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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30화 (51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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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큭!]

    죽음의 바람을 느낀 루시뷀트는 다급히 대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이미 그의 자세는 너무 무너져 있었던지라 검을 붙잡은 손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 놈이 휘두른 검과 맞부딪치게 된다면...

    치지지직-

    [크으으으!]

    천마왕이 휘두른 검과 맞닿자, 대응한 루시뷀트의 팔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중압감에 한쪽 무릎이 지면에 털썩 꿇린다.

    이대로라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군주시어!]

    이강호를 향해 몰아치고 있던 레오릭의 불타는 안광이 깜짝 놀라 파르르 흔들렸다.

    지금... 지금 자신의 군주가, 절대자가 밀리고 있는 것인가?

    저 인간에게?

    [무, 무슨...]

    마족들의 턱이 떡 벌어졌다.

    지금 모든 마족들의 시선은 오직 루시뷀트와 천마왕 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크으으으으!]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당장 군주님을 도와라!!]

    엄청난 중압감에 짓눌려 감히 1mm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루시뷀트를 본 레오릭의 외침이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에 마족들은 그제야 정신을 되찾은 마냥 천마왕을 향해 몸을 던졌다.

    군주는 그 종족을 지탱하는 최고의 우두머리이자 최고의 대리자, 우두머리가 사라진 종족은 케르트란을 잃은 티탄족처럼 몰락의 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에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군주를 구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어디 인간 따위가!!”

    “죽어라!!”

    슈슈슉-

    수많은 마족들이 자신의 특기를 펼치며 천마왕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 속에서도 천마왕의 입가에선 미소가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끌끌끌...]

    천마왕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계산이 끝나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릭 때문에 대처는 예상한 것보다 나름 빨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뷀트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천마왕이 눈을 번뜩 빛내자 안 그래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던 루시뷀트의 팔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이내 루시뷀트의 나머지 한쪽 무릎도 지면에 털썩 꿇려졌다.

    머나먼 과거, 신마대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으으으으!]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지금까지 루시뷀트의 몸을 감싼 채 그를 보호해주고 있던 어둠이 흩어지며 루시뷀트의 본 모습이 바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과 푸른빛의 창백한 피부, 붉은 눈을 지니고 있는 남성이었다.

    [크으... 넌... 넌 대체...]

    루시뷀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천마왕이 말했다.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라. 원래 우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

    [그럼, 잘 가거라.]

    치지지직-

    [진(眞), 천마광룡참((天魔狂龍斬)]

    몰아치고 있던 천마왕이 거기서 더욱 힘을 더해 루베르크를 휘둘렀다.

    이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루시뷀트가 어떻게든 대검에 힘을 모아 대응에 나섰지만...

    쿠오오오오-

    그가 발휘한 흑천경은 천마광룡참에 닿기 무섭게 비명과도 같은 괴음을 내며 빠르게 소멸되어 자취를 감췄다.

    루시뷀트의 머릿속엔 죽음이라는 단어가 연속해서 메아리쳤다.

    이건... 못 막는다.

    ‘당한다!’

    쩌적-

    하지만 죽음을 상기한 바로 그때, 폭풍 속에서 무엇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음?!]

    쩌적-

    쩌저저적-

    그것은 확실히 무엇인가가 붕괴되는 소리였다.

    무엇인가를 확인한 천마왕이 일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내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운도 좋군.”

    쩌저저적-

    쨍그랑-!

    천마왕이 들고 있던 루베르크의 검날이 거친 파열음을 내뿜으며 산산조각 부서졌다.

    덕택에 그가 발현한 천마광룡참은 원래의 경로에서 빗겨나, 아슬아슬하게 루시뷀트의 머리 위를 스쳤다.

    퍼벙!

    콰과과광!

    곧이어 마족들이 달려드는 것으로 일대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거칠게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루시뷀트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육체를 살폈다.

    자신은...

    [난...]

    산 것인가?

    전방에서 천마왕이 내뱉은 아쉬운 담긴 목소리가 그의 귓가로 잔잔히 울려 퍼졌다.

    [후... 완전 나가리군. 나가리야.]

    천마왕의 손에는 어느새 허리와 머리가 으깨져 사망한 마족의 시체 두 구가 들려있었다.

    [아, 귀찮아.]

    그가 양손에 들고 있던 시체를 지면에 털썩 내던지자,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마족들이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현재 천마왕의 존재감은 그 정도였다.

    [군주시어!]

    그때 순식간에 나타난 레오릭과 나르슈나, 쿠니아칸이 루시뷀트의 옆으로 날아들어 착지했다.

    그러자 뒤따라 움직였던 이강호와 김주희도 마족들의 포위를 일시적으로 뚫고 들어가 천마왕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곧바로 루시뷀트와 천마왕의 안부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군주시어?]

    “선배님 괜찮으세요?”

    [......]

    이에 루시뷀트는 레오릭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온 정신을 놈에게 집중해야 했다.

    [흠...]

    천마왕도 그저 슬쩍 흘겨볼 뿐 김주희의 걱정 어린 말에 마땅히 반응하지 않았다.

    평소 줄곧 붙어 다녔던 그들이라면 자신이 유세현이 아니란 것쯤은 금세 알아챌 터였으니까.

    천마왕은 마치 주위 마족들은 의식도 하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된다냐?]

    “...선배님?”

    이상함을 느낀 김주희가 곧바로 고개를 갸웃 꺾었다.

