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20화 (50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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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곧장 달려든 퀘루안에게 부상을 입힙니다. 그 당시 위치가 이곳이었습니다.”

    알리크스가 손을 갖다 댄 위치는 인간세력이 있는 장소로부터 꽤나 거리가 되는 장소였다.

    “그 후 마왕은 곧장 트랄바루체 및 로드님과의 전투를 개시, 로드님의 계책에 의해 인간진형쪽으로 서서히 유도되며 전투를 이어갔죠. 그리고 얼마 뒤, 놈은 패퇴하여 인간진형에 떨어지게 됩니다. 화염 사용자가 나타난 게 이때였습니다. 이때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왕을 포함해 인간들은 100% 전멸당했을 것입니다.”

    이강호를 구현화 시킨 장기말을 툭툭 친 알리크스가 곧장 말을 이었다.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퀘루안과의 거리는 이전보다도 더욱 멀어졌습니다. 몸을 숨길 시간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죠. 그래서 저를 포함한 모두는 굳이 퀘루안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알리크스가 인원 모두를 훑었다.

    트랄바루체 및 실라우벨 등등 드래곤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암살자가 화염 사용자와 동시에 도착했다 해도, 암살자가 퀘루안을 찾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같은 레드도 못 찾고 있었을 정도이니. 아니, 행여나 모종의 능력으로 찾았다 하더라도 전투에 분명 모습을 드러냈을 겁니다. 그 후 화염 사용자도 인간들을 인질로 잡혀 굉장히 압박당하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암살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흠...”

    아까보다도 더한 적막감이 장내에 흘렀다.

    알리크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드래곤들의 표정은 너나 할 것 없이 무척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알리크스의 똑 떨어진 정리에 의해 의구심은 어느새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있었다.

    ‘...제길......’

    이에 라플라스는 마음속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깊게 파고들다니...’

    그는 사태를 수습할 자신이 있었다.

    의구심은 어차피 의구심.

    추후 상황이 급 전개되기 시작하면 흩어진 드래곤들을 일일이 소집하여 전부 추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야무야 넘길 수 있는 것.

    ‘하지만 이렇게 되면...’

    라플라스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색해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었다.

    지금 알리크스의 의견에 반박하여 어설프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게 될 시, 용의자로 단번에 부상하게 될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큭...’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또 없었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다보면 결국엔 자신에게 다다를 게 분명했다.

    ‘제길 어떻게 해야... 어떻게...’

    완전히 궁지에 몰린 라플라스.

    이윽고 드라프나우어가 입을 떼 말했다.

    “어떻느냐. 알리크스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느냐?”

    “......”

    “만약 동의한다면 세부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겠다.”

    드라프나우어가 선언했다.

    그리고 드래곤들은 당연히 침묵했다.

    시간을 다소 잡아먹을지언정 지금 확실히 해두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그럼...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세부조사는 각 진형에서 알리바이가 확실한 인물들을 뽑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위대한 로드시어.”

    드라프나우어가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한 레드드래곤이 끼어들어 이를 막았다.

    모든 드래곤들의 이목은 단번에 그 레드드레곤을 향해 집중되었다.

    “으음? 자네는... 드레보스?”

    “예,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드레보스가 깍듯이 인사했다.

    이에 라플라스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 꺾어 반응할 뻔했다.

    ‘뭐지?’

    그가 아는 바, 드레보스는 확실히 퀘루안의 충직한 수하였다.

    그가 지금 움직일 필요는 정말 1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 그럴 터인데.

    “위대한 로드시어, 송구스럽지만 저는 세부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음?”

    드레보스가 당당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드래곤들은 전부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갑자기 왜?’

    ‘퀘루안의 죽음을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텐데 어째서...’

    ‘...설마?’

    알리크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어이, 드레보스. 지금 네가 내뱉은 말...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한 것이겠지?”

    “물론이다. 알리크스.”

    “...알리크스? 감히 어디서 내 이름을 함부로... 님자를 붙...”

    “거절한다. 너와 나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네놈...”

    “그것보다 들어봐라. 반대하는 이유가 있으니.”

    “......그래... 어디 한 번 지껄여 보거라.”

    알리크스가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한발 물러났다.

    그러자 주위를 한 번 훑은 드레보스가 알리크스를 재차 응시하며 차분히 운을 떼었다.

    “알리크스, 그댄 내가 범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반대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겠지만 그것은 틀린 판단이다.”

    “흐, 웃기는...”

    “또한 난 어설픈 추측으로 인간들이 범인이라 판단하여 이런 말은 꺼낸 것도 아니다.”

    “...으음?”

    드라프나우어의 묘정에 미묘한 변화가 감돌았다.

    드레보스가 시선을 옮겨 이번에는 드라프나우어를 응시하며 계속 말했다.

    “위대한 로드 드라프나우어시어. 저는 우리 동족 중에서 범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단독 범행이 아닐 때를 고려해 반대한 것입니다.”

    “......”

    드라프나우어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표정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드레보스가 전달하고자 한 뜻을 단번에 이해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모략하여 퀘루안을 죽였을 수도 있다... 이 말이냐?”

    “...송구스러운 말입니다만 동족 살해의 가능성이 제기된 현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

    지금까지 알리크스의 가설은 단독 범행을 가정했을 때의 가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 명 한 명 추궁하는 것으로 범인에 다다를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범인이 단독이 아니라 다수라면?

    모략한 것이라면?

    사건을 묻는 건 일도 아닐뿐더러 괜한 인물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저는 어디까지나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이 자식이! 감히 우릴 뭐라고 생각하는...!!”

    “거기까지.”

    잔뜩 열이 오른 알리크스가 자리에서 박차려 한 순간, 드라프나우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장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어 오묘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라플라스는 기립박수가 나오려는 것을 정말 간신히 참아냈다.

