흠칫-. 으르르-.
누렁이네 할머니가 찾아왔다.
주인집에 놀러 온 줄 알았는데 들어가지는 않았다.
왈왈! 아르르- 알알!
짖었더니 집주인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가 아저씨 얼굴을 쓰다듬었다.
“에헷취-! 장군아, 왜 그러니?”
아, 아저씨 눈에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재채기만 하고 있잖아.
아저씨한테 오해를 사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땐 딴청을 피워야지.
계속 짖으면 주인 향해 짖는 미친개 취급받는 법이다.
감나무에 앉은 참새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집 주변을 한 바퀴 빙 돌고 할머니가 떠났다.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속도가 장난 아니다.
월-!
아, 역시 사람이 아니었구나.
동네 남자 사람들이 이맘때면 수근대던 말이 있다.
추웠다가 갑자기 날이 풀리면 노인네들이 많이 죽는다던가.
아마 저 할머니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다녀간 모양이다.
저 할머니가 내 부하 탯줄을 잘랐다지. 잘 가요.
지금 할머니는 혼자다.
그놈들 이름이 뭐더라? 젖은사자라던가. 검은 옷을 입고 입술이 푸르딩딩한 놈팽이. 그놈 둘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할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시는 모양이다.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그런 것도 안다.
두내리는 귀신이 많다.
터가 음습해서 그렇다고 한다.
음기를 품은 바다가 오목한 터에 닿아 더 그렇다는데 도대체 뭔 소린지는 모르겠고. 장군이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건넛마을 도꾸가 그러는데 옛날에는 훨씬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집에 개를 많이 키우는 거라고.
개가 귀신을 막아준다나?
흐헤헥-.
그거 다 개뻥이여 이 무식한 인간 것들아!
귀신을 볼 수는 있어도 막지는 못한다.
물지도 못하는데 뭘 어떻게 막는다는 겨?
뭐, 가끔 짖으면 도망가는 놈들은 있더라. 쫄보 놈들인데, 그놈들은 해코지도 하지 않고 그냥 마을에 함께 산다. 안마을에 많이 산다더라. 육 머시기라는 놈네 집 근처에 산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저 할머니는 왜 바로 안 떠나고 마을을 배회하는 거지?
설마 데려갈 사람을 찾는 건가?
가끔 어린아이를 물에 빠뜨리거나 절벽으로 유인해 데려가는 귀신이 있다.
혼자 가기 원통하다나 뭐라나. 하여간 인간들이란.
흠칫-. 장군이가 벌떡 일어섰다.
으르르-. 그렇다면 아이가 위험하다.
***
늘 웃으시던 할머니다.
그런데 이 웃음은 다르다.
단전에서 올라온 냉기가 심장을 거쳐 뺨을 순식간에 급랭시키는 기분이었다.
‘조일헌 아저씨한테 이런 얘기 들은 적 있다.’
어릴 적, 한때 공동묘지로 사용했던 곳에서 놀다가 귀신을 봤다고.
도깨비도 만났다고 했다. 웃는 얼굴인데도 묘하게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라고.
‘할머니 눈 무섭다.’
인간의 것이 아닌 눈동자였다.
우주처럼 아득한 동공에 허무한 공허가 들어차 있었다.
여느 어린아이였다면 다리가 풀렸거나 달아났을지 모른다. 하나 손진혁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사기에 휘둘릴 사람도 아니었으니.
‘슬프다.’
진혁의 감정은 공포가 아닌 애상이었다.
잠시 떨렸던 가슴을 짓누르고 입을 열었다.
진혁답게 직설적이었다.
“할머니. 유언은 남기시고 오신 거예요?”
그리 묻자니 더욱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붕맹산이 아니라 북망산이었을 거다. 비장하면서도 후련한 표정은 작전을 나가기 전 유언장을 남기던 과거 전우들에게서 보았다. 회고록을 썼다는 사람의 얼굴도 그와 비슷한 감상을 던졌고.
“이 할매 걱정허는 겨? 할매가 무서운 장냥쳐서 놀랬지?”
부드러웠으나 허허로운 웃음이었다.
환하게 웃는데도 슬퍼 보였다. 그 얼굴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진혁을 보았다.
