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 바람이 분다 (3) >
***
아빠가 오골계를 얻어오셨다.
신정 선물이라고 닭을 주다니, 이 얼마나 순박하고 훈훈한 이웃들인가.
‘진짜 무섭게 생겼다.’
오골계라는 놈은 성정이 포악하기 짝이 없어서 닭장에 들어가자마자 폭군이 되었다. 덩치는 다른 수탉보다 작았으나 힘과 스피드, 스태미나까지 뛰어났다. 한 번 홰를 치니 다른 닭들이 알아서 피했다.
이 폭군은 암탉이 낳은 알을 쪼아서 깨뜨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노른자를 파먹었고, 사료를 훔쳐먹으려 닭장에 침입한 쥐까지 잡아먹었다.
세상에, 닭이 쥐를 먹다니.
한입에 꿀꺽 삼키는 모습, 처음 보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손 씨 부자는 서로 껴안고 파들파들 떨어야 했다. 쪼이면 죽는다는 생각과 함께.
‘오, 대단한 녀석이다.’
진혁이 눈을 빛냈다.
저 윤기 흐르는 깃털은 흡사 하늘의 제왕 까마귀 같지 않은가. 탄탄해 보이는 두 다리는 어떻고. 마치 벤 존슨을 연상시키는 건각이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닭 존슨이다.’
진혁은 닭장을 슬쩍 열었다.
역시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큰 닭인지 닭 존슨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흉흉한 안광으로 주위를 살피면서였다. 그 갈망을 충분히 이해하는 진혁은 진한 동료애마저 느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자포의 자유를 찾아 달리지 않았던가.
동료애는 동료애고······, 막대기로 오골계의 머리를 살짝 건드렸다.
콕-.
뻐뻐뻑! 닭 존슨이 100분의 1초 만에 반응했다. 역시 스프린터의 이름을 받은 녀석다웠다.
오골계가 덤벼듦과 동시에 진혁이 땅을 박찼다.
냅다 튀는 거다!
“아악-!”
엉덩이를 쪼였다. 스타트에서 밀린다.
그렇다면 거리를 좀 벌려야겠다.
멀리서 작은 돌을 던져 도발했다.
뻑뻑뻑!
오골계가 홰를 치며 달려들었다. 닭 존슨답게 자세와 균형 모두 완벽했다.
진혁이 재빨리 피했다.
‘좋아! 스타트에 도움이 되겠어.’
스타트로 장군이를 이길 날도 머지않았다.
그러나 닭 존슨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코코콕-. 부리 3연타가 엉덩이로 날아들었다.
“아악! 아파 인마!”
닭 존슨, 이 녀석이 힘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에, 힘숨닭이라니.
진혁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무릇 천재란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바, 어쩌면 닭 존슨도 그 점을 알기에 힘을 숨기고 사는 것 아닐까.
‘닭 존슨······, 존경스럽닭.’
진혁은 왼주먹을 오른손으로 감싸 내밀었다. 닭 존슨을 향한 포권이었다. 스승에 대한 예우인 동시에 강한 적수에 대한 인정이었다.
지켜보던 아빠가 배를 잡고 웃었다.
원목으로 만든 신상 개집에서는 장군이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장군이의 시선을 무시하고 진혁은 진지한 탐구에 들어갔다.
‘닭 존슨을 보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순발력이 좋아졌을 텐데.’
그랬다면 장군이와의 단거리 경주에서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터.
지금도 열세 살짜리로 보기 힘든 체격과 스피드지만 진혁은 아쉬웠다.
재능이라는 것은 일찍 발견할수록, 갈고 닦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석처럼 더 빛나는 법 아니던가. 그래서 결심했다.
“아빠, 오골계 수탉 몇 마리 더 사주시면 안 돼요?”
“그래.”
마당에서 뚝딱뚝딱 썰매를 만들던 아빠가 흔쾌히 대답했다.
진혁이 매일 오골계를 학대하며 스타트 훈련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아빠였으니 내심 계획 중이기도 했다. 컴퓨터도 있고 게임기도 사줬는데 집 안에서는 동생과 놀거나 독서만 하는 아들이다. 취향이 특이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닭이랑 노는 게 좋다면 닭을 사주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꼴에 수탉이라고 짝짓기하는 데에 힘을 다 써버리니.’
닭 존슨에 의해 뒷머리의 깃털이 모조리 뽑힌 암탉을 떠올리며 손광연이 피식 웃었다. 수탉은 짝짓기를 할 때 암탉의 뒷머리를 쪼아대곤 했다. 암탉 뒤통수가 성감대인가?
아무튼.
