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59화 (54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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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

    콰과과광-

    아카식 레코드가 존재했던 공간.

    이제는 그저 무너지고 있을 뿐인 차원 속에서 격렬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던 대리자들의 눈앞으로 하나의 알림창이 나타났다.

    [절멸의 탑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뭐라고?”

    너무도 간결하면서도 모든 것의 끝을 알리는 그 문장.

    “젠장할! 그 문이 이 빌어먹을 탑의 클리어 장소로 향하는 문이었다고?”

    크라베스, 카시우스, 카그네프 제벨을 포함하여 눈앞에서 세레나를 놓쳤던 대리자들은 분노 어린 호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가.

    정말 한 끗, 한 끗 차이었는데.

    [절멸의 탑이 폐쇄됩니다.]

    “크으으...! 세레나아아-!”

    크라베스가 분통을 터트리는 반면, 카시우스가 차분히 말했다.

    “진정해라 크라베스. 이미 끝난 이야기다. 지금은 다음이 중요하다. 탑이 클리어 됐다는 뜻은 곧...”

    [1분 뒤 외부로 강제 이송됩니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

    “제기랄...”

    “크라베스, 어떻게 할 테냐. 난 밖으로 나가게 되면 전열을 다듬자마자 곧바로 마지막 유적지로 향할 것이다.”

    “마지막 유적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거냐?”

    “정확한 위치까지는 아니지만, 대충 어느 지역인지는 알고 있다. 이 전쟁에 참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너희 종족과 달리 우리는 줄곧 정보를 모으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을 내게 하는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텐데? 우리는 현재 엄청나게 뒤쳐진 상태다. 현재 내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도합 6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내부 신물 파편 중 마왕 루시뷀트, 드래곤, 인간이 각각 1개씩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탑에 들어오기 전 대규모 지반 붕괴를 보건대 아마 1개도 타 종족이 얻은 게 99% 분명하다.”

    “그럼 이제 얻을 수 있는 신물 파편은 2개 남은 건가?”

    크라베스의 물음에 카시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누가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를 뿐, 1개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전 티탄족과 천족이 파편이 잠들어있는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었다. 본래라면... 오르엠이 승리해서 파편을 얻었어야 정상이었겠지만...”

    오르엠은 현재 죽어 없어졌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파편의 이동은 없었던 걸로 파악됐다.

    “그럼 그 티탄인가 뭔가가 얻은 게 아닌 거냐?”

    “아니, 그렇게 판단하기에도 애매하다. 그 전투 이후로 티탄의 왕이었던 케르트란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으니까.”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고?”

    “그렇다, 마치...”

    “그거 그 전투에서 죽은 거 아니냐?”

    “...그럴 가능성이 사실 높긴 하다.”

    “그럼 누가 가지고 있는 거지? 놈들의 수하는 아닌 것 같은데...”

    카시우스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100%는 아닐지언정 그는 사실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천족의 왕, 오르엠이 보인 그 답지 않았던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행동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놈은... 인간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현재 파편 조각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 알려진 인물은 이강호, 그러나 지금 카시우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인물은 그가 아니었다.

    ‘유세현...’

    카시우스는 우선 생각을 접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 한들, 이걸 굳이 크라베스에게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쪼록 크라베스. 지금 해방된 신물 파편은 5개라고 보는 게 맞다.”

    “그렇겠지.”

    “나머지 한 개... 적어도 저들이 아닌 우리가 선점해야 되지 않겠나?”

    “당연히 그래야지.”

    “어떻게 할 테냐. 크라베스.”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 카시우스? 당장 영혼의 맹약을 진행...”

    “잠깐!”

    크라베스가 카시우스에게 손을 뻗은 순간 저편에서 달려온 한 인물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연합, 나도 껴주지 않겠나?”

    델바람의 수장, 카그네프 제벨이었다.

    “......”

    카시우스는 시선을 돌려 카그네프를 응시했다.

    카그네프는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필히 그 또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이 상황에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없다. 곧 강제로 바깥으로 이동될 거다. 어떡할 테냐. 수락할 테냐? 카시우스, 크라베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종료되어 외부로 강제 이동됩니다.]

    잠시 뒤 그들은 빛에 휩싸임과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크크크크, 크하하하!”

