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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럭 꿀럭, 붉으면서도 선명한 피가 잘려나간 단면으로부터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이번 공격은 퀴르벨의 화염으로도 지혈이 되지 않았다.
원래라면 약간이라도 붙어야 정상이건만... 잘려나간 두 육신은 마치 한 장소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접촉을 거부하고 있었다.
“크, 큭... 이게 무슨... 세, 세레나 대체 내 몸에 어떤 짓을... 크헉!”
퀴르벨은 약간의 시간이라도 끌어보려는 심산으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세레나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툭-
쿵-
세레나가 툭 퀴르벨의 발을 치자 중심을 잃은 퀴르벨의 육신이 그대로 지면에 고꾸라졌다.
세레나는 그런 그의 육신을 지그시 짓밟은 뒤, 그대로 검을 휘둘러 퀴르벨의 허리춤 완전히 끊어냈다.
서걱-
“크아아아악!”
하반신을 완전히 잃은 퀴르벨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악이 받힌 표정으로 세레나를 노려봤다.
세레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버님, 아버님은 지금까지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레드가 다른 드래곤보다도 높은 영향력을 지니게 된 건 전부 아버님 덕분입니다.”
“세레나... 네 이년...!”
“만약 아버님께서 제 바람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맹약을 하셨더라면 저는 아버님을 끝까지 밀어드렸을 겁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추후 감정을 얻은 뒤 아버님과 마주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할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너... 너...!”
“하지만 아버님, 당신은 처음도 지금도 항상 같은 것을 택하시는군요.”
“...뭐? 지금 뭐라는 것이냐... 처음도? 지금도?”
“아버님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기록을 읽은 것으로 아는 것일 뿐 기억 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레나가 퀴르벨을 내려다보며 툭 말했다.
여전히 아무런 어조도, 감정도 들어있지 않는 말투였다.
“크, 크윽... 세, 세레나... 내가 죽은들 네가 위대한 레드의 일인자가 될 수 있을 성싶으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의 상처 수복을 도와라...”
“힘 때문에 그렇게 말하시는 겁니까?”
“커.. 컥.. 그렇다... 네가 선보인 그 검술은 정말 대단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 위대한 레드의 일족은 그걸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빨리 나를 도와...”
“그런 거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님. 미리 조치를 취해놨으니까요.”
살포시 쪼그려 앉은 세레나가 무엇인가 쥐고 있는 손을 퀴르벨을 향해 뻗었다.
“아버님. 아버님도 아시듯이 전 고유특성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퀴르벨은 본능적으로 그것의 아이템 정보를 읽었다.
아이템명: 해방된 탐의 파편.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고 알려진 신, 탐의 파편입니다.
조건을 만족하여 진정한 힘이 해방된 상태입니다.
진정한 힘이 해방되어 스킬 강탈 효과가 고유특성 강탈 효과로 강화되었습니다.
특수특성은 강탈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고유특성을 이미 지니고 있는 상태라면 고유특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사용능력: 스킬 혹은 고유특성의 강탈.
퀴르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아버님, 전 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너... 너... 이번 사건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좋은 아이템과 정보를...!!”
“흠, 이야기해드리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거의 다 간 상태로군요. 아버님. 아버님의 고유특성과 자리는 제가 잘 사용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레나가 탐의 파편을 쥐고 있던 손을 퀴르벨의 머리를 향해 내뻗었다.
“오, 오지 마라... 그딴 거 내 몸에 대지...”
퀴르벨은 상반신만 남은 상태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끄아아아아악”
외부로 이동되기까지 남은 시간 30초, 공허한 공간에서는 퀴르벨의 비명이 광활히 울려 퍼졌다.
* * *
쿠구구궁-
콰과광-
하늘로 끝없이 이어져 있던 절멸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바깥으로...”
“나와진 건가...”
구름 위에서 끝임 없이 쏟아지는 돌무더기.
“후우... 젠장...”
한 세계와도 같던 탑이 붕괴되는 현상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지만, 살아남은 대리자들은 그런 거엔 신경 쓸 겨를이 1도 없었다.
탑에 존재했던 세력들은 하나같이 막강하기 그지없는 세력.
혹시나 먼저 모인 대규모 세력에 둘러싸이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은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제기랄... 빨리 우리 진형을 찾아야 된다! 분명 근처 어딘가에 떨어졌을 거야!”
“움직이자!”
