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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64화 (5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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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강호. 이거...”

    “그래 맞아...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대로다 세현아. 플랜 A는 파기다.”

    “누가 심층부에 근접한 거지? 세레나?”

    “아니, 일단 세레나는... 아니 절멸의 탑에 있던 종족들은 절대 아니야. 시간이 안 맞아.”

    “그렇다는 건...”

    “그래 맞아... 일이 우려했었던 대로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이강호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최선의 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될 줄이야.

    ‘이럴 시간이 없다. 만약 플랜 B까지 봉쇄당하게 되면...’

    “플랜 B를 바로 실시한다.”

    이강호의 통솔 아래 인원들이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플랜 B는 용암지대를 통해 내부로 진입하는 것으로, 다행히도 전과는 다르게 게이트는 잘 작동되고 있었다.

    게이트를 본 이벨린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이곳 게이트는 폐쇄가 안 돼서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솔직히... 제2세계는 저희도 잘 모르잖아요.”

    “그렇지. 당시엔 설원지대와 용암지대의 심층부가 거의 클리어 되기 직전이라 그곳은 탐험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었으니까. 그보다 이벨린...”

    “알고 있어요. 바로 진입하도록 명령을 내릴게요.”

    이벨린이 마력을 흘려 각 지휘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사람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순번에 맞춰 차례차례 용암지대로 진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전부 내부로 진입하고 마침내 최후방, 유세현의 부대가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진 순간이었다.

    파직-

    순간 등골을 싸늘하게 만드는 불쾌한 소리가 유세현과 그의 부대원들의 귓가를 스쳤다.

    “으응? 뭐야 이 소린...”

    이에 최후미에 있던 부대원, 타르콴은 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어, 어? 어어어어?!”

    타르콴은 당황 섞인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게! 이게 대체 무슨...!!”

    포탈의 내부 통로가 통과한 입구부터 시작하여 빠르게 붕괴되며 그를 뒤쫓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이거 원래 이런 거야?”

    “제길! 그럴 리가! 뭔가가 잘못된 게 분명해!”

    “일단 달려! 이동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간 속도가 부족해서 붕괴에 휘말린... 크윽! 이, 이런!”

    그 순간 타르콴의 발밑이 무너지며 붕괴된 곳으로부터 발생된 어마무시한 인력이 그의 육신을 격렬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미, 미친! 무슨 흡인력이...”

    타르콴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거세게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젠장! 내 힘 랭크는 SSS를 넘는데! 어떻게 이런 단순한 것에... 이, 이런... 모, 못 버틴다! 완전히 빨려 들어...’

    몸이 절반 이상 붕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타르콴이 완전히 집어삼켜지려던 찰나였다.

    슈슉-

    거센 바람과 함께 날아온 한 남자가 다급하게 뻗은 타르콴의 손을 붙잡았다.

    타르콴은 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잔뜩 반색하여 그의 이름을 외쳤다.

    “세, 세현씨!”

    “꽉 붙잡으세요. 타르콴씨.”

    곧장 방향을 튼 유세현이 천마군림보를 운용하여 붕괴보다도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타르콴처럼 뒤처진 자들을 단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짊어졌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용암지대.

    “허억... 허억... 사, 살았...”

    “바로 움직여라! 이곳은 곧 붕괴된다!”

    “빨리 움직여! 빨리!”

    “뭐, 뭐라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달콤한 휴식이 아니었다.

    유세현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하곤 곧장 이강호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야, 이강호! 대체 이건 뭔 일인데? 붕괴는 세계가 닫힐 때나 일어나는 거 아니었어?”

    “젠장, 맞아.”

    “뭐? 그럼...”

    “운이 없었어.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이 세계가 닫히기 시작했다.”

    이강호가 어이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 또한 이 기막힌 최악의 우연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다.

    “.....”

    유세현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어져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미 닫혀있던 설원지대부터 시작해서, 들어오자마자 닫혀버리기 시작한 세계.

    누가 의도하지 않는 이상 이게 정말 과연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야, 이강호. 세레나가 정말 아닌 거 맞아? 걔네 부하가 먼저 이곳에 들어와서...”

    “그랬다면 다른 세계가 닫히고 오히려 설원지대와 용암지대가 남겨져 있었겠지. 한번 클리어해본 적 있는 그쪽이 훨씬 편할 테니.”

    “...아... 확실히 그렇긴 하네.”

    “...후... 아무쪼록 빨리 이 세계를 벗어나야 돼.”

    “어디로 갈 건데? 역시 너가 그나마 알고 있는 빛과 어둠의 세계?”