    신과의 알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퀴르벨의 앞에도 알림창이 나타났다.

    [절멸의 탑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퀴르벨은 그 알림창을 보며 더욱 기분 좋은 웃음을 토해냈다.

    그는 무려 광룡이라 불리며 같은 드래곤에게 칭송받는 존재였지만, 다른 이들처럼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때 무엇이 존재하는지, 보상은 있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것이 유일한 걱정이었었다.

    “크하하하하!”

    하지만 면담이 끝난 현재, 그는 그런 걱정은 씻은 듯 싹 해소된 상태였다.

    [네가 속해 있던 행성을 내 통제에서 독립시킴과 동시에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주도록 하겠다.]

    신에게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들을 자신의 발아래에 둘 수 있는 막대한 권능을! 자신의 세계를!

    “하하하! 하하하하하-!”

    이 어찌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을쏘냐.

    [절멸의 탑이 폐쇄됩니다.]

    [탑 내부 대리자의 외부 강제 이동이 전부 끝난 10분 뒤, 외부 안전장소로 강제 이송됩니다.]

    그는 클리어 한 대리자를 위한 이 안전한 격리 공간에서 배신을 생각하고 있는 세레나를 어떻게 더 이용하고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며 10분이 지나길 차분히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알림창이 뜬 지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스스슥-

    “많이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아버님.”

    격리되어 있던 차원의 일부가 찢겨나감과 동시에 저편에서 세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퀴르벨은 순간 당혹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두 팔을 벌려 기쁘게 맞이해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하하! 이거 누구야! 자랑스런 내 딸 세레나 아니더냐!”

    “그 모습을 보아하니 신에게서 맹약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신 모양이군요. 아버님.”

    “하하하! 그렇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약조를 받아냈는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버님?”

    세레나가 대뜸 뜬금없이 물었다.

    퀴르벨은 괜히 속을 내비치는 것 같아 께름칙하기 그지없었지만 세레나의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랑스러운 듯 답했다.

    “난 우리의 세계를 받아냈다. 세레나.”

    “우리의... 세계... 말인가요?”

    “그렇다. 내가 승리자가 되면 더 이상 그 세계에서 그 무엇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뜬 세레나가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건 왜 물은 것이냐 세레나야.”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위대한 로드인 아버님께서 어떤 대단한 맹약을 받았을지 단순히 궁금했었을 뿐입니다. 역시나 예상처럼 대단하시군요.”

    “흐음... 그렇느냐.”

    “예.”

    “큼, 그럼 그건 됐고. 너는 무슨 맹약을 받아냈느냐. 설마 못 받아냈다고 하진 않겠지? 세레나?”

    “물론 저도 받아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님 정도의 큰 스케일로 받아내진 못했습니다.”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며 퀴르벨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으음? 그렇느냐? 그래서 뭘 약속받았지?”

    “별거 없습니다. 감정에 대한 것입니다.”

    “감...정?”

    “예.”

    퀴르벨이 고개를 갸웃 꺾었다.

    그로서는 세레나의 답변은 정말 뜬금없는, 아리송한 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세레나. 자세히 말해...”

    “그보다도 아버님. 제가 첫 번째 클리어자의 권한으로 좋은 정보를 알아내 왔습니다.”

    세레나의 그 말에 퀴르벨의 눈빛이 돌변했다.

    안 그래도 의심스럽지 않게 슬금슬금 화제를 돌리며 떠볼 생각이었었는데.

    스스로 이에 대해 언급해 오다니?

    ‘역시 선수를 쳐놓길 잘했군.’

    키르쉬나가 먼저 전장에 도착하여 세레나에게 경고를 주는 데 성공했다면, 이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

    사전 차단에 의해 세레나는 자신의 배신이 들킨 걸 아직 모르는 게 분명했다.

    ‘필히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내는 이유는 나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겠지.’

    퀴르벨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호오, 정보를?”

    “예.”

    “그래, 무슨 무슨 정보를 알아내 왔느냐, 세레나.”

    “하나는 마지막 남은 신물 파편 조각을 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여태까지 아버님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 [힘].

    세레나의 그 발언에 퀴르벨의 눈이 거칠게 요동쳤다.

    퀴르벨은 대번에 세레나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세레나! 정녕 정말이냐?! 그 힘을 얻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게!”