“야! 저거 마족 아니냐?”
“무시해! 저놈들도 지금 이쪽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을 테니!”
이제는 대리권을 박탈당한 인간을 포함하여 엘프, 블러드 소울, 드래곤 등등 대리자들은 각자 자신의 진형을 찾아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많은 종족들이 각 리더들의 아래 빠르게 수복되고, 진형을 찾아 복귀했지만...
“뭐... 뭐라고? 로... 로드께서... 퀴르벨님이... 돌아가셨다고?”
먼 곳에 떨어져 남들보다 늦게 레드의 진형으로 복귀한 드레보스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동료 아르케네스에게 되물었다.
아르케네스는 침울해하면서도 재차 답해주었다.
“...그렇게... 됐단다...”
“대체 어떻게! 누가! 누가 어떻게 최강이신 우리의 로드님을 쓰러트릴 수...”
“두 명의 마왕...”
“뭐, 뭐라고?”
“퀴르벨님은... 루시뷀트와 인간 측의 마왕 유세현이란 자의 협공에 당하셨다.”
드레보스는 그 말에 더욱더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 둘은 나중에 등장한 로드 퀴르벨보다도 세레나를 더 노골적으로 노리지 않았던...
거기까지 생각한 드레보스는 머리에 벼락이 치는 느낌을 체감했다.
설마... 설마...
“아르케네스... 퀴르벨님께서 당했다는 그 얘기... 누구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알고 있나?”
“...처음? 그건 왜...”
“알고 있다면 빨리 답해줘라!”
“어... 세레나님께 들었다고 포르투아가 말했...”
“뭐? 세레나님? 세레나님이 부대에 복귀하신 거냐?”
“그래. 지금 당시 퀴르벨님을 보좌했었던 레베로스를 포함한 고위 드래곤들이 세레나님께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진상을 듣고 있다. 조만간 보다 정확한 진상이 밝혀... 아, 그런데 드레보스. 그러고 보니 너도 현장에 있었지 않았나?”
“......”
드레보스는 아르케네스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너무도 큰 충격에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퀴르벨님이 당하고 세레나가 복귀했다.
만약 퀴르벨이 유세현과 루시뷀트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꿀꺽-
싸늘함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젠장할... 이렇게 되면...’
“어이 아르케네스. 혹시 비야크도 진형에 복귀했나?”
“비야크? 흠,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도 너도 그 전투에 있지 않았...”
“미안하다 아르케네스! 급한 일이 생각나서 그 건에 대해선 나중에 말해주도록 하고 먼저 가보겠다!”
“어?! 어...어이! 드레보스! 잠깐 기다려라! 너 어디로 가야 네 진형이 있는지는 알고 가는...”
아르케네스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질주하여 사라진 드레보스는 태세를 재정비하고 있는 각 부대를 빠르게 돌며 비야크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비야크님 말씀이십니까? 아까 보긴 봤습니다만 어디로 가셨는지는...”
“아, 보긴 봤다는 거로군 고맙다.”
파바밧-
질주하는 드레보스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세레나의 휘하에 있는 키르쉬나의 부대, 놈들이 태세를 갖추기 전 비야크를 찾아 이곳을 빨리 떠야만 되는데...
그가 그리 생각하며 막 제5부대 막사를 지났을 때였다.
“드레보스!”
드레보스는 그토록 찾고 다니던 비야크와 비로소 마주칠 수 있었다.
“비야크!”
“늦지 않아 다행이군! 드레보스 지금 큰일이 벌어...”
꼴을 보아하니 비야크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드레보스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알고 있다. 비야크! 바로 이곳에서 빠져나가도록 하자!”
“바로 말이냐? 우리는 단 둘 뿐이다. 아무리 급해도 조금 생각을...”
“걱정마라! 생각해둔 곳은 있으니!”
후웅-
드레보스가 날아오르자 비야크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진영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지금 어딜 가는 거냐. 드레보스. 비야크.”
둘 앞을 다른 두 레드드래곤이 막아섰다.
이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배치시켜둔 키르쉬나의 부대원들이었다.
“우리가 어딜 가든 네가 뭔 알 바지? 신경 꺼라. 파플레아.”
“그럴 순 없다. 우린 키르쉬나님께 너희 둘이 이곳을 벗어나려 할 시 막으라는 명을 받은 상태다.”
