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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31화 (51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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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인간임을 확인하기 무섭게 찢어발기기 위해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루시뷀트와 천마왕의 어마무시한 전투에 이리저리 휘말린 직후.

    그림자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인간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기엔 현재 그들의 정신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레피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세현을 들쳐업기 무섭게 도주를 시작했다.

    이것이 당최 레피아가 줄곧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크... 당장 막아라-!!]

    “...!!”

    하지만 루시뷀트의 뜻을 파악한 레오릭의 사자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마족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곧 엄청난 마족의 수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레피아는 주위를 감싼 마족들을 훑으며 살포시 혀를 찼다.

    ‘저놈... 상황파악이 무척 빠르네.’

    지시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완벽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을 터인데.

    대장군은 역시 대장군이란 것인가.

    ‘하지만...’

    허나 레피아의 입꼬리는 이내 씨익 올라갔다.

    이곳에 온 게 자신뿐만이었다면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었겠지만 지금은...

    쉬이이익-

    콰아아아앙-

    상공에서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광역 스킬이 레피아의 사방으로 떨어졌다.

    “큭! 이건!”

    “막아라!”

    이태광과 유혜인, 아린이 합작해 만든 광역 공격이었다.

    콰광!

    콰과광!

    일대는 당연히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휘이잉-

    모래가 안 그래도 강한 지대의 기류에 섞여 휘날리며 시야를 좁게 만든다.

    이에.

    “뛰어.”

    이강호와 김주희, 레피아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어딜!”

    마족들은 일행을 제지하기 위해 급급히 병장기를 휘둘렀다.

    허나, 그 병장기가 일행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마족들은 아쉽게도 결정을 지니고 있지 못한 마족인 탓이었다.

    속도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드러나자 제쳐진 마족들은 이를 절로 곱씹었다.

    “크윽! 결정만 있었어도!”

    다수가 아닌 1:1로는 도무지 막을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을 톡톡히 체감하고 있었다.

    “제길... 일단 모래바람부터 잠재워라! 이런 식으로는 못 막...”

    [무능한 놈들...]

    그 순간 루시뷀트의 목소리가 일대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쿠구구궁!

    동시에 엄청난 힘의 암흑투기가 일행을 짓누름과 동시에 도약한 쿠니아칸과 레오릭, 나르슈나가 그들의 앞에 툭 떨어져 자리 잡았다.

    아무리 마족들을 잘 제쳤다 한들,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새 따라잡은 것이다.

    레오릭이 특유의 붉은 안광을 번뜩 빛내며 말했다.

    [군주님의 명령이시다. 놈들을... 절대 놓치지 마라. 특히 기절한 저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예, 알겠습니다.]

    쿠니아칸과 나르슈나가 답하기 무섭게 세 인물이 동시에 레피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허나.

    [무능한 놈들!! 거기가 아니다!!]

    이번에는 분노 섞인 루시뷀트의 포효가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이에 레오릭과 쿠니아칸 나르슈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움찔 거릴 수밖에 없었다.

    놈은 이 앞에 있거늘 여기가 아니라니?

    순간 환각 마법의 권위자 나르슈나의 눈매가 예리하게 좁혀졌다.

    ‘...아니? 이건...?’

    그녀가 이내 당했다는 듯 인상을 와락 구기며 외쳤다.

    “이런! 이건 환각이다!”

    “뭐라?”

    믿을 수 없다는 듯 순식간에 다가간 레오릭이 일행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

    그러자 나르슈나의 말처럼, 레피아와 일행의 형체가 흐릿 일그러지더니 이내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크으...!”

    레오릭이 잔뜩 분노 섞인 눈동자로 일행을 찾기 위해 일대를 두리번 살폈다.

    아무리 전투로 지쳤다 한들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의 환각 능력자라니?

    아니 자신은 그렇다 쳐도 환각의 권위자 나르슈나까지 속여 넘기다니?

    “크...”

    이윽고 레오릭의 눈에 일행이 포착됐다.

    일행은...

    빠드득-

    저 멀리, 이미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도주해 있었다.

    레오릭이 나르슈나를 책망하듯 쳐다보자 나르슈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제일 분한 것은 나르슈나 본인이었으니까.

    ‘아무리 정신력을 소모한 상태라곤 하나 나를... 이 나를 환각으로 속이다니...’

    레오릭은 이에 책망하려던 것을 마음에 삼켰다.

    돌이켜보면 자신 또한 이 전투에서 그다지 잘한 것이 없었다.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놈에게 확실하게 밀렸으니까.

    쿠니아칸도 이강호와의 전투를 돌아보며 이를 곱씹었다.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멸화창을 사용하고 있는 나를 웃돌다니...’

    이 전투로 인해 그들은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난 상태였다.

    “크으... 인간...”

    그들은 제각기 분노를 삼키며 일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죽일 듯이 응시했다.

    * * *

    “후... 덕분에 살았군. 레피아.”

    “감사의 인사는 이벨린한테 해. 이벨린이 이렇게 인원을 구성한 거니까.”

    레피아의 말에 이강호의 입가에 멋쩍은 실소가 맺혔다.

    이벨린 발디안, 그녀는 과거에도 언제나 이렇게 자신의 뒤처리를 해주었었다.

    “에헤이~ 감사는 나한테 해야지. 강호 오빠~”

    환각의 주역, 아퀼라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나, 아니었으면 찾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 그래, 너도 고맙다.”

    “후훗, 이거 빚이다 오빠?”

    “그래 그래, 알았다.”

