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세 생명 >
사고 순간의 굉음 외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수십 년을 웅크리고 지내면 이런 기분일까. 눈은 암막에 철저히 가려졌고,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힌 새우처럼, 자궁 속의 태아처럼. 진혁은 그저 그렇게 스스로 제 품을 파고들었다.
어둠이 잠식한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만날 수 없는 가족을 떠올리며 버티던 나날이 있었다. 스스로 감정을 거세하던 어린 시절의 10년. 그 시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긴 세월 동안 잠을 잔 것 같다.
굉음이 고막을 강타하던 사고 순간의 기억도, 매일같이 미칠 듯 달리던 감각도. 시간의 날카로운 이빨 앞에서는 하릴없이 풍화되고 마는가.
자신이 누구인지마저 잊어갈 때쯤, 진혁은 드디어 감각을 찾았다.
따가운 햇살이 뺨을 긁고 서늘한 바람이 목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정신이 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감각이 돌아오며 기억도 조금씩 살아났다.
사락사락-할짝할짝-.
이건 무슨 소리일까.
햇살로 달궈진 뺨의 열기를 달래주는 까슬하고 축축한 것.
‘설마, 식물인간이 된 나를 홍 전무가 핥는 건가?’
좋아하는 걸 알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인간의 혀가 이리도 까슬까슬할 줄이야. 혓바늘 돋았나.
헥헥헥-.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안다지만 흥분이 지나친 것 같은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움직여 눈을 떴다.
서서히 빛이 들며 흐릿한 사위가 시야를 채웠다.
차츰 초점이 잡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건 뭐······.’
꼬릿한 냄새를 풍기며 촉촉하게 빛나는, 아찔한 곡선을 자랑하는 물체였다.
그리고 그 물체를 관통한 두 개의 구멍.
‘이건······.’
개 콧구멍.
그리고.
진혁이 깨어나길 바라며 닳도록 핥았을 개 혀.
시력이 회복되며 개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매일 꺼내 보는 사진 속에서 혀를 빼물고 있던 누렁이 발바리.
“장군이?”
왈-!
그렇다는 소리로 들렸다.
여러 가지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군이를 봤을 때는, 단순히 죽어서 다시 만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이 왜 이래?’
목소리도, 몸도 너무 어리지 않은가.
두 손과 몸을 살폈다. 앙증맞다. 손가락은 짧고 통통했고, 팔다리는 과장 조금 보태자면 개보다 긴 정도였다.
평상 한편에 고이 접혀있는 신문을 급히 펼쳤다.
「선거연령 20세, 후보자 기호 의석순으로, 8인 회담 합의」
왜 당연한 소릴 끄적인 거야······.
「대통령선거 지역감정 우려···66%. 본사, 한국갤럽 공동 여론조사」
「미국, 對이란 보복포격 단행. 페만 해상유전 플랫폼 두 곳 강타」
「86년 결산 예비심사. 국회 13개 상위 열어」
86년 결산?
아, 날짜를 먼저 보면 될 텐데.
「1987년 10월 ···」
아이의 입에서 초탈한 웃음이 나왔다.
“허허헛.”
난 역시 죽었구만.
홍기준 회장도 죽었을까?
노인을 챙기느라 어떤 사고인지 미처 살피지 못했다.
어차피 그 짧은 순간에 상황을 알아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반갑다 장군이.”
부모님이 떠나시고 외로울 때 늘 곁을 지켜준 친구였다. 장군이는 진혁이 열 살이 되던 해, 엄마의 의붓언니라는 사람에게 끌려갈 때까지 함께 살았다. 진혁을 강제로 잡아가는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다가, 이모부라는 남자에게 강하게 채여 비틀거렸다. 그것이 장군이가 살아있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진혁은 며칠을 다락방에서 숨죽여 살다가 밤에 몰래 탈출했다. 방향감각이 이끄는 대로 어두운 밤길을 달려 10km 넘게 떨어진 집에 왔을 때, 어스름한 달빛 아래 죽어 있던 장군이를 발견했다. 크게 소리 내지도 못하고 서럽게 울다가 부모님 산소 옆에 묻어주었다.
“그때 많이 아팠지, 우리 장군이?”
끼잉끼잉-.
그랬다는 것 같다.
장군이를 와락 끌어안고 해후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발바리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얼굴을 부볐을까.
“······혁아-.”
수십 년.
아니, 체감으로는 그 몇 배의 시간.
“진혁아-.”
읍내 다방의 어두운 다락방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기억해내려 애썼던 음성. 이토록 아름다운 음성으로 다정하게 저를 부르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
애정 어린 웃음을 머금고 그 목소리가 다시금 진혁을 찾았다.
