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09화 (495/612)
  • -------------- 503/606 --------------

    ‘크으으... 이렇게 나가지는 형식이었나... 이렇게 되면...’

    이 장소에서 여자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

    “으으으으-!!”

    퀘루안은 더운 큰 분통을 터트렸고, 반면 강희수와 유승혜는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안도와 찝찝함 두 개가 한데 섞인 한숨이었다.

    살아남은 건 천만 다행인 일이었지만... 드래곤조차도 감히 버벅거리게 만들던 강자 유세현과 줄곧 함께해온 팀장 김다혜를 잃었다.

    마음이 쓰리다.

    방향이 달라 두 사람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김주희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선배... 정말로 죽은 거예요? 정말로?’

    상념에 잠긴 김주희.

    스스스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 때문에 김주희는 그런 상념조차도 오래 이어갈 수 없었다.

    솨아아아-

    세계 전체가 물 뿌린 수채화마냥 흘러내리기 시작하며, 파수꾼도 전류도 지면도 강물 마냥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움직여지기 시작하는 육체.

    ‘어쩔 수 없어. 가야 해. 잠시라도 지체했다간 당하게 될 거야.’

    강희수와 유승혜는 곧바로 출구로 뛰어들었고, 김주희가 조금 주춤거렸지만 이어서 몸을 던졌다.

    덕택에 퀘루안이 미리 발사해두었던 브레스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르는 신세가 되었다.

    “쳇.”

    퀘루안 또한 혀를 차며 이내 마찬가지로 출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드래곤이 출구로 뛰어드는 것으로 이제 모든 게 사라지고 잿빛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단 한명의 대리자뿐이었다.

    ‘...김다혜...’

    유세현은 중력이 없어진 세계에서 관성에 의해 계속 날아가면서도 그녀가 사라진 장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

    속이 이상하게도 굉장히 메스껍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속에서 이리저리 난장판 치고 있는 듯한 감각.

    “욱...”

    유세현은 손으로 헛구역질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의 몸 상태가 왜 이런 것인지 그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이것도 특수특성에 의한 부작용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마음의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순간 천마나 마왕이 내뱉은 목소리가 아닌가 했지만, 이어져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것이 그들의 것이 아니란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너에게 있어서...]

    이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신, 본인이었으니까.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큭.’

    유세현은 계속되는 울림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아 깜깜해진 어둠속에는 과거 오열하던 자신이 서 있었다.

    그때의 자신은 정말로 무력감과 배신감에 정말 많이 절망해 하고 있었다.

    유세현은 그 이후 사람에게 기대를 걸지 않게 됐다. 믿지 않게 됐다.

    기대와 믿음을 갖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할지언정 실망을 안 해도 되었기에.

    이강호를 놔두고... 모든 것을 리셋했다.

    때문에 튜토리얼, 구름섬에서 김다혜를 다시 만났을 때 유세현은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할 수 있었다.

    감정을 담지 않으니, 뜻이 맞는다면 동료로도 뜻이 맞지 않는다면 적대자로도 취급할 자신이 있었다.

    마치 지나간 예전의 일은 현재에 있어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하지만 그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와 한 행동이었을까?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터였다.

    허나.

    ‘......’

    유세현은 생명체,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감정이란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타일러서 컨트롤이 되는 게 아니었다.

    감정이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본능 같은 것이니까.

    괜찮은 ‘척’ 할 수는 있어도, 결국 진짜는 아닌 것이다.

    [넌 그녀에게 마지막까지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어?]

    ‘......’

    두근- 두근-

    콰아아아아-

    유세현의 몸속에서 마력이 터져 나오며 또다시 폭주하기 시작했다.

    계속 지끈거리던 머리는 마치 누군가가 머리를 헤집기라도 한 것 마냥 당장이라도 깨질 듯이 아팠다.

    유세현은 끝없이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머리를 쥐어 잡고 발버둥을 쳤다.

    아프다. 너무나도 미칠 듯이.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마지막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안해. 세현아.]

    유세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건 지금 느끼는 그 어떤 고통보다도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왜, 어째서?

