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 세 생명 (5) >
***
토요일,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점심을 먹은 진혁이 창고를 뒤졌다.
“진혁이 뭐하니?”
아빠의 부름에 진혁은 낚싯대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낚시를 하지 않아도 집에 낚싯대가 있었다. 누가 남는다고 줘서, 버리고 간 걸 주워서, 훔쳐서······.
진혁이네도 마찬가지였다. 심심할 때 쓰라며 미경이네 아빠가 준 대나무 낚싯대였다.
“아빠, 망둥어 잡으러 가요.”
“망둥어? 진혁이 낚시할 줄 알아?”
소싯적에 많이 해봤습니다, 아버지.
그럴 순 없겠고.
“쉽대요.”
“그, 그럴까?”
아들이 가자는데 가야지.
손광연은 목장갑부터 챙겼다. 서울 촌놈답게 먹는 건 좋아하지만 만지는 걸 두려워한다. 해루질 갔을 때도 아내가 사냥감을 포획할 때마다 환호하는 것이 손광연의 일이었다.
‘망둥어 정말 맛있는데. 무서워.’
시골에 와서 처음 먹어본 말린 망둥어에 비하면 대학 시절 맥주 안주로 먹었던 노가리는 밍밍한 쓰레기였다.
어떻게 잡아야 하나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혁이 씩씩하게 앞장서 걸었다.
진혁은 자신 있었다.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올 때면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얼마나 많은 시간 낚시를 하며 망부석처럼 앉아있었던가. 그때는 남획과 갯벌 오염, 그리고 개발로 인한 물길 내 퇴적으로 망둥어 개체가 많이 줄어있었음에도 두 자릿수를 충분히 채웠다. 그걸 말렸다가 산소를 찾을 때마다 올렸고.
‘지금은 개체수가 많아서 엄청 잘 잡힐 걸?’
바다에 거의 도착해 근처 숲에 들렀다. 넓적한 도토리 나뭇잎 몇 장을 따서 대바구니 안에 넣는 거다. 아빠의 대바구니에도 넣어드렸다.
“이건 왜?”
“이렇게 하면 더 싱싱해요. 아니, 싱싱하대요. 여름에 뻘낙지 잡는 아저씨들도 스티로폼 박스에 이거 몇 장씩 넣잖아요.”
도토리 나뭇잎을 넣는 행위는 단지 토종 낚시꾼의 로망이라 말하고 싶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신선도 유지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는 진혁도 모른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나름 설득력 있었나 보다.
‘역시 똑똑하구나 우리 아들.’
손광연은 착한 바보가 되어 고개만 끄덕였다.
진혁은 아빠를 이끌고 물이 없는 갯벌을 찾았다.
“진혁아, 여긴 물고기가 없는데?”
“미끼 잡아야죠. 삽 주세요.”
“아······.”
입을 헤 벌린 손광연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상하다. 나는 대학까지 나왔는데 왜 이런 걸 모를까. 미끼를 먼저 준비하고 낚시를 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임에도 경영학 강의 어디에서도 접하지 못했다.
손광연의 깨달음은 이내 감탄으로 바뀌었다.
‘오오, 우리 아들.’
진혁이 능숙한 솜씨로 작은 삽으로 개흙을 걷어내고 새빨간 갯지렁이를 연달아 잡아냈다. 낚시점에서 판매하는 양식 청갯지렁이가 아닌 토종 홍개비였다. 눈부신 햇살을 받은 가느다란 선홍색 갯지렁이 자태는 예쁘다는 감탄이 절로 들게 했다.
손광연도 장갑을 믿고 열심히 지렁이를 깡통에 담았다. 색깔은 예뻤지만 꿈틀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워 고개를 돌려 곁눈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빠랑 잡으니까 너무 재밌다······.”
“아하하, 아빠도 재밌어.”
진혁의 말이 지닌 무게를 아빠는 아실까. 홀로 외롭고 무서웠던 시간이 아빠와 지렁이를 주워 담는 값진 호들갑으로 화했다는 사실은 모르시겠지.
‘모르시면 어떠냐, 이렇게나 행복한데.’
진혁의 얼굴에 꾸미지 않은 함박웃음이 걸렸다.
썰물을 맞아 드러난 물길에 도착해 낚싯줄을 풀었다.
진혁은 아빠의 바늘에 먼저 지렁이를 끼웠다.
“아, 그렇게 끼우는 거구나. 다음부터는 아빠가 할게.”
당연한 소릴 하시네.
다 큰 양반이 언제까지 어린 아들 손을 빌리려 했을꼬.
“아빠, 이렇게요.”
강태공처럼 물에 푹 담그고만 있는 아빠에게 진혁이 고패질 시범을 보였다.
후두둑-!
시범을 보이는데 성질 급한 망둥어가 덥썩 물고 짼다.
