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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51화 (53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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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스-

    레드드래곤들의 갑작스런 집합.

    “루시아씨 저건...”

    “역시나 제 예상이 맞은 것 같네요.”

    키르쉬나의 세력을 관찰하고 있던 루시아와 이벨린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 눈을 맞췄다.

    “그렇다면 계획했던 대로... 진행해야겠군요.”

    “예, 그래야죠.”

    “......”

    계획대로.

    그 말마따나 그들은 이미 이 상황을 고려하여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지만 계획을 떠올리는 이벨린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유는.

    ‘피해가 날 수밖에 없다.’

    99.99%의 확률로 또 동료를 잃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다.’

    현재 인간 진형은 여태까지 길잡이 역할을 했던 이강호란 존재를 잃어버린 상태였으니까.

    ‘어떻게든 우리만의 힘으로 중추까지 도달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벨린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수색을 잘 이어가면 이강호없이도 중추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너무도 광활하고 너무도 불규칙적이야.’

    이런 공간에선 자칫 잘못할 시 길을 찾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노릇이란 걸 일전 거대 미로를 한번 헤매봤던 이벨린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운이 좋아 1년이 안되어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오를 다진 이벨린이 눈을 번쩍 떴다.

    그렇다 이건 좋건 싫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일이었다.

    “이만 보고 돌아 가도록하죠 루시아씨. 아무리 대비해놨다 하더라도 우리도 준비할 시간이 약간은 필요하니.”

    “그러도록 해요.”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끝으로 둘은 숨기고 있던 몸을 본대를 향해 날렸다.

    * * *

    “뭐? 퀴르벨이 병력을 집결시켜?”

    “예, 행방불명된 세레나님의 복수를 하겠다고......”

    “호오... 복수? 퀴르벨이? 이제 와서?”

    수하의 말에 알겔라우스가 일순간 고개를 갸웃 꺾으며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예, 일단은 그런 명목 하에 공격을 가한...”

    “후후, 뻔해도 너무 뻔해. 퀴르벨...”

    “......”

    “알레크스.”

    “예, 로드시어.”

    “우리도 그 전투에 난입할 것이다. 준비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너무도 뜬금없는 알겔라우스의 지시.

    허나 그럼에도 알레크스는 토 한번 달지 않은 채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그 또한 지혜의 종족이라 불리는 골드.

    알겔라우스의 생각을 단번에 읽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뭐가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것은 비단 골드의 수장, 알겔라우스뿐만이 아니었다.

    “뭐? 퀴르벨이?”

    실버의 실라우벨.

    블랙의 드라프나우어.

    그린의 엘라뉘스까지.

    “뭐가 있구나... 에르비야크 쉬고 있던 후방 병력들을 집결시키거라. 우리도 그곳으로 갈 것이니.”

    “예? 후방 병력들을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진형 배치에 문제가 생깁니다만... 수색 병력들을 불러들이는 게...”

    “그럴 시간은 없을 게다. 퀴르벨도 멍청이는 아니니... 필히 우리에게 모일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공격을 가하겠지.”

    “...아!”

    “에르비야크.”

    “당장 소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급히 날아가는 에르비야크.

    엘라뉘스는 시선을 돌려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공간 저편을 응시했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마족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는 뜻은 갑자기 연락이 끊긴 아르펜도 이곳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인데.

    ‘잘 살아는 있는 건지...’

    오늘따라 유난히 아르펜의 장난스런 말투가 떠오르던 엘라뉘스였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접고는 병력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뭔가가 일어난다.

    틀림없이.

    * * *

    “옵니다!”

    “그럼 계획대로!”

    “살아남아서 보자고!”

    까마득히 공간을 가득 메운 레드드래곤들의 총공격.

    [죽어라 인간!]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브레스와 무수히 많은 마법이 사람들에게 쏟아졌다.

    “아린님!”

    “알고 있네!”

    슈욱-

    콰과과광!

    “크윽!”

    드래곤들은 그 이름처럼 무척이나 막강했다.

    허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힘겹게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성장한 대리자.

    그들은 과거와 같이 단지 상대하는 게 드래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겁먹고 도망치거나 얼어붙지 않았다.

    [무심파공(務沁波功) 10결 파신창(波伸槍)]

    슈슈슉!

    서걱-

    사람들이 시전하는 절기가 드래곤들이 자신하는 배리어와 가죽을 꿰뚫는다.

    [크으... 인간놈들... 대체 어떻게 이런 힘을...]

    대규모 마법이 쇄도한 순간 손을 내뻗은 아린이 눈을 번뜩 빛냈다.

    ‘인버스 매직’

    스스슥-

    일정 이하 수준의 마법 술식을 파훼하여 무로 되돌리는 마법.