    “예, 예. 물론입니다.”

    “어떻게!”

    “그, 그전에 아, 아버님 아픕니다만... 이걸 좀 먼저 놔주실 수는...”

    “아...”

    퀴르벨의 스테이터스는 드래곤중에서도 탑 1위.

    퀴르벨은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히 감정을 추스르는 반면 세레나의 어깨를 움켜잡았던 손의 힘을 풀었다.

    “괜찮느냐?”

    “아, 조금 저리지만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얘기해 보거라. 어떻게 해야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냐.”

    “우선은 마지막 파편이 잠들어있는 유적지로 이동해야 됩니다.”

    “...마지막 파편이 잠들어있는 이라고? 아직 파편 조각은 적어도 2개 이상 잠들어 있는 상태일 텐데?”

    “질문을 사용해서 물어봤는데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해방된 상태라고 합니다. 신이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퀴르벨이 그 말에 자리에 털썩 앉으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제 남은 신물 파편 조각이 단 한 개뿐이라니.

    ‘...그래서 마왕이나 여타 종족 놈들이 예상보다도 빠르게 이 탑에 기어 올라왔었던 건가.’

    “알았다. 그래서?”

    “유적지 어딘가에 있는 빛의 신전을 찾아야 합니다.”

    세레나가 마치 주변을 산책하듯 퀴르벨의 주위를 걸으며 답했다.

    “흠... 그곳에 있다는 것이냐. 그나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구나.”

    “예, 만약 다른 지역에 존재했었더라면 붕괴와 함께 사라졌을 겁니다.”

    “계속 말해보거라.”

    “그곳에 들어가 신전의 시험을 통과하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웃기지 말거라. 고작 그렇게 해서 힘을 얻을 수 있다니 말이 안...”

    “다만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한데, 그 자격을 얻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얻어야 되는 것이냐.”

    그렇게 묻는 퀴르벨의 심장은 두근두근 고동치고 있었다.

    세레나가 이어 말했다.

    “이 판도라 전역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하위 권능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잠들어있는 곳도 알아냈느냐?”

    “아뇨, 안타깝지만 거기까지는...”

    “그럼...”

    “하지만 너무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님. 다른 방법으로도 자격을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말이냐.”

    “권능이 담긴, 혹은 담겼었던 아이템을 얻으시면 됩니다.”

    “권능이... 담겼었던?”

    “예.”

    그 말을 드는 순간 퀴르벨의 머릿속으로 순간 어떤 한 아이템이 스쳐 지나갔다.

    오르엠이 직접 부여하여,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기 짝이 없었던, 반역자의 손에 들어가 역으로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되었었던 아이템...

    [롱기누스]

    ‘분명... 인간 쪽에 붙은 루시펠이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했었지...’

    빼앗아야 된다. 반드시.

    턱을 짚은 퀴르벨의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이곳을 나간 뒤 인간은 어디로 향할 것이고, 어디서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여 루시펠이 지니고 있을 롱기누스를 빼앗을지.

    그[힘], 오르엠의 힘은 판도라에 떨어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퀴르벨이 그토록 탐했었던 힘이었다.

    그 힘만... 그 힘만 손에 넣는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대적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지금까지의 벌레 놈들의 행동거지로 볼 때, 놈들은 높은 확률로 신물 파편이 하나 남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필히 밖으로 나가게 되면 마지막 신물 파편이 있는 그 유적지로 향하게 될 터.’

    그리고 그곳은 이미 드래곤이 한차례 사전조사를 끝냈었던 장소.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어떻게든 그곳으로 유인하여 몰아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빼앗을 확률이 올라간다. 진형으로 복귀하게 되면 벌레의 동선에 맞춰 보다 세세한 계획을...’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퀴르벨의 전신에서, 그 자신조차도 모르게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의 측근이라면 대개 알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뜻은...

    이곳저곳을 거닐다 어느샌가 퀴르벨의 뒤로 쓱 접근한 세레나가 작게 읊조렸다.

    “아버님... 역시 당신은 몇 번을 봐도 배울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군요.”

    스슥-

    그리고 칼집에서 순식간에 뽑히는 검.

    “...!!”

    눈을 번쩍 뜬 퀴르벨이 아차 하며 재빨리 대응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퀴르벨과 세레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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