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 바람이 분다 (5) >
***
고집 센 엄마를 졸라 도시의 큰 병원을 찾기로 했다.
유세라도 거들었다.
갑자기 괜찮아졌으니 더 이상하다며 유세라가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
“유진이는 내가 볼 테니까 날씨 좋을 때 다녀와요.”
“네, 언니······.”
평소 조용하지만 도무지 고집을 꺾을 수 없는 한유영인데 유세라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유세라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진혁이 엄마 팔을 잡아끌었다. 역시 조곤조곤 말문을 막는 말빨은 서울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뜬금없이 채혈하고 소변도 받았다.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검사도 했다.
과잉진료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진혁이 고집을 부린 까닭이었다.
“해요. 그래도 해요. 무조건 해요. 돈은 아빠가 낼 거예요.”
손광연은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돈 많아, 하는 눈빛으로.
진혁과 손광연의 매서운 눈을 외면하지 못한 의사가 이것저것 물었다.
“어지럽거나-.”
“아뇨.”
“속이 메스껍다거나-.”
“아뇨.”
한유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아픈 곳이 없었으니까. 며칠 기침한다는 이유로 들른 병원만 몇 군데던가. 남편과 아들의 성화에 주사만 여섯 방을 맞아 엉덩이에 감각이 없을 지경이다. 한 대 더 놓으면 욕할지도 모른다.
문진을 마치고 여기저기 진찰한 의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도대체 어디가 편찮으신 건지.”
“저 진짜 괜찮아요. 이 남자들이 끌고 왔어요.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기다렸다는 듯 한유영이 절규를 토했다. 의사의 소매를 꼭 붙들면서였다. 남편과 아들을 가리키며 억울한 표정도 지었다. 애절하고 절박한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명연기였다.
귤 까먹으며 TV 보다가 끌려온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려나.
피까지 뽑혔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신매매로 의심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녀자 인신매매가 사회적 이슈가 되던 시국이었으니. 어제도 저녁 뉴스에서 고교생 납치사건을 가장 먼저 다루지 않던가.
서로 닮은 가족을 보며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저기, 그 뭐냐······. 다른 병원에서 감기라고 했으면 믿으셔도 됩니다.”
제발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도대체가 모든 병원을 다 순회하고도 믿지 못해 큰 병원을 찾는 ‘곤조’를 부린다. 노환이나 감기 때문에. 게다가 의사가 보기에 이 환자는 자신보다 건강하다.
“예······.”
“죄송······.”
손광연과 진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간 방문한 곳이 시골 병원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만 얻었다. 혹시나 해서 내원한 건데, 역시나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왜 왔느냐는 눈총만 받지 않았나.
‘과잉보호가 뭐! 왜! 뭐! 내가 울 엄마 과잉보호하겠다는데!’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에 기침 감기가 많이 돈다고 했다. 올해엔 유독 그런 환자가 많다고도 했다. 아기 때문에 실내온도를 너무 높인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함께였다.
그러나 갑자기 기침이 사라지고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온 데 대해서는 의사도 뭐라 설명하지 못했다.
“그건 저도 잘······. 뭔가 착오가-.”
의사는 입을 다물었다. 돌팔이 보듯 하는 불신의 시선 때문이었다.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결과가 나올 때를 기약하며 세 가족은 발길을 돌렸다.
핀잔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의사 소견을 직접 들은 진혁은 안심했다. 결과는 당연히 잘 나올 것 같았고. 어쩌면 스스로 안심하기 위해 엄마를 끌고 온 건지도 모르겠다.
기왕 큰 병원에 왔으니 주사를 맞겠다며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 아빠는 여전히 이상했지만.
“크읏-! 쓰으읍-.”
아빠는 혹시 변태 아닐까. 오만상을 쓰며 엉덩이를 비비는 아빠를 보며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
“오빠아아아-!”
빼애애애액-.
홍수정이 차 유리에 손을 얹고 통곡을 했다.
유세라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조수석에서 팔짱을 끼고 편한 모습 아닌가.
쟤도 이제 여덟 살인데, 몇 살 때까지 울려고 저러나. 저럴 거면 오질 말든가. 진혁이 후- 긴 숨을 내보냈다. 아쉽지 않은 척.
홍기준의 가족이 떠나는 걸 보니 이제 곧 개학이다.
길었지만 가장 즐거웠던 5학년이 저물어간다.
“진혁이 숙제는 다 했니?”
“예.”
글짓기는 아직 못했지만 둘러댔다.
지난 여름방학의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진혁이 감당하기에는 아빠가 투척하는 장르가 너무······ 그랬다.
***
겨우내 포근하던 날씨가 봄방학을 맞아 갑자기 추워졌다.
매우 양호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온 후 엄마가 풍기던 냉기보다 더 혹독했다.
