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세 생명 (4) >
***
“아빠, 전 걸어가도 되는데요.”
손광연은 지게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진혁을 태웠다. 엄마는 진혁이 떨어질세라 옆에서 진혁의 등을 받치며 걸었는데, 부모가 얼마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다로 향하는 세 가족 뒤로 장군이가 바짝 따라붙었다.
일단 함께 바다로 향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런데 생각나는 방법이라고는 엄마, 아빠가 들을 수 있도록 외치는 방법뿐이었다. 목청이 좋으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진혁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진혁아, 그건 왜 가져왔니?”
불깡통을 세상 소중하게 끌어안은 진혁을 보며 엄마가 물으셨다.
대보름 때 아빠가 만들어주신 불깡통이다. 페인트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고 철사를 길게 연결해 손잡이를 달아 돌리기 좋게 만든 쥐불놀이 깡통.
“추울 때 불도 지피고요, 심심하면 돌리려고요.”
흐뭇한 표정의 엄마가 진혁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홉 살짜리가 너무 의젓하지 않은가.
‘크게 빙빙 돌리면 신호가 될 거야.’
독특하고 눈에 띄는 시그널만큼 확실한 신호장비도 없지.
불 붙일 솔방울과 솔가리도 잔뜩 챙겨왔다.
진혁의 가슴이 크게 두방망이질 쳤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매달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그러는 편이 나았으려나.’
세 명을 구하라는 뜻에서 아홉 살 때로 보낸 건 알겠는데, 생물학적으로는 너무 어리고, 시대는 아직 디지털 문명이 개화하기 전이다. 뭐, 디지털 기기가 많아도 별 방법이 없으려나. 아무튼.
어떻게든 부모님을 살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내년에 엄마의 배다른 자매에게 끌려가 다락방에서 살아야 하고. 아빠가 일군 재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다시 반복되게 두지 않아.’
세 사람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엄마와 아빠는 동네 아저씨들을 따라 갯벌로 향했고, 진혁은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쥐불놀이할 테니까 꼭 그거 보고 나오셔야 해요!”
“응, 우리 아들 있어서 길 잃을 걱정은 없겠네.”
어둠 속에서 달빛처럼 빛나는 엄마의 미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진혁이었다.
멀리까지 따라온 장군이가 얌전히 진혁의 곁에 앉았다.
***
시간이 꽤 지났다.
부모님이 갯벌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진혁은 쏟아지는 잠과 전투를 벌였다. 영혼은 성인이지만 몸은 어린아이였기에 밤늦은 시간에 아이가 깨어 있기란 쉽지 않았다. 부드러운 갯바람까지 불어와서 저도 모르게 눈이 스르륵 감겼다. 눈꺼풀에 달라붙는 수마를 어렵게, 어렵게 떨쳐내며 버텼다.
“어허이-, 연경 아베 많이 잡었네이-.”
밀물 때가 되어 아저씨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쩔뿍쩔뿍- 뻘 묻은 장화 소리에 진혁이 잠을 쫓았다. 비릿한 갯내음이 머릿속을 채우자 가장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
‘엄마랑 아빠는?’
역시 나오지 않으셨다.
갑자기 불어오는 서늘한 갯바람이 불길한 냄새를 풍겼다.
“여기 진혁이두 있네?”
“그려, 얘 아범이 데려왔어. 집에 애 혼자 두기 뭣허다고-.”
“근디 왜 안 나온댜?”
“그르기? 물 금방 들어올 텐디?”
아저씨들이 수군거렸다.
진혁은 미리 불을 붙이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며 부랴부랴 성냥을 당겼다.
훅-, 거세진 바람이 성냥불을 가져가버렸다.
그때였다.
“진혁아아아-!”
진혁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저씨들이 진혁의 부모님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진혁의 가슴이 철렁였다.
‘아저씨들 목청이 나보다 훨씬 좋은데.’
이전 생에서도 저렇게 불렀을 텐데 그래도 못 나오셨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혁아아아-.
진혁아아아-.
메아리. 바다를 야트막한 산이 빙 두르고 있었기에, 어디서 부르는지 소리의 원점을 찾기가 불가능했다. 서로 질세라 목청껏 진혁아를 외치며 바다 쪽으로 가는 아저씨들을 보며 진혁은 울상이 되었다.
‘어쩌지?’
살면서 이렇게 절실했던 적이 있었던가.
비록 아홉 살이지만 이전 생에는 마흔이 넘도록 살았다. 진혁은 평생에 가장 절실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었다. 수능시험을 칠 때도, 입사 면접을 볼 때도 지금보다 절실하지는 않았으리라.
‘저 불빛이 엄마랑 아빠인 모양이다.’
멀리 갯벌 한복판에서 불빛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훅- 또 성냥불이 꺼졌다. 불어온 바닷바람에 섞인 짠내가 강해지자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짠기를 가득 머금은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기, 저기 물길 안에 있네.”
“진혁아아아-!”
