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604화 (5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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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슈슈슉-

    재빨리 마법 화살을 연사하여 대응한 카시우스의 미간이 적의 모습을 보자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이 순간은 그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다.

    실피리오를 얻을 수 있는가, 못 얻는가... 결정될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빌어먹을...’

    그런데 하필 딱 지금 이런 식으로 방해가 들어오다니?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있는가?

    아니 당최.

    ‘어떻게 찾아낸 거지? 나조차도 실피리오의 흔적을 찾는 건 불가능해서 크라베스의 능력이 필요했는데. 크라베스처럼 독특한 추적능력을 지니고 있기라도 한 건가?’

    아무쪼록.

    ‘최악이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헤드리아를 보며 카시우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재차 화살을 날렸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할지언정 약화된 실피리오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둥은 어디냐.]

    콰앙!

    [꺄악!]

    “큭! 실피리오!”

    설상가상으로 헤드리아와 캬작프는 카시우스보다도 정보를 지니고 있을 실피리오를 중점적으로 노렸다.

    이대로라면...

    ‘실피리오가 당한다.’

    눈을 번뜩 빛낸 카시우스의 몸이 순간 녹빛의 바람에 휘감겼다.

    휘이잉-

    나중을 위하여 최대한 아껴두려 했던 마력과 고유특성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것이었다.

    스슥-

    그는 빨라진 육체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100발이 넘는 바람의 화살을 헤드리아와 캬작프에게 날렸다.

    슈슈슈슉-

    [으아...아...!]

    한 발 한 발 어찌나 강력한고 정확한지 대응에 나선 캬작프가 화살에 맞아 약간의 괴성을 내질렀다.

    [호오.]

    팅-

    티디딩-

    반면 헤드리아는 갑자기 빨라진 카시우스의 움직임에 흥미로워하면서도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쳐내는 모습을 보였다.

    카시우스는 아직까지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헤드리아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화살을 이렇게 손쉽게 튕겨내다니?

    ‘무슨, 대체 얼마나 단단하기에... 그렇다면...’

    끼기긱-

    활시위를 힘껏 당긴 카시우스의 활대와 화살이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카시우스의 일곱 가지 마법 화살 중 관통력을 극대화시킨 마법 화살.

    [황혼의 화살]

    팅!

    활시위를 놓자 연사로 날아가는 화살에 섞여 황혼의 화살이 헤드리아를 향해 거칠게 날아간다.

    [으음?]

    헤드리아가 황혼의 화살에게서 모종의 기이함을 느끼고 반응을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쿠우웅!

    육체를 감싸고 있던 칼날의 갑주가 뚫리며 어깨에 그대로 적중.

    균형을 잃은 헤드리아의 육체는 순간적으로 크게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금이다.’

    카시우스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실피리오에게 접근함과 동시에 그녀를 껴안고는 도주를 시작했다.

    [크으으... 이놈이... 놓치지 않는다! 캬쟉프!]

    [알고... 있다...]

    그리고 뒤를 헤드리아와 캬쟉프가 재빨리 뒤쫓았다.

    추격전의 시작이었다.

    * * *

    콰아아앙!

    슉-

    슈슈슉-

    등 뒤로 칼날을 포함한 서늘하기 짝이 없는 스킬들이 날아온다.

    한 방 한 방이 전부 치명상으로 직결될 수 있는 강력한 공격들.

    카시우스는 이것들을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회피해가며 실피리오의 상태를 살폈다.

    [하아... 하아...]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로 공격을 받아서인지 아까보다도 훨씬 더 상태가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실피리오.”

    [닥쳐... 너랑 할 말 따윈... 더는 없으니까...]

    카시우스가 말을 걸기 무섭게 실피리오가 듣기 싫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그만큼 지금 카시우스에게 무척 실망한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밀쳐서 떨어지고 싶지만 떨어지면 바로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인 것이다.

    “실피리오.”

    [닥...치라니까. 너의 말 듣기 싫으...]

    “아니, 그냥 들어라. 실피리오.”

    하지만 카시우스는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유특성, 가속으로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있다지만 실피리오를 들고 움직이느라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상황.

    머지않아 이 추격전도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열악하지만 대화를 하려면 지금밖에 없는 것!

    “실피리오. 다시 말하는 거지만 난 너와 너의 세계를 기만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너를 지키기 위해 진심으로 이 세계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알베타스의 진격은 막을 수 없었다.”

    [너...]

    “난, 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너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실피리오. 이게 내 이기적인 마음이란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난...”

    쾅!

    “큭!”

    콰과광!

    카시우스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화염구가 날아왔다.

    캬쟉프가 입으로 내뱉은 화염이었다.

