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63화 (54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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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작전대로 돼서 정말 다행이구만~”

    “가, 감사합니다. 아르펜님... 아르펜님이 아니셨다면...”

    “에이 감사는 여기 유세현에게 해야지~ 내가 나서면 세레나에게 걸려버리기 때문에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는데.”

    아르펜이 손을 뻗어 유세현을 쓱 가리켰다.

    드레보스는 잠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유세현... 고맙다.”

    유세현은 관심 없다는 듯 셋에게서 등을 홱 돌렸다.

    “...그럼,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펜.”

    “아, 이렇게 바로 말인가? 그래도 전투를 치렀는데 조금 쉬고 가는 게 어떻...”

    “괜찮습니다. 그럼...”

    잡을 틈도 없이 곧장 유세현이 빠르게 자리를 떴다.

    유세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드레보스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유세현이 저를 구해줄 거라곤 정말 상상조차 못 했었습니다. 저는... 과거 놈의 동료를 죽인 적인데...”

    “그때는 던전의 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었지 않았나. 그것을 고려한 거겠지.”

    “예, 물론 그런 것이겠죠... 하지만 저라면...”

    “도우러 오지 않았을 거다?”

    “예.”

    “뭐, 보통은 그렇지.”

    무엇인가를 고민하듯 아르펜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가 아주 작게 읊조렸다.

    “그가 우리 동족이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야.”

    “예? 아르펜님 지금 무슨 말 하셨습...”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드레보스, 비야크. 이제부턴 둘 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볼까? 날 수는 있겠지? 둘 다?”

    “예,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가자!”

    콰과광-

    그들은 협곡을 부숴 시체를 매장해 증거인멸을 한 뒤 유세현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떴다.

    * * *

    “볼 일은 무사히 다 마치신 건가요? 세현씨?”

    “예. 다 마쳤습니다. 갑자기 경로를 이탈해서 미안합니다 이벨린.”

    협곡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질주하는 유세현의 앞으로 이벨린이 이끄는 소수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줄곧 단신인 척했던 유세현이었지만, 사실 유세현의 뒤에는 이벨린의 부대가 있었던 것.

    그녀는 지금까지 유세현의 뒤를 밟으며 그가 안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퇴로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아마 아르펜은...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 묵인한 것일 겁니다.”

    “분명 그렇겠죠. 그가 이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그런데 세현씨 뭐 알아낸 것이라도 있나요?”

    “예. 별로 좋진 않은 소식입니다.”

    유세현은 복귀하는 동안 얻은 정보를 이벨린에게 알려주었다.

    “흠... 결국 세레나가 레드의 로드가 되겠군요.”

    “예, 그럴 겁니다.”

    “후우... 역시 주도면밀한 자에요. 세레나...”

    이벨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억이 돌아와 기껏 살짝이나마 유리해졌다 생각했는데, 세레나가 그런 대단한 아이템을 갖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어...’

    과거 절박했던 자신에게 접근한 것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지금까지의 계획은 전부 세레나가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도 도박에 성공했다는 것...’

    “좀 더 속도를 내도록 하죠 세현씨. 정비를 빨리 끝내고 적어도 레드보다는 빠르게 그 지역에 도착해야 돼요.”

    “그 지역이라 하면...”

    “예, 마지막 신물 파편이 잠들어있는 장소... 통칭...”

    [파이브]

    * * *

    유세현이 인간 진형으로 복귀했을 때, 인간 진형의 분위기는 이전에 비해 확연히 바뀌어져 있었다.

    “만약 그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일단은 무조건 도망쳐라. 거기에 있으면 90% 이상의 확률로 죽게 되니까.”

    “재수 없게 부대와 단절됐을 때는 다시 외부 세계로 넘어와서 합류를...”

    기억을 되찾은 인원들의 목소리가 부대를 부산히 울린다.

    그들은 기억이 없는 대리자들에게 알고 있는 정보를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이벨린씨. 저들은...”

    “맞아요. 과거 제 동료들이에요. 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강호가 무사히 회귀할 수 있었던 거죠.”