닭 존슨은 10회 정도 훈련을 반복하고 지쳐서 제 발로 닭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닭 존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료에 약을 섞기도 하고, 민간요법에 따라 고추장을 먹이기도 했다. 수많은 암탉을 거느리는 하렘의 지배자로서 진혁의 훈련 파트너 노릇까지 하기에는 닭 존슨의 한계가 명확했다. 그나저나 하렘 닭이라니. 왠지 메이커 느낌이다.
그리 고찰하던 손광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 됐다-.”
“썰매 있는데 왜 또 만드셨어요?”
“수정이도 타야지.”
“아······.”
방학이 절반쯤 지나갔으니 서울에서 손님이 올 때가 됐다.
여덟 살이면 수정이도 혼자 썰매를 탈 수 있겠지. 그동안 진혁이 무릎에 앉히고 태우다가 얼음이 얇은 곳을 만나 동반 입수한 게 몇 번이던가. 얕은 논이기에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깊이와 관계없이 유일한 디딤판이자 안전장치인 얼음이 깨진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엉덩이가 젖어도 좋다고 웃는 녀석이긴 하지만.’
혼자 타면 안전하겠지.
진혁은 새 썰매를 모래와 흙이 있는 곳에 박박 비볐다. 혼자 타야 한다는 까닭 모를 서운함을 잊기 위해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나무 밑에 댄 철사를 그렇게 연마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얼음 위에서 썰매가 더 잘 미끄러진다. 특히, 팔 힘이 약해서 얼음 지치는 걸 힘겨워하는 여자아이들에게 필수라 할 수 있는 사전작업이었다.
***
벼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물을 가둔다. 그랬다가 봄이 되어 쟁기질을 하기 전 물을 뺀다. 쟁기질하는 것을 ‘로터리를 친다’고 했는데, 경운기로 로터리를 치면 흙덩이가 크게 뭉쳤다. 그래서 쟁기질 후에도 농부들은 삽이나 쇠스랑 따위로 일일이 흙덩이를 깨야 했는데, 겨우내 뭉친 흙은 단단해서 사람 힘으로 깨려면 큰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그 작업을 거르기 위해 겨울 내내 논흙을 물에 불리는 것. 그게 겨울 무논이었다. 그렇게 해야 편평히 마름질을 하고, 못자리를 만들고, 봄에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
트랙터가 도입된 후로는 겨울에 물을 받는 논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트랙터라는 녀석은 힘이 좋고 기능이 많아서 굳이 흙을 오래 불리지 않아도 잘게 로터리를 치는 게 가능했다. 노동력과 작업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니 트랙터를 보유한 농부의 인기가 치솟았고, 농사는 적게 지으면서 트랙터로 날품을 파는 트랙터 드라이버도 등장했다.
농사철이 되면 아빠의 논과 밭에 제일 먼저 트랙터가 투입된다. 자금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인품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리고 보유한 경작지가 많은 아빠는 논밭이 붙은 이웃의 땅에도 겸사겸사 작업을 지시했던 터였다. 그걸 싫어할 이웃은 없었다. 두내리의 농사는 손광연의 땅에서 시작해 손광연의 땅에서 끝났다.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면 너무 곤죽을 만들기 때문에 모내기하기 한 달 전에는 쳐야 해. 그러지 않으면 흙이 모를 잡아주지 못해서 모가 다 떠버려.”
“그럼 아빠도 논에 물을 받지 않는 게 좋지 않아요?”
“그래도 몇 개는 받아 둬야지. 우리 진혁이 썰매 타려면.”
크으, 아버지시여.
진혁은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묵묵히 뒤를 따랐다.
두 남자의 손에는 빨간 고무 바스켓과 삽이 들려 있었는데, 그라인더로 양쪽 날개를 잘라 날렵하게 만든 삽이었다. 한여름 갯벌에서 개흙을 파고 낙지를 잡는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삽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진혁아, 미꾸라지가 있을까?”
“겨울잠 자는 애들 있어요.”
농약을 거의 치지 않아 물이 많은 여름 논에서 붕어나 미꾸라지, 송사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진혁은 강진수 어린이에게 들은 방법으로 겨울잠 자는 미꾸라지를 잡기로 했다. 추어탕을 끓여 부모님 몸보신을 시킬 수도 있고, 아빠와 뭔가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즐거웠기에. 겨울만 되면 참새 타령을 하시는 아빠의 주의를 환기할 필요도 느꼈다.
물을 받아두지 않은 논으로 두 손 씨 부자가 들어갔다.
혹시 몰라 장화를 신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바닥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았다.
“아빠, 여기 보시면 연필만큼 가느다란 구멍이 있어요.”
“응. 그렇네. 낙지 숨구멍이랑 비슷하다.”
