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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83화 (56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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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뭐라? 제2부대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간이 탁자를 내리친 레오릭의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푸른빛이 번뜩였다.

    유세현이 마군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지 어연 7일째.

    현재 마군은 이례 없는 대혼란을 맞고 있었다.

    퍼져있는 각 부대에 신출귀몰하게 등장한 유세현이 그곳의 지휘관을 꺾은 뒤 모습을 감추길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으... 놈의 행방은?”

    “그게...”

    “설마 또 놓쳤다는 것이냐?”

    “...예. 안타깝지만... 길목에서 정령 놈들이 갑자기 등장해 방해하는 틈에...”

    “이런 무능한!!”

    뿌드득-

    레오릭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는 유세현의 어쭙잖은 연설을 들은 마족들이 심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유세현이 내세운 명분은 마족으로선 근본이자 근간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강한 마족이 마족의 왕이 된다.

    그러니 그저 지켜봐라.

    이 말을 마족으로서 감히 누가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레오릭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생각한바 이대로라면 조만간 머지않아 모든 마족들이 유세현에게 휘둘리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러니 그전에...

    ‘대처를 해야 된다.’

    레오릭이 입 열어 부관을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놈이 쓰러트린 최고 서열이 누구냐.”

    “어제 당하신 서열 8위, 카르고프님입니다.”

    “...그래 맞아... 카르고프가 당했었지...”

    넘버 8.

    카르고프.

    그는 레오릭 또한 인정하는 강자 중에 강자였다.

    “어떻게 당했다고 했지?”

    “...그게...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그런 자가 힘을 거의 사용해보지도 못하곤 당했다.

    레오릭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부관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벨제뷔트와 나르슈나를 이곳으로 소집시켜라.”

    “예? 벨제뷔트님과 나르슈나님을 말입니까?”

    “그렇다.”

    레오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관, 키르안의 표정이 잠시 뻣뻣하게 굳었다.

    현재 나르슈나와 벨제뷔트는 마군의 매우 중요한 위치인 좌편과 우편을 맡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둘을 불러들이다니?

    대체 무슨 연유로...

    그가 송구를 무릅쓰고 이유를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키르안... 어서 움직여라.”

    마치 그런 카르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레오릭의 푸른 눈동자가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키르안은 그것을 보기 무섭게, 자신이 괜한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총사령관이시어.”

    스슥-

    키르안이 레오릭의 앞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 * *

    “호오, 나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무슨 연유로 이렇게 다급히...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는지요. 레오릭...님?”

    양손을 으쓱 치켜든 벨제뷔트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레오릭을 향해 말했다.

    “야, 너 미쳤어 벨제뷔트? 말투가 그게 뭐냐?”

    그 태도에 나르슈나가 순식간에 벨제뷔트의 멱살을 낚아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빌빌 기던 놈이 루시뷀트님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기고만장해진 것이 그녀로선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뭘 믿고...

    “하하, 이거 왜 이러실까 서큐버스퀸님~ 정작 당사자는 괜찮아 보이시는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벨제뷔트는 나르슈나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관적이게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레오릭이 왜 자신을 이곳에 부른 것인지 대충 눈치챈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아쉬운 쪽은 바라는 게 있는 쪽.

    아니나 다를까 레오릭이 괜찮다는 듯 나르슈나에게 손짓한 뒤 말했다.

    “거기까지 해라 벨제뷔트. 머리가 좋은 넌 내가 왜 부른 것인지 이미 알고 있겠지?”

    “아무렴~요. 현재 제일 골칫거리 유세현 때문... 아닙니까?”

    “맞다.”

    “하하, 역시나.”

    레오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벨제뷔트가 피식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내가 이제부터 하려고 하는 말도 알고 있겠군 벨제뷔트.”

    “뭐, 대충은...요?”

    “그럼, 대충 예상하고 있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겠다. 벨제뷔트, 유세현을 포획할 시 너에게 주겠다.”