    과거 인간들은 잘해봐야 3서클 마법 정도까지 없애는 수준이었지만.

    [...?!]

    [무슨? 고작 인간 따위가 어떻게 내 마법을...]

    방금 해제된 드래곤의 마법은 8서클 마법이었다.

    탑을 올라오며 깨달음을 얻은 아린, 이제는 9서클 마스터가 된 그가 수식을 읽고 없애버린 것!

    “마법 부대!”

    “이퀄라이저 웨이브!!”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그가 창설한 마법 부대도 8서클에서 9서클 하위 마법까지는 사용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스킬로 얻은 건가? 우리의 마법을?]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큭!]

    [귀찮은 인간 놈들...]

    막은 길목을 내어주지 않기 위하여, 아니 위하는 척 격렬하게 전투를 이어가는 인간 진형.

    “그거 하나 빨리 못 뚫다니... 무능한...”

    생각보다도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전투에 퀴르벨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인간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강했다.

    “어쩔 수 없군...”

    이윽고 지켜보던 퀴르벨이 발걸음을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로드시어! 직접 나서실 필요까지는!”

    “맞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길목이 뚫릴...”

    “시끄럽다!”

    분노 섞인 고함과 함께 거친 화염폭풍이 퀴르벨의 전신에서 퍼져 나왔다.

    “큭!”

    어찌나 열기가 강한지, 화염저항력이 강한 그들조차도 다급히 배리어를 쳐야 될 정도였다.

    “흥, 한심하긴.”

    이윽고 한숨 섞인 콧바람을 씩 내뱉은 퀴르벨이 자리에서 도약하여 순식간에 전투의 격전지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퀴르벨.

    “...?!”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그가 나타난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이놈은... 위험하...’

    “어딜 벌레가...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화르륵-

    쿠우우우웅!

    “크아아악-!”

    퀴르벨이 손을 위로 치켜들자, 순식간의 그의 주변 일대로 화염의 소용돌이가 솟아오르며 사람들을 먹어치웠다.

    치이익-

    “컥...”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제대로 적중당한 세 명의 사람은 그대로 절명하여 목숨을 잃었다.

    “무... 무슨...”

    “로, 로드다! 레드드래곤 로드가 틀림없다! 모두 조심...”

    “어딜 감히.”

    “컥!”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진 퀴르벨이 인원들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사람의 목덜미를 덥석 낚아챘다.

    “인간 따위가 함부로 나의 직위를 입에 담느냐.”

    치이이익-

    “크아아악!”

    퀴르벨의 손이 새빨갛게 달궈지며 이내 화염이 치솟자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인간 대리자.

    붙잡힌 대리자는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발버둥을 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크크크, 벌레가 어디서... 얌전히 재가 되어라.”

    “아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툭-

    이내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 대리자.

    “이... 이 자식이!”

    “어이! 그만둬! 저놈은 못 이긴...”

    “크크큭! 그래, 전부 덤벼라! 전부!”

    쿠구구구-

    퀴르벨의 전신에서 다시 한 번 화염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전부 내가 죽여줄 터이니!”

    콰과과과-!

    화염폭풍은 순식간에 커져 스킬들을 밀어내며 일대를 단번에 장악했다.

    치지직-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열기가 인간 대리자들을 휘감는다.

    “아, 아쿠아 밤!”

    어떤 이는 물 계열 스킬을, 또 어떤 이는 냉기 계열 스킬을 써 중화시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 화염지대 속에서.

    “하하하하! 아까 그 잘난 패기는 어디로 간 것이냐! 인간!”

    퀴르벨은 인간을 휩쓸고 다녔다.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벨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무슨...’

    아무리 로드라곤 하나 이 정도까지 일 줄은 그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이게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흉폭하다는 레드드래곤 로드의 힘!

    “크크크, 네 년이구나? 이곳의 총 책임자가?”

    별안간 휙 돌아간 퀴르벨의 시선이 일순간 10km나 떨어져있던 이벨린을 향했다.

    이벨린의 눈동자는 화등잔만 하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나를? 단번에?’

    “없애주지.”

    순식간에 다섯을 제거한 퀴르벨이 이번에는 이벨린을 없애러 가기 위해 몸을 튼 순간이었다.

    스스스슥-

    레드드래곤이 공격을 가해왔던 방향에서 다른 색상의 드래곤들이 대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난데없이 전장으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레드의 로드시어, 위대한 골드의 로드, 알겔라우스님의 명을 받아 레드를 돕기 위해 전장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블랙도 마찬가지로...”

    골드, 블랙, 그린, 실버.

    퀴르벨은 그들을 보기 무섭게 짜증난다는 듯 혀를 찼다.

    ‘이 자식들... 눈치만 빨라서는...’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법.

    “키르쉬나!”

    “예! 로드시어!”

