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9화 (19/338)

# 19 < 바람이 분다 (4) >

***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었다.

조금만 달려도 땀이 나서 진혁이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운동하는 날이 많을 정도였다.

아무리 추워도 감기에 걸리는 일이 드문 가족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유영이 밤마다 기침을 했다. 개인 의원에서도, 도시의 의료원에서도 그저 감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나 약을 먹어도 기침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니, 유진이는 2층 오빠 방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어차피 엄마보다 오빠를 더 찾는 동생이었기에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어린 딸에게 감기라도 옮을까 걱정하던 엄마를 위해서도 그렇고.

“자기야, 서울 큰 병원에 한 번 가볼까요?”

“아이, 뭐하러요. 원래 푹한 겨울에 감기 많이 걸리는 거예요. 좀 쉬면 돼요.”

천생 시골 사람인 한유영은 별것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 목소리가 걸걸하게 갈라져 나왔다.

“예······.”

손광연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유영의 말이라면 죽는시늉도 하는 사람이었으니. 아내의 혈색이 좋은데다 기침 외의 병증도 없어 안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으니 손광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진혁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울 엄마 편찮으시면 안 되는데. 차라리 대신 아프면 좋겠다. 진혁은 포대기를 풀어 업고 있던 동생을 바닥에 내렸다.

“유진아 오빠는-.”

“엄마, 엄마-.”

양해를 구하기도 전에 유진이는 아장아장 걸어 엄마에게 갔다. 오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가지로 기특한 동생이다.

작업복을 걸쳤다. 가을에 밭일을 거들 때 입는 얇은 항공 점퍼다.

창고에서 삽과 곡괭이, 톱, 낫을 챙겼다.

‘힘 좀 써야겠구먼.’

타이어를 가늘게 오려낸 튜브로 연장을 한데 묶었다. 한번에 짊어 메고 최미경 어린이네 집으로 향했다.

헤헤헥-.

당연히 장군이가 옆에 붙어 나란히 걸었다.

헤헤헥-!

최미경네 집에 닿기 무섭게 장군이는 이 집 누렁이의 개밥그릇으로 돌진했다. 굶긴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깡패견이 따로 없다. 애써 외면하며 문을 두드렸다.

험험-. 목을 가다듬고 집주인을 호출하는 거다. 최대한 아이 같은 말투로.

“실례합니다. 안에 계십니까.”

입에 착 붙는 사무적인 말투가 자연스러웠다. 스스로 만족스러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내 문이 열리며 현관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누구-. 히익! 너 진혁이 맞냐?”

최미경의 오빠 최태양이었다. 겨울 합숙훈련 중 모처럼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그는 중학생만큼이나 커 보이는 진혁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뒤에서 밖을 기웃거리는 꼬맹이 동생 최미경을 거듭 돌아보았다. 얜 작은데 너는 크구나.

오랜만에 보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아이들이 겨울방학 때 쑥 커버린다지만 이제 6학년 올라가는 녀석이 이렇게 클 수가 있나? 역시 집이 잘사니 잘 먹고 잘 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최태양도 그런 환경에서 컸으니.

내심 고개를 끄덕이는데 진혁의 은근한 음성이 들렸다.

“엉아.”

그러고 보니 진혁은 형이란 말을 사용해 본 기억이 없다.

아주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이 사용하는 호칭이 나왔을 뿐이다.

한순간 최태양이 헤벌쭉 웃었다.

“아저씨 안 계세요?”

“엄-.”

“엄마랑 대삿집 가셨어.”

최미경 어린이의 대답이 빨랐다. 현관을 독차지한 최태양의 덩치에 가려져 목소리만 들렸다.

“아······.”

대삿집이라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셨다는 뜻일 터. 자녀들을 집에 두고 갔다는 건 장례식일 가능성이 높다. 진혁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아저씨한테 부탁할랬는데.

그때 최태양의 음성이 진혁을 잡아 세웠다.

“연장으로 뭐 하게?”

*

푹! 푹!

헥헥-.

최태양은 힘이 좋다. 체격이 좋아 열한 살 때 읍내의 태양초등학교로 전학해 씨름부에 입단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서도 씨름선수로 활약 중이다. 벌써 7년째에 접어들었다.

농사일을 거들려 하면 운동하는 아들이 근육통이라도 얻을까, 부모님이 손사래를 치는 통에 집에 있을 때도 마당에서 튜브만 당기곤 했다. 최미경네 마당 주변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죄다 안쪽으로 휘게 된 이유였다.

태양읍의 영웅이 되라며 안마을 무당 할아버지가 이름도 태양으로 점지해줬다.

그건 그렇고.

“아이고-, 이거 쉽지 않네.”

보다시피 삽질이 서툴다.

영웅은 샅바를 잡는 사람이지 삽을 잡는 존재가 아니었다.

비록 나이 차가 크지만, 동생 최미경이 귀에 피가 나도록 떠들어 대는 통에 손진혁이라는 녀석이 친근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홍길동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연장을 잔뜩 챙겨왔기에 궁금해서 물은 것인데.

