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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605화 (5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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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턴 제대로 상대해주도록 하마.]

    헤드리아가 눈을 번뜩이며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파앗-

    스스스-

    그러자 헤드리아의 피부가 더욱 두터워지더니 여태껏 헤드리아의 전신을 비늘처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칼날이 마치 의지를 지닌 듯 슬렁슬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시우스의 눈동자는 이것을 확인키 무섭게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무슨...?!’

    칼날이 더 두터워지다니?

    게다가 저 칼날은 놈의 피부로서 갑옷 겸 무기가 아니었던 것인가?

    이렇게 탈착이 가능하...

    딱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슈슈슉-

    사방으로 비산한 칼날이 마치 먹잇감을 잡아먹듯, 카시우스를 향해 일제히 몰아쳤다.

    카시우스는 두 개의 단검을 치켜세움과 동시에 방어를 위해 정신없이 휘둘렀다.

    챙!

    채재재쟁-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칼날을 쳐내는 카시우스.

    피잇-

    ‘크윽!’

    하지만 고작 두 개의 단검으로는 그 수많은 칼날을 전부 쳐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본디 마법과 스킬의 도움을 받아 쳐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피슉-

    ‘큭! 무슨!’

    이전보다도 강화된 듯 보이는 헤드리아의 칼날은 일반적인 마법이나, 염동력으로 움직이는 그런 단순한 칼날과는 한차례 차원이 달랐다.

    ‘빌어먹을...’

    카시우스의 눈가가 자신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자신의 피부를 마치 부품마냥 분리시켜 이런 식의 공격을 하는 대리자는, 수많은 전장을 겪어온 그로서도 처음 보는 형식의 대리자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위력, 이 예리함!

    고위 방어 마법을 포함해 대부분의 스킬이 간단히 뚫려버리니 이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감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생각나는 것은 헤드리아 본체를 공격하여 칼날을 갑주형태로 되돌리는 것뿐인데.

    [하하하, 뭐 하고 있느냐!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칼날 채찍을 휘두르는 헤드리아는 칼날의 갑옷을 벗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강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되레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칼날의 갑주가 없어져서인지...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스스슥-

    피식-

    “크윽!”

    결국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칼날에 시선이 분산된 카시우스의 복부에 헤드리아의 채찍이 스쳐 지나갔다.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었으나.

    ‘크으으...’

    꽉 다문 카시우스의 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저 헤드리아라는 존재는 알베타스족의 수장 알베타스도 아니었다.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한 종족의 수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에게 엘프의 수장인 자신이 이렇게 고전하고 있다니...

    수하가 저 정도인데 알베타스라는 자는 얼마나 강할지...

    ‘빌어먹을...’

    카시우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눈앞에 있는 헤드리아가 분명 대단한 존재인 건 틀림없으나, 자신도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 완벽하게 전력을 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100%의 힘을 해방한다면...

    ‘놈을 이길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나중이 없다.

    힘이 다해 크라베스나 카그네프 혹은 알베타스가 신물 파편을 취할 때 그걸 눈뜨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카시우스가 눈을 부릅떴다.

    ‘이대로 여기서 질 순 없다.’

    실피리오와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니 지키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서.

    실피리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하여.

    카시우스가 마력을 풀로 개방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음?]

    맹공을 퍼붓던 헤드리아가 대뜸 공격을 멈추더니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콰과과광-

    그곳에는 머지않아 거대한 화염의 불기둥이 펼쳐졌다.

    [이런, 역시...]

    지면의 어느 한 곳을 내려다본 헤드리아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그녀가 응시한 곳에는 두 명의 인간과 두 명의 정령이 있었다.

    헤드리아는 곧장 시선을 옮기더니 카시우스를 보며 말했다.

    [너, 운이 좋구나.]

    그것이 헤드리아가 그를 보며 한 마지막 말이었다.

    [캬쟉프!]

    [알고... 있다...]

    스슥-

    그녀는 곧장 캬쟉프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 * *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맞췄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실피리오님.]

    디네가 쪼르르 한걸음에 달려가 실피리오를 향해 말했다.

    [너는 아쿠리네의...]

    실피리오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지 디네를 보며 그저 눈만 깜빡였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나를 찾을 수 있었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실피리오가 물었다.