    레오릭이 툭 말했다.

    “...뭐?”

    벨제뷔트는 언제 실소를 내뱉고 있었냐는 듯 대번에 미간을 좁혔다.

    유세현을 주겠다고?

    “레오릭...님.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신지...”

    “말 그대로의 의미다. 유세현을 포획할 시 너에게 주겠다. 놈을 죽이던 가지고 놀던... 아니면 동화를 사용하던...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

    벨제뷔트의 입이 일순간 꾹 닫혔다.

    그는 본디 레오릭이 어떤 제안을 해올지언정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할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유세현을 잡아봤자 마왕과 레오릭만 이득을 보는 것일 뿐 자신은 어떠한 이득도 보지 못하기에.

    만약 명령을 내려 강제로 동원될지언정 절대 이로운 행동은 하지 않을 심산이었던 것.

    하지만 조건이 이렇게 된다면...

    “흐음...”

    당장이라도 수락하고 싶은 충동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그럼에도 벨제뷔트는 망설였다.

    신의 회랑.

    그곳에서 유세현에게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이건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다.’

    유세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면 루시뷀트조차도 자신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된다.

    종국엔 잘만 한다면 마왕의 자리까지 노려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패배할 시 놈의 성격상 레오릭과 나르슈나는 살려 준다 쳐도 배신자인 나는 가차 없이 죽여버릴 텐데...’

    졌을 때의 리스크가 자꾸만 입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말을 막는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레오릭...님.”

    그렇게 말한 벨제뷔트는 관자놀이를 짚고는 곧장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지.

    방법은 있는 것인지.

    그는 근래 있어서 가장 머리 아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야, 벨제뷔트. 언제까지 생각하고 있을 거야? 레오릭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거 안 보이...”

    “그 제안 수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릭님.”

    벨제뷔트가 돌연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진심이 담겨있는 눈동자였다.

    “잘 생각했다. 벨제뷔트.”

    레오릭이 만족스러운 듯 턱을 달그락거렸다.

    그렇게 유세현 사냥을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한편 유세현이 차례차례 마군을 공격하여 입지를 올리고 있을 무렵, 그를 발견해 몰래 뒤를 쫓으며 주시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저놈,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무력화시킨 적을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퇴각을 하다니...”

    “그러게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전부 죽여 코인만 흡수해도 이득일 텐데...”

    드레보스와 비야크가 한마디씩 내뱉자 아르펜이 차분히 턱을 짚었다.

    그들은 현재 들키지 않기 위해 상당히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유세현이 하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정말 놈은 무슨 연유로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군... 그런 거였어...”

    잠시 홀로 고민하던 아르펜이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비야크와 드레보스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눈이 동그랗게 변해 아르펜을 응시했다.

    “놈의 목적을 알아내신 겁니까? 아르펜님?!”

    “그래. 100% 라곤 할 순 없지만...”

    “뭐, 뭡니까. 놈은 뭘 대체 노리고 있기에...”

    그 물음에 아르펜이 차분히 읊조렸다.

    “마왕.”

    “예?”

    “내 예상이 맞다면 놈은 마왕이 될 생각이다.”

    “......”

    비야크와 드레보스의 입이 잠시 꾹 다물어졌다.

    중간을 확 건너뛰어 말한 턱에 아르펜의 말뜻이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잠시.

    “그렇군.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건 물밑 작업이었던 건가.”

    드레보스와 비야크가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이런다고 저 자존심 높은 마족 놈들이 놈을 진심으로 따를 것 같진 않습니다만...”

    “맞습니다. 공격을 하라고 하면 겉으론 따르는 척하다 루시뷀트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배신하여 원래대로 돌아갈 게 뻔합니다.”

    “뭐, 그건 당연히 그렇겠지.”

    아르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존심 높은 마족들은 당장 자신이 굴복될지언정 인간 출신인 유세현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을 터였다.

    그들의 뒤에는 루시뷀트란 최강의 마족이 있으니까.