    타다다닥-

    그들은 행여나 누가 쫓아올까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사실 이번전투는 매우 운이 좋았던 편이었던 게 레오릭, 나르슈나 등등 최상위 마족이 등장한데 반해, 상위 마족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만약 사단이나, 연대를 이끄는 상위 마족이 추가로 등장했더라면, 아니 그들의 전속 보좌관만 함께 등장했더라도 레피아가 당도할 때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드는 한 가지 의문.

    “놈들은 왜 그런 식으로 움직인 걸까요? 보통은 사단이나 연대를 먼저 사용하지 않나요?”

    유혜인이 전방을 직시한 상태로 차분히 물었다.

    “하하하하! 스토크를 쫓기 위함이 아니었겠나? 스토크는 꽤나 위협적인 대리자이니 말일세.”

    이에 별 생각 없이 답하는 이태광.

    이강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이건가? 강호 동생?”

    “예, 스토크만을 쫓기 위해 편성된 인원이라고 보기엔 너무 주축들이 우르르 다 튀어나왔습니다. 루시뷀트까지 나타날 거라곤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으니까요.”

    “흐음... 그렇다는 건...”

    “스토크는 아마도 덤... 그들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인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뭔가 예상되는 게 있나?”

    “흠... 아직은...”

    무엇인가를 추측하기엔 정보가 아예 없다.

    “세현이는 루시뷀트와 직접 전투하며 뭘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강호의 시선이 레피아의 어깨에 들쳐있는 유세현을 향했다.

    유세현은 20분이 경과된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 오빠... 괜찮을까요?”

    유혜인이 많이 걱정스런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오빠의 전투형식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뭔가 또 독특한 힘을 사용한 게 분명한데... 깨어나면 저번처럼 고통스러워 하는 건 아닐지...”

    유세현은 특수특성 때문에 지금까지 일반 대리자는 겪지 않는 고통을 너무도 많이 받아왔다.

    이번에도 또 그러지 않을까... 걱정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군주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이에 아퀼라가 자신감 있게 확답했다.

    이전 유세현이 힘들어할 때는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정말 그럴까요? 아퀼라씨?”

    “예, 그렇습니다. 지금 군주님의 상태는 전투로 인해 체력이 많이 저하된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좋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매우는 아니군요.”

    “예? 그게 무슨...”

    “육체는 확실히 괜찮으신데 반해...”

    아퀼라의 시선이 일순간 유세현을 향했다.

    “마음이... 군주께서는 현재...슬퍼...하고 계십니다.”

    “예?”

    유혜인과 나머지 인물들의 고개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순간 갸웃 꺾였다.

    이번전투로 인해 죽은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기절한 스토크까지 운 좋게 챙겨 데리고 나올 수 있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세한 이유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흘러들어오는 이 감정... 군주께서는 분명 슬퍼하고 계십니다.”

    “...깨어나면 물어보는 것밖에는 답이 없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많이 왔다곤 하나, 이곳은 아직 전장.

    전장에서는 주의하고 또 주의하는 게 필수다.

    그렇게 그들이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감추자, 지금까지 줄곧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한 인물이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후, 운이 좋았군. 루시뷀트가 눈에 불을 켜고 따라오는 바람에 한때는 어찌 되나 했는데...’

    블루드래곤 로드, 아르펜 드라고논.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지금까지 전투로 거칠기 그지없던 바람계곡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 * *

    천마왕과의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

    눈앞에서 기절한 유세현을 놓쳐버린 루시뷀트가 잔뜩 분노하여 자신의 군세에게 일시적으로 강렬한 투기를 내뿜었다.

    “큭...”

    투기에 짓눌린 마족들은 몸을 움찔거리며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지금 움직이게 되면 반항하는 것으로 찍혀 목이 날아간다.

    [레오릭!]

    이내 무엇인가를 떠올렸는지, 루시뷀트가 급히 레오릭을 찾았다.

    레오릭은 한걸음에 루시뷀트의 앞으로 다가왔다.

    [군주시어, 부르셨습니까.]

    [그래, 레오릭.]

    [예, 말씀하시지요.]

    [아가레스... 아가레스와 연결되어있는 마족이 이곳에 있느냐?]

    [...!!]

    루시뷀트의 말을 들은 레오릭의 안광이 일순간 번뜩 빛을 발했다.

    그렇다.

    분명 아가레스는 인간 쪽에 첩자를 심어놓았다고 했었다.

    연락만 된다면 언제든 위치를 알 수 있다고.

    [예, 있습니다. 혹시나 만약을 위해 연결을 시켜놓았었습니다!]

    [빨리 그놈을 찾아와라!]

    레오릭은 아가레스와 연결되어 있는 마족, 파르실라를 급히 찾아 루시뷀트의 앞으로 대령했다.

    파르실라는 루시뷀트의 앞에 서자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위, 위대하신 군주님을 뵙습니다!”

    [두서는 필요 없다. 파르실라라고 했나? 지금 아가레스와 연결이 되어 있는 거 맞겠지?]

    “예! 여,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연결해라. 연결해서 이 주위 정보를 주고, 인간 진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아내라고 해라. 분명 이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게 분명하다.]

    “예, 예! 알겠습니다!”

    파르실라는 허겁지겁 아가레스에게 연락을 보냈고, 아가레스는 즉시 답을 보냈다.

    “바, 바로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10분... 10분 내로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해라.]

    “예!”

    파르실라가 머리를 재차 조아렸다.

    그것을 본 루시뷀트는 곧장 나르슈나를 포함한 인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명령을 하달했다.

    [전군을 즉시 이 부근으로 집합시켜라.]

    “예? 하옵시면...”

    [인간 놈들을 처단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루시뷀트의 눈동자엔 붉은 불꽃이 이글이글 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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