    쿠구구궁-

    화염구에 적중당한 거목이 쓰러지며 카시우스의 앞을 막는다.

    카시우스는 재빨리 바람을 타고 도약하여 거목을 뛰어넘었지만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경로를 예측하고 있었던 헤드리아의 칼날의 비였다.

    촤좌좌좍-

    퍼버벅-

    “크윽!”

    무수한 칼날이 카시우스의 등에 꽂힌다.

    카시우스는 이에 순간적으로 휘청거렸지만 이를 악문 채 움직이는 발과 말하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실피리오... 나와 계약하자.”

    [...뭐? 너... 역시 목적이 그거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끝가지 들어봐 실피리오. 나와 계약하면 너는 나의 마력으로 인해 코어를 회복하고 본래의 힘을 되찾게 될 거야. 그럼... 적어도 이 세계를 위해 더 싸울 수 있게 되겠지.”

    [...너어...]

    “내가, 내가 마지막까지 도와줄게. 너를 위해. 그러니...”

    [그놈들과 너는 동맹인 거 아니었어? 이제 와서 놈들과 갈라서겠다고? 고작 나를 위해? 하,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그걸 믿...]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은 진심이다. 그러니 실피리오. 정해. 나와 계약하고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지키려고 노력해 볼 건지. 아니면...”

    [잡았다.]

    칼날을 맞아 느려진 카시우스를 코앞까지 따라온 헤드리아가 눈을 번뜩 빛내며 사슬 달린 거대한 칼날을 휘둘렀다.

    카시우스는 재빨리 도약하여 회피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캬쟉프가 내뱉은 진흙이었다.

    츄욱-

    끈적한 진흙은 그의 속도를 더욱 떨어트렸다.

    [빈...틈...]

    캬쟉프가 그것을 포착하고 날아든 순간이었다.

    카시우스가 실피리오를 향해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이대로 허탈하게 소멸한 건지.”

    [......]

    실피리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웅얼거렸다.

    [좋아... 계약해.]

    * * *

    파앗-

    난데없이 발생된 광명이 정령의 세계 이곳저곳을 환하게 비쳤다.

    마치 세계가 의지를 지니고 누군가를 축복한다는 듯.

    [크으... 이...게... 대체... 무슨 빛...]

    갑자기 발생된 자연재해에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은 캬쟉프가 하던 것을 멈추곤 손으로 눈을 가렸다.

    캬쟉프에게 있어선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을 다 잡았다고 생각한 찰나에 난데없이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강렬한 빛이 바로 앞에 발생되다니?

    손 틈 사이로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무언가가 캬쟉프의 시야에 들어온다.

    ‘저건... 마법진?’

    그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수식이었다.

    드래곤에게서도, 마족에게서도,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형식의.

    엘프, 아니 정령왕이 최후의 힘으로 무슨 마법이라도 발동시킨 것일까?

    ‘하지만... 그런... 증조는... 없었는데...’

    수식은 곧 점차 작아지더니 이윽고 카시우스의 쇄골에 새겨졌다.

    찬란하게 펼쳐지던 알 수 없는 빛이 수그러진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갑작스레 강렬하면서도 날카로운 바람이 캬쟉프에게 몰아쳤다.

    그것은 캬쟉프가 이미 경험해 본 적 있는 바람이었다.

    ‘으으음...?! 이건...’

    바람의 정령왕, 실피리오의 바람.

    ‘어떻게...? 분명 다 죽어가고 있었는데...’

    캬쟉프가 재빨리 쿠쿠리를 들며 다시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자.

    후웅-

    순간 황금빛으로 온몸이 물든 실피리오가 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죽어.]

    싸늘한 음성과 동시에 날아오는 황금빛의 폭풍.

    캬쟉프는 쿠쿠리를 휘둘러 폭풍을 가르며 대응에 나섰지만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슈슉-

    베어진 폭풍의 뒤로부터 갑작스레 나타난 주홍빛의 화살.

    ‘이런... 이건... 당했군...’

    푹-

    화살은 갑주를 뚫고 들어와 캬쟉프의 어깨에 박혔다.

    캬쟉프는 재빨리 화살을 빼내며 실피리오를 살폈다.

    아까와 다르게 안정되어 보이는 호흡, 그리고 저 빠른 움직임.

    ‘흠...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전 회복한 건가...’

    앞에 거대한 진흙벽을 세워 바람을 막은 캬쟉프가 재차 쿠쿠리를 치켜세웠다.

    그는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허공에 두둥실 떠있던 실피리오가 그들을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놈들... 여기서 살아 돌아갈 생각 따윈 하지 마라.]

    그렇게 3차전이 시작되었다.

