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606화 (59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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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가볼까.”

    아쿠리네의 코어를 쥔 카그네프가 크라베스와 함께 석탑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석탑에 다다르기 무섭게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입구를 힘으로 깨부쉈다.

    콰앙!

    입구를 지키는 결계가 일제히 반발하며 방어하려고 발악했지만 그래봐야 약간의 시간 끌기일 뿐 큰 의미는 없었다.

    “후후후, 열렸군.”

    문이 부서지자 그들은 안을 동시에 살폈다.

    뭐든지 동시에.

    그것이 그들의 계약이었으므로.

    “후후후후...”

    내부를 본 둘의 입가가 비릿하게 씨익 올라간다.

    내부에는 시멘트 같은 돌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채 당당히 서 있는 작디작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천장을 향해 뻗어있는 거대한 세계수의 본체이자 정령들을 낳는 실질적인 기관.

    이 나무야 말로 알베타스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는 마지막 기둥이었다.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는 딱히 누가 부르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돌려 동시에 서로를 응시했다.

    그들이 영혼을 걸고 맺었던 계약은 기둥에 다다라 함께 그 앞에 설 때까지 뭐든지 공평하고 동등하게 협력하는 것.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치지지직-

    콰아아앙!

    크라베스와 카그네프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스킬을 날리는 것으로 그들은 서로를 향해 계약 종결을 알렸다.

    * * *

    치직-

    콰광!

    콰과광!

    형형색색의 수많은 스킬이 서로를 향해 무수히 난사된다.

    크라베스의 고유스킬, 영혼의 절규를 막은 카그네프가 곧장 자신의 고유스킬인 풍격을 날리며 반격을 가했다.

    크라베스는 생각보다도 자신의 기술이 통하지 않자 인상을 와락 구겼다.

    “쯧, 귀찮군...”

    나중을 위해서 마력은 최대한 아껴두어야 되건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이대로면 끝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크라베스가 더 큰 기술을 카그네프를 향해 사용했다.

    그러자.

    “빌어먹을 놈 같으니...”

    이번에는 대응한 카그네프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렇다.

    크라베스와 카그네프.

    서로 전력으로 부딪쳐본 적이 없었던 그들은 내심 지금껏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우위에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었다.

    제대로 본 실력을 낸다면 충분히 놈을 압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알면서도 흔쾌히 그런 계약을 맺었던 것이었고.

    그러나.

    ‘빌어먹을, 이 영혼으로 만들어진 스킬... 이상하게 끈덕지다...’

    ‘빌어먹을, 이 녹색의 마력... 그저 그런 평범한 마력이 아니다.’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그들의 실력은 호각 그 자체였다.

    정령왕과의 전투로 인해 주위가 풍비박산이 난 만큼, 시간이 끌리게 되면 누군가가 이곳에 다다를 터라 빨리 끝내야만 하건만.

    결국 참다못한 카그네프가 마력을 전량 개방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거기서 비켜라 크라베스. 이건 마지막 경고다.”

    그것은 명백히 크라베스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

    크라베스는 이에 무척 기분이 나쁘기 그지없어 눈가가 꿈틀거렸으나 이내 기분을 억누르며 억지로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후후후,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카그네프. 너나 비켜라. 죽고 싶지 않다면.”

    똑같은 말로 받아치는 크라베스!

    “이놈이...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라.”

    “그럴 리 없을 거 같다만?”

    “......”

    파앗-

    콰아아앙-

    결국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재차 날아드는 것으로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 * *

    콰앙!

    콰앙!

    콰과과광!

    크라베스와 카그네프의 주먹이 서로 맞닿으며 공방이 오간다.

    전력을 개방한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는 서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여태까지 같이 한 바, 서로 상대방의 속내를 무척이나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라도 물러나겠다고 한다면 봐줄 의향이 있다만... 카그네프?”

    “개소리도 정성껏이구나 크라베스.”

    그들은 전력을 다하고 있다지만 서로를 죽일 의향 따윈 1도 없었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닌.

    ‘빌어먹을... 이놈... 내가 기둥으로 향할 조금의 틈을 보이지 않는다.’

    기둥을 부숴 신물 파편을 손에 넣는 것이었으니까.