    [그건 내가 답해주지. 실피리오.]

    물음에 대한 자초지종은 이프리트가 나서서 설명했다.

    이프리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어떻게 다다른 것인지 시간이 별로 없는 만큼 빠르지만 차분하면서도 간략히 풀어놨다.

    [.....]

    이야기가 끝나자 실피리오가 생각 많은 표정이 되어 디네와 김주희를 번갈아봤다.

    실제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당연히 배신할 거라 예상했던 인간이었다.

    왜냐하면 정령왕 급도 아니고 전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상급 정령 따위를 위해 희생할 대리자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

    디네의 계약자, 김주희라는 인간은 여전히 그녀의 소멸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믿었던 카시우스에게 배신당한 쪽은 되레 자신이었다.

    ‘하하하...’

    그러니 이 어찌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하하하하....’

    실피리오는 한동안 마음속으로 슬픈 웃음을 삼켰다.

    * * *

    [이런... 그럼 기둥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가야겠군.]

    크라베스와 카그네프에 대한 이야기를 실피리오에게 전해 들은 이프리트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실피리오는 즉각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미안해 이프리트. 그 장소의 위치는 내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는데...]

    [아니, 니 탓이 아니다 실피리오. 무력화시키고 머리를 읽어버리는데 나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

    [후우,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아쿠리네와 보레아스야. 그들은 분명 기둥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갔을 텐데 우리가 도달할 때까지 놈들에게서 버틸 수 있을지... 디네, 어떠냐. 둘의 기운이 느껴지나?]

    [예, 느껴져요. 지금 두 분이 계신 곳이 기둥이 있는 곳 맞죠?]

    정진을 집중하듯 눈을 감은 디네가 답했다.

    이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다. 아직 정상인 상태인가?]

    [예! 아직은 괜찮으세요!]

    [후, 다행이군. 그럼 빨리 가도록...]

    [어어?!]

    이프리트가 다행이라 여기며 출발하려던 찰나 디네가 순간 몸을 들썩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이런...]

    이프리트의 안색은 단번에 어두워졌다.

    이 상황에서의 당황 섞인 탄성.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일 것이기에.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지.]

    보레아스와 아쿠리네 그리고 기둥이 위험하다.

    * * *

    유적의 최중심지, 기둥이 숨겨져 있는 석탑의 앞.

    관문이 뚫린 것을 깨닫고는 다급히 달려와 적의 침입에 대비해 결계와 함정마법을 설치하고 있던 아쿠리네는 무심코 하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자 잠시 넋을 놓곤 그것을 올려다봤다.

    [......]

    세계가 파멸하기 직전이건만, 바깥과 달리 이곳의 하늘은 아직 균열 한 점 없이 찬란하여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아쿠리네는 잠시 눈을 감고 과거에 잠겼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 마치 어린아이가 탐험을 하듯 이곳저곳을 거닐던 때.

    지금과 다르게 보레아스, 이프리트, 실피리오와 함께 웃으며 잡담을 하던 그 시절.

    수많은 기억들이 아련하면서도 흐릿하게 스쳐 지나간다.

    이젠 다신 떠올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기억들...

    [...아쿠리네? 아쿠리네?]

    [아, 미안해요 보레아스.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그런가. 언제 적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후후, 그러도록 할게요.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보레아스.]

    [아니다. 그럼 계속하자.]

    아쿠리네의 씁쓸한 미소를 본 보레아스가 말없이 고개를 돌려 하던 일을 재개했다.

    그는 사실 지금 아쿠리네가 어떤 심정인지 잘 알고 있었고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 어떠한 말도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그 어떠한 말을 꺼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본인조차도 잘 알고 있었기에.

    [후우...]

    그렇기에 보레아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전념했다.

    침입자가 이곳에 다다랐을 때...

    ‘최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도록.’

    삐이이익-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들이 외곽에 쳐둔 특수 마법경보가 거칠게 울리기 시작했다.

    * * *

    아쿠리네와 보레아스가 재빨리 거목에 몸을 숨겼다.

    특수 마법경보는 정령인 그들밖에 들을 수 없게 설계되어있는 마법.

