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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69화 (55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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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슥-

    데프하우어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마족 사이사이를 질주한다.

    “뭐냐 저건!! 설마 블랙 드래곤?”

    “어떻게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쫓아!”

    이에 벨제뷔트를 제외하고도 데프하우어의 존재를 파악한 마족 다수가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지만 블링크를 사용하며 고속으로 이동하는 데프하우어를 일반적인 마족이 따라잡기란 불가능이었다.

    “허억... 허억... 무슨 속도가... 대체 스테이터스가 어떻게 되기...”

    “비켜라! 방해된다!”

    퍽-

    “크악!”

    벨제뷔트는 그런 허접스러운 마족들을 우악스럽게 밀쳐내며 더더욱 가속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그는 얼마 안 가 데프하우어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다.

    그렇게 데프하우어의 얼굴을,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

    어떻게 된 것이냐. 왜 복귀하지 않은 것이냐. 동화가 왜 풀렸느냐.

    어떤 말부터 꺼낼지 고민하고 있었던 벨제뷔트는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너...”

    마치 인형을 연상케 하는 무미건조한 표정과 공허한 눈동자.

    그리고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동화의 파편.

    “넌 내가 알던 데프하우어가 아니구나.”

    “......”

    “데프하우어, 대체 누구에게 무슨 짓을 당한...”

    “그런 것보다도 마왕을 만나고 싶다만. 불러올 수 있나? 너희에게 쓸만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

    데프하우어의 말에 약간 굳어있던 벨제뷔트의 표정이 더더욱 굳으며 입이 순간 꾹 닫혔다.

    그는 데프하우어를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강제로 끊긴 건 다시 붙이면 되는 법이었으니까.

    허나.

    이건... 이 상태는...

    “데프하우어, 내가 누군지는 기억이 나느냐?”

    “이상한 질문이군. 마군 서열 2위, 벨제뷔트 아닌가.”

    “서열... 2위?”

    “아닌가? 아니라면 네 서열을 말해라. 정정하도록 하지.”

    “......”

    꾸득-

    꽉 움켜쥔 벨제뷔트의 주먹에서 피가 주르륵 새어 나왔다.

    벨제뷔트는 이를 으득 갈았다.

    ‘감정이 제거되고 나에 대한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나 말고도 다른 모든 기억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히 내 충복을...’

    벨제뷔트는 데프하우어를 이렇게 만든 자에 대한 분노에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며 데프하우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마왕을... 아니, 마왕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었나.”

    “그렇다.”

    “이유가 뭐지?”

    “방금 전에 말했던 대로 너희에게 쓸만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쓸만한 정보를?”

    “그렇다.”

    데프하우어의 말에 벨제뷔트의 미간이 순간 꿈틀거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적일 게 분명한 우리에게 정보를 주러 구태여 데프하우어를 보내다니?

    “어째서지? 이유가 뭐냐. 왜 우리에게 정보를...”

    “모른다. 나는 그저 명령받은걸 수행할 뿐이다.”

    “...명령받은 걸? 누가 보냈지?”

    뭔가가 있다고 느낀 벨제뷔트가 물었다.

    데프하우어는 이에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이 여전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세레나님께서 보내셨다.”

    “...세레나?”

    “그렇다.”

    데프하우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제뷔트의 표정은 순간 멍하게 변했다.

    세레나.

    그에게 있어선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름.

    하지만 벨제뷔트는 아직도 그녀의 얼굴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절멸의 탑의 특이 장소 신의회랑의 최심부, 가까스로 그곳에 당도했을 당시 내로라하는 자들 모두가 세레나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인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

    다만 당시에는 그저 단순히 중요한 키를 세레나가 지니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 판단했는데...

    자신의 충복, 데프하우어를 빼앗은 주범도 세레나라니?

    ‘세레나... 그저 보통의 도마뱀은 아니라는 건가. 게다가 데프하우어의 저 태도...’

    본디 저런 태도는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즉 슨 루시뷀트와 세레나는...

    ‘이미 일전에 거래를 한 적이 있다.’

    필히 지금처럼 정보를 받았겠지.

    ‘그럼 설마 그때 그 마군의 이상한 움직임은 세레나의 정보 때문에?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그렇게 된 거였어...’