“...뭐라고? 지금 우리 행동을 강제로 제약하겠다는 것이냐? 우리 드래곤들의 룰을 잊은 거냐? 만약 원한다면 개인행동을 해도 상관없는 게...”
“아 물론, 다른 동족들은 그렇지. 하지만 너희는 아니야.”
파플레아와 케탈론이 키득키득 웃었다.
“......”
누가 봐도 조롱이 가득 담긴 웃음.
드레보스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이 주위에는...
'이놈들뿐이군.’
아직 제대로 정비가 안됐는지 이 근방에는 파플레아와 케탈론 뿐이었다.
드레보스는 곧바로 비야크에게 신호를 보냈다.
파앗-
후웅-
둘은 순식간에 가속하여 파플레아와 케탈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
“이놈들이!”
속도를 본 파플레아와 케탈론의 입에서 짧은 경악이 터져 나왔다.
무공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이토록 빠르다니?
쉬익-
퍼버벙!
콰광-
“큭!”
드레보스는 한때 퀘루안 부대의 상위 멤버.
키르쉬나의 부대로 이동하여 파플레아와 같은 직급이 되었을지언정 둘의 순수 전투력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큭! 이 자식... 일전 대련을 할 때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네놈... 설마! 그땐 봐준 거...”
“그래야 눈에 덜 띄니까. 이번엔 봐줄 생각 따윈 없다.”
쉬익-
쾅!
힘껏 내지른 드레보스의 주먹이 파플레아의 복부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채재재쟁-
수많은 방어마법이 박살 나며 뒤로 몸이 밀린다.
파플레아는 다급히 무공과 마법을 운용해 자세를 다잡아 보려 했지만 이미 눈앞에는 드레보스가 있었다.
퍼억-
“크헉!”
파플레아의 복부에 일격이 재차 강타한다.
드레보스는 드래곤끼리의 전투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 장소를 연속해서 공격하면 방어마법을 다시 걸기 전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이 자식이... 죽여버리...”
“파플레아. 내가 팀일 때 봐왔던 넌 동료를 아끼는 무척 성품 있는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세레나를 따르는 거냐. 그가 퀘루안님과 우리의 로드이신 퀴르벨님을 암살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거냐?”
“크으... 너 따윈... 백날이 지나도 날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한 번 말을...”
“너 같은 엘리트들은 아무리 말해봤자 이해할 수 없단 말이다!!”
콰앙!
파플레아의 전신에서 순간 마력이 격렬하게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이전보다도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파플레아.
마치 한이 맺힌 귀신처럼 그녀가 외쳤다.
“넌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전투력이 평균치보다 낮은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었는지!”
“파플레아 그게 무슨...”
“난 우리 레드가 밉다! 힘으로만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우리 로드가 밉다!”
“......”
“다른 건 오직 세레나님 뿐이었다! 오직 세레나님만이... 나를... 나를...”
화륵-
파플레아의 건틀릿에 불꽃이 솟구쳤다.
세레나가 준 무공과 마법을 합쳐서 만든 특수 절기.
[근원마퇴공(筋院?槌功) 화(火)]
[마퇴장(?槌掌)]
-쿠구구구
“죽어!”
“...!!”
콰아앙-
파플레아의 고함과 함께 발사된 마퇴장이 순간 드레보스를 휘감는가 싶었지만 그보다 빠르게 드레보스의 팔이 파플레아의 팔을 제압하여 경로를 꺾었다.
“무, 무슨!”
파플레아는 온 정신을 집중한 자신의 팔이 쉽사리 제압당한 것이 믿기지 않는지 격렬하게 눈을 깜빡거렸지만 곧 드레보스의 손을 보곤 이내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허...”
드레보스의 양팔은 용인화 되어있었다.
곧 목숨을 잃을 거라 생각했는지 파플레아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엘리트군 엘리트야... 드레보스... 넌 역시 나를 평생 이해하지 못...”
“단순 재능으로 거저 얻은 힘인 줄 아나? 죽을 만큼 노력하여 최근에서야 겨우 가능해진 것이다. 네 말에서 왜 네가 세레나를 따르는지는 이제 대충 알았다.”
“......”
“확실히 우리 레드는 다른 색보다도 힘을 훨씬 중요시하지. 판도라에 들어와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고. 하지만...”
드레보스가 파플레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게 동족을 배신할 이유까진 되지 않는다고 난 생각한다.”
정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