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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23화 (50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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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그놈 또 안 알려주고 나갔어?”

    레피아가 골이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하하! 강호동생은 지금까지 줄곧 그래 왔지 않나! 이번에도 알아서 잘할 걸세!”

    반면 이태광은 그저 쾌활하게 웃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괜히 수색하다가 발각 당하게 되면 일을 만드는 꼴이 된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세 명이 고립 당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

    이벨린이 마침내 의견을 입 밖으로 내려던 찰나였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그래도 범위를 넓혀 수색을...”

    “총지휘관님!”

    돌무더기의 저편, 동쪽을 담당하고 있던 팀의 전령이 거친 칼바람을 피해가며 헐레벌떡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사람들은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베르티아씨,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허겁지겁...”

    “정체불명의 적들이 경계지역으로부터 10km 떨어진 지점, 벼랑 끝에 출몰했습니다!”

    “......”

    그 말에 이벨린을 포함한 사람들의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적이라...

    “베르티아씨, 외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 가능합니까?”

    “예! 사족보행에 개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개의 형상이요?”

    “네, 그렇습니다.”

    “병력의 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 1천이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천.

    그 소리에 이벨린이 조심스레 이마를 짚었다.

    설마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호씨의 말에 따르자면, 이곳의 몬스터는 그렇게까지 무리를 짓지 않아.’

    게다가 4족 보행몬스터는 일반적으로 하급몬스터로 분류된다.

    스텟에 비해 2족 보행보다 재빠르지만 발을 손처럼 사용할 수 없기에 복잡한 전투를 하지 못하는 탓이다.

    때문에 그들이 탑을 올라오며 잡아온 몬스터도 대부분 2족 보행 몬스터였다.

    물론 이곳이 판도라인 만큼 4족 보행의 강력한 몬스터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베르티아씨, 현재 이 상황을 누구누구가 알고 있죠?”

    “아직은 경계병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밖에 모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 어떻게 대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곧 명령을 하달해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럼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미심쩍게 생각할 수 있는 애매한 답변이었지만, 베르티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이벨린의 신뢰는 현재 그 정도였다.

    베르티아가 모습을 감추자 이태광이 말했다.

    “1천 마리나 되는 개라면 마족의 마수일 확률이 높겠군!”

    “한 번도 직접 싸워본 적은 없을 텐데. 잘 아시는군요. 태광씨.”

    “하하하하! 일전 던전에서 본적이 있어서 말이지!”

    “그보다도 이벨린씨, 놈이 벌써 우리의 위치를 알린 걸까요?”

    남궁시영이 물었다.

    이벨린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놈은 아직 이곳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놈이 알린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아마, 정찰 부대겠죠.”

    “공격할 게냐?”

    “아뇨, 일단은 방어책을 구축할 생각이에요 스승님. 그리고...”

    병력의 규모를 확인, 그 주위에 이강호와 유세현, 김주희가 있는지 수색을 나선다.

    모든 것이 정해지자 이태광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대검을 빼든 뒤 말했다.

    “자, 그럼 일단 제르오펜부터 처리하러 가보실까?”

    “아뇨, 제르오펜은 일단 놔두도록 하겠습니다.”

    “뭐? 이벨린!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놈이 보고라도 하는 날엔...”

    “현재 놈은 아직 마수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격을 가하게 된다면 놈은 당연히 반항할 테고 그 과정에서 마수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놈은 복수심 때문에라도 무조건 보고를 하겠죠.”

    “...흠...”

    “마수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놈을 서쪽 경계로 빼놓겠습니다. 놈은 일이 잘 마무리 된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확실히...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로군. 하지만 이벨린, 격렬한 전투가 발생한다면 결국 놈에게 들키고 말텐데?”

    “마수병은 일종의 정찰병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 강하지 않을게 분명하니. 아마 섣불리 덤벼 오진 않을 거예요.”

    “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논리정연한 이벨린의 말에 이태광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 수긍했다.

    이벨린은 논쟁이 끝나기 무섭게 일을 빠르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예? 지금 바로 말입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르오펜씨.”

    “예, 맡겨 주십시오. 확실히 경계하겠습니다.”

    계획대로 제르오펜을 후방으로 보낸 그녀가 베르티아의 옆에 서서 망원경을 들어 마수병들을 살폈다.

    마수병들은 무엇인가를 찾는지 땅에 고개를 처박은 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놈들은 아직 우리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군요.”

    “예,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언제부터 저 상태였습니까.”

    “모습을 보인 이후 쭉 저런 상태입니다.”

    “......”

    마수병들은 현재 있는 일대 주변을 서성일 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벨린이 추적조를 향해 살포시 손가락을 흔들었다.

    “여러분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케이. 나만 믿어 꼬맹이~”

    추적조의 구성원은 레피아를 필두로 이태광, 아린, 유혜인, 그리고 아퀼라였다.

    남궁시영과 루시펠은 만약을 위해 동쪽 전방에서 대기.

    리체 케머런은 서쪽 후방의 제르오펜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떠나기 전 이태광이 사일러스 마법 속에서 힘차게 포효했다.

    “자아-! 그럼 가볼까!”

