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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급습 경보가 내려졌다.
“이런...”
“전원 자리로!”
스스슥-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순식간에 전투태세가 이루어진다.
이벨린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마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어요. 정체는 소용돌이를 걷어버리거나 근접해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바로 쳐들어오다니... 적은 우리가 이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 틀림없어요! 선배!”
“뭐,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은 외층이다. 우리가 이 세계 생명체들에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이강호가 여유롭게 창을 꺼내며 뒤를 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세요 강호 선배. 세현 선배도!”
“물론이지. 너도 조심해라. 김주희.”
“넵!”
“그럼...”
인원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창을 움켜쥔 김주희는 언제고 튀어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다잡았다.
“미확인 목표물, 최전방 부대에 도착까지 남은 시간 약 5초!”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전투.
[빌어먹을 침입자 놈들...! 전부 죽어라!]
쿠구구구구-
소용돌이 속에서 들려오는 습격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대기를 이루고 있던 물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그리고 만들어지는 수없이 많은 거대한 도끼.
“뭐, 뭐냐 저건... 어떻게 대기의 물이 도끼로...”
생성된 도끼는 만들어지기 무섭게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향해 쏟아졌다.
“제길! 광역기다!”
“우리도 광역기로 대응해라!”
스슥-
콰과과광-
강력한 절기가 발사된다.
제대로 직격 당한 물로 제작된 도끼들은 채 절반도 다가오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이 이놈들이!]
습격자들의 입에서 당황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이걸 한 번에 없애다니?! 이건 우리의 최고...]
[시끄러! 더 날려! 더더!!]
태도를 보건대 방금 공격은 그들 나름대로의 회심의 일격이 틀림없었다.
[크... 죽어어-!]
보글- 보글-
재차 물이 집결되기 시작한다.
큰 위협을 느끼기라도 한 것 마냥 그들은 멈추지 않고 각양각색의 광역기를 끝없이 쏟아댔다.
물론.
팅-
“뭐야? 생각보다 별론데?”
목을 향해 날아온 물의 검을 손쉽게 쳐낸 인원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너무 느리잖아?”
[...무슨...]
이강호의 말처럼 절멸의 탑에서 수많은 역경을 딛고 강해진 사람들에게 습격자들의 공격은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이거 굳이 마력 쓸 필요도 없이 그냥 접근해서 공격해도 되겠는데?”
“야, 방심하지 마. 그러다 훅 가는 거 모르냐?”
“알고 있어 인마. 내가 바보야? 당연히 농담이지. 왜 그렇게 진지해?”
“그럼...”
“광역기로 단번에 없앤다.”
스스슥-
이번에는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절기가 역으로 소용돌이를 향했다.
습격자들이 다급히 물의 배리어를 만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미친! 뭐, 뭐가 이렇게 강... 꺄아아악!]
당연히 무용지물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절기에 당한 습격자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둘씩 추락하기 시작하자 유세현이 습격자들에게 마무리를 가하기 위해 빠르게 질주했다.
스슥-
그가 삶아온 모토대로 치켜든 검을 내려치려던 찰나였다.
“응?!”
적의 모습을 확인한 유세현의 팔이 허공에 그대로 정지했다.
“너는...”
[비, 빌어먹을... 빌어먹을 습격자 놈들...]
“운디네?”
“전부 멈춰!! 죽이지 마!!”
그 순간 일대에 김주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전투가 종료됐다.
* * *
[그러니까 네가 그 정신 나간 운디네... 아니 에르노라가 그렇게 말하던 김주희라는 인간이라는 거지?]
수많은 물의 정령들이 잔뜩 신기한 눈초리로 눈을 빛내며 김주희의 주위를 빙글 돌았다.
김주희는 이에 뭔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을 받았지만 일단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일단 내가 그 김주희가 맞아.”
[와!]
[설마 진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 얘기 진짜 많이 들었어!]
[성격이 괴팍한 수준을 넘어서서 지랄 맞다던데 그거 사실이야?]
한 순진무구한 물의 정령의 말에 김주희의 이마에 순간 힘줄이 뿔룩 돋았다.