대나무 낚싯대 초리가 휘청거리고 낚싯줄이 핑핑 날카롭게 울었다.
“으쟈아-!”
너무 세게 당겼을까, 몸집 작은 진혁이 갯벌에 짤뿍 자빠졌다.
지미럴, 작은 몸에 적응할 때도 됐건만.
바깥세상으로 나온 커다란 망둥어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푱, 푱. 공간 이동하는 활어의 펄떡임은 차라리 텔레포트였다.
“어어! 괜찮니? 어쩌지, 어쩌지?”
아빠와 망둥어는 서로 인연이었을까.
아빠가 발 딛으려는 곳마다 망둥어가 펄떡이며 선점했다.
뻘에 넘어졌으니 다치지 않았을 거라 안심한 면도 있었지만 아빠는 망둥어가 무서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혁이 누운 채 어깨를 들썩였다.
“에히히-, 아빠는 물고기가 무서워요?”
“아니야, 하, 하나도 안 무서워어-.”
새빨간 거짓말. 말까지 더듬으면서.
아빠 얼굴도 평소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두 개의 대바구니가 가득 찼다.
지렁이가 없어 미끼가 부족해지면 망둥어를 잘라 사용했다.
막 밀물이 시작되어 물고기가 너무 많을 때는 급한 마음에 빈 바늘을 넣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도 잡혔다. 빈 바늘을 물다니, 망둥어도 철분이 필요해서 그랬을까.
“우와! 무겁다. 집에 가자.”
아빠의 입이 귀에 걸렸다.
대바구니 두 개를 멘 아빠 뒤를 낚싯대와 삽을 든 진혁이 따랐다.
어린 아들이 힘들지는 않은지 물으며,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손광연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진혁은 아빠와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어헐씨구-, 좋구나-.’
온몸에 뻘을 뒤집어쓰고 쭐레쭐레 엉덩이춤을 췄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할 때면 늦은 밤 대로변에서 춤추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취객들이 있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듯했다.
아빠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진혁아, 이거 손질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니?”
“그냥 배를 꾸욱- 누르면 내장이 똥꼬로 다 나와요.”
요망한 엉덩이를 급히 수습한 진혁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망둥어는 배를 가를 필요가 없다. 그리 간단히 손질하면 전부 먹을 수 있다. 머리부터 꼬리, 가시와 지느러미까지.
지난겨울 미경이네 아빠가 준 말린 망둥어의 모양을 떠올리며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질은 우리 자기가 해주겠지.’
물고기 무서워.
*
손질도 진혁이 했다.
아이의 몸이라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한 번 꾹 누르니 내장부터 알까지 모두 쏟아져 나왔다. 너무 세게 누른 건 아닌지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와-, 진혁이 잘한다.”
엉거주춤 선 손광연이 물개박수를 시전했다.
조그만 녀석이 얼굴에 뻘을 잔뜩 묻히고 수돗가에 앉은 모습이 영락없는 바다 사람이었다.
“히익-, 되게 많이 잡았네? 진혁아, 엄마가 할게.”
“저도 잘할 수 있어요. 엄마는 쉬세요.”
엄마도 진혁의 옆에 앉아 손질을 거들었다. 곱게 자랐다고 하나 시골 태생,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일이었다.
머뭇거리던 손광연도 아내에게 궂은일 시키는 걸 꺼리는 터라 결국 손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자가 되는 거랍니다, 아버지.’
험한 세상 살려면 강해지셔야 할 텐데.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한 마리를 용케 손질한 손광연이 아내에게 물었다.
“자기야. 이, 이거 알은 먹을 수 있지 않아요?”
“먹을 수 있죠. 알 맛있어요.”
“아빠, 기왕 나온 건 내장이랑 같이 모아 주세요.”
장군이나 줘야겠다.
개지랄하지 말라는 뇌물이다.
***
사아아-, 앙상하게 마른 싸리나무가 늦가을 바람에 그럴싸한 화음을 냈다. 해가 지려는지 서쪽 하늘이 불타기 시작했다. 느티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평상 밑,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끌어안은 가을 영혼이 있었으니.
장군이가 촉촉한 코를 벌름거렸다.
불 때는 냄새, 땅에서 올라오는 흙과 물 냄새, 그리고 이상한 냄새.
킁킁- 낯선 냄새다.
낯설지만 심장사상충에 걸린 듯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주인아저씨랑 아이가 어디 나가더니 비린내 나는 녀석들을 잔뜩 잡아왔지.
이는 필시 그 녀석들의 냄새일 터.
행복한 예감에 젖어 장군이가 상념에 잠겼다.
이 집 사람들은 정말 다정하고 친절하다.