    “아니, 잠깐 지형을 살펴봤는데 그곳으로 바로 향하기엔 너무 먼 곳에 떨어졌어. 완전 반대야.”

    “그럼...”

    “일단은 가까운 다른 세계로 이동한 뒤에 그다음에 빛과 어둠의 지대로 이동할 거다.”

    “오케이.”

    전열을 가다듬기 무섭게 인간진형은 타 세계와 연결되어있는 경계로의 이동을 개시했다.

    “후... 정말 쉬운 일이 하나 없네. 그렇지 용석아?”

    “그러게 말이에요 한별 누님. 탑에서 많이 강해져 이젠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벅- 저벅-

    척박하기 그지없는 용암지대를 빠르게 나아가는 사람들.

    유세현은 그들과 함께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사건을 단순 우연이 겹쳐 생긴 일이라 치부하기엔 그는 현 상황이 너무 께름칙하고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이번 사건은... 정말로 우연 때문에 생긴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정말로?

    유세현은 쭉 걸어 경계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의문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 * *

    물이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물의 세계, 그 중심부.

    과거에는 필히 찬란하기 그지없었을, 이제는 무너져 황폐해진 성의 내부 왕좌에는 한 인물이 다리를 꼰 채 대충걸터 앉아있었다.

    마치 천족의 신 오르엠을 연상시키는 여덟 개의 날개.

    알베타스는 왕좌에서 무료한 듯 손가락을 튕기다 한 금발의 남성이 입구로 들어오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그래, 에반. 진행한 일은 어떻게 되었지?”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됐습니다. 여왕님.”

    “그렇다는 건...”

    “예, 용암지대는 완전히 폐쇄됐습니다. 이로써 이제 인간들이 그곳을 통해 내부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군...”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으십니다만 아직도 그리 아쉬우십니까?”

    “뭐 그렇지. 설원지역이 닫히기 전 네 기억이 돌아왔더라면 지금쯤 난 신물 파편을 손에 넣었을 테니... 굳이 이런 수고를 안 해도 됐었고.”

    알베타스가 입맛을 쩝 다셨다.

    에반의 기억이 돌아온 것은 그녀가 이 세계, 물의 세계를 반파하여 설원지역이 닫히고 심층부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과 클리어에 대한 정보 등등 많은 것을 손에 넣은 후였다.

    때문에 그녀는 에반에게서 모든 것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개탄스럽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더 에반의 기억이 빨리 돌아왔다면! 혹은 늦게 이곳을 점령했더라면!

    미래는 확연히 바뀌었을 텐데!

    아무쪼록 에반이 용암지대 심층부 클리어 조건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정보의 수준이 지금 이 물의 세계에서 얻은 정보와 거의 비등하기 짝이 없었기에 설원지대가 열려있는 게 아닌 이상 알베타스는 굳이 용암지대로 돌아갈 필요성이 없었다.

    ‘아니, 돌아가 봐야 되레 인간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셈이나 되겠지.’

    때문에 알베타스는 추후를 대비하여 용암지대도 닫는 방법을 익혀 그것을 행했다.

    이강호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랜덤으로 세계가 닫히는 것이라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실 닫히는 것엔 특정 법칙이 있었다.

    “아무쪼록 이걸로 인간들이 따라붙기까진 시간이 좀 더 소요될 터. 그럼 슬슬 이 지겨운 성에서 나가보도록 할까 에반?”

    “심층부로 향하실 겁니까?”

    “그래, 네 말대로라면 머지않아 줄줄이 몰려들 테니 먼저 들어가서 이점을 선점해 둬야지. 아, 천족과 티탄족은 어떻게 됐어?”

    “리네리아와 키쿨이 외각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 딱 좋네.”

    자리에서 일어난 알베타스가 왕좌의 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 외벽을 응시했다.

    “이게 문일 줄은 처음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말이지.”

    천천히 걸어간 알베타스가 외벽에 손을 얹고는 중얼거렸다.

    “라, 드센 아프렌다.”

    지이잉-

    외벽의 중앙에 격렬한 빛과 함께 웜홀이 생겨났다.

    알베타스는 그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 불러와라 에반. 심층부로 떠난다.”

    * * *

    “디네 나와라! 운디네 소환! 야! 디네! 안 나와? 아, 운디네! 세현 선배 안 볼 꺼야? 대체 왜 안 나오는 건데?!”

    아무리 소환 마법을 연발해도 소용이 없자 김주희는 들었던 팔을 힘없이 떨궜다.

    절멸의 탑이 특수한 장소인지라 소환이 되지 않는 거라 억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틀렸던 모양이었다.

    계약이 깨진 것일까.

