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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36화 (5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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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시뷀트는 그런 이태광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평소, 여유가 넘치던 때였다면 자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그 기백에 나름의 표현을 했을 터지만, 현재 그는 그런 행위를 하는 것조차도 시간이 아까웠다.

    [벌레, 죽고 싶지 않다면 거기서 비켜라. 난 저놈에게 마저 들을 게 있다.]

    “거참,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쳐 듣는 놈이구만...! 방금 말했잖냐. 넌 내가 상대해... 준다고!”

    말을 끝내기 무섭게 순식간에 루시뷀트에게 접근한 이태광이 투핸드소드를 휘둘렀다.

    “...아닛?!”

    이 모습에 주위에 있던 일부 마족들의 입이 일순간 떡하니 벌어졌다.

    지금 이태광이 휘두른 일격은 결정이 없는 마족들은 감히 반응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엄청난 공격이었다.

    암흑투기의 영향을 받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흐음, 멍청한... 가만히 비켰더라면 살았을 것을...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하지만 정작 목숨을 위협받는 장본인은 무척이나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진즉 궤적을 읽은 것인지 루시뷀트는 몸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 이태광의 투핸드소드를 가볍게 회피했다.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반격.

    [없어져라. 벌레.]

    치지지직-

    콰과과광-!

    상공과 루베르크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된 흑뢰가 이태광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이태광은 재빨리 뒤로 물러남으로써 이를 아슬아슬하게 회피할 수 있었지만, 방어구에 스치는 것까진 차마 어찌할 수 없었다.

    스친 일부 방어구는 그대로 새까맣게 그을려 바스라져 내렸다.

    “휘유~! 위험하구만 위험해! 하하하! 역시 마왕인가!”

    재빨리 재를 툭툭 털어낸 이태광이 경쾌한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지, 지금 웃는 거야? 머, 머리가 돈 건가?”

    “미친놈이군.”

    마족들이 그의 대담함을 넘어선 행동에 시퍼렇게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껏 어떤 자도 마왕을 앞에 두고 저런 행동을 보인 인물이 없었거늘...

    [건방지구나.]

    그것이 마왕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루시뷀트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암흑투기가 이태광의 앞으로 집중된다.

    “크하하하! 이게 바로 그 대단한 암흑투기인가!”

    하지만 이태광은 육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중압감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래! 모름지기 마왕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자, 와봐라!]

    [...버러지가...]

    파밧-!

    어둠의 마력을 전신에서 발산한 루시뷀트가 이번에는 역으로 순식간에 이태광에게 접근했다.

    마왕은 그대로 높이 치켜 든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이태광을 향해 내리찍었는데, 이태광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투핸드소드 옆면을 이용해 검격을 흘림과 동시에 옆차리를 날렸다.

    슈우우욱-!

    마력을 가득 담은 맹렬한 빠르기의 킥이 바람을 가르며 명치를 노린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 공격이 마왕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지이잉-

    마왕의 복부로부터 순식간에 발생 된 검은 구체가 이태광의 일격을 막았다.

    더나아가 검은 구체는 되레 이태광에게 역으로 충격을 주며 그를 날려 보냈다.

    휘이익-

    콰광!

    “읏!”

    자세가 무너진 이태광은 결국 지면을 데굴데굴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낙법을 사용한 이태광이 재빨리 검을 쥐고 자세를 잡자, 마왕이 놀랍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호오, 벌레치곤 꽤 하는구나.]

    마왕 나름의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분산된 암흑투기가 아닌, 집중된 암흑투기를 제대로 받고도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자들은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다.

    “하하하하, 칭찬 고맙군!”

    이태광이 어느 때나 그렇듯 호쾌한 웃음을 내보였지만, 그의 속마음은 겉과는 사뭇 다른 상태였다.

    ‘엄청난 속도다. 망할 구체... 발을 보호하고 있던 보호구가 단번에 박살났어. 마력을 담지 않았다면 발목이 날아갔을 거야.’