“울 애기-. 우리 진혁이 가을 햇살에 너무 오래 있으면 깜댕이 된다?”
대문 밖으로 빼꼼히 빠져나온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이 눈물이 가득 들어찼다. 그래서 목소리의 주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지기 전에 엄마가 다가와 진혁을 따스하게 안았다.
엄마. 다정한 음성과 말투, 부드럽게 뺨을 쓰다듬는 손길. 긴 세월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체온이었다. 저녁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셨는지 몸에 밴 불 냄새에 행복했던 옛날의 기억이 새로이 돋아났다.
“우리 아들 왜 울어? 무서운 꿈꿨어?”
엄마의 손에 잡힌 두 뺨이 위를 향했다. 기필코 엄마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아 눈물을 떨쳐 버렸다. 마침내 또렷해진 하얀 얼굴.
‘이 아가씨는 누구······.’
사진과 닮기는 했지만 실물로 보니 너무 다르지 않은가. 서른이 넘고 마흔을 넘기며, 육안으로 익혔던 부모님 얼굴은 흐릿해져 있었다. 그러니 낯설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마 영혼의 끌림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
엄마예요? 진짜 우리 엄마예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업무상 필요한 내용 외에 말하는 걸 싫어해 뒤엣말을 속으로만 하곤 했다. 어찌 죽어서도 그대로란 말인가.
“응. 엄마야. 어이구- 우리 애기, 왜 울어?”
한유영이 아들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아이를 달랬다. 아들의 흐느낌이 멎을 때까지.
그저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만이 진혁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죽어서 엄마와 장군이를 다시 만났구나.’
어려지고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운 것만 봐도 죽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죽음이라면 뭐가 아쉬우랴.
드디어 엄마를 만났는데.
가슴을 진정시킨 진혁이 주위를 둘러봤다.
어린 시절 살던 고향집, 너른 들과 논밭,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개울과 멀리 보이는 바다. 울긋불긋 물든 산까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네.’
그런데······.
“아빠는요?”
혼자만 지옥에 떨어지셨나?
사람은 참 괜찮았는데······.
***
“하하하! 우리 아들! 아홉 살이나 됐는데 무서운 꿈꾸고 울었다며?”
저녁밥을 먹으며 아빠가 호탕하게 웃으셨다. 밭에서 콩을 걷다가 오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엄마에게 힘든 일 시키지 않기 위해 혼자서 일을 하셨었지. 천국에서도 일을 해야 하다니, 아빠는 힘들겠다.
아빠 손광연 역시 30대 중반. 과거의 진혁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나이다.
진혁은 정말로 수십 년 만에 엄마가 해주신 밥을 맛있게 떠넣었다. 가마솥 밥이 이렇게 맛있는 거라는 걸 몰랐다. 가스레인지가 있음에도 엄마는 가마솥 밥을 고집하셨다. 건강에 좋다며.
몰랐다. 콩밥에 들어간 콩이 이렇게 고소하다는 걸, 된장찌개와 김치, 나물과 장아찌로 채운 밥상이 이렇게 훌륭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허겁지겁 밥을 퍼 넣는 진혁을 보며 부모님이 흐뭇하게 웃었다.
‘엄마, 아빠. 아빠, 엄마.’
젊다. 부모님도 자신과 살 때가 가장 행복하셨나 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리셨겠지. 천국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어떻게 지냈는지, 결혼은 했었는지 묻지를 않으시네. 어쩌면, 불행하고 외롭게 살았다는 걸 알기에 묻지 않으시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자식의 불행했던 생을 곱씹게 만들 분들은 아니었으니.
묻기 전에는 굳이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밤이 깊어 엄마의 팔을 베고 잠을 청했다.
진혁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정처럼 빛나는 눈을 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우리 엄마 진짜 예뻤구나.’
진짜 천국이다.
그래도 집은 좀 좋게 지어주지.
허름한 옛날 집이 너무 진짜 같잖아.
천정에 거미도 있어.
***
꿈은 기억의 재생인가, 무의식의 반영인가.
아니면, 앞날의 예지일까. 진혁이 꾸는 꿈은 전생의 미래처럼 깜깜했다.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음성이 제법 또렷하게 들렸다.
애써 기억하려 해도 사고 전의 기억조차 흐릿했다. 영혼이 조각난 것처럼 가슴이 시리고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을 잡으려 팔을 버둥거릴 때 엄마가 진혁을 깨웠다.
“울 애기-. 우리 진혁이,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다행히 엄마는 여전히 곁에 계셨다.
그런데 학교라니요? 천국에서도 학교에 가야 하나요.
이거 차라리 지옥 아닌가?