    ‘젠장, 더 시간이 끌리면 진짜 안 되는데...’

    크라베스가 석탑째로 나무를 파괴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하면, 카그네프는 스킬을 사용하여 그것을 막았고, 반대로 카그네프가 석탑을 노리면 크라베스 또한 그것을 전력으로 제지했다.

    “에잇! 비키란 말이다!”

    “그럴 순 없지! 너나 비켜라!”

    그 결과 전력을 개방했음에도 상황은 전과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만 갔다.

    이대로면 정말로...

    ‘당도한 딴 놈들에게 홀라당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물러날 수 없었다.

    신물 파편은 한번 소유자가 결정되어버리면 무슨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에게 조건을 걸어 양보하게 되면?

    상대가 안 지키면 끝.

    죽이지 않는 한 돌려받을 수는 없기에 그대로 빼앗기는 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금 영혼의 계약을 걸자니...

    ‘빌어먹을...’

    신물 파편의 가치를 얼마나 잡고 계약을 걸어야 될지 둘 다 감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서로 신물 파편을 가지겠다고 할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고.

    ‘젠장.’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가 끝없이 반복된다.

    고지가 손만 뻗으면 닿는 코앞에 있는데 다다를 수 없다니.

    “이이...!! 좀 비키란 말이다!”

    “너나 좀 비켜라!”

    치지직-

    콰아아앙-

    둘의 주먹이 동시에 부딪치자 어마무시한 파공성이 일었다.

    둘은 그것을 끝으로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대로면 정말 생사결을 벌여 상대방을 죽이는 것을 제외하곤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안 될걸 알면서도 그래도 대화를 한번 해보려는 것이었다.

    먼저 제의를 꺼낸 건 카그네프.

    “크라베스. 지금 네가 나에게 신물 파편을 양보해 준다면 5개월 동안 그 어떤 전투가 일어나던 우리 종족이 너희 종족 앞에서 방패가 되어 주겠다. 그리고 그 안에 얻는 아이템이나 전리품 같은 것도 4대1의 비율로 분배해주겠다. 어떻느냐. 엄청 좋은 조건이다만.”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고작 5개월이라니?”

    “뭐? 이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하, 그 조건이 그렇게 좋다면 내가 역으로 제안하도록 하마. 카그네프. 난 네가 방금 말한 같은 조건으로 5개월이 아닌 7개월로 2개월 더 서비스해주도록 하마. 어떠냐. 5개월도 충분하다고 한 너였는데 설마 딴말을 하진 않겠지?”

    “......”

    크라베스의 말에 카그네프가 입을 꾹 닫았다.

    그 또한 크라베스처럼 신물파편을 가지고 싶지, 2개월이 추가되었다 한들 저딴 계약을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침묵이 이어진다.

    둘은 그러다 다시 말없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대화는 무의미.

    이젠 정말로 생사결을 벌여...

    크라베스와 카그네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휘이익-

    터덕-

    매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목 저편에서 한 명의 인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동료인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던 건가?”

    나른함이 담겨있는 미적지근한 음색.

    “너...”

    카그네프는 그들 앞에 나타난 인물, 키쿨을 확인키 무섭게 눈가를 움찔거렸다.

    하필 와도 이놈이 오다니?

    키쿨은 이전 통로에서 카그네프가 자신에게 그랬듯 그를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또 보네 카그네프. 이번엔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네놈...”

    카그네프로서는 엄청난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한 행동을 똑같이 그대로 당하다니.

    ‘후후후, 저놈은...’

    반면 키쿨이 카그네프에게 안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일전의 알고 있던 크라베스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신이 나를 돕는구나.’

    놈이 카그네프를 상대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자신은 기둥을 부수고 신물 파편을 취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이전에 못 다하던 걸 계속해볼까. 카그네프.”

    아니나 다를까 예상처럼 키쿨이 카그네프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타겟이 된 카그네프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이대로 만약 싸움이 시작되면 신물 파편은 크라베스의 손에 떨어지게 되리라.

    그리고 그런 모습은...

    ‘절대로 볼 수 없지.’

    키쿨이 달려들자 카그네프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 멈춰라 키쿨!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저 뒤에 있는 석탑에는...”

    “기둥이 있을 거라는 건가?”