    이태광은 지금껏 시간이 나는 종종 유세현에게 부탁해 간간히 수련을 해왔었다.

    유세현이 진심으로 암흑투기를 사용하면 버티는 식으로.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그리고 그러한 피나는 노력 덕택에, 그의 호쾌한 성격과 더해져 이태광은 다른 이들보다 암흑투기에 대한 면역력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현재 진심을 다하는 마왕의 암흑투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아니, 진심을 다하고 있긴 한 것일까?

    ‘후우... 어차피 더 생각해 봤자다. 현재에 집중한다.’

    이태광은 굳세게 의지를 다졌다.

    그러자 그의 몸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기운이 정형화 되어 보이기 시작하며 더욱 새빨간 광휘가 그를 휘감기 시작했다.

    특성명, 광전사.

    그것은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끝없이 강해지는 그의 고유특성이 제2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리는 현상이었다.

    “간다!”

    소중한 동생이었던 김길태의 희생을 딛고 체득한 능력.

    보법을 운용해 순식간에 접근한 이태광이 마왕을 향해 일참을 내질렀다.

    마왕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빨라진 이태광의 몸놀림에 일순간 감탄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무도 쉽게 이태광의 공격을 방어했다.

    챙!

    채재재재쟁-!

    무식하게 큰 대검과 투핸드소드의 대결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공방이 순식간에 오간다.

    이태광은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공격은 그에게 있어 최선의 방어!

    한계에 몰아붙일수록 그의 고유특성은 더더욱 빛을 발해 강해질 테고, 적은 당황에 물들 터였다.

    그렇다. 본래는 그래야 정상이었다.

    허나.

    챙!

    이태광의 내려긋기를 가드한 마왕이 작게 읊조렸다.

    [이게 네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인가? 벌레?]

    “...!!”

    쿠구구구!

    순간적으로 암흑투기의 밀도를 높임과 동시에 공격을 흘려 역으로 검을 치켜든 마왕이 그대로 대검을 내려 그었다.

    이태광은 회피하려다가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히 투핸드소드를 들어 올렸다.

    슈슈슉-

    콰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자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진동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크으...”

    끝없이 부는 바람에 의해 흙먼지가 걷힌다.

    모습이 드러난 이태광은 한쪽 무릎을 털썩 꿇고 있었다.

    운 좋게 제대로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력을 전부 견뎌내지 못한 것이었다.

    “과연...”

    당최 이태광과 루시뷀트의 스탯의 격차는 기본적으로 컸다.

    하지만 이태광은 전투를 하면 할수록 점점점 강해진다.

    바로 지금 순간에도 말이다.

    쿠구구구-!

    “강하구나, 마왕! 하지만...!!”

    이태광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류가 더욱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태광이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서며 대검을 밀쳐내기 시작했다.

    [호오...]

    이것이 깨나 놀라운지 마왕의 입에서는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한손으로 내려찍었다지만, 이 상태에선 이것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냐.]

    꾸구구국-

    순식간에 파지법을 한손에서 양손으로 바꾼 루시뷀트가 더욱 강한 힘을 내질렀다.

    “크윽!”

    간신히 일어나려던 이태광의 무릎은 다시 순식간에 굽혀졌다.

    이태광의 얼굴에는 경악이 맺혔다.

    ‘이런,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인가?’

    이 순간 이태광은 상대와의 힘의 차이를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왕은 고유특성의 2차 상태까지 발동된 자신보다도 훨씬 높은 스탯을 지니고 있었으며, 심지어 검술 조예조차 자신보다 깊었다.

    지금껏 누구보다 앞장서 적을 상대해가며 어마무시한 코인을 흡수해온 그였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격이 달랐다.

    현재로선 대항이... 불가능하다.

    [웃는 게 어느새 멈췄군. 벌레. 나와의 격차를 드디어 깨달은 것이냐.]

    “......”

