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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99화 (58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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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앗!

    콰앙-!

    슈슉-

    콰과과광-

    공방이 끝없이 이어진다.

    “같잖은 물고기 따위가... 어딜!!”

    “훗, 헉헉거리며 힘들게 내뱉는 말이 고작 그거냐?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보자고~”

    “이게...!”

    콰앙!

    카그네프와 키쿨,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자존심이 그것만큼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크큭.’

    그리고 그러한 전투를 크라베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매우 즐겁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아주 잘해주는구만. 카그네프.’

    크라베스는 특수 조건부로 중도에 이 대리전쟁에 참가한 만큼, 이 대리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종족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

    샤크아크족이라 던가 키쿨이란 던가, 그들과 함께 다니며 이름 정도 들은 게 전부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안 그래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주다니 이 얼마나 갸륵한가!

    ‘크크큭, 운이 아주 좋았어. 설마 앙숙인 놈을 만날 줄이야.’

    크라베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천운!

    하지만.

    ‘......’

    크라베스의 그런 즐거운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뭐냐...’

    싸움을 지켜보는 크라베스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진다.

    약간이나마 우세를 점하고 있던 카그네프가 키쿨이 부분 신체변형을 하자 조금씩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카그네프는 델바람의 수장... 한번 정해진 상성관계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바로 그때였다.

    보글- 보글-

    쌔애액-

    빠악-

    순간적으로 가속한 키쿨의 발차기가 카그네프의 복부에 정확히 들어가 꽂혔다.

    “커헉!”

    순간 반응하지 못하고 적중당한 카그네프의 표정에는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맺혔다.

    ‘무슨!’

    카그네프는 키쿨의 고유특성이 수중 가속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에 따른 대응도 당연히 해놨었고.

    그런데... 그게 뚫렸다.

    예상치를 상회해 버린 것이다.

    ‘뭐냐... 저건...’

    욱신거리는 복부를 잡은 채 키쿨의 모습을 올려다본 카그네프의 눈동자가 순간 파르르 흔들렸다.

    키쿨의 외형은 처음 변형 때보다도 어느새 더더욱 기괴하게 변화되어 있었다.

    카그네프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과연... 이게 너가 종족의 수장으로서 책임과 자존심을 저버리고 얻은 힘이냐. 키쿨...”

    “흠. 저버린 거 아닌데 말이지~”

    슈슉-

    키쿨이 또다시 주위에 물을 흩뿌리며 가속했다.

    상대가 아직 전력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카그네프가 정신을 완전히 차리기 전 승기를 잡았을 때 끝을 보기 위함이었다.

    쿠구구구-

    어마무시한 양의 마력이 키쿨의 발로 몰려든다.

    정령의 최정점, [신수]를 사용한 물의 정령왕 아쿠리네조차도 막을 수 없었던 그 능력을 발동하려던 순간이었다.

    [메갈로...]

    슈슉-

    -끼아아아!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커다란 비명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키쿨을 향해 사방에서 어둠의 구체가 쏟아졌다.

    [망자의 함.]

    콰아아아앙!

    그들이 있던 공동은 순식간에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쿠구구구구!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거센 흙먼지.

    “...흠...”

    키쿨은 주위를 재빨리 물로 가라앉히고 둘러봤으나 크라베스와 카그네프는 이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탈하고 있는 통로 속에서 카그네프가 자신을 도운 크라베스를 향해 물었다.

    “왜 도와준 거지? 크라베스?”

    “......”

    크라베스는 이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쿠룬의 수장 리네리아와 알베타스족의 수장 알베타스를 포함하여 키쿨 같은 강자가 적어도 2명 이상 존재할 게 분명한 알베타스족.

    자신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구했다고 솔직히 말하기엔 그의 자존심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베타스족... 보통이 아니구나...’

    크라베스는 키쿨을 떠올리며 중추가 있을 내부를 향해 통로를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 * *

    개미굴처럼 수많은 길이 이리저리 꼬여있는 산호 동굴.

    그곳에서 기둥이 있는 중추로 연결되는 통로는 오직 네 군데로,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이는 당연히 정령왕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바람의 통로.

    그 통로를 지키고 있던 실피리오는 카그네프와 크라베스가 전선을 이탈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안 그래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더더욱 구겼다.

    [이런 개잡놈들! 역시 믿는 게 아닌데!]