    하지만...

    “유세현이 지금 저들을 쓰러트리는 건 마왕을 공격하기 위한 말로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닐 거다.”

    “...예? 그게 무슨...”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유세현이 저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루시뷀트를 1:1로 잡기 전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성격을 마족들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하여.

    “예? 그렇다는 건...”

    “그래 맞아. 유세현은 어떤 마족의 도움도 없이 루시뷀트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

    아르펜의 말에 드레보스와 비야크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루시뷀트와 1:1을 할 생각이라니?

    “뭐,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100%라고 장담하진 못한다. 무슨 다른 계책을 꾸미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흐음... 계속해서 지켜봐야겠군요.”

    “뭐, 그런 거지. 그런데 비야크.”

    “예. 아르펜님.”

    “세레나의 동향은? 어떻지?”

    “똑같습니다. 병력의 80%가 우리처럼 마군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상태입니다. 약 20% 정도는 여전히 인간과 정령들을 살피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아르펜이 재차 턱을 짚었다.

    세레나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땐 이 지역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알베타스와 그 휘하 부대에 관심을 두는듯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마족과 인간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세계의 클리어에 가장 가까운 종족은 알베타스가 틀림없건만...

    ‘무슨 의도지?’

    눈치가 빨라 인물들의 속을 보다 손쉽게 읽는 아르펜이었지만 세레나의 속만큼은 아무리 그라 할지언정 들여다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레드의 통솔력을 얻기 위하여 아버지인 퀴르벨을 처단하는 판단력과 행동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의미 없는 행동을 할리는 절대 없을 터인데...

    “드레보스, 지금부터 너에게 내 부대의 절반을 맡길 테니 이쪽에선 손을 떼고 나머지 20%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는데 힘써봐라.”

    “20%라고 하면... 인간 측을 감시하고 있는 쪽 말입니까?”

    “그래 맞다.”

    “흠... 제 생각엔 병력을 나누기 보단 그냥 이쪽에 계속해서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지금은 내 말을 따라. 분명 뭔가가 있을게 틀림없으니.”

    아르펜이 단칼에 드레보스의 의견을 잘랐다.

    드레보스는 이에 할 말이 있는지 잠시 입가를 움찔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직급과 능력,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건대 아르펜의 판단이 옳았을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아르펜님. 하지만 보는 눈이 있는 만큼 보고를 자주 하지는 못할 겁니다.”

    “알고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2주에 한 번 정도씩만 해.”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가봐라. 이걸 보여주면 애들이 너의 말을 따를 거야.”

    아르펜이 드레보스의 손에 종이를 하나 쥐어주자, 드레보스는 그것을 갖고는 곧장 자리를 떴다.

    * * *

    드레보스가 아르펜의 명령을 받아 병력들을 이끌고 감시 작전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시각.

    세레나는 정찰을 나갔다 돌아온 그린드래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내용은 유세현과 마족에 대한 것.

    차분히 이야기를 전부 들은 세레나가 말했다.

    “그렇군요. 고생했습니다. 엘로우시아.”

    “아닙니다. 파견된 연합원으로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요. 피곤하실 텐데 가서 조금 쉬세요.”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할 일을 마친 엘로우시아가 간이식 막사를 떠나기 위해 뒤를 돈 순간이었다.

    “아, 엘로우시아.”

    “예, 세레나님.”

    “마왕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나요?”

    “예, 그렇습니다.”

    “흠, 그렇군요. 예 정말로 됐습니다. 수고했어요.”

    “예. 그럼...”

    스륵-

    엘로우시아가 그렇게 막사를 떠나자, 세레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흠, 이렇게 되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루시뷀트의 갑작스런 정지는 더없이 많은 수를 고려하는 그녀의 계획에조차 없던 것이었다.

    마왕이 인간을 쳐 혼비백산할 때 루시펠이 있는 부대를 급습하려 했건만.

    습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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