    조각을 찾으니 퍼즐이 자연스레 맞춰진다.

    일전 완전히 놓쳐버렸던 인간들의 위치를 어떻게 알아내 특정할 수 있었는지.

    마왕이 그렇게 집착하던 유세현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왜 세레나에게 집중한 것인지.

    “마왕님께는 세레나가 보냈다고 보고하면 되나?”

    “그렇다.”

    지금 답으로 명명백백 확실해졌다.

    이후 벨제뷔트는 데프하우어를 루시뷀트에게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동화의 영향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알고 싶어 데프하우어에게 물리적인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데프하우어는 일제 틈을 주지 않았다.

    공격을 감행한다면 공방의 과정에서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아니. 아니다. 지금은 일단 참는 게 맞다.’

    그렇게 결국 데프하우어에게 손끝도 스치지 못하고 마왕의 앞에까지 도달하게 된 벨제뷔트.

    루시뷀트는 데프하우어의 얼굴을 확인하자 벨제뷔트를 쓱 쳐다봤다.

    벨제뷔트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프하우어가 마왕을 향해 말했다.

    “세레나님이 보내서 왔다.”

    [세레나?]

    “그렇다.”

    고개를 끄덕인 데프하우어가 아공간에서 보따리를 꺼내더니 땅에 내려놨다.

    스르륵-

    보따리를 풀자 내용물이 드러난다.

    내용물은 새까만 흙, 빛나는 암석, 생명체의 파편 등등 이 지대에 있는 마물들을 잡거나 탐사하면 모을 수 있는 일종의 잡다한 아이템들이었다.

    “뭐야? 저건.”

    “대체 왜...”

    주위에 있던 마족들은 데프하우어가 지금 대체 왜 저런 것을 구태여 보여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템을 흘긴 레오릭이 물었다.

    “지금이건 무슨 행동이지? 왜 이딴 쓰레기들을 군주님의 앞에... 죽고 싶은 거냐?”

    “아니다.”

    “그렇다면? 죽고 싶지 않다면 잘 대답해야 할 것이다. 도마뱀.”

    쿠궁-

    레오릭의 전신에서 순간 어마무시한 위압감이 터져 나왔다.

    붉은 안광을 번뜩 빛내는 그는 당장이라도 데프하우어의 목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

    허나.

    “내가 가져온 이것들은 이 외층을 벗어나, 중층부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제물이다.”

    “...뭐라고?”

    이어진 데프하우어의 다음 말에 레오릭은 투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방금 놈이 뭐라 한 것인가!

    [네놈, 여기 온 목적이 뭐냐.]

    반응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내용에 루시뷀트가 친히 물었다.

    데프하우어는 이에 곧장 목적을 밝혔다.

    그가 여기 온 이유는...

    “뭐? 중층부보다도 더 깊이 진입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외층부에 있는 마군이 중층부, 아니 심층부로 향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레오릭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턱뼈를 덜그럭 거리며 말했다.

    “네놈, 그 말을 우리보고 믿으라는 거냐? 중층부에서 더 나아가 심층부라니...”

    “믿던 안 믿던 내가 앞으로 알려줄 것들은 전부 진실이다.”

    “...네놈... 대체 진짜 목적이 뭐기에... 무슨 연유로...”

    “난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수행원이다. 자세한 건 모른다.”

    “......”

    화륵-

    턱을 굳게 닫은 레오릭의 안광이 순간 번쩍 불꽃을 일으켰다.

    레오릭은 데프하우어, 아니 세레나의 의중이 여간 미심쩍은 것이 아니었다.

    정보를 알아내지 못하도록 방해해도 망정일 와중에 되레 방도를 친히 일러주다니?

    어째서? 왜?

    “군주시어! 아무리 봐도 함정이 틀림없습니다! 당장 이놈의 목을 쳐서...”

    [거기까지.]

    루시뷀트가 지그시 말하자 수군거리던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지며 레오릭이 입을 꾹 닫았다.

    루시뷀트는 시선을 돌려 천천히 데프하우어를 응시했다.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인형처럼 감정이 없는 눈빛.

    아마 저놈이 하는 말은...

    ‘진실이겠지.’

    그렇다면 저놈은, 아니 세레나는 왜 대가 없이 자신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는 것일까.