과연, 최장환과 육영구를 따라 낙지를 잡으러 갔을 때 배운 낙지 숨구멍과 비슷했다. 그날 손광연은 더위에 지쳐 몇 마리 못 잡았지만, 아무튼 눈과 머리로 배우는 건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에 너무 깊이 파면 안 돼요. 미꾸라지가 끊어질 수 있거든요.”
“으으-, 아프겠다.”
아빠는 말을 배우는 유진이만큼이나 감정표현이 풍부했다. 그새 미꾸라지에 감정이입을 하신 모양이다.
진혁이 웃음을 삼키며 삽으로 흙을 떠냈다. 아이스크림을 뜨는 스쿱처럼 삽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한 번에 떠내는 양은 많지 않다. 어른 주먹으로 두 개 정도, 세 번이나 팠을까.
“오-, 정말 미꾸라지가 있네? 그런데 얼어 죽은 거 아닐까?”
배가 샛노란 미꾸라지가 찬 겨울 공기에 노출된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겨울잠 자는 중이라 그래요. 잡으면 움직여요.”
마침 진혁이 집어 들자 미꾸라지가 열심히 펄떡거렸다.
“겨울 미꾸라지가 몸에 좋대요. 추어탕 끓이면 맛있을 거예요.”
“추어탕······.”
진혁은 아빠가 침 흘리는 모습을 못 본 체했다. 아무래도 수족구병이 맞는 것 같은데.
이제 수업은 끝났다.
아빠의 눈이 마왕을 앞에 둔 용사의 그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기에 진혁은 다른 숨구멍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하하- 재밌다. 우리 아들이랑 이런 것도 해보고 너무 좋다.”
저도 너무 재미있어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삽질을 하며 아이처럼 신난 아빠를 보며 진혁의 행복도가 충만해졌다. ‘다시 살게 된다면’,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얼마나 간절한 꿈이었던가. 그 생각대로, 꿈대로 하루하루 행복을 채우며 살게 되니 어떤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멀리 다른 논에서도 미꾸라지를 잡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체형과 걸음걸이가 낯선 걸 보니 아마도 다른 동네 아저씨들 같은데.
‘저 아저씨들도 미끄리 잡으시나? 저기 우리 아빠 논인데.’
땅에서 나는 것은 땅주인의 것이다.
법률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건 당연한 진리였다. 굳이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었지만, 자본주의 세계에서 반백 년을 산 진혁으로서는 소위 말하는 ‘시골인심’ 운운하며 타인의 재산에 거리낌 없이 손을 대는 행태가 달갑지 않았다.
물론, 저 아저씨들에게 따로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빠가 소작 준 논에서 부업하시는 거야. 저분들도 즐기면서 살아야지.”
“네.”
아빠는 신기한 사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진혁의 눈빛만 보고도 생각을 읽어내는 사람 같지 않은가. 이전 생의 상처가 커서 가족 이외의 존재에게는 마음의 문을 닫고 늘 경계하며 살았는데, 선행을 베풀며 두루 존경받는 아빠를 보면 늘 반성하게 된다.
“내가 피해 보는 게 아니면 좀 나누고 살아도 좋아. 호구 소리 듣더라도 남는 게 더 많으면 결국 내가 버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곱씹어 보려 했지만 아빠의 환호성에 집중이 깨져버렸다.
“아싸! 한 마리는 원! 두 마리는 투! 세 마리는 뜨뤼이-!”
“······.”
“진혁아, 아빠가 얘네 이름 붙였다.”
“······뭐라고 붙이셨는데요?”
“메칸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삽질에 열중하면서였다.
진혁은 왜 그리 이름 붙였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게 아빠에 대한 예의 같았으니. 그러나 아빠의 노동요가 진혁보다 빨랐다.
“아, 메칸더 첫째! 아, 메칸더 둘째! 아, 메칸더- 막내애-. 메칸더 세 용사 단결하면-.”
그 진중하던 분이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걸까. 그거 종영한 게 벌써 3년은 지난 거 같은데. 낙지에 비해 훨씬 쉬운 미꾸라지 잡이라서 흥겨우신 게지. 그리 자답한 진혁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용감히 싸워라-. 메칸더- 쁘이이-!”
맙소사, 액션까지 취했어. 한 손은 허리에 얹고, 한 손으로는 브이를 만들어 쭉 뻗으면서.
진혁은 미꾸라지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얘들도 창피해서 땅속에 있는 거 아닐까.
‘내 친구들은 저 나이에 저러지 않았는데.’
진혁의 눈빛이 자못 슬펐다.
호르몬의 습격으로 감수성 개화와 함께 수치신공을 익히게 된 까닭이다.
‘그래도 행복해 보이셔서 좋다.’
그런데 왜 자꾸 엄마가 보고 싶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