3km 남짓한 거리를 아이의 짧은 다리로 달렸다. 진혁의 등을 절반이나 가리는 직사각형 만화캐릭터 책가방이 좌우로 달랑거렸다. 신기하지 않은가. 책가방마저 그 시절의 것이 복원되어 있다니.
논과 밭에 일하는 어른들이 보였다. 저 양반들도 돌아가셨구나. 좁고 울퉁불퉁한 논길을 지나, 구불구불한 비포장 버스 길을 쉬지 않고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역시, 학교에는 나 혼자뿐인가.’
운동장 외곽에 마련된 수돗가에서 손과 얼굴을 씻고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하나도 안 힘들다!’
천국이 괜히 천국이 아닌 모양이다.
그때 학교 정문에서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교하는 아이들이었다.
‘아, 불쌍한 내 친구들 많이도······.’
쟤들도 이맘때가 행복했었나 보다.
***
하루.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서야 천국이 아닌 과거로 돌아왔음을 인정했다. 말투, 행동 여러 가지로 진혁 자신만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기에. 다른 아이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진혁처럼 어른의 자아를 가진 친구가 없었다. 그냥 애들이었다.
그리고 학급 친구들이 모두 있는 걸 보면, 모두 죽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지 않는가. 들판의 사람들도 그렇다. 애초에 사람을 구경하기 힘든 깡촌이다. 거기다 가을걷이도 끝나가는 중이어서 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겠지.
‘기억이 조금씩 생생해져.’
멀리 떨어져 있던 이전 생의 기억도 다가오고 있었다. 다만, 작은 몸과 어린 날의 생은 아직도 적응해야 할 문제였다. 이전 생에서 진혁은 고등학교 때 폭풍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홉 살이기에 작다 못해 왜소하다. 그리고 지난 생의 어린 시절엔 어땠었는지 기억도 또렷하지 않다.
‘잊고 싶은 기억이긴 한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얹혀사는 서러움. 폭언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성장기였다. 그러나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더 생생하게 심장에 아로새겨지는 법 아니던가. 하여 잊고 싶어서 흐릿해졌다는 것을 이유의 전부로 보기는 어려웠다.
수십 년. 차라리 물리적으로 먼 거리라서 흐릿하다는 게 더욱 설득력 있어 보였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어떤 조화에 의해 돌아왔는지 말이다. 그러나 열심히 두리번거려도 사방이 어두워지며 악마가 나타난다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야, 장군아.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니냐?”
헤헤헥-.
어리둥절한 와중에 학교를 마치고 마당 평상을 찾았다. 누구 하나 붙들고 하소연할 곳이 없던 차에 장군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어린아이의 음성으로 진혁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있잖냐, 내가 이제 회장 딸하고 결혼해서 그룹 물려받을 참이었거든? 그런데 사고가 난 거야.”
은퇴를 계획 중이었기에 결혼이나 권력에 대한 미련은 아닐 터. 진혁은 순수하게 뒷일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무렴, 소설이나 영화도 결말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인간 아니던가. 하물며 그 결말이 제 인생에 관한 것임에야.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혁을 따라 장군이도 푹 한숨을 쉬었다.
“그-, 웹소설이라는 거 알아? 거기 보면 막, 과거로 오자마자 전후좌우 기억이 후루룹- 빨려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아휴-, 어제 일도 기억 안 나는데 빨려 들어오기는 개뿔이······. 웹소설 작가 놈들 다 사기꾼 개뻥쟁이다.”
장군이에게만은 유독 말이 많은 진혁이었지만, 장군이는 진혁을 빤히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온 시점도 그래, 보통은 스무 살이나 젊은 시절인데 나는 아홉 살······.”
진혁의 넋두리는 거기까지였다.
‘아, 맞다.’
엄마와 아빠가 계시던 시절로 왔는데 뭐가 중요할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는데.
그런데 진혁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어쩌다 돌아가셨지?’
늘 챙겼던 기일도, 사망 사유도. 검은색 매직으로 덧칠한 것처럼 깜깜했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건 아닐까.
“돌겠네. 아, 담배도 없고 진짜.”
이 답답한 가슴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주머니를 뒤졌더니 담배 따위 있을 리 없고, 아홉 살짜리 주머니에서 나올 법한 물건이 나왔다.
도토리 두 개.
에휴-, 어릴 땐 정말 평범한 개구쟁이였구나. 진혁이 헛숨을 내쉬었다.
“장군이 나랑 일촌이나 맺자.”
땡그랑.
평상 밑, 개밥그릇에 도토리 하나가 떨어졌다.
“하나는 엄마 드려야지.”
진혁은 엄마를 찾아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장군이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