    “빨리 길을 찾아라! 조금만 더 지나면 놈들이 도착할 것이다!”

    “예? 놈들이라니...”

    “이런 멍청한! 알겔과 나머지 놈들 말이다! 그러니 빨리!”

    “예, 예! 알겠습니다!”

    키르쉬나의 눈이 퀴르벨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추로 향했을 세레나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다른 로드들이 합류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될 의무가 있었다.

    “찾았습니다!”

    다행히도 루시아와 붙을 때 이미 한 번 길을 확인한 적 있었던 그녀는 20초도 채 지나지 않아 길을 발견해냈다.

    “이쪽입니다!”

    “좋아!”

    퀴르벨이 툭 손가락을 튕기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수하들이 순식간에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키르쉬나는 집결한 인원들을 확인하기 무섭게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런... 레베로스에 비야크, 거기에...’

    대다수가 레드의 강자.

    이들을 전부 데리고 갔다간 세레나에게 안 좋게 작용할 수 있는 탓이었다.

    허나.

    “그럼, 가보도록 할까. 키르쉬나?”

    “...예.”

    현재의 그녀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죠. 아린님!”

    “알겠네. 가세나.”

    인간 측에서도 이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최 레드가 길을 뚫기 위해 몰려듦에 따라 그들의 노림수는 길목을 어떻게 서든 막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척만 하며 피해를 최소로 줄이고는 혼잡한 틈을 타 뒤따라 붙는 것이었다.

    그렇게 루시아, 아린, 무림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추격대가 퀴르벨을 뒤쫓기 시작했다.

    “흐음. 저놈들...”

    허나 그것을 퀴르벨이 당연히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당장 없애버리고 싶다만...’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지체했다간 알겔과 나머지 놈들이 온다.’

    퀴르벨은 인간들보다도 알겔이나 다른 로드들이 따라붙는 게 더 귀찮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자, 격렬해보이던 전쟁은 곧 흐지부지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제길! 늦었군.”

    다른 로드들과 함께 한 발 뒤늦게 도착한 알겔라우스가 혀를 쳤다.

    다른 로드들의 눈치를 보느라 약간 늦은 것일 뿐인데 그새 이동하다니.

    “퀴르벨 자식...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는...”

    시르벨린이 투덜거렸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모두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야, 알겔. 추적 불가능해? 너 지혜의 골드잖아. 어떻게 좀 해봐.”

    “이건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마법이다. 억지 부리지마.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막 본 마법을 바로 해석할 순 없어.”

    “이런... 쳇! 그냥 바로 진입할 걸! 괜히 너희들 눈치 보다가...”

    “그러게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달려왔나. 알렸다면 서로 눈치 볼 이유는...”

    “야 알겔! 너도 나한테 알리지 않고 그냥 온 거잖아! 너도 눈치 보다가 늦은 주제에. 지금 누가 어디서 어쩌고 저...”

    “그만, 거기까지 하도록 하지. 지금 우리끼리 이래봐야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지 않나.”

    “...쳇!”

    결국 드라프나우어가 나서고 나서야 두 드래곤의 팽팽한 신경전은 막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드라프나우어가 물었다.

    “엘라뉘스, 어떤가 자네도 해석 못할 것 같나?”

    “...흠...”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알겔라우스도 못하는 데 어떻게 가능...”

    “가능하다.”

    “하겠... 뭐?”

    엘라뉘스의 말에 시르벨린과 알겔라우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떻게?”

    “이 마나의 배열, 지금 처음 본 게 아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때 연구를 좀 했지.”

    “뭐? 대체 어디서?”

    “자세한건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고. 일단은 해석하여 뒤쫓을까 하는데... 지금 누군가가 일부러 마법을 없애려 개입하는 바람에 흔적이 무너지고 있어서 빨리해야 된다.”

    “퀴르벨 짓이 뻔하군. 할 수 있으면 빨리하도록 해라. 엘라뉘스.”

    “그러지.”

    그렇게 시작된 해독.

    “해독이 끝났다.”

    “어떤 식이냐 원리를 알...”

    “그것보다도 쫓으려면 바로 움직여야 된다. 이 흔적은 완벽하게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중간 중간 존재할 다른 흔적을 해석해내야 된다. 만약 그걸 건드린다면...”

    “자칫 잘못했다간 미아가 돼버리겠군. 그럼 바로 출발해야 되나?”

    “10초 주겠다. 함께 할 인원들을 알아서 데려와라.”

    “큭! 10초? 젠장, 알았다!”

    스슥-

    순식간에 해산한 뒤 다시 모인 로드들.

    “그럼 가자고.”

    그들은 엘라뉘스의 뒤를 따라 숨 고를 새도 없이 곧장 이동을 개시했다.

    신의 회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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