    지금까진 정말 괜찮고 상관없고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는데.

    “대체 왜...!!”

    그가 참지 못하고 거칠 게 외친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유세현의 볼에 흘러내렸다.

    ‘...눈물?’

    유세현은 그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마음 한구석, 한편에선 그녀에게 감정을 느끼고 있었노라고.

    자신은 사실 그녀를 질타하면서도 끝없이 자책하는 그녀를... 용서하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스스스스-

    어둠이 수그러들며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전신을 난자하던 고통이 깨끗하게 싹 사라졌다.

    * * *

    인간과 드래곤이 한데 섞여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무저갱의 주위.

    [죽어라, 인간!]

    후우웁-!

    크롸롸롸롸-

    브레스가 사방으로 쏟아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움직였다.

    한 부관이 외쳤다.

    “팀장님!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큭! 이대로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퇴각도 못하고 전멸입니다!”

    “지금 당장 퇴각해야 됩니다!”

    이에 거칠게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던 루시펠의 입이 꽉 다물렸다.

    확실히, 분개했으나 이제는 한계인 상태였다.

    더 이상 있다가는 100% 전멸. 아니, 사실 지금도 굉장히 위험하다.

    ‘여기... 까진가...’

    마음을 다잡은 루시펠의 눈앞에 순간 유세현의 환상이 아른거렸다.

    그를 위해 어떻게든 사수하고 싶었는데.

    루시펠은 쓰디쓴 입맛을 뒤로한 채 명령을 하달했다.

    “퇴각! 퇴각합니...”

    파짓-

    파지지짓-

    허나, 그 순간 장막이 와르르 무너지며 격렬하게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는 인간과 드래곤들 사이로 공간의 뒤틀림이 발생했다.

    “이, 이건!!”

    파바밧!

    그리고 드래곤과 사람들이 미처 뭘 하기도 전 그 속에서 인원들이 튀어나왔다.

    퀘루안과 김주희는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주위 전황을 순식간에 살폈다.

    둘의 희비는 순식간에 엇갈렸다.

    “크하하하하하! 역시 나의 동족! 제대로 하고 있구나!”

    “큭... 이 상황은...”

    퀘루안이 광소를 내뱉는 반면 김주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퀘루안이 곧장 김주희를 가리키며 사자후를 날렸다.

    “지금 튀어나온 저 여자!! 저 여자를 어떻게든 죽여라-!!”

    “큭!”

    김주희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곧장 무수히 많은 레드 드래곤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김주희는 싸우기 전 몸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스탯은 회복됐지만, 안타깝게도 마력은 고갈된 상태 그대로였다.

    ‘이런, 이렇게 되면...’

    육체적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야 된다.

    김주희는 일부러 속도를 늦춤과 동시에 회전하여 그 회전력을 이용해 달라붙은 세 마리를 걷어찼다.

    빠바박!

    “큭!”

    드래곤들은 이에 큰 충격은 입지 않았지만 설마 그런 엉성한 자세에서 반격을 가해올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풉.”

    김주희는 거기에 더해 그런 그들을 피식 비웃는 도발까지 했다.

    집중력을 어떻게든 흩트려 놓아야만 상대하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기에.

    “큭! 저런 머저리들 같으니! 어이-!! 제대로 해라! 여자를 얕보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도발은 퀘루안의 외침에 간단히 깨져버렸다.

    표정을 싹 바꾼 드래곤들이 서로를 향해 수신호를 보내며 재차 김주희를 둘러쌌다.

    본래라면 정수를 지니고 있는 김주희가 그들을 따돌릴 수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현재의 그녀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화르륵-

    곧 드래곤들의 손 주위로 거대한 화염구가 맺혔다.

    한 눈에 봐도 최소 8서클 이상 되는 고위 마법이었다.

    ‘이런, 저건 맞으면 안 돼. 어떻게든 돌파해야 해!’

    김주희는 어쩔 수 없이 진원진기를 사용할 생각을 가졌지만 그 순간 구원의 창이 하늘 위에서 바람을 가르며 툭 떨어졌다.

    쌔애애액-

    “...!!”

    “퍼져라!”

