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54화 (5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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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대체...’

    일전 이강호에게서 간결하게 들은 적 있던 바, 신의 회중시계가 숨겨져 있는 공간은 이런 환경의 공간이 아니었었다.

    ‘그렇다면...’

    신의 회중시계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떨어졌다는 뜻인데...

    ‘대체 뭐하는 곳이지?’

    길이 너무도 복잡해 알려 줄 수 없었을 뿐.

    그래도 최악은 피하라는 취지로 이강호는 유세현에게 특수 공간에 대해선 나름 설명을 해준 상태였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은...’

    전혀 듣지 못했다.

    이 공간이 지금까지 지나쳐온 그 어느 곳보다도 특이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이곳은...’

    이강호도 모르는 공간이라는 뜻.

    ‘흠... 일단은 수색해 봐야겠군.’

    저벅- 저벅-

    유세현이 발걸음을 조심히 옮김에 따라 거의 들리지 않는 그의 고요한 발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며 커다랗게 울린다.

    유세현은 발걸음 소리를 더욱 낮춰 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대체 이곳은...’

    끝이 보이지 않게 나열된 책장이 무지막지한 괴리감을 자아낸다.

    공중으로 날아도 책장, 아래로 내려가도 책장, 그 어디로 가도 책장과 꽂혀 있는 책들뿐이다.

    대체 이 공간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일까.

    그렇게 10분, 300km를 넘게 나아갔을 때.

    ‘...흠...’

    그는 이대론 끝이 안 난다는 것을 깨닫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유세현은 제일 가까이 존재하는 거대 책장으로 다가갔다.

    ‘지구에 있는 모든 책을 전부 나열해 놓는다고 해도 이렇게 길 게 이어질 리가 없다. 그러니 이건...’

    스스슥-

    유세현의 눈이 빠르게 책 표지에 적혀있는 제목을 읽어나간다.

    [No.11399-1 행성 1~1000년 (창세력 192018125년)]

    [No.11399-1 행성 1001~2000년 (창세력 192019125년)]

    [No.11399-1 행성 2001~3000년 (창세력 192020125년)]

    몇 개 읽지도 않았건만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기록?’

    그렇다.

    이곳에 적혀있는 것은 기록이었다.

    짧을 세월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죽을 때까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길고도 긴 우주의...

    유세현은 계속해서 제목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거대한 책장을 몇 개 넘어갔을 때.

    ‘그렇군. 알아냈다.’

    유세현은 이 공간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비로소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단서는 창세력.

    [No.3003-1 행성 1~1000년 (창세력 292118124년)]

    [No.3003-1 행성 1001~2000년 (창세력 292119124년)]

    책장은 창세력을 기준,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록은 모름지기 언젠가 끝이나 현재가 되기 마련.

    ‘그러니 창세력이 늘어나는 책장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끝에 도달하게 되리라.

    타다닥-

    진로를 잡은 유세현이 이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다.

    [No.16001 절대신의 차원신 창조 (창세력 기준 492018135년)]

    [No.1005 절대신의 부재 발생 (창세력 기준 1562019125년.)]

    [No.37091 차원신들의 절대신 논의 (창세력 기준 10392079126년.)]

    [No.99 차원신들의 협상 타결, 절대신을 뽑는 대리전쟁 판도라개시 (창세력 기준 20382096266년.)]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타닥- 타다닥-

    ‘...음?’

    공간에 두 개의 발소리가 겹쳐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쿠웅!

    콰과광-

    저 멀리, 폭음과 함께 우르르 쏟아지는 책과 함께 흑빛의 어둠이 유세현을 향해 거칠게 날아왔다.

    ‘이건...?’

    유세현은 즉각 반응하여 대응했다.

    츠즛-

    퍼엉!

    어둠과 어둠이 맞부딪치며 일대에 죽음이 휘몰아친다.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수많은 책장과 책.

    [운이 좋구나. 여기서 네놈을 만나게 되다니.]

    폭풍 속에서 등장한 루시뷀트가 광기 어린 붉은 안광을 번뜩 빛냈다.

    “...마왕. 루시뷀트.”

    [어딜 가짜 따위가 감히 나의 이름을 함부로...]

    스슥-

    마치 사라지듯,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 루시뷀트의 육신이 유세현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너무나도 빠른 고속 이동.

    그리고 강력한 암흑투기.

    보통의 인원이었다면 주저 앉아버렸을 정도의 공포와 위압이었지만, 유세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너가 어떻게 이곳에 있지?”

    [이놈이...]

    채앵-!

    여유롭게 대검을 쳐내는 유세현의 모습에 투구 속 루시뷀트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일전 유세현은 마를 다룰 수 있을지언정 그의 상대는 전혀 못되는 존재였다.