    [그래도 진군을 늦추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큰 폭발음 덕에 이목도 그 함정 통로 쪽으로 쏠렸구요. 이 정도면 나름은 도움은 됐다 볼 수 있습니다만...]

    [그게 뭐가 도움이 된 거야? 두 놈이 한 놈을 죽이지도 못했는데! 에이! 그래서 그놈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일부러 감춘 게 틀림없습니다.]

    [크!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대리자 놈들... 지금쯤 혈안이 돼서 우리가 있는 이 통로를 찾고 있겠구만.]

    [예, 그럴 거 같습니다.]

    [놈들의 병력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긴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가며 막아주고 있습니다.]

    [흠, 그래? 병력은 조금 도움이 되긴 하는구만. 뭐, 어차피 자기네들이 기둥에 도착하기 전에 뚫려버릴까 봐 그러는 거겠지만. 하,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짧게 실소를 터트린 실피리오가 저 너머 통로를 응시했다.

    사실 카그네프와 크라베스에게 맡긴 통로는 함정용 통로로, 정령왕들이 지키고 있는 통로와는 제법 거리가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럴 거까지 미리 고려하여 한 처사지만...

    ‘쯧. 다음에 볼 땐 놈들도 적이겠네.’

    결국 급하다고 하여 안방에 적을 들여놓은 셈.

    들여놓았다는 것 자체에 아니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보고하러 온 정령을 보낸 뒤 재차 경계태세에 들어가려 하던 순간이었다.

    찌잉-

    순간적으로 전신에 오한이 일며, 바람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파르르 요동쳤다.

    [...!!]

    그것은 이 세계의 수호자로 임명된, 정령왕에게만 존재하는 특유의 감각이었다.

    뭔가 놓친 느낌, 불쾌하기 짝이 없다.

    ‘무슨!!’

    실피리오는 불쾌한 느낌이 드는 통로의 천장을 향해 대뜸 바람 칼날을 날렸다.

    슈슉-

    파밧!

    콰앙!

    제대로 적중당한 통로의 천장은 파편이 되어 우수수 지면으로 떨어졌다.

    [......]

    단순한 느낌, 착각이었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실피리오의 날카로운 시선이 부서진 천장의 바로 옆을 향한다.

    그러자.

    “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그녀가 응시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왔다.

    스스슥-

    그와 동시에 카모플라쥬가 걷히며 드러나는 본모습.

    “지금까지 이걸... 알아차린 정령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지...”

    느릿느릿한 말투로 나직이 말하는 놈은 양손과 양발을 천장에 흡착시킨 채 아직까지도 통로 위에 반대로 붙어있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초록색 비늘과 뱀의 얼굴 그리고 두꺼운 꼬리까지.

    [도마뱀?]

    눈썹을 찌푸린 실피리오가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저런 종류의 알베타스족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으음... 도마뱀... 뭐... 비슷한 종족이긴... 하지... 난... 캬쟉프. 위대한 알베타스님을 따르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리자드족의 수...”

    슈슉-

    퍼엉!

    캬쟉프라고 스스로 소개한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실피리오가 바람 폭풍을 날려 공격을 가했다.

    캬쟉프고 개작프고 이곳까지 도달한 이상 놈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뜻.

    현재 실피리오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빠르게 놈을 처리하는 게 최우선 사항인 것이다.

    슈슉-

    타닥-

    허나 캬쟉프는 느릿느릿한 말투와는 다르게 재빠른 몸놀림을 보이며 실피리오의 공격을 회피했다.

    지면으로 착지한 캬쟉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네가... 이곳에 있다는 뜻은... 여기가... ”

    [닥쳐!]

    휘이잉-

    쿠구구구!

    말을 대번에 자른 실피리오가 손을 모아 바람을 일으켰다.

    슈슉-

    그것은 하나하나 정말 강력하기 그지없는 바람의 화살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타다닥-

    휘익-

    두 발로 벌떡 일어난 캬쟉프는 그 바람 화살을 허리를 뒤로 굽히거나, 바닥에 딱 붙는 등 특이한 동작으로 전부 흘려냈다.

    허리춤에서 휘어진 곡검, 사브르 두 정을 꺼내 양손에 각각 쥔 캬쟉프가 중얼거렸다.

