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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66화 (55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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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 후.

    블루드래곤 진형의 막사.

    “어째서... 왜 반대하지 않으신 겁니까! 아르펜님!”

    예의를 차리는 것도 잊은 채 아르펜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지른 드레보스와 비야크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다 못해 붉으락푸르락 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세레나... 놈의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지 않습니까!”

    견제를 해도 모자랄 시점이건만 되레 힘을 실어주다니?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반대의사를 표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대로면...”

    “워워, 좀 진정해 진정!”

    “아니 아르펜님! 지금 저희가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습니까! 동족 전체가 놈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한데!”

    “맞습니다. 놈의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놈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을 장기말처럼...”

    아르펜이 드레보스와 비야크를 진정시켜보려 애를 썼으나 그들은 된통 당한 적이 있어서 인지 흥분을 도무지 가라앉히지 못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아르펜이 마지못해 마력을 방출했다.

    “너희 둘... 좀 진정 하라니까?”

    파지짓-

    “...!!”

    아르펜의 전신에서 뻗어 나온 어마무시한 순도의 전력을 맛본 두 드래곤이 비로소 입을 닫았다.

    이성이 돌아왔는지 드레보스가 재빨리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르펜님! 제가 너무 흥분하여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저도...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됐다. 뭘 그런 걸 가지고. 난 너희 기분 이해한다.”

    아르펜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혹시 무슨 다른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신 겁니까?”

    “오, 좋은 질문이야.”

    아르펜이 이번에는 잘했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대체 무슨 생각이...”

    “그전에 너희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만. 너희들은 세레나가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짐작이 되느냐?”

    “...뭘 하려는 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르펜의 말에 드레보스와 비야크가 서로를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전혀 안됩니다.”

    “그렇지? 총지휘관을 맡는 대신 이 유적에 있는 신물 파편 조각을 포기하겠다니. 솔직히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세레나 본인으로선 아무런 이득도 없는 것인데.”

    “......”

    “그러니 세레나에겐 100%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난 그걸 알아볼 생각이다.”

    아르펜이 딱 잘라 말했다.

    드레보스와 비야크는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으셨던 거로군요. 홀로 반대하게 되면 경계심이 높아질 테니.”

    “그래, 맞다. 게다가...”

    원래 적은 가까이 두라고 하지 않던가.

    “정보도 나름 이용할 수 있고 말이지.”

    “...저희가 분노에 눈이 멀어 아르펜님의 큰 뜻을 미처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드레보스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아르펜이 재차 손사래를 치다가 툭 말했다.

    “아! 맞아. 앞으로 너희는 내 개인 특수 부대에 속하게 될 거야.”

    “개인 특수부대 말입니까? 세레나가 모든 부대를 지휘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아, 물론 그렇지. 근데 우리 로드들 성격 알잖아?”

    로드들은 한 세력의 수장인 만큼, 자유를 억압당하는 걸 죽어도 싫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한 팀 정도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좋아. 아주 든든하네.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이만 돌아가서 좀 쉬고 있어라.”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드레보스와 비야크가 아르펜의 앞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두 사람이 완전히 떠난 후였다.

    하늘과 연결이라도 될 듯 쭉 뻗어있는 거목의 뒤,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펜.”

    “오, 왔나. 엘라뉘스.”

    아르펜이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자 엘라뉘스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제루웬에게 내용은 대충 들었다. 정말 혼자 괜찮겠나?”

    “뭐 어쩔 수 없지. 지금 엘라뉘스, 너까지 움직이면 세레나는 분명히 낌새를 알아채게 될 거야.”

    “흠...”

    “그러니 응원이나 열심히 해주라고~”

    아르펜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자넨...”

    엘라뉘스는 이에 뭐라 한 소리하려다 입을 닫았다.

    이 남잔 언제고 항상 이런 식이였다.

    “아르펜, 너무 무리하진 마라.”

    “오~ 지금 그거 걱정해주는 거 맞지?”

    “......”