‘돕겠다는 소린 아니었는데······.’

잡목 우거진 숲에서 곡괭이질과 삽질을 하게 될 줄이야. 기침이 심한 엄마를 위해 칡뿌리를 캐러 간다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엉아라는 한마디에 심장이 말랑해진 탓도 있었다.

숨이 컥컥 막히고 허리는 끊어질듯했다. 역시 노동과 운동은 같을 수가 없구나. 사용하는 근육도 다르고 호흡조절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손진혁 저놈은 신기하다.

‘신삽합일인가.’

사람과 삽이 마치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이 아닌가. 명가람과 칡줄기, 낙엽까지 능숙하게 걷어내는데 물 흐르듯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숲에는 흙보다 돌이 더 많다. 그런데 저 녀석은 개의치 않는다.

목표물은 바위틈을 가로질러 굵고 기형적인 나무뿌리 뒤에 숨어있다. 그런데도 곡괭이와 삽, 낫과 손. 모든 가용 연장을 동원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마치······.

‘도굴꾼 같네.’

숨을 고르던 최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리 집요하니 공부를 잘하는 거겠지. 내 동생 미경이도 집요해서 공부를 잘하는 거였구나. 최태양은 한참을 멍하니 서서 손진혁의 도굴 실력을 감상했다.

최태양이 감탄과 고찰을 반복하는 동안 어른 팔 길이만 한 칡뿌리가 위용을 드러냈다. 형태를 보니 가장 굵은 부분은 아직 묻혀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굵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진혁아, 이리 나와. 형이 할게.”

최태양은 굵직한 팔뚝을 자랑하듯 반팔 티셔츠 소매를 어깨 삼각근 위로 걷어 올렸다. 삽질은 서툴러도 힘 하나는 어디 빠지지 않는다. 열세 살 때부터 전국대회에서 수집한 트로피만 20개가 넘고 쌀가마니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장사다. 이깟 풀뿌리쯤이야.

“흐끄흐냐하잉- 하흣스흐하응-!”

똥 싸겠네, 똥 싸겠어. 진혁이 속으로 되뇌었다.

자세부터 완벽한 쪼그려 쏴 아닌가. 실제로 싼다면 삽도 있고 흙도 있으니 그냥 묻으면 될 듯했다.

으허-허으-허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최태양이 딱하게 느껴졌다. 그리 허약하니 백두장사까지밖에 못했지. 나는 아빠랑 틈날 때마다 농사일해서 힘 센데. 아홉 살 땐 맷돌도 한 손으로 들었는데. 그리 사색에 잠겨 최태양의 터질듯한 얼굴과 팔뚝을 감상했다.

헤헤헥-.

장군이도 최태양을 눈 아래로 보는 것 같았다.

굵은 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씨름선수가 힘을 주었음에도 깊이 박힌 칡뿌리는 뽑혀 나오지 않았다. 질겨서 끊어지지도 않고 굵어서 자르기도 힘들어 보였다.

최태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혁이 어린이답게 말했다.

“내가 하죠.”

“허억- 허거-, 이거 엄청 단단한데 그냥 위에만 자르는 게-.”

얼굴이 벌개진 최태양이 쪼그려 앉아 숨을 헐떡일 때였다.

진혁이 칡뿌리를 두 손으로 잡고 짧게 기합을 넣었다.

“흡!”

우르릉-.

땅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발밑이 굵직하게 진동하며 흙덩이가 이리저리 굴렀다.

우두두두두두두-두두둑-.

땅속에 숨어있던 뿌리가 모조리 뽑혀 나왔다. 2미터가 넘고 어른 허벅지처럼 굵은 초대형 칡뿌리였다. 절대 뽑히지 않을 것 같던 괴수가 순순히 끌려 나오는 광경이 괴이했다.

최태양이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땅은 왜 판 거니······.

“처음부터 뽑으면 끊어져요.”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하며 최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왔어도 될 뻔했네. 진혁이 손을 탁탁 털었다. 아무래도 호르몬이 뿜뿜하며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톱으로 칡뿌리를 반으로 잘랐다.

좀 더 묵직한 놈을 최태양에게 건네며 어린이답게 말했다. 아무렴, 어린이는 공손하게 말해야 한다고 최근에 배우지 않았나.

“욕봤어요.”

“어······, 그래.”

최태양은 저도 모르게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았다. 말투도, 힘도 지나치게 어른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최태양은 득템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부지 몰래 술 담가야지.

사아아-. 숲을 벗어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동시에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살펴 가요.”

“어······.”

성큼성큼 걸어 멀어져가는 진혁을 보며 최태양은 생각했다.

‘내가 거의 다 뽑았을 거야.’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나오는 거였는데.

이놈의 괄약근에 힘을 분배하느라 실패한 거다.

***

손광연이 호들갑을 떨었다. 사라졌던 아들이 구렁이보다 구렁이 같은 나무뿌리를 들고 나타났으니. 아내 슬리퍼에 억지로 발을 끼워 넣은 모습이 앙증맞았다. 아빠는 발가락에도 털이 났네.

“히이이이-, 엄청 크다! 이 굵기 좀 봐.”