    * * *

    쾅!

    콰과광!

    바람과 진흙, 칼날, 그리고 화살이 한데 뒤섞이며 주위가 풍비박산이 난다.

    카시우스와 계약을 맺고 되살아난 실피리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적과 격렬하게 싸웠다.

    적이 밟을 곳을 예측하여 미리 바람의 트랩을 깔고.

    끝없이 바람의 칼날을 날리며.

    “큭.”

    하지만 그럼에도 적은 견고했다.

    실피리오가 수를 읽어 공격하면 상대는 그 수를 읽어 전부 파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되레.

    퍽-

    [크윽!]

    “실피리오! 뭐 하는 거냐! 긴장해라!”

    [내가 알아서 해! 참견하지 마!]

    카시우스와 계약을 맺은 덕택에 [신수]의 횟수제한이 풀려, 신수까지 사용한 상태임에도 되레 밀리고 있었다.

    하기야 아까도 아슬아슬하지 않았던가.

    ‘빌어먹을...’

    실피리오는 질끈 입술을 곱씹었다.

    이대로라면 이기지 못할 거라는 강박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어떻게 해야 저놈들을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젠장... 이건 절대 하기 싫었는데...’

    무언가를 떠올린 그녀는 곧장 카시우스를 불렀다.

    [카시우스! 그걸 하자!]

    “...진심이냐. 실피리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야! 그러니 착각하지 마! 난 아직 너를...]

    “훗... 알았다.”

    [웃지 말고!]

    버럭 화를 낸 실피리오가 손을 활짝 펼쳤다.

    휘이잉-

    쿠구구궁-

    그러자 그녀의 주위로 어마무시한 황금빛의 폭풍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상상도 하지 못할 강풍이 이리저리 불고, 수많은 돌개바람이 지형지물을 부수며 휘날린다.

    “합!”

    카시우스가 그대로 자리에서 도약하여 폭풍을 타고 저 하늘 위로 자취를 감췄다.

    이것은 과거 카시우스가 엘프의 숲을 지키던 시절, 숲에 소환된 레오릭을 역소환 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실피리오와의 최후의 합공이었다.

    수많은 바람의 칼날과 폭풍, 화살로 적의 시선을 최대한 흐트러뜨린 뒤 그로 인해 발생한 빈틈을 이용한...

    “받아라.”

    카시우스의 마법 화살이 이번에는 주홍빛에 붉은빛을 더했다.

    관통력과 살상력, 두 가지 힘을 한 번에 몰아넣은.

    맞은 이를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리는 카시우스의 비기.

    [파멸의 화살]

    쌔애애액-

    파멸의 화살이 떨어지는 수많은 화살과 폭풍 속에 숨어 캬쟉프를 향했다.

    캬쟉프는 헤드리아와 함께 한참 실피리오를 노리고 있던 중이었다.

    [너희들... 따위와... 노닥... 거릴... 시간...없다... 빨리... 기둥의... 위치를... 으음...?!]

    피잇-

    눈 깜박일 틈도 없이 파멸의 화살이 캬쟉프의 왼쪽 팔을 꿰뚫고 지나갔다.

    [캬아아악...!!]

    팔이 떨어져 나간 캬쟉프는 곧장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헤드리아의 눈은 순간적으로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이것만큼은 그녀도...

    ‘근처에 다가오기 직전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실로 어마무시한 파괴력.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헤드리아는 곧장 사슬의 칼날을 실피리오에게 던져 틈을 만듬과 동시에 카시우스가 있을 하늘로 도약했다.

    이 합공의 위험성을 순식간에 깨닫곤 파훼해버리기 위함이었다.

    카시우스는 엄청난 속도로 헤드리아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지그시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바로 대응하다니.’

    게다가 원래 그가 노린 캬쟉프의 부위는 머리통이었다.

    즉 실패한 셈인 것.

    ‘운인지 아니면 본능인지 마지막에 몸을 비틀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캬쟉프는 지금쯤 싸늘하게 식은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큰일이다.’

    카시우스가 자리를 옮기기 위해 곧장 도약했다.

    원래 이 합공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바람과 화살로 끝없이 교란해가며, 구름을 만들어 그곳에서 몸을 숨긴 채 상대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저격하는 것.

    그것이 이 합공의 진정한 의의였다.

    허나.

    “큭!”

    지금은 과거 단신이었던 레오릭때와는 환경이 많이 달랐다.

    우선, 상대의 기본 스테이터스와 감지능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그로 인해.

    슈슉-

    [너. 제법이로구나. 그 정도의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니.]

    순식간에 마력으로 발판을 만들어 허공에서 방향을 틀은 헤드리아가 카시우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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