    적들은 이 경보의 존재를 알 수 없을 것이기에 더 다가오면 기습하여 응대하기 위함이었다.

    두근- 두근-

    긴장으로 인해 코어가 마치 심장처럼 부르르 떨린다.

    [후...]

    숨어서 대기하고 있는 보레아스와 아쿠리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곳의 위치를 알아챈 것이란 말인가.

    단순한 우연?

    아니면 지나가다가?

    [......]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상황은 적이 이곳을 향해 더 깊이 들어오지 않고 그냥 이 일대를 스쳐 지나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놈들... 알고 있다.’

    보레아스와 아쿠리네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거침없는 발걸음, 그리고 경로.

    저들이 이곳에 있는 건 결단코 우연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하하하! 이 근처에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나와라! 정령왕!”

    크라베스가 선전포고 하듯 포효했다.

    아쿠리네와 보레아스는 이에 더욱더 기척을 없애고 숨을 죽였다.

    어떻게 이곳을 알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하는 바를 봐서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지는 정확히 인지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

    어떻게든 기습을 성공시키기 위함이었으나.

    “그렇게 기척을 갑자기 더 죽이면 티가 더 나잖냐~”

    눈을 번뜩 빛낸 크라베스가 카그네프와 함께 아쿠리네와 보레아스가 숨어있던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보레아스!]

    [알고 있다!]

    콰과광-

    응전이 시작되었다.

    * * *

    쿠궁!

    콰과과광!

    미리 설치해두었던 수많은 마법트랩이 일제히 발동하며 해일과 거대한 바위가 일대를 휩쓴다.

    [하아아압!]

    아쿠리네와 보레아스.

    둘은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를 막기 위해 정말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렀지만. 사용횟수를 초과하여 이제 [신수]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들에게 사실상 희망 따위는 없었다.

    제일 먼저 당한 것은 보레아스.

    그는 아쿠리네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고, 그대로 크라베스에게 코어를 뽑혔다.

    푸슛-

    [보레아스!!]

    “하하하! 눈물겨운 우정이구나! 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금방 만나게 해줄 테니까 말이야~”

    파앗-

    본체인 코어가 뽑혀져 나가자 보레아스의 몸은 우수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레아스가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힘겹게 입을 열어 읊조렸다.

    [아쿠리네... 도망쳐라...]

    [보레아스...]

    [울지 마라... 넌... 웃을 때 빛을 발한다... 반드시 살아남...]

    “거참, 말이 길어~”

    빠악-

    크라베스가 귀찮다는 듯 무너져가는 보레아스의 육신을 손바닥으로 툭 내리쳤다.

    트드득-

    그것으로 보레아스는 완전히 침묵했다.

    [...이, 이 개자식들...]

    “하하하, 고귀한 정령왕이 그런 천한 욕설을 내뱉어서 되겠나~ 예전처럼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응?”

    [네놈들... 용서 못 해... 절대 용서 못한다!!]

    열이 끝까지 오른 아쿠리네가 눈물을 흘리며 모든 힘을 다해 물길을 일으켰다.

    정령마법, 그녀가 지금사용 할 수 있는 비술 중 최고의 비술.

    [대해수(大海水)]

    쿠구구구-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거목의 물결이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를 죽일 듯 휘감는다.

    허나.

    “하하하! 뭐냐 이게! 이걸 지금 공격이라고 하는 거냐!”

    파앗!

    크라베스와 카그네프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이 마력을 발산하자 대해수는 그대로 허탈하게 박살이 나 비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둑-

    투두둑-

    순식간에 아쿠리네의 앞으로 이동한 카그네프가 손을 쭉 뻗었다.

    아쿠리네에게 그 손은 마치 사신과 같았다.

    [아...]

    수많은 기억이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이것이 흔히 죽기 직전에 본다고 한다는 기억, 주마등이란 걸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들...]

    이프리트, 보레아스, 실피리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전 흐릿하게 보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그들은 자신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멀리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물의 정령들의 모습이 눈가에 비쳤다.

    [어머님!]

    [정령왕이시어.]

    [아쿠리네님!]

    많은 물의 정령들과 앙칼진 디네의 목소리가 아른거리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왕중의 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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