그 냉기로부터 자유로운 공범은 서울로 떠난 유세라뿐이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봄방학 기간에 첫발을 걸친다지만, 6학년에 올라가는 올해엔 그 정도가 심했다. 비나 눈이 와도 구봉산에 오르던 진혁이 두문불출하며 동생하고만 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삼한사온이라더니. 아직 겨울이라 이건가?’
칩거 사흘째 되는 날, 운동을 해볼까 싶어 밖에 나온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추웠다. 기온 자체는 영하 10도 정도였는데 체감 온도가 심각하게 낮았다. 포근하다가 영하로 떨어지니 상대적으로 더 위축된 탓도 있을 터였다.
건강도 좋고 성장 촉진도 좋다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산에 오르는 건 위험할 수 있다.
하여, 진혁은 개똥이나 치우기로 했다.
‘쩐다.’
장군이가 연성한 고아한 똥쓰를 삽으로 걷어내며 내심 감탄했다.
세상에 나온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짱돌처럼 땡땡하게 얼어붙지 않았나. 이 정도로 춥다면 따뜻한 비닐하우스로 참새가 침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빠가 또 침을 흘리시겠군.
‘문단속 철저!’
비닐하우스 상태를 점검했다. 근무 중 이상무.
진혁은 요즘 고민이 있다.
장군이라는 녀석은 본래 화장실로 이용하던 고랑이 정해져 있었다. 한데 요즘은 개집 근처에서 볼일을 본다. 추워진 날씨 탓으로만 여길 수는 없는 것이, 추위가 몰려오기 훨씬 전부터 그따위로 제집 주위에 똥쓰를 전시했기 때문이다. 이것 좀 보란듯이.
“장군이 너 변했어.”
헤헤헷-.
진혁이 서운한 소리를 해도 장군이는 실실 쪼개며 꼬리만 살랑거렸다. 똥싸고 매화타령 한다더니. 장군이를 위해 존재하는 말 아닐까.
‘아픈 곳도 없다는데 왜 이러는 거야?’
똑똑하던 녀석이 똥오줌 못 가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 좋을 리 만무했다. 어디 아픈가 싶어 이틀 전에는 수의사를 집에 부르기도 했다. 마침 김은정네 암소 인공수정을 위해 방문한 수의사가 있어 장군이를 보아 달라 부탁한 것이다.
- “어이구- 그눔 참 잘생겼네. 가만있어 봐잉-?”
수의사는 장군이의 눈, 코, 이빨, 똥꼬까지 꼼꼼히 검사했다. 하얗고 가느다란 플라스틱 막대기로 개똥꼬를 폭 찌른 후 킁킁 냄새를 맡을 때는 온 가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수의사는 프로였고, 역시 프로는 달랐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으며 냄새를 맡는 모습은 차라리 조향사였다. 박부로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그의 전문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박부로는 마지막으로 장군이의 근육 잡힌 다리를 만졌다. 오오- 하는 감탄과 함께였다. 비록 짧은 개다리였지만 강철섬유로 빚은 듯한 장군이의 몸은 말근육 다름 아니었다.
마침내 박부로가 인상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 “허어-, 이렇게 건강한 똥개는 25년 경력에 첨 보는디? 사자라구 혀두 믿겄어-.”
수의사의 소견과는 별개로, 똥개라는 말에 으르렁거리는 장군이를 보며 진혁은 안심했다.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무튼,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인데 아프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 새끼가 왜 화장실을 바꾼 걸까.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장군이는 진혁의 말을 알아듣지만 진혁은 개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저기다 싸라고, 인마.”
헤헤헥-.
원래 사용하던 고랑을 가리키며 핀잔했으나 장군이는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
다음날, 거짓말처럼 날이 풀렸다.
정말 삼한사온이 맞나 보다.
고드름 녹은 물이 똑똑 떨어져 처마 밑에 충돌구를 만들었다.
진혁은 장군이 뒤처리를 한 후 구봉산으로 향했다.
장군이는 진혁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예의 그 고랑에 철푸덕 엎어져 있었다.
‘알아들은 게 맞나?’
아닌 듯했다.
진혁이 가리켰던 고랑에 엎드려 있을 뿐, 여전히 똥쓰를 제집 주위에 전시 중이지 않은가. 거기 엎드려 있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싸라는 소리였는데. 소통이 원활치 않으니 진혁은 속이 터졌다.
과거, 세인그룹에 근무할 때도 한 번 설명해서 알아듣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평가를 박하게 깎아내리곤 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제 생각하니 말귀 좀 못 알아듣는다고 개나 원숭이 취급을 한 것 같다. 실상은 그들이 일하기 싫어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는 걸 알면서도 수오의 마음이 싹텄다.
어찌됐든 너그럽지 못한 짓이었다. 인격을 갖춘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끄럽구먼.’
이것도 호르몬의 영향일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과거를 또 한 번 반성하게 된다.
