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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07화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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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공격은 페이크 없이 단순 오른쪽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대응이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는 너무 생각을 많이 한 탓이었다.

    지끈- 지끈-

    “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김다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실제로.

    ‘하, 한계야...’

    김다혜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되면 머지않아 온 힘을 잃고 허무하게 쓰러질 것이란 것을.

    “후욱... 후욱...”

    그렇기에 김다혜는 도박 수를 걸기로 했다.

    ‘한 번에 끝낸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야.’

    김다혜는 우선 마치 힘이 풀린 척 연신 부들거리던 왼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크윽.”

    그리고는 다급히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척 혼신의 연기를 했다.

    ‘제발... 제발 걸려라.’

    김다혜는 베테랑 대리자의 자존심이고 뭐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리우스가 제발 걸려들기를.

    지금까지 그녀가 본 아리우스는 굉장히 신중한 드래곤이었기에 자칫 의심하여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

    ‘기회군.’

    그러나 아리우스는 그런 김다혜의 생각이 무색하게 그녀에게 돌진해왔다.

    아리우스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하는 행동이 연기이건 아니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다혜의 자세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 저 상태에서는 나에게 뭘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슈슉!

    빠르게 김다혜에게 근접한 아리우스는 그 여느 때처럼 주먹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쭉 해온 게 있던 만큼 그는 그녀가 어떻게 방어를 하든 뚫고 들어가 끝낼 자신이 있었다.

    ‘자, 어떻게 나올 테냐. 검으로 가드 할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회피할 것이냐.’

    김다혜의 행동패턴을 순간적으로 수십 가지 예측한 그였지만, 다음 이어진 김다혜의 행동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특이행동이었다.

    순간적으로 검을 버린 김다혜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아리우스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무슨!!’

    아리우스는 순간 당황하여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가격했지만, 그녀는 회피하지 않았다.

    ‘이건 버틸 수 있어.’

    퍼억-!

    “욱!”

    아리우스의 공격은 특이한 신체를 이용해 특수하게 공격을 가하는 방식인 만큼 무게가 잘 실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김다혜가 반항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아리우스는 어차피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굳이 무게를 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컥!!”

    입에서 각혈을 토해낸 김다혜가 발과 팔로 고의 전신을 휘감으며 아리우스를 와락 붙잡았다.

    “이, 이게!”

    아리우스는 풀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우습게도 둘의 힘은 F랭크 10%로 동급인 상태.

    당연히 쉽사리 풀릴 리는 없었고, 김다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진원진기를 운용한 김다혜가 입을 쫙 벌렸다.

    ‘이런...! 이건!!’

    순간 사색이 된 아리우스가 다급히 모든 마나를 사용해 얼굴 주위로 방어막을 친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귀곡성이 그를 덮쳤다.

    * * *

    휘이이익-

    퍼엉!

    쿠구구구구!

    거친 폭풍과 함께 서로에게서 튕겨져 나간 김다혜와 아리우스가 지면을 나뒹굴었다.

    “크윽... 이, 이런 짓을 하다니...”

    중얼거리는 아리우스의 상태는 무척이나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폭풍의 칼날에 의해 난자 되어 피가 연신 흘러내리는 전신과, 새하얀 뼈가 드러난 이마.

    “크으으으...”

    아리우스는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지면을 아등바등 기었다.

    김다혜가 죽은 듯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으나, 코인이 튀어나오지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살아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가서... 처리하고 끝낸다.

    “흐아아압!”

    삐걱거리는 전신에 억지로 온 힘을 쏟아내어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우스가 절뚝거리며 김다혜를 향해 나아갔다.

    아리우스는 이 짧은 거리가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다.

    ‘허억... 허억... 어쩌다가 내가... 젠장. 설마 이 따위 방법을 쓸 줄이야...’

    그는 김다혜가 이런 방법까지 쓸 줄은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었었다.

    그런 근접 광역 공격은 자신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에 자살 행위와도 같은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으면 이긴다 한들 의미가 없지 않은가!

    ‘허억... 허억... 아무튼 이젠 정말 끝이다. 김다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도 없을게 분명 하...’

    그리 생각하며 나아가고 있던 아리우스의 눈동자가 순간 파르르 거칠게 흔들렸다.

    분명 꿈쩍도 못해야 정상인 김다혜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어, 어떻게? 말도 안 된다! 회복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불신으로 물드는 아리우스의 눈동자와 그런 그를 힘겹게 응시하는 김다혜.

    그런 김다혜의 눈가에는 하나의 알림창이 떠 있었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고유특성이 강제 발동됩니다.]

    [특성명: 회복]

    과거 백혈병을 앓았던 김다혜.

    지구에 있었을 적 그녀는 병을 고치기 위해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유세현에게 돌아가 다시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하지만 그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병은 판도라에 떨어지고 나서야 고쳐졌다.

    그리고 낫고 싶다는 평소 바람 때문이었을까?

    김다혜는 그 얻기 힘들다던 고유특성을 개화할 수 있었다.

    정말 미약하기 짝이 없는 쓸모없는 고유특성을.

    그녀의 고유특성은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때 정말 서서히 몸을 회복시켜주는 능력이었다.

    마치 죽게는 놔두지 않겠다는 듯.

    당연히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고 발현되는 일이 없었다.

    그쯤 다치면 보통 적에 의해 죽기 마련이다.