    “?!”

    순간 카그네프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알고 있었던 것인가?

    “네놈, 어떻게...!”

    “동료였던 저 놈과 싸우고 있지 않았나. 안 봐도 뻔하지.”

    “......”

    “뭐, 석탑은 걱정 마라 카그네프. 놈이 그곳에 다다를 일은 없을 테니.”

    “뭐?”

    그 말에 카그네프의 고개가 크라베스가 있는 방향으로 휙 돌아갔다.

    거목의 위에서 크라베스를 향해 누군가가 낙하하고 있었다.

    투구를 착용한 듯한 머리 모양과 마치 근육의 섬유질을 바깥으로 드러낸 듯 보이는 육신.

    쿵!

    그렇게 석탑에 다다르기 직전 크라베스의 앞을 대리자가 막아서자 잔챙이라 생각한 크라베스는 곧장 자신의 상위 스킬에 속하는 망령의 군쇄를 사용했다.

    “비켜라. 벌레.”

    후우웅!

    망령의 군쇄는 순식간에 대리자에게 쇄도했으나, 대리자는 그 망령의 군쇄를 손쉽게 손날로 쳐내는 모습을 보였다.

    팅!

    콰과광!

    ‘무슨?’

    크라베스는 황급히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라베스가 제자리에 서자 리네리아가 손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호오, 꽤나 단단한 스킬이네. 내 손을 욱신거리게 만들다니.”

    “...네놈은 뭐냐... 보통의 쿠룬족은 아니구나.”

    “호오, 내 얼굴을 몰라? 재밌네.”

    그렇게 말한 리네리아가 피식 실소를 내뱉었다.

    “너 혹시 쟤 이름은 아냐?”

    리네리아가 손을 들어 키쿨과 카그네프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크라베스는 리네리아가 그렇게 묻는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답해 주었다.

    “카그네프를 말하는 거냐?”

    “아니, 그 옆에 있는 애.”

    “키쿨 말인가?”

    “...키쿨 이름은 아는구나... 하하... 하하하...”

    크라베스의 답변에 리네리아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크라베스는 순간 눈앞에 있는 쿠룬족이 미친 건 아닌가 했지만, 이내 얼마 안 가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하하... 나는 모르고... 키쿨은... 하하... 야, 너 좀 맞아야겠다.”

    슈슈슉-

    눈앞에 있는 존재가 말로만 듣던 쿠룬족의 수장, 리네리아라는 것과 자신은 답하면 안 될 걸 답했다는 것을.

    ‘빌어먹을...’

    크라베스는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어느새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온 리네리아의 주먹을 회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 * *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빌어먹을, 놈이 양보만 했었어도...’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터건만...!’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는 이렇게 만든 상대방을 떠올리며 이를 으득 갈았지만, 적들은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떠올릴 여유조차도 좀처럼 주지 않았다.

    쿠구구-

    주위를 전부 물의 세계로 만들며 매서운 속도로 끝없이 공격을 감행해오는 키쿨.

    슈슈슉-

    그리고 단순히 모든 것을 깨부수며 끝없이 압박해오는 리네리아.

    카그네프와 크라베스는 한 종족의 수장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그야말로 모든 전력을 사용해 그들에게 맞서야만 했다.

    [상어의 이빨]

    그 와중 키쿨이 카그네프를 향해 비기를 날렸다.

    카그네프는 오만 인상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 근접한 상황에서저런 기술은 단순 회피로는 피할 수 없는 탓에 적당한 대응이 필요한데..

    ‘빌어먹을...’

    마력을 최대한 아끼고 싶은 카그네프로서는 단순히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젠장할!”

    파앗!

    카그네프가 울며 겨자 먹기로 힘껏 주먹을 내뻗으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상위 고유스킬을 발동시켰다.

    상대를 무참히 갈가리 찢어버리는 힘.

    [용의 손톱]

    쌔애액-

    날아간 용의 손톱은 상어의 이빨과 맞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했지만 머지않아 밀리기 시작했다.

    키쿨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 마력을 듬뿍 쏟아 상어의 이빨을 시전한 것에 비해, 카그네프의 용의 손톱은 몸을 피할 수 있는 시간만 벌기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중의 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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