물길. 갯벌은 보통 무르지만 그중 단단해서 발 딛기 용이한 곳도 있었다. 갯벌보다 움푹 파여 구불구불한 길처럼 생겼고, 물이 가장 빨리 들어오고 가장 늦게 나가는 곳이다. 사리 때에도 물이 흘러 사람들은 여기서 장화나 손을 씻곤 했다. 바닷가 사람들은 이를 물길이라 불렀다.
‘어쨌거나 안 들리는 건 마찬가지야!’
물길은 움푹 들어간 지형이기에 외부의 빛과 소리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그뿐 아니다. 물길이 달리 물길이던가. 물이 흐르는 길이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후라씨 켜 봐, 후라씨! 얼릉!”
너도나도 손전등을 켜고 진혁의 부모를 향해 흔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깊고 짙은 어둠에 비해 인간이 만든 조잡한 빛은 하찮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빛이 한두 개가 아니야.’
건너편에도, 물이 들어오는 바다 쪽에도 불빛이 있었으니. 구불구불한 서해의 해안선은 그렇게 사람을 갯벌에 가두고 잡아먹는 짓을 곧잘 했다.
“우리가 가서 부르자고!”
“그려, 그려. 이러다 큰일 치르겄네.”
이제 아저씨들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커먼 갯벌 위에 타원형 불빛 몇 개가 어른거리며 멀어져갔다.
‘저렇게까지 했는데도 구하지 못했다는 거잖아?’
진혁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이전 생의 경험이 있으니 양부모에게 끌려가 같은 인생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벌써 생을 마감하기에 엄마와 아빠는 너무 젊었다.
‘불만 붙으면 다 해결된다!’
머리카락을 태워도 좋다는 각오로 깡통을 품에 안았다. 다시 성냥을 당겼다.
화르륵-! 기름을 먹이지도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솔가리가 오그라들고 솔방울이 시뻘겋게 불을 품었다.
신기해할 틈 없이 벌떡 일어나 힘차게 깡통을 돌렸다.
“엄마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
왈왈-! 장군이가 소리를 보탰다.
진혁은 애절한 마음을 담아 불깡통을 돌렸다.
왱-왱-왱-! 훅! 훅! 훅!
숭숭 구멍 뚫린 깡통이 불을 품고 무서운 소리를 냈다.
생명의 소리였다.
***
인간의 눈은 얼마나 부정확하고 믿을 것이 못 되던가.
다음날 조일헌이 해산물을 안주 삼아 다른 이웃들과 막걸리잔을 부딪쳤다. 무사히 농번기를 넘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겸했다.
“근디 뭔 조화였댜 그게?”
“물러. 누가 알간?”
“헷소리들 허지 말고 술이나 잡솨!”
잘못 본 걸까.
조일헌이 두 팔을 내둘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가 다시 말해볼 테니께 잘 들어봐이-?”
젊은 부부를 구해야 했다. 서울에서 왔지만 낯가리지 않고 붙임성 있게 온 동네를 누비던 남자와, 다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리따운 여자. 그들에게 일이 생기면 저 어린 남자아이 혼자 남겨지게 될 것이 뻔했기에.
조일헌과 박대순 두 남자는 진혁의 부모를 찾기 위해 갯벌로 진입했었다.
“물! 물 들어온다!”
“나가야 혀!”
“진혁이네는 어쩌구!”
“아이고 미치겄네-!”
조일헌은 등 뒤의 황금색 동그라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진혁의 쥐불놀이임을 확실히 알아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얼핏 보면 금환 일식 같은 불빛.
“오빠! 저기예요, 저기!”
“와! 살았다. 얼른 가요. 우리 아들 팔 아프겠어요.”
진혁의 부모가 무사히 물길을 벗어나자, 조일헌도 뭍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빛을 따라 뭍에 다다랐을 때, 불빛은 간데없고 하늘에 달이 두둥실 떠 있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에나 등장하던 그믐에 뜬 달이었다. 이 대목이 소요를 일으켰다.
“- 이랬다니께!”
“성님, 술 작작 잡솨. 헛소리하다 욕 잡숫기 시르먼.”
조일헌이 자신 있게 설명을 마쳤으나 바다에 동행했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박대순도 믿지 않았다.
“시부럴 늠······.”
조일헌은 술을 달고 살았다. 당연히 어제 바다에 가기 전에도 막걸리 한 주전자로 배를 채웠고. 바다에 가지 않았던 이들 누구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였다.
“허이구-, 시부럴 거 속 터져 죽겄네. 왜 아무도 안 믿는댜-.”
“차라리 김일성이를 믿겄네 이사람아! 껄껄껄!”
“그거 암체두 진혁이가 돌린 불이 그렇게 보인 거겄지이-. 밤이는 눈이 이상해져서 귀신두 보구 허는 거 아닌감.”
“그런가아-?”