    체력 스탯이 C랭크를 넘겼을 때는 고유특성이 미처 발현되기 전 체력 스탯으로 회복되는 기본양이 훨씬 많았기에 이후로는 발현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방금 전까지는...

    쉬이이익-

    김다혜의 전신에서 녹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정말 미약하게나마 죽음에서 김다혜를 회복시키는 빛이었다.

    ‘큭! 설마 고유특성인가?!’

    비로소 눈치를 챈 아리우스가 입술을 곱씹었다.

    ‘하필 지니고 있는 고유특성이 회복형 고유특성이라니...’

    신경이 예리하게 날이 선 아리우스의 이마에 순간 힘줄 하나가 볼록 솟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잠시뿐이었다.

    ‘특성의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군... 저 정도 능력이라면 특성 중에선 최하급 중에 최하급.’

    김다혜의 특성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눈치 챈 탓이었다.

    하기야 대단한 능력이었다면 머저리가 아닌 바에야 진즉 사용했을 터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깨진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리우스는 마지막 공격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온 힘을 끌어 모아 집중했다.

    그리고 김다혜도 마찬가지로 포켓에서 예비용 검을 꺼내 집어 들고는 아리우스를 겨눴다.

    “후욱... 후욱...”

    “하아... 하아...”

    둘은 그 흔한 기합소리 하나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푹-

    퍽-

    스르륵.

    털썩-

    가슴에 검이 박힌 남성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지면에 툭 쓰러졌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치명상이었다.

    “간발의... 차였군...”

    아리우스가 목을 붙잡고 있는 김다혜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분할법도 한데 대단히 차분한 음색이었다.

    “하아... 하아...”

    이에 김다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둘은 적이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함께 던전을 헤쳐 온 동료이기도 했다.

    “네... 승리다. 김다혜.”

    아리우스는 그것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파바밧!

    코인이 몸에서 튀어나오고.

    트드드득!

    어떤 충격에도 변화가 없던 줄기에 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하아... 하아...”

    김다혜는 절뚝거리며 줄기로 향해 나아갔다.

    그녀가 앞에 다다르자, 영롱한 보랏빛을 발하는 꽃은 마치 주인을 반기기라도 하듯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김다혜는 그 꽃에 손을 올렸다.

    아이템명: 플란의 핵

    등급: 에픽 [??? Rank]

    상세정보: 플란이라 불리 우는 꽃의 핵입니다. 특수한 힘에 의해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플란의 핵.

    유세현이 그토록 찾고자했던 아이템.

    “하아... 하아...”

    호흡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김다혜였지만, 플란의 핵을 손에 쥔 그녀의 입에서는 미소가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유세현이 이것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녀가 마치 가보를 모시듯 플란의 핵을 조심조심 포켓에 넣은 찰나였다.

    파앗-

    다음 순간, 줄기가 반으로 쩍 갈라지며 정중앙에서 뿔피리처럼 생긴 악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김다혜는 조심스럽게 정보를 읽어보았다.

    아이템명: 기억의 피리.

    등급: 에픽 [??? Rank]

    상세정보: 기억을 담고 있는 피리입니다. 특수한 힘에 의해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아이템이었다.

    모아야 되는 아이템 리스트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플란의 핵과 똑같이 정보를 읽을 수 없는 아이템이었으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의외의 횡재.

    김다혜는 기억의 피리까지 챙긴 뒤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일행에게 가야한다.

    출구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녀가 몸을 돌린 바로 앞에는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이미 출구가 생성되어 있었다.

    출구는 총 두 개였다.

    ‘이건...’

    좌측 출구는 태초의 정원으로 이어진 출구로, 마치 3D 영화처럼 태초의 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홀로그램으로 투사되고 있었다.

    반면 우측 출구는 [EXIT], 태초의 정원이 아닌 완벽한 출구였는데 좌측과 달리 상황은 보여주지 않았다.

    두 개를 전부 살핀 뒤,

    좌측 문으로 다가간 그녀가 어지러운 머리를 휘휘 털며 홀로그램을 살폈다.

    내부의 상황은 상태가 좋지 않은 김다혜가 보기에도 매우 안 좋아 보였다.

    붕괴되는 땅과 그곳에서 서서히 기어 올라오고 있는 파수꾼들.

    점점 좁혀져오는 강력한 뇌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 죽일 듯이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드래곤의 전투.

    ‘이런... 놈들도 이 정원의 진실을 알아챈 건가. 내가 너무 늦었어...’

    김다혜는 어디로 가야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임무와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완벽한 출구로 가는 게 맞았지만, 방금 클로즈업 되어 화면에 잡힌 유세현이 너무도 마음에 걸렸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난... 난...’

    눈을 꽉 감은 김다혜가 그 상태 그대로 힘껏 문을 열어 재꼈다.

    * * *

    쿠구구구!

    콰과과과-

    무너져 내리는 대지와 모든 것을 휩쓸면서 다가오는 뇌전을 응시한 유세현은 자리를 옮기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

    “후우... 후우...”

    단순히 걷는 것임에도 뭐가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는 걸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당연히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필요한 꽃의 개수는 2개.

    자신이 목숨을 희생한다고 해도 1개가 부족하다.

    ‘어떻게 해야 되지? 고유특성을 사용해봐?’

    유세현은 순간 그런 생각도 가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명력이 1인 상태에서 목숨을 쏟아 부어봤자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괜히 자신을 극진히 아끼는 김주희를 위기에 봉착하게 만들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때였다.

    그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세현아.”

    태초의 정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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