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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18화 (5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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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호와 이벨린, 아린, 제넥 등등 세력의 수뇌부가 계획의 세부조정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정말 오랜만에 메마른 땅의 단비 같은 휴식을 취했다.

    “후... 이렇게 누워있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마라.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알고 있어. 임마. 내가 짬이 얼만데... 야, 괜히 기분 초치게 하지 마라. 나 지금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 느끼고 있으니까.”

    그들은 평소 도통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이러했다.

    “아, 젠장. 일신공(鎰迅功)의 숙련도가 99%에서 도저히 오르질 않아. 아오, 왜지?”

    “야, 임마. 그게 어디냐...”

    “왜, 너도 잘 안 되냐? 너가 익히고 있던 혼연공(混燃功)의 숙련도는 얼마길래 그래?”

    “90퍼센트...”

    “90퍼센트? 크크크, 야, 아함바드. 너 저번에도 나한테 90%라고 하지 않았냐?”

    “그러니깐 말이다. 아오~ 분명히 더는 깨우칠 게 없어 보이는데... 아니 대체 왜 안 오르는 거지?”

    정진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들.

    “야, 아함바드 너 탄지공은 마스터했다고 했었지?”

    “응. 그건 마스터하기 꽤 쉬웠어.”

    “뭐, 이류무공이니...”

    탄지공은 이류무공인데 반에 비해, 혼연공과 일신공은 일류와 상승의 중간수준의 무공이었다.

    그리고 상승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들처럼 숙련도 90~99% 사이에서 정체를 겪고 있었다.

    “아, 진짜 조금만 더 하면 100%에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한번 무림인들한테 조언을 구해볼까?”

    “아서라. 이젠 걔네도 우리랑 똑같잖냐. 아마 너보다 숙련도가 낮은 애들도 있을걸?”

    “하긴...”

    “야야, 그보다도 오랜만에 수련이나 좀 하자.”

    “그럴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기 힘드니...”

    “그렇지, 이럴 때 하는 거지.”

    “좋아. 서로 봐주자.”

    “오케이~”

    이윽고 아함바드와 그의 동료 렉쉬가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어? 쟤네들 수련하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은 순식간에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우리도 할까?”

    “흠... 그럴까? 이틀 동안 계속 가만히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하긴 한데.”

    “좋아. 우리도 서로 봐주자.”

    “그래, 그러자.”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나태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도 이렇게 수련을 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이에 유세현도 무거운 몸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후...”

    그는 이리저리 몸을 틀고 비틀며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꽤 욱신거리긴 했지만 퀘루안에게 당한 오른팔을 제외하고는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유세현은 거동이 가능해지기 무섭게 제일 먼저 김주희를 찾았다.

    김주희는 루시아가 돌보고 있었는데, 둘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무섭게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현씨!”

    “선배님!”

    다가간 유세현이 곧장 안부를 물었다.

    “어때 좀 괜찮냐?”

    “네, 괜찮아요! 뭐 이 정도는 거뜬하죠! 엣헴!”

    뚫린 옆구리가 아직 전부 재생도 안 된 주제에 걱정 끼치기 싫었던 김주희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허세를 부렸다.

    유세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그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

    “헤헤...”

    김주희가 베시시 웃었다. 그녀는 허세를 부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혈색이 좋아 보여.’

    6층에서 폭주한 이후 유세현의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선배는 어때요? 좀 괜찮아요?”

    “응, 오른팔은 아직 좀 그렇지만 그것 빼고는 다 괜찮아.”

    “고생 많으셨어요. 세현씨.”

    “아닙니다. 루시아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 후 그들은 잠시 즐거운 만담을 나눴다.

    “디네가 왜 이렇게 소환을 안 하냐고 얼마나 쫑알쫑알 대던지...”

    “훗, 디네라면 뭐 그렇겠지.”

    “아, 선배 이참에 소환해볼까요? 선배 많이 보고 싶어 하던데.”

    “그래? 네 몸 상태만 괜찮으면 해봐.”

    유세현이 웃으며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김주희는 그러한 유세현의 행동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밝아진 느낌이야.’

    뿅-

    이윽고 물의 정령 운디네가 나타났다.

    “어! 세현오빠!”

    그녀는 소환되기 무섭게 유세현에게 착 달라붙었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오빠?”

    김주희의 이마에는 대번에 힘줄이 뽈록 돋았다.

    “디네야... 너무 가까이 붙지 마라. 선배님 싫어하신다.”

    “흥, 아닌데? 싫어하지 않는데?”

    “이게...”

    “메롱이다. 임마~ 그러게 누가 자주 소환하지 않으래? 앞으론 자주해라? 엉?”

    “너가 도움이 좀 돼야 하던 말던 하지. 좀 쎄질 수 없냐?”

    “야, 임마 바랄 걸 바래라. 코인도 흡수 못하는 내가 어떻게... 어??”

    펑-

    운디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짧은 탄성과 함께 그녀의 신형이 그대로 유세현의 어깨에서 자취를 감췄다.

    역소환 된 것이었다.

    “응? 뭐지?”

    김주희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당분간은 욕하고 윽박지를 정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너무도 쉽게 돌아가 버린 탓이었다.

    “야, 운디네. 운디네!”

