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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05화 (4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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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포기해라 유세현! 넌 끝났다!!”

    라플라스가 힘찬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그 공격은 유세현이 보기엔 굉장히 틈이 많은 어설픈 공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그로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이런...!’

    빠악-

    “크윽!”

    털썩-

    결국 강타를 허용한 그의 한쪽 다리가 무너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젠장...’

    유세현은 다급히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 했지만,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육체는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라플라스가 눈을 번뜩이며 유세현에게 쇄도해왔다.

    ‘지금 끝낸다.’

    유세현이 이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유를 부릴 마음 따윈 1도 갖고 있지 앉았다.

    쉬이익-

    우악스러운 라플라스의 주먹이 유세현이 억지로 휘두른 칼을 밀쳐내고 그대로 목을 향한다.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이 순간 희비가 완전히 갈렸다.

    “세현씨!!”

    잔뜩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는 강희수와 유승혜.

    “후훗.”

    그저 쓰윽 입꼬리를 올려 웃는 퀘루안.

    하지만 라플라스의 날카로운 건틀릿이 목에 닿기 직전, 고개를 번쩍 치켜든 유세현의 눈동자가 순간 붉은 귀화를 발했다.

    그것은 그의 의지를 알리는 불꽃이었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진 않았는데...’

    천마의 충고가 순간 떠오르며 머릿속을 반복해 울린다.

    [그 능력은 다시는 사용하지 말거라.]

    하지만 유세현이 판단컨대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100% 죽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죽을 것이라면...

    ‘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죽는 편이 훨씬 낫다.’

    유세현은 각오를 재차 다졌고, 그런 그의 눈동자를 본 라플라스는 순간 흠칫했지만 하던 행동을 멈추진 않았다.

    ‘아닛?!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아니야. 상관없다. 어차피 이걸 맞으면 끝이다!!’

    그는 되려 주먹에 더더욱 힘을 실었다.

    동시에 유세현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새크리파...]

    하지만 그 순간.

    두근-

    콰아아아아아아-

    심장에 엄청난 격통이 오며 미친 듯이 흔든 콜라가 마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에서 뿜어지는 것처럼, 유세현의 전신에서 어둠이 터져 나왔다.

    “...!!”

    “아닛?”

    눈, 코, 입 그리고 귀에서까지.

    “크아아아아아악!!”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유세현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라플라스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하고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고유특성 자체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어둠...!!’

    콰과과과과!

    “이런 저게 뭐야!”

    “자, 자리에서 벗어나라!”

    어둠은 주위에 있는 것을 순식간에 너나 할 것 없이 부패시키며 갉아 먹었다.

    F랭크 10%로 마력이 제한되어있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근접해 있던 라플라스는 반응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휘말려 썩어 문드러졌을 터였다.

    ‘내 거, 건틀릿이...!! 주, 죽을 뻔했다...’

    순식간에 삮아버린 건틀릿의 날을 본 라플라스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러는 동안 심장을 쥐어 잡은 유세현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발광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며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도 비명하나 지르지 않는 유세현의 평소 행실로 보자면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퀘루안은 물론이거니와 인간 진형에 속해 그의 무수한 무용을 직접 경험해왔던 강희수나 유승혜조차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퀘루안님 이제 어떻게...”

    “뭘 어떻게 해! 저놈은 놔두고 나머지 둘을 처리해!”

    순식간에 판단을 내린 퀘루안이 강희수와 유승혜를 가리켰다.

    “예, 예! 알겠습니다!”

    드래곤들은 그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순식간에 둘을 에워쌌지만, 다음 순간 절벽의 저편에서 정체모를 무엇인가가 드래곤들을 향해 날아왔다.

    슈슈슉!

    “음?!”

    눈치가 빠른 드래곤들은 다급히 도약하여 그것을 회피해냈지만 당황을 금치 못한 표정까지는 숨기지 못했다.이런 공격은...

    ‘대리자다!’

    ‘왜 우리만??’

    ‘설마, 인간 측의 지원군? 이 상황에?!’

    퀘루안이 눈동자가 재빨리 날아온 스킬들을 훑었다.

    얼음 창, 불의 화살, 아이언 스톤 등등 날아온 스킬은 각양각색이었다.

    한 놈이 한 개의 스킬을 쏜 것이라 가정한다면 최소 3명.

    “물러난다.”

    “예? 3분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유승혜와 강희수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난다.”

    추가된 적이 3명일 경우, 천재지변과 파수꾼 때문에 체력과 마력이 고갈된 상태인지라 자칫 괴멸당할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물러나는 게 맞는 판단인 것!

    “유세현... 운이 좋았군. 아니, 좋은 건 아닌가.”

    괴로워하는 유세현을 향해 툭 한마디 내뱉은 퀘루안이 자리를 떴고, 바로 드래곤들이 뒤를 따랐다.

    이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유승혜와 강희수는 호흡을 고르며 조력자로 추정되는 이가 있던 장소를 주시했다.

    조력자는 드래곤이 멀찍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 저벅-

    제일먼저 둘에 눈에 비친 것은 새하얀 창.

    강희수와 유승혜가 잔뜩 화색이 되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팀장님!”

    * * *

    “오랜만이네요. 희수씨 승혜씨.”

    “티, 팀장님... 세현씨가...”

    조력자의 정체는 그들이 속해 있던 팀의 총괄자 김주희였다.

    김주희는 다가오기 무섭게 유세현의 상태를 눈으로 흘끔 살폈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심각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게 눈에 띄었다.