    ‘후후후. 그래, 맞아! 저게 있었지!’

    그는 정말 죽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하하하!! 멍청한 드레보스 자식! 가만히 있었으면 잡혔을 텐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라플라스는 추궁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라플라스가 마음속으로 드레보스를 비웃는 사이, 드레보스가 알리크스를 향해 물었다.

    “알리크스. 지혜의 골드답게 냉정하게 판단해봐라. 어떤가. 진심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

    “크...”

    알리크스는 눈썹을 부들부들 떨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흠, 그럼 세부 조사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결국 회의는 그렇게 유야무야 끝이 났다.

    드레보스가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그와 마찬가지로 퀘루안의 충복이었던 비야크가 드레보스의 멱살을 강하게 쥐어 잡았다.

    “드레보스... 왜 그딴 말을 지껄인 거냐!! 우리가 퀘루안님을 찾고 있었지 않았나!! 다수의 인원이 퀘루안님을 노릴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드레보스는 그 말에 순간 울컥한 표정이 되었다.

    태초의 정원 내부에서 퀘루안에게 많은 갈굼을 받은 그였지만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인물 또한 퀘루안이었었다.

    “나도... 알아. 그러니 이만 놔라...”

    이를 악문 드레보스가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드레보스, 너...”

    현재 드레보스의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이 반복하여 재생되고 있었다.

    믿고 몸을 맡긴 퀘루안의 등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라플라스의 모습이.

    비야크가 이내 천천히 잡고 있던 멱살을 놨다.

    비야크가 속삭이듯 말했다.

    “너... 뭔가를 봤구나.”

    “......”

    드레보스의 시선이 일순간 주위를 훑었다. 이곳이 싫었는지 라플라스는 이미 빠져나가고 없었다.

    “비야크. 격분을 이겨내지 못 하고 나의 멱살을 잡은 너에게만 알려주도록 하마.”

    이윽고 드레보스가 비야크에게 속삭였고, 비야크의 눈동자는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격렬히 흔들렸다.

    * * *

    알리크스가 한참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고 있던 그 시각.

    8층,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눈보라 지대에서는 마찬가지로 드래곤들의 수장이 회의를 나누고 있었다.

    “드라프나우어가 마침내 마지막 재료였던 플란의 핵을 얻는데 성공했다.”

    “호오, 그렇다면 드디어 그 이형 공간에 진입할 수 있겠군.”

    “그리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 오늘 정보를 받았는데...”

    “뭐지? 알겔라우스?”

    각 로드들이 골드의 수장, 알겔라우스를 응시하자 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놈이 우리가 접수해야 될 지역 중 하나인 바람계곡으로 올라왔다. 움직이면 바로 눈치를 챌 거다.”

    “놈?”

    “그래, 놈...”

    그리 읊조리는 알겔라우스의 눈동자에는 역겨움을 포함한 많은 감정이 서려있었다.

    웬만해선 없는 일이기에, 로드들은 그가 입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알겔라우스가 말했다.

    “마왕, 루시뷀트. 놈이 벨제뷔트의 군세를 흡수해서 나타났다.”

    * * *

    8층, 바람계곡.

    바람계곡은 8서클 마법에 준하는 강력한 칼바람이 시시각각 무작위로 휘몰아치는 지대였다.

    때문에 그곳에서는 칼바람을 회피해가며 진군해야 되는 턱에 진형을 유지하는 게 물을 베는 것보다도 어렵기 그지없었다.

    절멸의 탑의 극한 상황을 극복하며 올라온 수많은 종족들도 감히 버티지 못하고 멸족한 장소.

    그곳이 바로 이 바람계곡이라는 곳이었다.

    휘이이이잉-

    쉬쉬쉬쉭-

    그리고 스토크가 이끄는 스토르 벤 세력은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바람계곡에는 특수한 몬스터들도 우글우글 들끓었는데 높은 리스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주는 코인은 무척 짭짤하기 그지없었다.

    “잡아!”

    “계속 몰아쳐!!”

    푸쉭-

    콰아아앙!

    “자, 잡았다!!”

    “어, 엄청난 코인이다!”

    “흡수해!”

    스토크는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종족 원들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게 계속 지속이 된다면 드래곤이나 엘프 이하 등등의 세력들에게 비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스산한 바람이 스토크의 단단한 이마를 스쳤다.

    칼바람은 아니었으나, 스토크는 그 바람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피비린내가 나는 듯한 느낌.

    “스토크님! 전부 처리했습니다!”

    “좋아. 다음 봐두었던 곳으로 이동하자.”

    “후후후, 이곳 정말 굉장합니다! 코인이 말도 안 되게 떨어져요!! 진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 아까 죽을뻔 했잖냐.”

    “하하, 스토크님 덕에 살았지만 말이죠. 정말 스토크님 없었으면 우리 종족은 어떻게 되었을지...”

    “거기까지. 조용하고 가자.”

    “넵!”

    스토크는 애써 그 불안감을 모른 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느낌은 좀 다를지언정 사실 이 세계에선 불안감이 어디고 항상 따라왔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휘이이이잉-

    바람이 한 번 더 세차게 불어왔다.

    그 순간 선봉 부대를 보내놨던 절벽 위에서 돌무더기들이 우수수 낙하해 떨어졌다.

    “...음?!”

    “커, 컥...”

    돌덩어리에서 신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이건...?!”

    그것은 돌덩이가 아니었다.

    “이런!? 무슨!?”

    “마, 말도 안돼... 이건 전부 우리 종족의...”

    그것은 돌로 이루어진 생명체의 육신 파편이었다.

    신의 회랑으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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