    “너무 걱정 마~ 세레나가 뭘 노리고 있는 진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꼭 알아내서 정보를 공유해줄 테니 말이야~”

    아르펜이 언제나처럼 장난스레 웃어넘기려 했지만 그를 쳐다보는 엘라뉘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드레보스나 비야크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봐온 엘라뉘스는 눈치챈 것이었다.

    그가...

    “...알았다. 조심하도록 하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속으론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레나...’

    항상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누구보다 한 발짝 빠르게 움직이는 드래곤.

    그녀의 정체는, 목적은 무엇일까.

    ‘반드시 밝혀주지.’

    아르펜은 세레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답지 않게 각오를 다졌다.

    * * *

    빛과 어둠의 지대 외층부를 클리어하고 중층부로 들어온 인간 세력.

    그들은 미리 계획했던 대로 곧장 진형을 나눴다.

    하나는 제넥과 기억을 되찾은 자들이 이끄는 진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강호나 이벨린 등 여태껏 통솔자 역할을 맡았던 멤버들이 이끄는 진형이었다.

    “그럼... 진형을 잘 부탁해요. 제넥.”

    “걱정마라,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니.”

    “후훗, 든든하네요.”

    간략히 제넥과 작별인사를 나눈 이벨린이 등을 돌렸다.

    빛과 어둠의 지대를 맡기로 한 제넥의 진형과는 다르게 이벨린의 부대는 갈 길이 멀었다.

    “그럼 출발할까요.”

    “그러도록 하지.”

    저벅- 저벅-

    끝없는 행군이 다시 시작됐다.

    그렇게 얼마를 나아왔을까.

    그들은 어느새 이전과 같이 거대한 빛으로 이루어진 벽 앞에 도달해있었다.

    “후,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요. 이강호.”

    “거의 쉬지 않고 온 덕이지.”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스슥-

    빛의 벽을 지나치자 익숙한 세계가 그들을 반긴다.

    보글- 보글-

    유세현은 그 어느 때처럼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이곳이 정령계의 중층...’

    중층의 기본적인 환경은 외층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다른 것이 있다면...

    ‘저건...’

    외층이 구조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인 반면, 중층에는 조개껍질과 비슷하게 생긴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들이 수없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짐작했던 대로인가.’

    대다수가 파괴되어있는 것으로 보건대, 이벨린의 예상처럼 대리자에게 침식당한 세계는 이곳이 틀림없었다.

    “전부 전투준비.”

    아직 아무것도 포착되는 것은 없었으나 사람들은 지시에 따라 병장기를 꺼내고 전투를 치를 준비를 했다.

    그렇게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빌어먹을 대리자 놈들! 죽어라!!]

    [더 이상 내부로 못 들어가 게 막아!]

    예측했던 대로 정령들이 공격을 감행해왔다.

    화륵- 화륵-

    쿠구궁-

    활활 타오르는 육체를 지닌, 불의 정령들이었다.

    사람들은 공격해온 이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무섭게 혀를 내둘렀다.

    “쳇, 불의 정령인가. 꽝인데?”

    “어떡하죠? 세현씨?”

    불의 정령은 그들이 바라던 정령이 아니었다.

    “일단은 대화를 시도한 뒤 안 되면 제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유세현이 제일 먼저 불의 정령을 향해 날아들었다.

    “멈춰라! 우리는 너희들과 싸울 맘이 없다. 대화를...”

    [어디서 개소리를! 죽어!]

    슈우욱-

    쾅!

    콰과광-!

    나타난 불의 정령들은 불의 상급 정령인 이그레프와 이그레나스였다.

    “멈춰라!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하아압!]

    쾅!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유세현을 포함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압을 하기 시작했다.

    슈슉-

    순식간에 가속하여 다가간 유세현이 한 이그레프의 머리를 잡기 무섭게 지면에 내리꽂았다.

    갑작스레 당한 이그레프는 거친 비명과 함께 경악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커, 컥! 무, 무슨!]

    유세현이 짓누른 상태 그대로 물었다.

    “혹시 이대로 소멸하면 완전히 죽습니까?”

    [뭐, 뭐라고?]

    “본체 상태인 거냐는 겁니다.”