    김주희는 어이가 없어져 운디네를 재소환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법진만 생길 뿐 운디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흠, 뭐지?”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김주희는 묘한 위화감을 받았다.

    “야, 운디네! 운디네!”

    그녀는 몇 번이고 운디네를 불렀지만, 10분이 지나도 다른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김주희는 운디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쉬고 이따가 다시 해보도록 해봐.”

    “끙... 그럴까요?”

    방도가 없기에 일단 수긍하는 김주희였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김주희를 흘끗 살핀 유세현이 달래듯 말했다.

    “별일 아닐 거야. 이 보랏빛 지대에 소환수에 대한 다른 특수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음...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김주희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계속 쉬고 있어.”

    “어? 벌써 가시게요? 아쉬운데...”

    “나도 그렇긴 한데 확인해볼게 있어서 말이야.”

    “확인이요?”

    “너가 다 나으면 보여줄게.”

    유세현이 몸을 돌렸다.

    “루시아씨 주희 잘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 마세요. 아, 그리고 저도 나중에 보여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물음에 유세현이 미소로 화답했다.

    “어...”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매우 밝은 미소였기에, 둘은 잠시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럼...”

    이윽고 유세현은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둘은 미소 띤 유세현이 얼굴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려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김주희가 중얼거렸다

    “시아야.”

    “응?”

    “역시 선배... 뭔가 변한 것 같지?”

    “응. 뭔가 좀... 밝아진 것 같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주희는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질문하진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큰일을 겪을 것이 분명했기에.

    거대한 고통을 이겨냈을 것이 분명했기에.

    * * *

    걸어 나가던 유세현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죽은 사람들을 화장해주기 위해 시체를 쌓아놓은 임시 화장터였다.

    “어? 세현씨?”

    유세현이 가까이 접근하자 그곳을 관리하던 관리자, 스나벨이 유세현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유세현은 스나벨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이곳에 온 목적을 밝혔다.

    “사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

    이에 스나벨은 순간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네, 그러도록 하세요.”

    그것이 죽은 사람들의 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는 자리를 비켜드릴 테니 일 보시기 바랍니다.”

    스나벨이 자리를 비켜주자, 어둠의 마력을 끌어올린 유세현의 주위로 어둠이 휘몰아쳤다.

    그가 시체 한구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언데드 레이즈]

    끼기기긱-

    시체는 마력을 받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세현은 곧장 그 시체에 명령을 하달했다.

    쉬익-

    쉬쉬쉭-!

    시체는 전속력으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상태로, S랭크 상위의 정도의 수준이었다.

    과거에는 아무리 잘해도 S랭크 하위였으니 장족의 발전인 셈.

    그러나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 탑에는 괴물들만 존재한다. 달려들기도 전에 박살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리고 이것이 굳이 이제 전투에서 언데드 레이즈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였다.

    ‘아쉽군.’

    유세현은 기분을 표하듯 살포시 혀를 찼다.

    특성이 마(魔)에서 진(眞)마(魔)로 변화한 뒤, 그의 스테이터스 창에는 무수히 많은 큰 변화가 생겼다.

    어둠의 마력 전용 스킬의 등급이 전부 에픽으로 변환됨과 동시에 랭크가 사라진 것이었다.

    유세현은 스테이터스 창을 켜 스킬 하나를 살폈다.

    스킬 명: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

    등급: 에픽

    상세정보: 죽음을 다룰 수 있는 어둠의 마력을 이용하여 네크로멘서가 창시한 마법입니다. 죽은 자를 강제로 일으켜 따르게 만듭니다. 단, 영혼이 존재하지 않고 지능이 낮은 만큼 단순한 지시밖에 따르지 못합니다.

    추가로 사용능력의 설명도 사라졌다.

    유세현은 왜 이렇게 바뀐 것인지 대략 짐작이 되었다.

    언데드 레이즈는 마법과 권능을 복합적으로 섞어 만든 특수한 마법.

    유세현이 권능을 완벽히 자유로이 다룰 수 있게 됨으로써 능력의 효과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쯧...’

    하지만 아쉽게도 유세현은 권능은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반면, 마법에는 문외한이었다.

    기초 지식은커녕, 마법의 마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신력을 사용해 권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하더라도, 마법이 섞여 발휘되는 능력인 이상 언데드 레이즈 마법은 이게 한계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유세현은 곧바로 레이커드만의 키메라화를 사용했다.

    키메라화는 사체들이 지니고 있는 높은 저항력 때문에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가 참 궁금했다.

    슈슈슈슉-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던 시체들이 어둠의 마력에 반응해 봉합되기 시작한다.

    유세현은 문외한인 마법은 배제하고 권능을 다루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집중하는 유세현의 이마에서는 삐질 삐질 땀이 새어나왔다.

    따다다닥-

    봉합이 거의 끝나간다.

    마침에 너덜너덜 하던 몸이 완전히 붙고 내부에 어둠이 자리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트득!

    트드드득!

    키메라의 육체에 일순간 균열이 생기며 봉합 부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실패한 것이었다.

    ‘으, 아쉽군.’

    유세현은 쓴 침을 삼켰다.

    자신의 마법 지식이 아린... 아니 이벨린 정도만 되었어도 성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마법적 지식이 없어. 그런가 보구먼.”

    등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데, 아린이었다.

    신의 회랑으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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