    권능으로서도 그리고 전투로서도.

    그런데...

    후웅!

    후우웅!

    노림수가 전부 빗나간다.

    흑뢰도 흑마법도... 마치 타이밍을 알고 있다는 듯.

    ‘뭐냐 대체... 이제 저놈의 안에 그 두 영혼은 없을 진데...’

    사경에서 깨어난 유세현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묘한 감각이 루시뷀트의 뇌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루시뷀트는 대검을 쥐고 있던 주먹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묘한 감각... 이 더러운 기분...

    인정하기 하기 싫을 뿐 루시뷀트는 사실 이 감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다룰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을 놈도 다룰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초조함.

    [그럴 리가 없다... 네놈이... 네놈이... 이 권능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쿠구구구-!

    루시뷀트의 육신에서 거친 어둠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힘은... 이 권능은 오직 위대한 나 루시뷀트만의 것!!]

    쿠구구구구구-!

    기운이 점차 강해진다.

    [한낱 인간 따위가 이해하고 다룬 다는 것은 말이...]

    “말이 많군. 루시뷀트.”

    스슥-

    [...?!]

    어느샌가 다가온 유세현이 검을 내리그었다.

    루시뷀트는 언제나처럼 그것을 대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방어하려 했다.

    허나.

    스스슥-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유세현의 검이 뱀처럼 미끄러지더니 쓱 우로 꺾이기 무섭게 루시뷀트의 허리춤을 향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완벽히 읽고 있어야 가능한 공격!

    [큭!]

    루시뷀트는 허리에 마력을 집중함과 동시에 다급히 옆으로 몸을 틀어 이를 회피하려 했지만.

    스슥-

    이미 검이 궤도에 들어와 완벽하게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

    촤좍-

    결국 검은 루시뷀트의 허리갑주를 부수고는 자그마한 생채기를 남기는데 성공했다.

    치욕감에 물든 루시뷀트의 이마엔 대번에 핏대가 뿔룩 돋아났다.

    [이놈이...!!]

    콰과과과과-

    공간이 흔들릴 정도의 마력이 일대에 휘몰아친다.

    그러자 눈을 번뜩 빛낸 유세현이 등을 휙 돌렸다.

    루시뷀트를 처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에 속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일...

    ‘루시뷀트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필히 길을 아는 누군가가 안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자보다도 이 끝에 먼저 다다라 이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된다.

    파밧-

    그렇게 유세현이 등을 보이고 뛰기 시작하자.

    ‘아차! 세레나!’

    잠시 눈이 돌아갔었던 루시뷀트 또한 이성을 되찾고는 황급히 유세현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또 뛰어갔을까.

    책장의 끝으로 허공에 흩날리는 수많은 종이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 구체가 시야에 비쳤다.

    새하얀 종이들이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차곡차곡 쌓여 책을 이룬다.

    그 구체 속에는 그들보다 먼저 온 존재가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유세현.”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칼보다도 마치 인형 같은 무표정이 더욱 돋보이는 여자.

    그녀는 마치 유세현이 이곳에 도착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를 대했다.

    유세현이 검을 겨누고 있건 말던 세레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유세현, 너는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알 필요가 있나?”

    스슥-

    순식간에 고속 이동한 유세현이 세레나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누구든 당황스러울 정도의 빠른 공격.

    슉-

    그러나 세레나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유세현의 공격을 회피했다.

    일정 거리에서 떨어진 장소에 세레나가 등장하자, 유세현은 세레나가 사용한 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채고는 미간을 좁혔다.

    ‘이건... 텔레포트.’

    텔레포트.

    좌표가 불안정한 아공간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

    ‘이곳에선 사용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강호에게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세레나가 또다시 그 특유의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단서를 찾아 이곳에 도달한 것일 만큼 대충 느끼고 있겠지만 이곳은 모든 기록이 모여 있는 곳, 신의 서재다. 이곳에는 태초 유일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모든 기록이 적혀있지. 물론 이강호가 Ex아이템 신의 회중시계를 사용하여 과거로 돌아간 것까지도.”

    [과거? 회중시계?]

    슈슉-

    막 도착한 루시뷀트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로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치 알겠다는 듯 루시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비정상적인 성장,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

    미래의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라면 전부 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마뱀, 뭔가 좀 이상하군. 그런 대단한 물건을 고작 인간 따위에게 빼앗겼다고? 너희도 아닌 내가?]

    루시뷀트가 툭 던진 그 말에 유세현의 눈이 순간적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사실 이건 유세현도 지금껏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인간 진형은 지금도 불리한 입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목숨을 걸었을지언정 지금보다도 훨씬 약했을 인간진형이 Ex아이템을 손에 넣다니?

    “유세현, 넌 정말 운이 좋다.”