    [이, 이 자식이! 내가 너의 말에 대답할 성싶으...]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완전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 이걸 묻고 있는 것입니다.”

    [뭐, 뭐라고?]

    “다시 말하지만 저... 아니 저희는 당신들과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아니 당신만이라도 저와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주신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당신을 놓아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유세현이 말했다.

    [...뭐라는 거냐 대리자가. 그냥 죽...]

    이그레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찰나였다.

    “혹시 물의 상급정령 중 디네라는 이름을 가진 정령을 아십니까?”

    [...뭐? 디네?]

    “예. 저는 그녀와 친구입니다.”

    유세현이 한없이 진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그래, 그러고 보니 분명 있었지. 인간... 이라는 종족에 대해 즐겁게 재잘 되던 물의 정령이...]

    “알고 있습니까?”

    [그래, 알고 있다. 성격이 더럽고 너무 재잘 되는 턱에 친한 편은 절대 아니지만.]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혹시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

    그 물음에 이그레프가 잠시 입을 닫고는 눈을 흘겨 주위를 살폈다.

    고작 1분 정도 대화를 한 것에 불과하건만...

    동료들인 다른 상급 불의 정령들이 전부 인간들의 손에 제압되어있었다.

    [...내 동료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군.]

    “예, 다시 말하지만 저희는 당신들을 해칠 마음이...”

    [알았다. 불러주도록 하지. 다만 우리 진형과 반대쪽에 있는 만큼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해주시는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약속을 받은 유세현은 곧장 붙잡고 있던 이그레프의 육신을 해방했다.

    이그레프가 동료를 데리고 떠나기 전 물었다.

    [아, 그런데 왜 그 물의 상급정령을 만나고 싶은 건지 혹시 말해줄 수 있나?]

    “그건...”

    [아니, 아니다. 되었다. 어차피 선택은 너희의 몫. 우리가 참견할게 못되지. 부디 네가 그 물의 정령을 진짜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를 바라겠다. 그럼...]

    이그레프는 그 말을 끝으로 동료들과 함께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하루가 흐른 뒤였다.

    [세현 오빠아아아-!]

    익숙하면서도 그립기 그지없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세현 오빠아아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한달음에 날아온 디네가 유세현의 볼에 찰싹 달라붙었다.

    [음~ 이 좋은 향기!]

    디네는 그대로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런 씨, 이게 오자마자 이러네?”

    순식간에 뛰어온 김주희가 재빨리 디네의 몸을 낚아챘다.

    디네는 강제적인 힘에 의해 유세현의 곁에서 떨어지자 불같은 화를 토했다.

    [어쭈? 이거 안 놔? 죽을래?]

    “그러게 누가 나 아는 척도 안 하고 그렇게 대뜸 세현 선배한테 찰싹 붙으래?”

    [아, 세현 오빠가 좋은걸 어쩌라고~ 너도 꼬우면 세현 오빠 하던가~]

    “아오, 이게...”

    김주희의 입가가 씰룩씰룩 달싹였다.

    당장이라도 온갖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세.

    [왜? 열 받냐? 열 받아?]

    “너 씨... 진짜 죽고 싶어? 확 반으로 찢어줄까?”

    [해 보시던가~ 해봐~ 해봐~]

    “호오... 내가 못 할 거 같아? 죽었어.”

    꾸구국-

    김주희의 손에 힘줄이 작게 뿔룩 돋았다.

    정말 힘이 가해지기 시작하자 디네가 고래고래 악을 내뱉었다.

    [꺄아아악! 못생긴 메주 한 마리가 정령 잡는다! 세현오빠! 세현오빠!]

    유세현은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어쩜 오랜만에 만나서도 저러는지.

    ‘강호도 지금은 없고. 일단은 놔두자.’

    [악! 진짜 찢어진다. 찢어져! 야 이 미친년아! 내 몸 진짜 찢어진다고!]

    “헤헤, 더 말해봐. 더 말하는 순간 확 힘 더 줘버릴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의 다툼은 유세현의 방치 아래 근처로 정찰을 나간 이강호가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디네의 세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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