    아니면 이젠 전투가 너무 벅차 져서 나오기 싫어진 것일까.

    김주희는 계약 마법이 걸려있는 왼쪽 쇄골을 만지작거렸다.

    ‘마법진은 아직 잘 있는데...’

    어깨에 올라타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귀찮은 디네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디네는 김주희에게 있어서 단순 전투를 위한 소환물이 아닌, 있으면 껄끄럽지만 없으면 허전한 여동생 같은 존재였다.

    “후...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나와서 말로 하라고 말로... 잠수타지 말고...”

    김주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진군하던 병력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도착한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김주희 대장님.”

    그들의 앞에는 세계의 경계를 가르는 새하얀 빛의 벽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렇군요. 진입할 준비 하세요.”

    “예. 그런데 저... 대장님.”

    “예? 뭐죠?”

    “그... 하던 일은 여전히 잘 안 되시나요? 오는 내내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던데...”

    “아, 괜찮아요. 전투에 지장이 있는 일은 아니에요.”

    “아, 예. 그렇습니까.”

    “예,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김주희가 미소를 보이며 부지휘관을 안도시켰다.

    ‘후... 정신 차리자.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언젠간 맘이 바뀌면 디네도 소환에 응하겠지.’

    김주희는 그리 생각하며 진형에 맞춰 경계의 벽을 건넜다.

    스슥-

    그리고 그렇게 경계를 건넌 그녀를 맞아준 것은...

    보글- 보글-

    “음? 이건... 물?”

    대기가 물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었다.

    * * *

    “이거 물 맞지?”

    “응, 틀림없어. 그런데 숨은 그냥 쉬어지네?”

    “신기한 곳이네.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숨이 쉬어지다니. 화염계열 스킬도 잘 발동되나 확인해봐야겠는데?”

    세계를 이동하여 물의 세계로 진입한 인간 진형은 이 지역의 특색과 특성을 알아볼 겸 경계의 근처에서 임시 정비를 취했다.

    “흠, 어디 한번 써볼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화염계열을 포함한 다양한 스킬들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오, 잘 발동되는데?”

    “나도 잘 된다.”

    “그럼 뭐지 이 물은? 물이 아닌 건가?”

    김주희 또한 다른 이들과 섞여 스킬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빙공.’

    촤좌좍-

    김주희가 손끝으로 마력을 흘리자 발생된 냉기가 대기를 타고 쭉 뻗어나갔다.

    ‘얼지 않네.’

    빙공의 위력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물로 이루어진 대기를 얼리진 못했다.

    ‘정말 물이 아닌 건가?’

    김주희의 고개가 순간 갸웃 꺾였다.

    촉감이나 느낌이 분명 물이 틀림없는데 얼지는 않다니...

    ‘아니면 특수한 물? 확인해볼까?’

    김주희는 오랜만에 그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익-

    그녀의 전신이 물로 변화한다.

    그다지 위력이 없어서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스킬, [정령화]

    정령화를 하면 물을 무제한으로 다룰 수 있으니 이게 만약 진짜 물이라면...

    쿠구구구-

    김주희가 정신을 집중하곤 손짓하자 대기의 물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응? 물 맞네?”

    왜 얼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이 대기는 일단 물이 틀림없었다.

    “어어? 저거 설마 다루시는 거야?”

    “처음 보냐? 정령화란 거다. 예전엔 종종 보여주셨었는데 요즘엔 안 보여주시더니...”

    “크... 역시 우리 대장님...”

    김주희가 본격적으로 대기를 다루기 시작하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인원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유세현은 그런 김주희의 모습을 보기 무섭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김주희!”

    “어? 선배?”

    “이건...”

    “아... 이거요? 기억하시죠? 정령화.”

    김주희는 유세현과 다른 동료들이 전부 자신의 곁으로 뛰어오자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대기가 다뤄지는 거야?”

    “헤헤... 예, 맞아요. 이곳의 대기 성분... 일단 물은 맞는 거 같아요. 확인해보려고 변신한 건데... 너무 주위에 눈에 띄는 짓을 해서 죄송해요 선배. 멀리서 누가 우리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 물질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아. 좋은 정보를 얻었어. 잘했어.”

    “헤헤, 그런가요 선배?”

    유세현이 살포시 엄지를 치켜세워 칭찬하자, 김주희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이벨린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흠, 신기한 곳이에요. 물이 대기를 이루고 있는데 빙계 스킬에 얼지 않다니... 아무튼 5분만 더 정비하고 조심해서 전진해보도록...”

    그때였다.

    “N23쪽 전방!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스킬들을 보고 온 것 같습니다!”

    디네의 세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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