“남길 게 뭐 있겄어-. 그냥 때 되면 오고 때 되면 가는 거지. 온 동네 애덜 내가 다 받어줬다고 그래두 좋은 디서 부르는 모양여. 이렇게 마지막이 지넥이 배웅두 받으니께 좋구먼. 그르구 보니께 우리 지넥이랑 영구 아들만 내가 안 받었네. 내가 받으야 잘 산다구 무당 영감탱이가 그래싸서 산파 노릇허구 댕긴 건디.”
할머니가 진혁의 두 손을 잡았다.
“아가, 잘 살거라이?”
역시 피부가 닿는 느낌은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손을 드니 잡힌 진혁의 손도 함께 들렸다.
잠시 눈을 맞추던 할머니의 시선이 진혁의 이마를 거쳐 머리 위쪽으로 이동했다.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류-, 이만 갈게유.”
“예?”
치매는 없으셨는데.
뭔 소리신가.
진혁은 괜히 두리번거리며 머리를 매만졌다. 아무것도 없는데.
뒤에서 저승사자가 재촉이라도 하나 싶었다.
“이 할매가 장냥 좀 칭겨 이저석아-.”
아이처럼 웃는 목소리였다.
그렇게나 아이들을 좋아하고 장난을 치시더니 돌아가셨어도 마찬가지구나. 진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전하실 말씀이라도-.”
“클날 소리 허지 말어. 미친놈 소리 듣기 싫으먼.”
옳은 말씀이었다.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많았어도 돌아가신 분을 쫓아가 대화를 했다는 사람은 없었으니. 신기 강한 영매라면 모를까.
“그래도 미경이네 가족들에게 하실 말씀이라도요. 서운해할 수도 있잖아요.”
“어이구, 사내 자석이 이렇게나 착혀어-. 맘쓸 거 웁써. 오늘 꿈속이 다 찾아갈 테니께, 지넥일랑은 걍 아무 소리두 말거라이?”
진혁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으니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걍 애답게 신나게 살거라. 너무 일찍 철들어두 재미 웁써. 부모 잘 모시고 동생들 잘 챙기구이? 이쁜 샥시 만나서 새끼두 많이 까구 살어. 알었지이?”
“네······.”
무어라 대답을 하려는데 목이 컥 막혔다.
괜시리 서러운 눈물이 떨어졌다.
콧구멍이 제멋대로 벌렁거리고 감전된 듯 찌릿거렸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은. 그 모습이 산 자든, 죽은 자든.
임종을 지킬 정도로 가까이 함께 사는 사람이 없었으니.
울지 말라는 듯, 진혁의 손을 잡은 할머니의 손이 분주했다.
다독이는 손길을 따라 온기가 느껴졌다.
“느이 가족은 지넥이가 지켜야 허는 겨.”
가족을 지켜라.
마땅히 받들어야 할 말씀이었다.
진혁은 깊이 허리를 숙여 떠나는 할머니께 예를 표했다.
진혁은 할머니가 없다. 이런 할머니가 계셨다면 어땠을까.
‘평소에 어리광도 좀 부리고 자주 인사드릴 것을.’
짧은 후회가 밀려왔다.
허나 1회차 아이였어도 데면데면했을 터였다. 노인을 대하는 아이란 으레 그랬으므로. 후회도 이때뿐이라는 것을 안다.
비현실적인 현상이다.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는 어른들의 허풍이라고 생각했었다. 진혁은 기가 센 사람이어서 가위눌리는 일도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몸이다. 내 자신보다 신기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아마도 오늘 일은 우연히 때가 맞아서 그런 거라 여겼다. 그래서 진혁은 무섭기보다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나. 장군이한테 들려주면 좋아할 거야. 나중에 유진이 크면 각색해서 들려주고. 최미경 어린이에게는 하지 않는 게 좋으려나. 슬퍼하겠지.
고개를 들었을 때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사라진 후였다.
머물렀던 곳에 한차례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편히 쉬세요.’
안개가 걷혀 다시 환해지고. 파란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처음 보는 곳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정신없이 할머니를 따라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모양, 멀지 않은 곳에 산 정상이 보인다.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떼는데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선녀바위」
누군가 이미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옛날 나무꾼 중 한 명일지 몰라.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새털구름처럼 홀가분한 미소였다.
바위 근처에는 향로가 놓여 있고 제수용 음식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제사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뭘 좋아하셨는지 최미경에게 물어야겠다.
가끔 가져다 올려야지.
선녀바위를 향해 재배 후 묵례하고 발길을 돌렸다.
‘상태창······.’
헛소리를 중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