    “......”

    유세현은 과거 인류 최후의 생존자였을, 이제는 기억이 되돌아온 대리자들의 얼굴을 쓱 훑어봤다.

    ‘역시...’

    그들은 최후까지 생존한 이들답게 눈빛이 한 차례 차원이 달랐다.

    생과 사.

    절망과 희망을 몸소 느끼고 통달한 느낌.

    그들은 유세현의 눈인사에 마치 더 이상의 대화는 사치라는 듯 간단한 목례로만 답을 했다.

    “든든하군요.”

    “그렇죠?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저들은 그렇다 쳐도 다른 평범한 이들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대리권을 잃게 된 셈인데... 제 예상보다도 훨씬 평온하군요.”

    유세현은 폭동이 일어나거나, 좌절한 자들이 부대를 이탈하는 등등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유세현의 말에 이벨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흠... 정말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세현씨?”

    “...예? 그게 무슨...”

    “당신이기 때문이에요. 세현씨.”

    “......”

    “언제나 선두에 서서... 언제나 제일 먼저... 당신은 이미 저들에게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믿음을 주었어요. 제 과거 동료들이 잘 달랜 이유도 한몫 하긴 했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되진 않죠.”

    “......”

    “들어가도록 하세요. 당신의 복귀를 줄곧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있어요.”

    그 말에 유세현이 간이식 막사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세, 세현 선배!”

    “오, 오빠!”

    “세현씨!”

    김주희와 유혜인, 루시아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유세현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한걸음에 달려와 안겼다.

    유세현은 밝은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선배~ 제가 선배랑 떨어지고 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그러니 좀 더 꼭 안아...”

    “김주희! 세현씨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좀 떨어...”

    “오빠! 오빠! 벨제뷔트 발라버렸다는데 그거 사실이야?”

    왁자지껄 막사내부가 울린다.

    유세현은 멋쩍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날 그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다.

    * * *

    “그래, 드레보스와 비야크의 사체는 찾았느냐?”

    “그게... 유세현이 협곡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못 찾았다는 말이구나.”

    키르쉬나의 보고에 이제는 레드의 로드가 된 세레나가 차분히 턱을 짚고는 고민에 빠졌다.

    세레나는 현재 이번 습격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은 키르쉬나가 심려를 줄어주기 위해 입 열어 말했다.

    “세레나님. 세레나님께서, 아니 로드께서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는 대충 알겠습니다만... 타르케니아가 유세현이 비야크와 드레보스를 공격하는 것을 똑똑히 봤다고 했었습니다. 게다가 놈은 비야크, 드레보스와 악연이 있지 않습니까? 놈이 드레보스의 계책을 아는 것도 아니고 성격상 절대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습니다.”

    “...흠... 일단 알았다. 나가 보거라.”

    “예.”

    세레나의 명을 받은 키르쉬나가 바깥으로 퇴장했다.

    세레나는 고요해진 공간 속에서 재차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키르쉬나의 논리에는 딱히 틀린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몇 번이고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해 왔었다.’

    이것이 현재 그녀가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세레나는 결국 마지막 유적지로의 이동이 시작될 때까지도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 * *

    거대한 웜홀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

    마지막 유적지.

    [파이브]

    그곳은 말 그대로 내부의 세계가 총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다섯 개의 세계는 특성이 제각기 다 다르지.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길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갈 거야.”

    “내부? 뭐 더 깊은 장소가 있나요 선배? 절멸의 탑에 신의 회랑이 있었던 것처럼?”

    “조금 경우가 다르지만 거의 맞아.”

    파이브는 각 세계 별로 외층, 중층, 심층으로 구역이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는 세계였다.

    외층을 통과하여 중층으로 가고 중층에서 또 더 깊이 들어가 심층으로 향하는 형식인 것.

    “그리고 그 심층부 최하부에 그게 있다.”

    “...신물 파편 조각...”

    “그래 맞아.”

    대략적인 설명을 마친 이강호가 더 궁금한 게 있냐는 듯 주위를 훑어봤다.