    “뭐라고?”

    “아니 이건 운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결과인가?”

    세레나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던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운명의 대리자가 회귀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결산이 시작됩니다.]

    “시작되었군.”

    세레나의 한 마디와 함께, 진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째깍- 째깍- 째깍-

    ‘윽... 이곳은...’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뜬 이강호는 주위 배경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시계와 톱니바퀴를 확인하기 무섭게 신의 회중시계를 사용한 장소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운명의 대리자가 회귀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결산이 시작됩니다.]

    치지직-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물밀듯이 쏟아져 밀려오는 기억.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누가 갈 건데. 에반? 아니면 이벨린?]

    과거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다시 말하지만, 할 거라면 확신이 있어야만 해. 만약 실패한다면... 지금보다도 되려 더 좋지 않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거니까.]

    이벨린, 에반을 포함하여 살아남았던 도합 312명의 인원들이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이벨린이 말했다.

    [후우... 나와 에반은 불가능해요. 만약 가게 된다면 이 패널티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될게 뻔한데 기억 없이는 걔를 살릴 수 없어요. 분명 되풀이되고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되겠죠.]

    [그럼 제넥은? 너 과거에 어마무시하게 강했던 동료 있었다고 했잖아. 니 무공 익히는데 큰 도움을 줬다던... 이름이 그... 뭐더라?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빙제?]

    [그 영감은 안 돼. 그 영감은 분명 강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분명 지금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또 중간에 죽게 될 거야.]

    [아, 젠장할...]

    [이젠 시간이 없어. 정해야 된다. 조금 더 지나게 되면 아무리 세레나가 도와준다고 할지언정 회중시계에 접근하기 힘들어질 거야.]

    [......]

    모두가 침묵했다.

    이강호는 이 모습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Ex아이템, 신의 회중시계의 패널티는 중요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전부였던 게 아니었던 것인가?

    기억 속의 제넥이 말했다.

    [아이템 패널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지랄 맞네. 죽었던 놈 하나를 인류를 대표할 영웅으로 선택하라니. 솔직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약해서 죽은 놈인데.]

    [후우...]

    [솔직히 에바야. 그놈을 제외하고는 회귀 후 전부 대리자 자격 박탈이라니. 걔 죽으면 정말 끝인 거잖아 그냥! 아, 그냥 때려치자! 기억이 있어도 걔를 보호하며 성장시킬까 말까인데 기억도 없이 어떻게 해? 그냥 싸우자! 지금처럼 연합해서!]

    지이잉-

    이강호의 눈이 거칠게 요동쳤다.

    Ex아이템, 신의 회중시계로 봉인 되었던 기억이 해방되며 비로소 떠오른 것이다.

    신의 회중시계의 진정한 패널티와 자신이 내뱉었던 말이.

    [아니, 현재로선 아무리 노력해봤자 희망은 없다. 내가 가겠다. 제넥.]

    [뭐? 이강호 너가?]

    [그래, 이제 와서 말하는 거다만 나에겐... 있다. 나를... 아니 나만 믿어주던 친구가.]

    [걔 뭐 좀 대단한 놈이었어? 고유특성이 뭔데?]

    [...고유특성 같은 건 없었다. 발현하기도 전에 죽었거든...]

    [뭐? 야, 이 미친놈아. 아무리 급해도 그런 허접한 놈을 인류의 대표로 뽑을...]

    [나 때문에.]

    [응?]

    [나 때문에 죽었다. 철이 없어서 나대던 나를 대신해서. 자신의 몸을 바쳐.]

    [...흠, 뭐 그런 거라면 너가 걔를 선택하려는 심정이 이해는 간다만 아무리 그래도 실력자를 뽑는...]

    [단순히 정 때문에 걔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이유가 있다. 나는 돌아간다면 기억이 없어졌다 한들 이전과는 다르게 냉철하게 행동할 거다. 그러니...]

    [이강호, 너로 인해 죽는 경우의 수는 없겠군.]

    [그래, 맞다. 그리고 내 생각만은 철없고 불합리해도 들어주었던 걔 성격으로 볼 때 내가 어딘가를 간다면 나를 따라올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 그때 만약 기억을 잃은 나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초반부에선 일단 죽지 않겠군. 너를 따라 아이템이나 스킬들을 독식하게 될 테니...]

    [일단 뭐 그런 거다.]

    [...흠...]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나온 결정은...

    슈슈슉-

    [회귀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조건에 따라 특별 패널티가 진행됩니다.]

    [Ex아이템, 신의 회중시계의 효과에 의해 선택자, 유세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간 대리자들의 대리권이 박탈됩니다.]

    [종족의 운명을 결정했던 312명의 기억이 복구 됩니다.]

    신의 회중시계와 진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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