    “어, 어떻게 하죠 팀장님? 도와주고 싶어도 접근할 수가 없어서...”

    “...확실히. 지금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 보이네요.”

    “......”

    “선배님은 강한 사람이니까 놔두면 점점 괜찮아질 거예요.”

    “하지만 저런 상태는 지금껏 본적이...”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님에 대해선 제가 두 분보다 훨씬 더 잘 아니. 그러니 지금은 진정하시고 이제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길길이 날뛰는 게 아닐까 한 김주희는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유세현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그 누구보다 걱정스러웠지만, 자신까지 불안해하면 저 둘은 더욱 불안해할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속내를 숨기고 후일을 위해서 상황을 듣는다.

    그녀가 아는 유세현이라면 그랬을 터였다.

    “그게.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면...”

    김주희가 단호하게 말해서 그럴까?

    둘은 금방 진정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간추려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초에 일어났던 일이 별로 없었던 만큼 설명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유세현의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 속에서 비로소 이야기를 전부 경청한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군요.”

    “예. 그런데 팀장님... 하나 여쭈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하세요 희수씨. 뭐죠?”

    “팀장님이... 전부신가요? 아까 날아온 스킬을 보니 각양각색이던데...”

    그렇게 묻는 강희수의 입가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원군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에 김주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혼자입니다. 그 스킬들은 상대를 혼동시키기 위해 제가 일부러 그렇게 변형시켜 날린 거예요. 나머지 분들은...”

    김주희는 굳이 끝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다.

    침울해진 강희수는 순간 고개를 떨궜다.

    “...그렇군요... 하긴 있었으면 진작 말씀해주셨을 텐데. 괜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번엔 팀장님이 겪었던 일을 말씀해 주세요.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훨씬 나을 테니.”

    “그러도록 하죠.”

    생각보다 강희수와 유승혜의 정신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느낀 김주희는 곧장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나갔다.

    “제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김주희 또한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홀로였다.

    물론 유세현이 김다혜의 팀과 만난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5명을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그럼 여섯 명이서 다니신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 후 그녀는 유세현이 그랬던 것처럼 단서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분들과 똑같았습니다. 생존자나 단서는 커녕 개미새끼하나 찾을 수 없었죠.”

    겪은 일은 똑같았다.

    그리고 그와 중 마주친 두 명의 드래곤.

    김주희는 그들을 충분히 처리할 여력이 되었지만 그러지 않고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이곳은 너무 넓어요. F랭크 10%의 스탯으로는 도무지 전부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이해해요. 저희도 그래서 지금까지 드래곤과 동맹을 이어온 거거든요. 배신당했지만...”

    “아무쪼록 저희는 희수씨나 승혜씨와 달리 딱히 던전 같은 단서도 찾지 못했어요. 대신... 다른 걸 찾았지만요.”

    “다른 거요?”

    “예, 그리 멀지 않은 최근이었어요.”

    당시 김주희는 무척이나 막막해 하고 있었다.

    남은 기간은 얼마 남지 않은 데에 반해 알아낸 것이 1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대지진이 일어나고 파수꾼의 습격이 이어졌다.

    “거기서 팀원 로울씨가 사망했어요. 저희에게는 퀘루안 같은 능력을 지닌 이가 없었거든요.”

    “...로울씨가...”

    “이변을 알아챈 건 다음날이었어요.”

    그렇다.

    비석의 위, 언제나 부동의 자세를 취하던 꽃봉오리에 꽃이 개화해 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의심에 불과했지만 추가로 올라프씨가 파수꾼의 공격에 죽고 나서 생각이 맞았다는 걸 깨우쳤죠.”

    “...전투가 발생했겠네요.”

    “아뇨,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꽃봉오리의 총 개수가 10개인 탓이었다.

    “우리의 총 인원은 다해서 여섯. 이미 개화된 두 개의 꽃을 합쳐도 모자란 개수였죠. 거기에 더해 파수꾼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원이 최대한 많은 편이 좋았습니다.”

    표적으로 설정당한 한 사람이 미끼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동안 도망친다.

    이것이 그간 김주희가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나머지 분들은 이번 대붕괴 때 전부 사망했습니다.”

    “......”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빙제가 전수해준 신공, 빙백신공 덕분이었다.

    빙백신공은 내공심법의 그 특수성 덕에 낮은 체온에서도 평소처럼 활동이 가능했는데, 평소 온도를 낮추고 다녔던 그녀는 공격 대상에서 매번 후발로 밀렸고, 마지막엔 이를 깨달은 김주희가 지면과 동일하게 체온을 맞춤으로써 공격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을 찾게 되었죠.”

    김주희는 그것을 끝으로 담담히 말을 마쳤다.

    강희수와 유승혜는 이에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더하면 더했지 자신들보다 결코 덜한 고통을 겪지 않았으므로.

    아니 당최 유승혜와 강희수가 김주희 쪽에 떨어졌더라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였다.

    태초의 정원에 떨어진 것을 원망한 둘이었지만 지금 둘은 자신들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김주희가 시선을 돌려 유세현을 응시했다.

    유세현은 시간이 흐른 아직까지도 폭주하고 있었지만, 상태는 조금이지만 호전된 상태였다.

    “선배...”

    “크으으윽!”

    “선배는 이겨낼 수 있어요.”

    김주희가 작게 중얼거렸고, 그런 말이 도움이 된 것일까?

    그 후 유세현의 어둠은 빠르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태초의 정원(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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