    그러자 김주희가 살며시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런데 선배, 방금 전에 아는 길을 통해서 내부로 진입할 거라고 하셨는데, 그럼 다섯 가지 세계 전부를 알고 계신 건 아닌가 보네요?”

    “그래 맞아. 나는 세 개밖에 몰라. 나머지 두 개는 세계가 닫혀버리는 바람에 정보를 얻을 수 없었거든.”

    “네? 닫혀요? 그게 무슨...”

    “우리가 파이브라고 부르는 그 세계는 진입한 대리자가 특정 루트로 심층부에 거의 다다르게 되면 진입한 대리자가 있던 세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랜덤으로 닫히게 설정되어 있어. 우리 때는 그 두 개가 닫혔던 거지.”

    “흐음, 그렇군요. 그럼 만약 우리가 가려던 세계가 닫혀 있으면 어쩌죠?”

    “...심층부 근처에 다다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회귀 전의 시간대로라면 대다수의 종족들은 중층은커녕 외층도 뚫지 못한 상태일 거다. 하지만...”

    지금은 회귀 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

    “그래서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플랜 B도 세워뒀지. 지금 배포된 책자 뒤쪽에 플랜 B가 있다.”

    “역시 선배님!”

    김주희가 엄치 척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강호는 더 이상의 질문이 없자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잠시 이벨린에게 갔다 올 테니 읽어보고 있어라.”

    “예~”

    그렇게 이강호가 나가자, 인원들은 배포된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유세현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책자를 폈다.

    ‘흠...’

    책자에는 유적지 [파이브]의 환경, 몬스터 등등 세계에 관한 것이 꽤나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제1세계, 눈이 끝없이 내리는 설원.

    주 등장 몬스터는 인간형의 설인.

    제2세계, 끝없이 내리쬐는 빛과 끝없이 삼키는 어둠이 서로를 끝임 없이 집어삼키고 있는 세계.

    주 등장 몬스터는 빛과 어둠의 입자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정하지 않는 몬스터.

    제3세계, 용암이 대지와 하늘을 불사르는 용암지대.

    주 등장 몬스터는 괴수형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악마.

    제4세계와 제5세계에 대한 정보는 당연한 말이지만 적혀있지 않았다.

    유세현은 파이브 세계의 룰이 담겨져 있는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다.

    ‘흠... 같은 층에서는 같은 층의 다른 세계로 이동이 가능한 건가.’

    이 파이브의 세계에서는 외층에서 다른 세계의 외층으로, 중층에선 다른 세계의 중층으로 같은 층이라면 세계의 이동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일단 세계가 닫힌다고 해서 고립될 걱정은 없겠군.’

    유세현은 드디어 플랜이 담겨져 있는 페이지 칸을 열었다.

    플랜 A는 제1세계, 설원을 통해서 심층부에 도달하는 방법이었다.

    ‘흠, 꽤나 자세하게 적혀있군.’

    책자에는 중층부에 도착하기까지의 방법이 꽤나 자세하게 적혀져 있었는데, 유세현은 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적도 쉽게 중층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

    동료들이 델바람 같은 종족에게 잡혀 기억을 읽히게 되면 어쩌려고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인지...

    ‘이제는 정보보다도 생존자들이 훨씬 소중하다 이건가...’

    정보를 적게 줄수록, 생존자들은 돌발 상황을 맞았을 때 대응하기가 어렵다.

    그곳이 아는 장소가 아니라 처음 가보는 장소라면 더더욱.

    이벨린은 이젠 정보보다도 사람의 생존에 더 치중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유적지에 대한 정보 습득이 끝나고.

    “출발해볼까.”

    이강호를 필두로 유적지를 향해 이동이 개시됐다.

    * * *

    휘이잉-

    스산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이동을 개시한 이후 얼마를 나아왔을까.

    설원 지역 외층부와 연결되어있는 게이트 앞에 마침내 다다른 순간이었다.

    “뭐냐... 왜...”

    어떤 것을 확인한 이강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럴 리가...”

    설원지대로 향하는 게이트가 닫혀있었다.

    디네의 세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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