    내부로 불러들여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아니면 적이 없으면 따분해서?

    ‘그럴 리가 없지.’

    분명 다른 이유가 필히 있을 것이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루시뷀트가 순간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그는 이내 재미있다는 듯 큭큭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그렇군. 그걸 노린 건가...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구, 군주시어?”

    [데프하우어여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 이외에 뭐 또 다른 전할 말은 없느냐?]

    “있다.”

    [뭐지?]

    “인간들은 정령들의 세계, 심층부에 있다.”

    데프하우어가 그 여느 때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루시뷀트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폭소를 내뿜었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그러느냐?]

    방금 전 데프하우어의 말로 인해 세레나의 의중을 완벽히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감히 나와 내 군을 인간들 견제용으로 사용하려고 하다니...’

    하지만 그는 기꺼이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유세현은 루시뷀트에게 있어서 그만큼 거슬리는 가짜이기도 하였고.

    심층부로 향하게 되면 보다 쉽게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레나... 날 심층부로 초대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세레나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은 덤.

    피식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루시뷀트의 안광이 더욱 새빨간 빛을 발했다.

    * * *

    “잠깐. 거기 서라.”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데프하우어를 붙잡은 것은 벨제뷔트였다.

    “뭐지?”

    “아, 뭐 별건 아니고.”

    벨제뷔트는 데프하우어에게 천천히 다가가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헤어지기 전에 악수나 한번 하자고.”

    벨제뷔트가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씨익 미소 지었다.

    데프하우어는 그냥 몸을 휙 돌렸다.

    농담으로 치부하여 무시하고 돌아가려는 것이었지만.

    “어허,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렇게 그냥 무시해버리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내가 공격을 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라~ 어때? 이래도 그냥 갈 건가?”

    “악수만 하면 공격하지 않을 건가?”

    “뭐, 그렇지.”

    “그렇다면.”

    귀찮은 전투를 피하기 위해 데프하우어가 재차 몸을 돌려 손을 내밀었다.

    벨제뷔트는 뜻대로 되자 씨익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텁-

    악수를 하는 시간 약 2초.

    스스스-

    벨제뷔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데프하우어에게 혹시나 남아있을 동화의 파편을 찾아 죽을힘을 다해 탐색했다.

    ‘제발... 제발...!’

    하지만 아무리 전신을 휘저어도, 손끝과 발끝을 찾아도.

    파편의 흔적은 처음 마주했을 때와 똑같이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동화시켜보기 위해 힘을 흘러 넣기도 했지만 무용지물.

    지금 데프하우어는...

    ‘젠장... 조금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파고들 틈이... 없다.’

    빠득-

    애써 가라앉힌 분노가 재차 치솟는다.

    벨제뷔트는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데프하우어를 다시 내 것으로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됐겠지. 난 그럼 이만 가보겠다.”

    허나, 손을 놓은 데프하우어가 몸을 돌릴 때까지도 벨제뷔트는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렇게 그냥 보내서는 안 되는데...

    이대로 보내면 절대 다시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벨제뷔트를 움직이게 한 것은 그 감각이었다.

    “아니, 넌 못 간다.”

    슈슉-

    콰아아앙-!

    어둠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일격이 일대에 내리쳤다.

    “뭐, 뭐야?”

    주변에 있던 마족들조차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어마무시한 진동과 후폭풍.

    그들은 다급히 싸움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한 마족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외쳤다.

    “저기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는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가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팡-!

    파바바밧-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세상은 마치 파멸하기라도 할 듯 파공성이 일고 폭풍이 몰아쳤다.

    회오리의 중심지속에서 벨제뷔트가 데프하우어를 향해 죽일 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데프하우어! 널 원래대로 돌려주마!”

    “......”

    데프하우어는 이에 방어만 할 뿐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이젠 반응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구태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이...!! 정확히 딱 반만 죽여주마!”

    치지직-

    말이 무시당해 열이 오른 벨제뷔트의 주먹으로 어마무시한 어둠의 마력이 재차 몰려든다.

    그는 곧장 자신의 자랑인 특수기를 발현했다.

    [다크 인크로]

    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벨제뷔트는 본능적으로 데프하우어에게 틈을 줘서는 안 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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