동네 개친구들에게 듣기로, 다른 집은 먹다 남은 음식을 대충 준다고 했다. 너무 짜고 혀가 쪼그라들어 물 없이 먹기 힘들다고. 이름은 잘 모르겠다. 고양이 맛이라는 조미료라는 게 들어가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집은 다르다. 이상한 재료를 쓰지 않아 먹기 좋고, 물을 적당히 섞어줘서 음식이 짜지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장군이는 다른 집 덩치 큰 개친구보다 건강하고 발도 빠르다.
흠칫-. 으르르-.
냄새가 사라졌다.
시원한 물 냄새가 난다.
손질을 마무리하고 청소를 했겠지. 안 봐도 훤하다. 개코니까.
헤헤헥-. 냄새가 바뀌었다. 죽 쒀서 개 주려는 거구나!
그냥 줘도 되지만 아주머니는 뭐하나 대충 차리는 법이 없지.
보나 마나 삶아서 푹 익힌 다음 충분히 식혀서 내올 거다.
그런 사람들이니까.
발소리가 들린다.
가볍다.
아이구나.
요즘 아이가 이상하다.
먹지도 못하는 떫고 딱딱한 나무 열매를 투척한 것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은데, 맹세코 절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장군이는 너그러운 개다. 얼마나 너그러우면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꼬리를 흔들지 않던가. 그날 자기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건넛마을 도꾸라는 녀석이 알려줬다.
아무튼.
아이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평상에 있던 아이가 집으로 갈 때 그림자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에 화들짝 놀라 짖은 것인데. 아마도 잘못 봤겠지. 빛이 여러 개일 때는 그림자가 여러 개 생기기도 하고 평상 옆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그림자도 많으니까.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그런 것도 안다.
아이는 바닷가에 갔을 때도 불덩이를 만들더니 그걸 돌려 달을 만들어냈다. 눈깔이 개눈이라서 잘못 본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모습을 보며 장군이는 아이를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맛있는 걸 가져왔으니 꼬리를 흔들어주마.
헤헤헥-.
“장군아, 맛있게 먹어.”
춰줘줩-!
어우우- 신선한 해물만이 낼 수 있는 이 풍부한 향취.
씹기도 전에 저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식감.
서늘한 바람에 내려갔던 체온을 올려주는구나.
역시 찬바람 불 땐 뜨끈한 개밥 든든하게 먹는 게 최고다.
장군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렸다.
코를 박고 먹느라 아이가 돌아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생각했다.
‘멍-.’
- 암컷한테 장군이라는 이름은 너무한 거 아니냐.
늘 품던 의문이었다.
아무리 유니섹스가 도래한 세상이라지만 이름은 제대로 지어주지.
챱챱챱-.
그나저나 너무 맛있다.
10개월 평생에 이런 맛은 처음이다.
장군이는 기어이 개밥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핥았다.
어라, 도토리가 어디 갔지.
건드리기도 싫어서 그냥 방치했는데.
***
장군이가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진혁은 그것만으로도 망둥어를 잡고 손질한 보람을 느꼈다. 전생에 저를 가장 끔찍이 지켜주던 친구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 같아 기뻤다.
“진혁아 이거 빨랫줄에 걸면 되는 거니?”
“네.”
엄마와 아빠가 손질하는 동안 진혁이 꿰어둔 망둥어를 보며 아빠가 물었다.
마을에서는 신우대라고 부르는, 가느다란 조릿대로 아가미를 좌우로 관통하면 된다. 그렇게 열 마리 정도 끼운 후 조릿대 양쪽 끝을 새끼줄에 꽂아 완성하는 옛날식 생선 건조대였다.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사흘간 받으면 반건조, 일주일 정도 두면 완전 건조다. 곶감처럼 막대기에서 한 마리씩 빼 먹는 재미가 있었다. 반건조는 찜이나 매운탕처럼 먹어도 좋고 완전 건조는 불에 구워 통째로 뜯어먹는다. 물론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어도 짭짤하고 고소한 것이, 끝내주는 겨울 간식이다.
저녁거리로 엄마가 몇 마리 챙긴 걸 제외하고도 200마리가 넘는 망둥어가 빨랫줄에 걸렸다.
아빠는 풍족하게 준비된 겨울 간식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진혁아, 우리 내일도 망둥어 잡으러 갈까?”
“가요.”
물때가 어떻게 되려나.
내일도 많이 빠지겠지, 그믐 사리가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까.
진혁은 집으로 들어가며 장군이에게 눈길을 줬다.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역시, 뇌물이 제값을 하는군.’
이전의 삶에서는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고 손바닥을 비비지도 않았다. 그깟 회사 관두면 그만이었고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에 특공무술까지 익힌 특수전 요원 출신인데.
저 새끼는 무섭다.
특히, 이빨이 날카로워 보여.
그 이빨로 으르렁대면 뒷골이 오싹하다.
진혁은 뒤통수에 꽂히는 개눈을 의식하며 어깨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