    펑!

    투창된 창은 고위 마법 수준에 비빌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창의 이름은 그 이름도 유명한 롱기누스.

    롱기누스는 비록 오르엠에게 권능을 회수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반 아이템들에 비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명한 능력은.

    스르륵-

    루시펠이 손가락을 쓱 들어 올리자 롱기누스가 스스로 움직여 그녀의 곁으로 돌아갔다.

    김주희는 곧장 엄지를 살짝 치켜세우며 다가온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아뇨, 뭘요. 그런데 주희씨 세현씨는 어디에 있죠? 당장 빠져나가야 되는데...”

    그 물음에 김주희가 짧게 침묵했다.

    루시펠은 씁쓸하기 그지없었으나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김주희가 등장했음에도 유세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부터 루시펠은 그의 죽음을 대충 직감하고 있었다.

    “주희씨, 일단 빠져나가는데 힘쓰도록 하죠.”

    “알겠어요.”

    “후방으로 빠질 겁니다. 따라오세요.”

    루시펠이 곧장 앞장서 달리기 시작하자, 김주희가 그 뒤를 허겁지겁 따랐다.

    “어딜!”

    허나 그들이 빠져나가려는 행색을 보이자, 드래곤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퀘루안이 명령했다.

    “브레스를 사용해서 퇴로를 막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하지만 저기엔 블랙과 골드가.”

    “적당한 위력으로 쏘면 알아서 피할 거다! 내가 책임질 테니 그냥 쏴!”

    “...네! 알겠습니다!”

    퀘루안의 명령의 본체로 변해있던 다수의 레드드래곤들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에 자칫 휘말리게 생긴 여타 드래곤들은 아연실색했다.

    “저, 저 미친 레드놈들이? 설마?”

    “피, 피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드의 파이어 브레스가 일대를 강타했다.

    이에 레드가 아닌 드래곤들과 사람들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그야말로 혼비백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알리크스와 실라우벨은 대놓고 퀘루안을 질타했다.

    “어이! 퀘루안! 이게 무슨 짓거리냐! 미쳤냐!”

    “닥쳐! 저놈들은 여기서 절대 놓치며 안 된다! 저놈들이 플란의 핵을 지니고 있단 말이다!”

    퀘루안의 외침이 마치 들으라는 듯 일대로 퍼져나갔다.

    “뭐? 플란의 핵을 놈들이?”

    “역시 던전 내부에 있었던 건가!”

    안 그래도 날카롭던 드래곤들의 눈은 순식간에 더욱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잡아라!”

    “인간들에게서 정수를 뺏은 자가 앞장 서!”

    퀘루안은 드래곤들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웃기 시작했다.

    그래, 절대 못 도망간다.

    그는 일을 크게 벌이지 않기 위해 곧장 블랙 드래곤 로드 드라프나우어에게 다가갔다.

    퀘루안이 오자 막 처리한 인간의 포켓에서 정수를 꺼낸 드라프나우어가 물었다.

    “그래, 퀘루안. 방금한 말 정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명령을 내려 휘말리게 한 것,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흠, 어차피 놈들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인데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만약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만약이란 게.”

    “......”

    퀘루안이 만약에 대해 운운하며 말했지만 드라프나우어의 반응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100명이 안 되는 인간 중 이미 50명이 넘게 사망했을뿐더러, 전투 도중 만약을 위해 병력을 일부 돌려 더욱 후방에 드래곤들을 배치해 두었기에 사실상 인간들이 도망칠 구멍은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쪼록, 알겠다. 공로가 있는 만큼 넘어가주도록 하지. 허나 다른 동급의 이들에게는 따로 사과할 수 있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퀘루안이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제 자신이 여기서 할 일이라고는 체력을 회복시키며 놈들이 전부 소탕되기를 관람하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가 고개를 채 들기도 전, 갑작스레 허공에 균열이 하나가 더 나타났다.

    “응?”

    주위에 있던 드래곤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더 나오나?’

    그렇게 드래곤들의 의문대로 균열에서 한명의 인물이 튀어나왔고, 이내 일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마眞魔(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