    “나가서는 그렇게 떠들면 안 되는 거 잘 알거라 믿네 태광군.”

    “하하하하-! 물론이지 영감!!”

    “그럼...”

    다섯 명의 대리자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지면에 녹아들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스토크에게 한 걸음에 달려간 셋은 단번에 스토크의 상태를 살폈다.

    바위로 구성되어 있는 단단한 외피는 난자되어 부서져 있었고, 곳곳에서는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으나, 상당히 좋지 못한 상태였다.

    “허억... 허억... 너희들... 어떻게 여기에...”

    “스토크, 어떻게 된 거냐. 설마 이곳에 있던 몬스터에게 당한 거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스토크를 향해 이강호가 물었다.

    스토크는 설마 그렇겠냐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그럼 누구에게 당한 거냐.”

    “그, 그놈...”

    “그놈?”

    스토크가 덜덜 떨리는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려 유세현을 가리켰다.

    셋은 순간 마음속으로 의문을 가졌다.

    ‘응?’

    ‘세현선배는 왜...’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스토크가 입 열어 말했다.

    “그... 그놈... 그놈은... 너와... 똑같은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

    일행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유세현과 똑같은 힘이라니?

    이 세계에서 유세현과 같은 힘을 지닌 자는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착각한 건가?

    “스토크,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벨제뷔트에게 당한 거냐?”

    “큭... 그, 그놈이 아니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된...”

    “세현아!”

    “이미 살피고 있어!”

    마력의 흐름을 읽고 있던 유세현이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역시 이곳은 마력의 흐름이 너무 불안전해서 읽기가 힘들다.

    ‘더 집중해야 된다. 더...’

    유세현은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흐름을 읽는데 매진했다.

    그는 곧 전방 5km 떨어진 지점에 미약한 어둠의 마력을 지닌 생명체가 무수히 많이 즐비해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놈들은 이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강호야, 일단 스토크를 데리고 이곳을 뜨자.”

    “뭐가 있는지 파악했어?”

    “정확히는 아니고 대충은. 순도와 마력의 총량으로 보건대 잡병들 같아.”

    “잡병?”

    “응, 아마 정찰대가 아닐까 하는데...”

    “크윽... 잡병이라고?”

    스토크가 힘겹게 읊조렸다.

    “그, 그놈들은... 페이크다.”

    “음? 그게 무슨 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된다. 노, 놈은 분명 이 근처에 있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이익-

    창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그들의 바로 위로 뚝 떨어졌다.

    쿵-

    물론 셋은 적이 인기척을 드러낸 순간 알아채고는 스토크를 낚아챈 뒤 자리에서 물러났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휘이잉-

    모래바람이 거치며 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오- 제법이로군. 이 일격을 이렇게 쉽게 회피하다니.”

    거대한 도끼를 짊어지고 나타난 레오릭이 작게 읊조렸다.

    이강호의 눈은 놈을 확인한 순간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이놈은... 레오릭?’

    본디 마왕군이 멸절에 탑에 들어오는 것은 아주 나중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놈이 어째서 이 탑에 있는 것인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어떻게 8층까지 이리 빨리 올라올 수 있었는가!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을 클리어 해야 하기에 아무리 마왕군이라 할지어도, 공략법을 모른다면 탑을 등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후... 아무튼 그래서 스토크가...’

    레오릭은 암흑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꽤나 강력하기에 유세현의 능력과 똑같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강호의 표정이 돌변하며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놈은 한 눈에 봐도 스토크를 쫓기 위해 무리에서 벗어나 행동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놈이 혼자라면...

    ‘지금이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강호가 창을 쥐어 잡고 자세를 다잡았다.

    유세현과 김주희는 그 순간 이강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마찬가지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들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그만둬라! 우린 이럴게 아니라 지금 당장 도망쳐야 된...”

    “어디 쓸데없는 말을.”

    슈슈슉-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 레오릭이 스토크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이런!’

    스토크는 어느새 머리 근처로 날아오고 있는 양날도끼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방금 전 내뿜은 우레로 인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데다, 놈이 발산한 암흑투기가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건, 반응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늦었다.

    “잘 가라, 돌덩어리.”

    “잘 가라긴 뭘 잘 가라냐?”

    하지만 그 순간, 비아냥거리는 얄미운 목소리와 함께 김주희가 스토크의 등을 박차고 뒤에서 튀어나왔다.

    챙-!

    “...?!”

    레오릭은 그녀가 양팔로 창을 들어 방어해내자 턱을 딸그락 부딪치며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내려찍기를 순수한 힘으로 버텨내다니?

    ‘이 계집... 대체 스텟이 어느 정도이기에...’

    하지만 레오릭은 그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새 옆으로 돌아온 유세현과 이강호가 합공을 가해오고 있었다.

    공격을 가하기 직전, 유세현이 눈을 번뜩였다.

    쿠우웅-

    ‘...!!’

    레오릭의 두 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중압감은?

    “헹, 어때? 슬슬 감이 와? 큰일은... 누가 난 건지!!”

    트드드득-

    맞대고 있는 창대로부터 흘러간 냉기가 양날도끼, 그라프쉬르를 새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왕 vs 마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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