이년... 디네는 대체 다른 물의 정령들에게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뭐라고 떠들고 다닌 것일까.
“호호... 그럴 리가... 정말로 디네가 그렇게 나에 대해 설명한 거 맞아?”
[응!]
물의 정령 모두가 해맑게 웃으며 합창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주희는 당장이라도 일그러질 것 같은 화사한 미소를 억지로 유지하는 한편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디네... 반드시 조진다...’
“호호... 그, 그렇구나. 근데 정령들아.”
[편하게 운디네라고 불러!]
“아, 그래. 그럼 운디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응!]
“왜 다짜고짜 우릴 공격해온 거야?”
현재로서 제일 중요한,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
[아...]
그 질문에 여태까지 해맑기 그지없던 정령들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유세현과 이강호는 역시 뭔가가 있음을 깨닫고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말이야...]
운디네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인원들은 경청하기 시작했다.
* * *
대기가 물로 가득 메워져 있는 이 땅은, 바람, 대지, 불, 물 등등 많은 정령들이 머물고 있는 흔히 말하는 정령계로서 평화롭기 짝이 없는 세계였다.
정령들은 대변동이라 불리는 갑작스런 법칙의 변화로 계약이 끊기게 되어 더 이상 타 세계로 유희를 나갈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인 환경이 바뀐 것은 아니었기에 여기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 대리자로 불리는 적들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쳐들어 온 대리자들은 세계를 휘저으며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정령들은 환경이 부서지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대리자들은 강했다.
이곳이 정령들에게 최적화된 정령계이고 본체가 소멸당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는 특성이 정령들에게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령들의 세상은 진즉이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싸우고 또 싸우고.
정령들은...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희들도 침입자라고 판단하고 공격한 거야... 환경에 적응하기 전에 공격하는 편이 그나마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거든. 미안해...]
말을 마친 물의 정령이 고개를 푹 숙이며 사르륵 지면에 내려앉았다.
김주희는 착잡한 표정이 되어 마찬가지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랬구나...’
정령들만큼은 이 거지 같은 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줄 알았는데...
‘하기야... 기계까지 마음을 얻어 판도라로 불려 오는 마당에...’
정령만 예외를 둔다는 게 이상하긴 했었다.
“너희들도 본체는 아닌 거지 그럼?”
[응! 그래서 너희에게 당한 둘도 괜찮아!]
“휴, 다행이네... 근데 그럼 본체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렇게 나와 있을 게 아니라 본체를 지켜야 되지 않아?”
[아~ 본체? 괜찮아 아직은. 우리 본체는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야야! 쉿! 규율 잊었어? 그건 말해주면 안 되는 거 몰라?]
[아! 맞다! 미안, 이건 규율이라 말해줄 수 없어. 헤헤.]
하급 물의 정령, 운디네가 미안해하며 볼을 긁적였다.
규율이라 알려주지 못하는 것인데 대체 뭐가 미안한 것인지.
물의 정령들은 디네에게 들은 대로 순수하고 착하기 짝이 없었다.
“디네는 어디 있어? 디네를 좀 만나보고 싶은데.”
[디네? 아~ 에르노라?]
“응.”
[미안한데 디네는 지금 못 만나. 이곳에 없거든.]
“응?”
[아, 아니 그게 규율 때문에 말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이곳에는 없어. 그래서 못 만나.]
“음... 알았어.”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들은 하던 이야기를 접고 작별인사를 했다.
[만나서 오랜만에 정말 즐거웠어 인간! 타 종족과 즐겁게 이야기한 게 대체 얼마만인지...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네. 가볼게.]
“조심히 가.”
[에르노라... 아니 디네와 만나게 되면 안부 꼭 전해줄게!]
“안부보다도 소환에 응하라고 좀 해줘.”
[하하... 불가능하겠지만... 뭐 말은 해볼게! 그럼 안녕!]
물의 정령들은 손을 흔들며 빠르게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강호는 곧장 회의를 열었다.
모두가 모이자 이강호가 말했다.
“물의 정령의 말을 들어 다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마 대리자들에게 뚫린 건 이 세계일 확률이 높다.”