    [너에게도 기회를 주겠다. 세현이란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말한다면 살려주도록 하지.]

    “크,큭! 세현 동생 말이냐? 여기에는...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쿠웅!

    마왕의 거친 기합과 함께 주위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이태광의 육체가 하체를 넘어서 전신이 지면에 거칠게 박혀 들어갔다.

    [네놈들의 수뇌부가 입단속을 시킨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어서 말해라. 놈은 어디 있나. 마지막이다. 말하지 않겠다면 이대로 목숨을 거두겠다.]

    머리를 들이민 마왕이 이태광을 노려보며 안광을 번뜩 빛냈다.

    이태광에겐 실로 죽음의 눈빛이었다.

    이태광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세현 동생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도...’

    결국 놈은 타인에게서 정보를 알아낼 터지만, 이태광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의형제인 유세현의 정보를 팔 마음이 없었다.

    이 미쳐버린 세계에서 자신을 자신으로 있게 해주는 것, 유대감은 그에게 있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마왕... 난, 동생... 아니 동료의 정보는 팔지 않는다.”

    [어리석구나. 벌레. 너 말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놈은 이곳에 차고 넘치거늘...]

    “후후, 그렇다 해도...”

    [그럼 죽어라.]

    치지지직-

    마왕의 대검, 루베르크에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태광을 나름의 강자라 인정하고 한 방에 끝내려는 심산이었다.

    “하아아압!”

    이에 이태광도 힘겹게 의식을 집중해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냥 당하는 것은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이 자세에서 마왕에게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냥은 못 가지! 모든 힘을 폭발시켜 어떻게든 약간의 충격이라도 입힌다!’

    마왕과 이태광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스킬을 발산하려던 찰나였다.

    슈육-

    쿵!

    [군주시어, 목표물을 찾았습니다.]

    [뭐라?]

    후웅!

    저편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레오릭의 말에 루시뷀트가 순식간에 도약하여 이태광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이태광의 두 눈은 어리둥절하여 동그랗게 변했다.

    ‘뭐, 뭐지?’

    목숨을 거둘 찬스를 그냥 이렇게 허무하게 버려버리다니?

    [어디냐! 레오릭!]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확실한 정보인 것이냐?]

    [예, 확실한 정보입니다.]

    [좋아. 당장 가도록 하겠다. 앞장서라.]

    [예. 그리 하겠습니다.]

    그렇게 예를 갖춰 답한 레오릭이 곧장 어딘가로 질주하기 시작하자 루시뷀트가 망설임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마치 더 이상 이태광 따윈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움직임이었다.

    이태광은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 감각을 애써 뒤로한 채 지면에 처박혀 있던 몸을 천천히 끄집어냈다.

    어찌 되었든 목숨은 부지했다.

    그는 곧장 루시뷀트가 사라진 장소를 응시했다.

    방향으로 보건대 놈이 향한 곳은 분명 의식장소가 틀림없었다.

    ‘이렇게 되면 세현 동생이 위험하다.’

    이태광은 곧장 뒤쫓을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수많은 마족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는 거지? 미친 벌레?”

    이태광은 곧장 놈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잡졸들은 꺼져라. 허무하게 죽기 싫으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몸은 방금 전 마왕을 상대했을 때보다도 훨씬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 * *

    ‘후... 이걸로 다 됐다!’

    시간에 맞춰 마지막 재료를 불길에 공양한 김주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작게 터져 나왔다.

    행여나 누가 와서 주술을 망치면 어쩌나 했는데... 앞에서 잘 대적해준 덕택에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젠 주술의 효력이 발동되는 시간인, 정확히 7분 30초 뒤에 특수한 문구를 비석에 새기기만 하면 신의회랑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터였다.

    ‘그때까지 계속 아무도 안 오면 좋으련만...’

    김주희는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지만, 아쉽게도 인생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스륵-

    인기척을 느낀 김주희가 유세현의 옆으로 숨기 무섭게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방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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