    “왜... 다들... 내 말은 끝까지... 들어주질 않는 건지...”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피리오를 향해 쇄도했다.

    * * *

    콰광!

    쿠구구구!

    실피리오의 의지에 따라 거센 강풍이 캬쟉프를 향해 쏟아진다.

    언뜻 보면 유리한 것은 실피리오.

    하지만 지금 공격을 가하고 있는 실피리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저건 대체 뭐야?!’

    문제는 캬쟉프의 특이한 능력에 있었다.

    캬쟉프가 지니고 있는 종족특성, 위장.

    캬쟉프는 리자드족의 수장, 돌연변이로서 보통의 리자드족이 지니고 있는 위장능력과는 다르게 더욱 진화된 위장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감지마법으로도 발각되는 게 일반적인 위장이라면, 캬쟉프가 사용하는 위장은 감지가 되지 않았다.

    ‘젠장! 또 어디로 숨은 거야?’

    실피리오가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캬쟉프는 아까부터 마법으로 진흙을 만들거나 모래를 생성해 내 그것으로 인해 실피리오가 잠시라도 움직임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즉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캬쟉프는 온도, 빛 반사, 기척제거 등등 완벽하기 그지없어 실피리오의 예민한 감각으로도 웬만해선 감지가 되지 않았다.

    드래곤의 고위 투명화 마법, 인비지빌리티나 감각차단 마법조차도 실피리오가 손쉽게 감지해 내는 것을 감안했을 때 위장에 한에서는 캬쟉프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는 것!

    ‘젠장! 어디지... 어디... 읏?!’

    적을 찾기 위해 의식을 집중하고 있던 실피리오가 순간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경기를 일으키며 천장을 향해 폭풍의 창을 날렸다.

    콰과광!

    “으어...!”

    그렇게 폭풍의 창이 천장에 닿자 캬쟉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실피리오는 그런 캬쟉프를 보며 코어가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눈앞에서 사라진 게 불과 3~5초밖에 되지 않건만, 놈은 그 짧은 새에 자신의 바로 앞까지 들키지 않고 다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찾아내지 못해 기습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빌어먹을...’

    순간적으로 상상한 실피리오의 이마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땀방울 하나가 주륵 흘러내렸다.

    ‘젠장... 지금 놈에게 써야 하는 건가.’

    [신수]를 떠올린 실피리오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그녀를 포함한 정령왕들은 일전에 기둥을 지키는데 한 번씩 사용했기에, 이제 남은 사용 횟수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로서 [신수]는 알베타스에게나 사용하고 싶은 정말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순간 카시우스의 얼굴이 실피리오의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실피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카시우스를 믿는다지만 그도 대리자, 다른 정령왕들이 통로는 맡길 수 없다 하여 그는 이 근처가 아닌 크라베스와 마찬가지로 중간 부분 통로에 배치시켜 놓은 상태였다.

    지금 데리러 갈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누군가 상황을 보고 지원을 요청했다면 모를까...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이곳과 연결되어 있는 세 개의 통로 중 중앙 통로에서 갑자기 어마무시한 폭발이 일었다.

    ‘뭐야?!’

    그곳은 최상급 불의 정령 중에서도 탑 3안에 드는 불의 정령, 이그니크스가 지키고 있는 장소였다.

    ‘설마 이곳의 상황을 인지하고 도우러 온 건가?’

    실피리오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다.

    전투로 인해 소란이 많이 일었기에.

    그래, 충분히 알아챌만하지.

    허나.

    [여기에 있었군. 캬쟉프.]

    수많은 칼로 빼곡히 덮여있는 전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사나운 눈동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놈의 손에 붙잡힌 채 축 늘어져있는 이그니크스의 몸.

    실피리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놈은...

    [헤드리아... 인가... 내가 놔뒀던 흔적을... 따라... 온... 거냐...]

    [뭐, 그렇지.]

    [다른... 이들...은?]

    [베아렉클하고만 왔다. 나머지는 오지 않았어. 알아서 길을 찾겠다나 뭐라나.]

    [그렇...]

    [그보다 캬쟉프. 말 좀 더 빨리해라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휙-

    귀찮은 듯 붙잡고 있던 이그니크스를 벽을 향해 휙 던져버린 헤드리아가 시선을 돌려 실피리오를 지그시 응시했다.

    기둥 공방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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