개똥이 뭐기에.
그깟 개똥이 뭐라고 이런 화두를 던진단 말인가. 개똥이 뭔데 반성까지 하게 만드냔 말이다. 이래서 개똥철학이라고 하는 건가.
진혁이 누그러진 표정으로 장군이를 불렀다.
“장군아, 엉아랑 운동 가자.”
개와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긴 걸까, 장군이는 진혁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명백한 개무시였다.
진혁이 언덕길을 뛰어올라도 장군이는 복지부동이었다.
진혁은 괜히 서운했다.
매일 함께 운동하던 장군이에게 외면당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었다. 이 역시 호르몬 탓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 핀잔하지 말아야지.”
그리 중얼거리며 구봉산으로 질주했다.
달리며 어깨도 돌려주고 펀치도 날렸다. 장군이에게 서운했던 마음과 미안한 감정을 담아 허공에 뿌리는 거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팩팩-,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구봉산은 흙보다 바위로 된 구간이 더 많다. 코스가 평탄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여, 노약자는 물론이고 그 옛날 나무꾼도 기피하던 산이라고 했다. 진혁이 구봉산을 오르내리며 1년간 마주친 사람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찾는 사람이 없는지 말 다했지. 어차피 등산 인구가 많지 않았지만.
약수터에 들러 물을 마시고, 정상에 올라 사방 경치를 감상했다.
북동쪽으로 도시가 보이고 서쪽으로 바다가 자리했다.
남서쪽으로 가면 진혁이 사는 마을이다.
‘아무도 없지?’
무장공비의 심정으로 잠시 두리번거렸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큰 소리 내는 건 창피했다.
제 존재를 과시하는 일이 여전히 익숙지 않은 탓이다.
에흠! 아아-. 목을 가다듬고.
“야호-!”
야호오오오-.
산이야말로 진혁의 말을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알아듣는 존재다.
어린아이 음성이 온 산골에 메아리쳤다.
“이히힉-.”
누가 보지는 않았는지, 한 번 더 주위를 살폈다.
도둑질하는 것처럼 두근거리면서도 재미있다. 옛날엔 산짐승들 놀란다고 외치지 못하게 했었지. 조만간 다시 그런 뉴스가 돌겠구나. 상식으로 자리 잡기 전에 산짐승들 실컷 괴롭혀야지.
아직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 일탈을 저지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허전하네.’
늘 옆에서 늑대 울음을 길게 빼던 장군이가 없으니 쓸쓸한 감상이 들었다. 이게 다 몹쓸 호르몬이라는 녀석 때문이겠지.
외쳤으니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장군이한테 망둥어나 줘야지.
포근한 날씨 탓일까, 자욱하게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파랗던 하늘이 해질녁처럼 어두워졌다.
‘해괴한 날씨다.’
해안가에서 종종 보는 현상이긴 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평탄한 중턱을 만났을 때였다.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다.
“······할머님.”
최미경의 할머니였다.
지팡이도 없이, 힘든 기색 없이 편안한 얼굴로 산을 오르고 계셨다.
몸빼바지가 아닌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차림이었다. 나무꾼과 선녀라는 옛날이야기로 접한 날개옷이 떠오른다.
‘자리 털고 일어나신 건가.’
얼마 전 아빠가 하시는 말을 들었다.
미경이네 할머니가 자리보전하신지 한 달이 넘었다고.
평소와 달리 허리를 꼿꼿이 세웠고, 주름이 자글거리던 피부에는 탄력이 넘쳤다. 농사일로 평생을 그을렸을 갈색 피부는 화장한 듯 희고 고왔다. 그리 판이하니 알아보지 못해야 정상인데도 진혁은 최미경의 할머니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닮은 사람이기에 그렇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저 직감으로.
“우리 지넥이구나.”
최미경의 할머니가 진혁을 보며 싱긋 웃었다.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진혁은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웅웅댄다고 느꼈다.
갑작스레 변한 날씨, 이질적인 할머니의 모습,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의식. 예상되는 바가 있어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어쩌면 기연일지도 모르지.’
두려움 없이 차분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죽음을 경험하고 과거로 돌아온 마당이다. 그 이상의 기연이나 신비는 없을 터였다.
강심장 진혁은 도망치기보다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로 했다.
“힘드신데 어디 가세요?”
“갈 디가 있어서 한껏 꾸미구 나왔지.”
할머니는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옆을 툭툭 쳤다.
조심스레 옆에 앉는 진혁을 보며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이 산너머 못밭이라는 동네서 났어-. 왜눔덜 피해서 열다섯 살이 시집 왔지······. 동무들은 왜눔들헌티 끌려가구······.”
갑자기 풀어헤친 이야기 보따리에 진혁의 얼굴이 바보처럼 변했다.
그 모습이 서울 촌놈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