손광연은 칡뿌리를 들어 팔과 비교해보고 다리에도 대보았다.

사타구니 어디쯤에 대볼 때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기도 했다. 다분히 호승심에 불타는 눈빛이었으나 까닭 없는 도전이었다.

진혁은 한숨 쉬며 고개를 돌렸다. 왜 거기에 대보는 걸까.

“우리 진혁이가 엄마 생각해서 캐온 거야?”

마침 엄마가 유진이를 안고 나왔다.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중후한 서울 사나이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 이거 달여 드시면-.”

“응. 맛있겠네. 근데 엄마 이제 기침 안 해.”

칡뿌리만 캐고 왔을 뿐인데 그 사이에 뭐 좋은 거라도 드셨나?

실제로 목소리도 낭랑했다. 가슴을 아프게 하던 갈라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애기 안고 있었더니 따뜻해서 괜찮아졌나 봐.”

그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어머니. 진혁이 저도 모르게 투레질하듯 입술을 떨었다. 이처럼 시골 어른들은 이해 못 할 말을 한다.

그래도 정말로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연신 엄마의 목 언저리를 다독이며 방긋방긋 웃는 유진이가 복덩이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진혁아, 이거 어쩌지?”

“술이나 담그죠 뭐.”

홍기준 아저씨가 좋아하시겠네.

진혁은 세척한 칡뿌리를 작두로 잘라 평상에 널었다. 적당히 마르면 차를 끓여 마실 생각이다.

진혁이 일하는 동안 손광연은······.

쯥쯥쯥-.

“으음-. 즙도 많고 쌉쌀하니 맛있넹-.”

“······.”

***

추운 날은 썰매를 타고, 포근한 날이면 방학 내내 미꾸라지를 잡았다.

이웃들은 읍내 장에 나가 팔아 부수입을 올렸지만, 돈이 아쉽지 않은 진혁과 아빠는 그저 재미로, 운동과 놀이 삼아 조금만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포근한 날은 엄마와 유진이, 장군이까지 따라와 논둑을 지켰는데, 그럴 때면 아빠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휘이-, 거기 아리따운 아가씨 이름이 뭐예요?”

“어머, 호호호.”

아저씨답게 되지도 않는 수작을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양반이 너무 올드한 건 아닐까. 엄마가 받아주니 계속하는 거겠지만 난 저러지 말아야지. 그리 생각할 때였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온 홍기준이 괴성을 질렀다.

“와하학-! 이거 재밌네. 수정아! 아빠가 미꾸라지 잡았다! 으하하하하!”

홍기준이라고 삽질에서 열외 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듯 보였다. 월척이라도 잡은 듯이 동네가 떠나가라 광고를 하지 않나. 목청 좋은 홍기준의 외침에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댔다.

진혁의 곁에 찰거머리처럼 붙은 홍수정은 아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딸년 키워봤자······.’

머쓱해진 홍기준은 미꾸라지나 잡기로 했다. 서울 사람의 그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자세와 동작, 역시 군필자는 달랐다.

홍기준이 분노의 삽질을 하는 사이, 진혁이 능숙하게 구멍을 파면 홍수정이 재빨리 미꾸라지를 바스켓에 담았다. 환상의 짝꿍이었다.

“오빠, 이거 맛있어?”

“응. 맛있지.”

“이것도 망둥어처럼 말려 먹는 거야?”

“아니. 푹 고아서 탕으로 먹지.”

“오빠, 얘는 뱀 같다.”

“그러네.”

드렁허리였다.

미꾸라지를 잡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녀석인데, 미꾸라지와 비슷한데 훨씬 길쭉하고 미끄럽고 단단하다. 옛날 시골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물고기라며 버리기도 했는데, 장어처럼 고아 먹으면 관절에 특효라는 말도 있었다.

징그러워할 만한데도 홍수정은 기겁하지 않고 꼼꼼히 관찰했다.

“이 뱀도 먹을 수 있어?”

“그럼, 먹을 수 있지. 어차피 끓여서 잘게 부수면 누가 누군지 몰라.”

논바닥에 쪼그려 앉은 홍수정이 진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 오빠가 언젠가부터 말이 길어졌잖아. 늘 단답형으로 말해서 변비 걸린 듯 속이 답답했는데. 역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가 봐.

마침 엄마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 남은 피자 조각을 두고 싸우면서였어. 아마 엄마가 이겼던 것 같은데.

- “침 바르는 사람이 임자야.”

- “내가 당신한테 침 발랐고, 당신은 내 거니까 피자도 내 거야.”

깨달음을 얻은 서울 꼬맹이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 대용으로 손에 꼈던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는 검지로 혀를 찍은 다음, 삽질에 여념이 없는 진혁의 뺨을 콕 찔렀다.

“응? 왜?”

불의의 일격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진혁이 물었지만 꼬맹이 홍수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키득거릴 뿐이었다. 피자, 피자라고 중얼거리며.

찰칵-.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광연이 셔터를 눌렀고.

딸의 잔망스러운 짓을 모두 지켜본 유세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X(나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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