“그렇겠지.”
제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벨린이 입을 열었다.
“설산지대와 용암지대, 이 두 곳이 닫혔으니 적들은 최소 중층부 끝에 다다라 잇는 상태일 거예요. 늦어도 한 달 안에 심층부로 넘어가겠죠. 아니면 이미 넘어갔거나.”
“자칫 잘못하다간 선수를 빼앗기겠군. 아니, 이미 거의 빼앗긴 셈인가?”
이태광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벨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거의 빼앗긴 상태예요. 그래서 말인데... 빛과 어둠의 지대를 통해 외층부를 통과한 뒤 두 개로 진형을 나눌까 해요.”
“진형을 두 개로? 왜지? 괜히 병력 분산만...”
“이유가 있어요. 제넥.”
“이유?”
“예.”
이벨린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곧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녀의 의견에 따를 것을 표했다.
* * *
빛과 어둠의 지대, 드래곤의 진형.
로드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막사 내부.
세레나가 어떤 말을 내뱉자 실라우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테이블을 내려쳤다.
쿵!
“뭐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유적지에 있는 신물 파편 조각의 습득권을 포기하겠다고?”
지금 한 세레나의 선언은 대리자라면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누구보다도 신물 파편 조각에 집착해야 될 대리자가 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다니?
그러나.
“예,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실라우벨님.”
재차 답해주는 세레나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대체 왜...”
“저는 가질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뭐?”
“저는 어쩔 수 없었다곤 하나 협공을 당해 죽어가는 아버님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저는...”
한없이 구슬퍼 보이는 세레나의 눈동자에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아니 잠깐...”
각 로드들은 그런 세레나의 모습을 확인키 무섭게 논의하던 의제를 뒤로하곤 다급히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자네 잘못이 아닐세. 세레나.”
“맞다.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
누구는 존대로. 누구는 하대로.
골드의 로드, 알겔라우스가 말했다.
“허허, 한 종족의 수장되는 자가 이렇게 심성이 착해서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내심 쾌재를 지르고 있었다.
퀴르벨은 강한 아군이기도 했지만 눈에 가시 같은 경쟁자였기도 했었으니까.
‘차라리 잘 죽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승리자가 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탐욕으로 이루어진 눈동자가 번뜩인다.
알겔라우스는 숙연해진 분위기가 누그러질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 보이자 입을 열었다.
“흠, 그런데 세레나. 설마 파편을 습득하지 않겠다고 해서 돕지도 않겠다는 건 아니겠지?”
세레나가 주는 정보는 드래곤에게 있어선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습득하지 않는다고 돕지도 않아버리면 말짱 도루묵인 것!
“염려 마십시오 알겔라우스님. 당연히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허허... 그런가...”
“예, 다만...”
“음? 뭐 원하는 것이라도 있느냐?”
“예.”
“뭐냐, 한 번 말해보거라.”
“각 진형을 다룰 수 있는 총지휘권을 저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뭐?”
세레나의 말에 알겔라우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총지휘권, 그 말은 즉슨...
“세레나야, 지금 그 말... 레드뿐만 아니라 우리 종족 전체를 다 다루겠다는 말이 맞느냐?”
“예.”
“이놈!”
알겔라우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가침 영역의 침해.
여태까지 그 누구도, 퀴르벨조차도 이러한 발언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무슨 의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희는 현재 무척이나 늦은 상황입니다.”
“음?”
“제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유적은 클리어 되기 거의 직전의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는 이제 막 돌입한 상태죠.”
“보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 총지휘권을 달라... 이 말이로군.”
드라프나우어가 말했다.
세레나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흠... 그래도 이건...”
“만약 제가 총지휘관을 맡게 된다면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최대한 공평하게 지휘할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정 싫으시다면 저도 더 이상의 말은 꺼내지 않겠습니다만...”
세레나가 말끝을 길게 흘리자, 각 로드들은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는 상황.
지휘권을 부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결론이 나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군.”
“그렇다는 말씀은...”
“그래, 맡아라.”
“감사합니다. 그럼, 믿고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레나가 경의를 보이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디네의 세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