    “갑자기 왜 말투가...”

    “잠깐, 김주희. 가만히 있어봐.”

    이에 이강호가 유세현의 어깨에 손을 뻗으려던 김주희를 제지했다.

    김주희와 달리 이강호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마족들이 천마왕의 행보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웅성거렸다.

    “저, 저놈 계속 앞으로 나오는데 어떡하지?”

    “뭐, 뭘 어떻게 해?”

    마족들은 천마왕의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정을 지니고 있는가, 지니고 있지 않은가의 유무를 떠나서 지금 달려들게 되면 죽게 될 것은 너무도 뻔했으므로.

    [후...]

    이내 천마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움직이고 있던 발을 멈춰 세웠다.

    그의 발치에는 루시뷀트가 미처 회수하지 못한 거대한 대검, 루베르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천마왕은 허리를 굽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루시뷀트는 이를 보며 일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놈이 뭘 하고 있는 것이지?

    의미를 알고 하는 행동인 것인가?

    대검 루베르크, 루시뷀트가 만든 이 검은 오직 그만을 위한 전용 검이었다.

    주인 인식 시스템이 권능과 섞여 발휘되고 있기에 사용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사용하지 못한다.

    아무리 복제품이라지만 마찬가지인 루베르크를 사용하고 있던 놈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저 놈...’

    루시뷀트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마왕이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치지지지지직-

    그러자 대검은 어마무시한 어둠을 내뿜으며 거칠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루시뷀트는 방금 전의 처지는 잊은 채 광소를 내뿜었다.

    [큭, 멍청한 것. 설마 지금 내 루베르크를 강탈해보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천마왕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강탈? 아니지. 나도 이놈의 주인인데.]

    [...뭐라?]

    [벌써 잊었느냐? 난, 너와 동일한 존재다.]

    [...웃기지 마라. 기껏해야 모조품 검과 같은 복제품 따위가 어딜 감히... 지금 네가 날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요상한 늙은이의 영혼과 네가 힘을 합쳐 맞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넌 나를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구나. 뭐, 당초 그게 내 성격이니 더 이상 뭐라 하진 않겠다.]

    [......]

    빠직-

    루시뷀트의 이마에 힘줄 한가락이 볼록 돋았다.

    이미 충분히 많은 굴욕을 겪었는데, 대놓고 가짜에게 모욕을 당하니 그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레오릭! 나르슈나! 쿠니아칸!]

    “예!”

    [놈은 절대 저 검을 들지 못한다. 놈을 없애라! 내가 함께...]

    루시뷀트가 내리던 명령을 채 끝내지도 못했을 때였다.

    치지지지지직-

    천마왕이 저항하는 대검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천마왕이 주위에 있는 모두에게 다 들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자, 어디 한번 보아라! 내가 이것을 쟁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쿠구구구구-

    치직- 치지직-

    루베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천마왕의 육신을 향해 격렬하게 몰아쳤다.

    그러자 천마왕의 머리 위로, 어둠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형상이 스멀스멀 나타나 자리 잡았다.

    “저, 저건?”

    그것은 영혼이었다.

    군데군데 이리저리 난자되어 상태가 무척 좋지 못한 영혼.

    그것을 본 루시뷀트의 얼굴에는 순간 강한 의문이 맺혔다.

    ‘뭐지?’

    당당하게 루베르크를 갖겠노라 말한 것치곤 상태가 좋지 못해도 너무 좋지 못한 탓이었다.

    저 정도의 영혼은 영멸(靈滅)은 커녕, 어둠의 마력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말 그대로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놈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굳이 비유하자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끌끌끌끌.]

    그러나 천마왕은 되레 더 크게 웃을 뿐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은 그도 당초부터 알고 있었다.

    마왕의 대검, 루베르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부들 부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든 상태였으니까.

    마지막 진 천마광룡참을 운용했을 때 그들은 모든 영혼의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뒤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루베르크가 부러지는 바람에 실패했고, 그들은 유세현을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든 허세를 부리며 시간을 끌 필요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으론...

    치지지직-

    팡!

    휙휙휙휙-

    푹-

    이내 루베르크가 천마왕의 손에서 튕겨져 나가 지면에 박혔다.

    힘이 다한 천마왕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웃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천마왕이 누군가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보았...느냐... 제자야... 이게... 이게...]

    천마왕의 거친 붉은 안광이 점점 빛을 잃으며 수그러든다.

    [이게... 바로...]

    이내 천마왕은 고개를 툭 떨구며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무슨...]

    이에 쭉 지켜보고 있던 루시뷀트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당혹어린 탄성을 흘렸다.

    마족의 군주, 루시뷀트를 사지까지 몰아붙였던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지막을 맡다니?

    대체 놈은 무슨 이유로 자해를...

    ‘...설마?’

    의도를 파악한 루시뷀트가 천마왕의 훼방으로 한번 끊겼었던 명령을 재차 하달하려던 찰나였다.

    [레오릭! 나르슈나! 쿠니아칸! 당장 달려들어 저 놈들을 처리...]

    슈슈슉-

    파바밧-

    그 누구도 모르게 은밀하게, 어느샌가 유세현의 옆으로 접근해온 그림자 속에서 단검을 치켜든 여성 한 명이 불쑥 튀어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슬아슬했네.”

    “...!!”

    갑자기 나타난 여성은 난데없이 공기 중으로 무엇인가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이에 마족들은 아연실색하여 다급히 몸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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