슬쩍 꼬리를 내렸다. 더 얘기를 꺼냈다가는 바보 취급당할 게 뻔했다. 추운 밤에 작업하느라 술기운을 빌렸기에 긴가민가 싶었고, 어두운 밤의 기억은 그만큼 왜곡이 강하지 않던가.
그래도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술이 된 조일헌이 손광연에게 매달렸다.
“진혁이네! 진혁이네두 봤지?”
“아하하! 저는 힘들어서 땅만 봤어요, 형님. 진혁 엄마도 특별한 말은 없던데요?”
그믐에 뜬 달은 아무런 증인도 제시하지 못한 채 술을 좋아하는 조일헌의 허풍으로 막을 내렸다.
‘허어-, 내가 헛것을 본 겨. 시벌꺼-, 이거 술을 끊으야 허나-.’
금주를 다짐하며 조일헌이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켰다.
어둠과 빛, 무지와 상상력, 그리고 극적 결말이 빚어낸 해프닝이란 으레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생명을 얻고 구전되어 전설로 화하기 마련.
내상을 입었을지언정 조일헌은 손주에게 해줄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생겨 내심 뿌듯했다. 아무렴,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할 해피엔딩 아닌가.
그렇게 위안을 삼는 마흔다섯 노총각 조일헌이었다.
***
학교를 마친 진혁은 마당에 계신 부모님을 보며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운명을 바꿨어.’
부모님은 건강히 살아계신다.
진혁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 기쁨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과거로 돌아오니 눈물이 너무 많아졌지만, 감동의 눈물은 좋은 거 아니겠나.
낮게 엎드려 으르렁거리는 장군이를 피해 집으로 들어갔다.
“진혁아-, 저녁 먹자.”
“네에-!”
달그락- 달그락-.
쩝쩝-.
“너무 맛있어요.”
“하하. 많이 먹어라, 우리 아들.”
초장 찍은 삶은 낙지, 꽃게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었다. 이전 생에서는 그저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배를 채웠고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엄마, 밥 더 있어요?”
진혁이 밥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이리 줘, 엄마가 가져다줄게.”
“제가 할 수 있어요.”
밥 반 공기도 비우지 못하고 깨작거리던 아이였는데.
스릉-.
부엌에서 가마솥 뚜껑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을 두 그릇이나 먹는 아이를 보며 엄마의 얼굴에 행복이 그려졌다.
“오늘부터 옆 방에서 잘래요.”
“왜? 엄마랑 자는 거 좋아하잖아.”
“테레비 소리 때문에 숙제하기가 어려워요.”
이상하다. 아주 가끔 보는 텔레비전인데. 아빠랑 뉴스 보는 걸 좋아하던 아이가, 엄마 팔을 베고 자는 걸 좋아하던 아이가 따로 잔다니.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히-.”
서울 촌놈이 착한 바보처럼 웃었다.
그런 손광연을 보며 한유영도 얼굴을 붉혔다.
*
방 두 개뿐인 시골집.
아빠가 대학 시절 읽었다는 책이 진혁의 방에 가득했다. 고전 소설과 영어 원서, 대학 전공 서적, 영자신문부터 일어신문까지. 진혁의 방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중학교만 나와도 중간은 가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배운 사람으로 대접받던 것이 시골이었는데.
‘아빠는 대학도 나오셨구나.’
어린아이들의 관심거리가 군것질이나 놀 거리밖에 없었으니, 그전까지 아빠의 출신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아빠의 졸업장이다.
‘나랑 대학 동문이네?’
소화도 시킬 겸 일어 신문을 뽑아 읽다가, 영자신문도 중얼중얼 읽다가, 전공 서적도 읽었다. 아홉 살짜리가 들고 술술 읽는다면 기특해하기보다 기겁할 거리였으니. 제 방에서 조용조용 읽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책을 덮었다.
‘에휴-, 다 아는 내용이야. 그나저나 방음이 별로네.’
아직 혈기왕성한 부모님을 배려해서 각방을 쓰기로 한 것인데. 시골의 흙벽은 프라이버시를 완벽히 보호하지 못했다.
이히힉-.
이건 아빠가 엄마 옆구리 만질 때 간지럽다며 내는 소리다.
진혁은 마른침도 삼켰다가, 며칠 전 수작을 부리던 이해원도 떠올려봤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큰 밭 건너 사는 최미경도 생각나더니 마을 회관 근처에 사는 김은정까지. 그러고 보니 동네에 여자아이가 많았고 학급도 서른 명 중에 여학생이 스물세 명이었다.
그러나 그뿐, 진혁의 관심은 더 커지지 않았다. 그래봤자 애들 아니던가.
“끄응-, 잠이나 자자.”
자야 큰다.
이히힉-.
엄마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벽을 뚫고 넘어왔다.
‘좋을 때다······.’
다행이라면 어린아이의 몸이라 잠에 쉽게 든다는 것이었으니. 진혁은 시간이 빨리 흘러 얼른 성장하기만을 바랐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은 진혁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달 없는 밤, 창호문 너머로 밤 그림자가 고즈넉하게 너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