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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99화 (48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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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저게 알림창에 뜬 파수꾼?”

    “마, 말도 안돼. 무슨 크기가...”

    파수꾼이 지상에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유세현을 포함한 모든 인원들은 퀘루안의 말마따나 숲으로 몸을 숨기면서도 파수꾼에게서 감히 눈을 떼지 못했다.티탄조차도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육체.

    태평양 같은 넓은 어깨와 사각의 복부 아래로 달려있는 기다란 팔과 다리.

    파수꾼은 전체적으로 각이 져있는 전형적인 마법 골렘의 형상을 띠고 있었으나 크기나 위압감은 골렘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차례 차원이 달랐다.

    우르르 쾅!

    파수꾼은 벼락이 몸체에 직격함과 동시에 활동을 개시했다.

    지잉-

    파수꾼의 눈에 샛노란 불이 들어오고 목 관절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꺾인다.

    목을 아래로 굽힌 파수꾼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의 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숲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저, 저 놈 설마,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쉿, 조용히 해라. 설마가 드래곤 잡으니.”

    벼락과 폭우, 강풍으로 인해 주위가 무척이나 시끄럽고 부산스럽기 그지없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정상일 터지만 그들은 이곳의 환경이 환경이니만큼 모두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이윽고 이어서 파수꾼이 거대한 팔을 구름 너머로 치켜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모두의 표정은 단번에 일그러졌다.

    저 행동은...!

    “여, 염병할! 뛰어!!”

    슈우우욱!

    “으아아!”

    콰아아아앙!

    단순히 손바닥 내려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방금 전까지 몸을 숨기고 있던 일대가 거목과 함께 납작 찌그러졌다.

    만약 1초만 늦었더라도 그들 전원은 여기서 생을 마감했으리라.

    휘이이잉-!

    강렬한 풍압이 그들의 등살을 떠민다. 그들은 그것을 추진력삼아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연이어서 파수꾼이 다른 한 팔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열심히 뛰었으나 그들은 아직 제자리에 있는 파수꾼의 공격 범위에서조차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이딴 게 어딨어!”

    “큭!”

    “저, 전원 산개해서 회피해라!!”

    파바밧-

    직선으로 달려가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그 덕분에 파수꾼의 행동엔 일순간 망설임이 생겨 그들은 전원 회피가 가능했다.

    일격을 5m 차이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드래곤, 드레보스가 이를 악물었다.

    ‘미, 미친... 이건 아니야...’

    그의 눈동자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심에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파수꾼의 팔이 재차 치켜 올라갔다.

    이번에는 양팔이었다.

    인원들은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건 누구는 무조건 죽는다!’

    양팔을 모아 한곳을 공격한다고 가정했을 때 단순계산으로 범위는 두 배.

    그건 대리자들의 현 스텟으로는 도무지 회피할 수 없는 범위였다.

    쉬이익!!

    굉음과 함께 인원들의 머리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번 목표물은... 드레보스였다.

    “아, 안돼... 이건 도무지...”

    드레보스는 절망하여 자리에 멈춰 섰다.

    그 거대한 팔이 드레보스에게 다다르기 직전이었다.

    퀘루안이 눈을 번뜩이며 드레보스를 향해 팔을 뻗었다.

    쉬익-!

    그리고 그 순간.

    후웅!

    파수꾼의 팔이 난데없이 뚝 멈춰 섰다.

    드레보스 머리로부터 정확히 3m위 지점이었다.

    휘이잉!

    “큭!”

    덕분에 드레보스는 이어진 풍압에 의해 지면을 구르면서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드레보스가 어리둥절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퀘루안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먹힌다. 내 특성이.’

    퀘루안이 모두를 향해 외쳤다.

    “전원! 내 곁으로 모여라!”

    * * *

    쿵! 쿵! 쿵!

    침입자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는지 파수꾼이 그 기다란 다리를 움직여 저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파수꾼은 워낙 거대했기에 일행의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지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세현과 드래곤들은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군.”

    “퀘루안님 덕분인 줄 알아라.”

    유세현이 중얼거리자 드래곤들이 잔뜩 생색내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유세현은 이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퀘루안을 응시했다.

    놈은 자신들을 왜 살려준 것일까.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지만 그런 상황에서 드래곤인 퀘루안이 자신의 특성을 밝히면서까지 인간인 유세현 일행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딱히 없었다.

    심정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퀘루안이 툭 말했다.

    “이걸로 쌤쌤이다. 앞으로 잘해라~”

    “......”

    유세현은 그 한마디에 단번에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던전을 발견한 건 인간인 김다혜.

    트랩 던전이라고 추측을 하긴 했으나, 그들이 나와 보고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확한 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었다.

    퀘루안은 인간을 잃는 것조차도 전력 상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확실히... 나라도 그랬을 테지만.’

    놀라운 건 성격이 파타난 듯한 행동을 보이는 퀘루안이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것.

    이전 무저갱 전투에서 보여준 순간 판단력도 그렇고...

    ‘저 모습은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한 연기인 건... 큭!’

    퀘루안에 대해 분석하던 유세현은 또다시 훅 올라온 격통에 심장을 부여잡았다.

    가뜩이나 유승혜와 강희수를 살리기 위해 무리를 한 상태에서, 한 번 더 무리를 한 탓인지, 유세현은 도무지 몸이 가눠지지 않았다.

    “끄으으으...”

    “야, 힘들면 버티지 말고 그냥 곱게 기절해라. 어차피 다 기진맥진이라 좀 쉬어갈 거니까.”

    “퀘루...”

    “아, 맞아! 야 그런데 기절하기 전에 나 육포 좀 주고 기절하면 안 되냐? 생명의 은인인데? 솔직히 한 두개는 괜찮잖아?”

    “......”

    저 육포에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고...

    유세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육포...는 없다...”

    “뭐?”

    그러자 퀘루안은 마치 청천벽력을 맞기라도 한 사람 마냥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번에 다가온 퀘루안이 마치 항의 하듯 유세현의 어깨를 붙잡고 격렬히 흔들었다.

    “야! 육포가 왜 없어? 응?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었잖아! 어? 나한테 안 줄 거라고 했잖아! 그거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니었어?”

    “야! 퀘루안! 그 손 안 놔? 지금 세현씨 힘들어하는 거 안 보...”

    “아놔! 아무 도움도 못 된 여자는 좀 빠져!”

    “......”

    “야, 유세현! 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

    “...가지고 있었지만...”

    “있었지만?”

    “줬다.”

    “줘? 갑자기 그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 아! 설마?”

    무슨 말인지 비로소 알아 챈 듯한 퀘루안의 반응에 유세현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육포는 김다혜씨가 가지고 있다.”

    “안돼에에-! 내 육포오오-!!”

    퀘루안의 이상한 절규가 숲을 울렸다.

    * * *

    던전의 입장한 아리우스와 김다혜.

    두 존재는 내부로 들어서기 무섭게 불같이 움직여 외벽의 형태나 지형을 알아보는 등등 던전 입장 시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빠르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흠, 기본형 던전인가?”

    “일단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이긴 하네.”

    기본형 던전이란 내부로 들어가면 하늘부터 시작하여 날씨, 지형 모든 것이 확 변하는 최상위 던전과 달리, 외부의 모습 그대로 내부가 따라가는, 판도라 초기 때나 볼 수 있는 던전을 뜻했다.

    당연히 이상했기에 그들은 일단 조심조심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거지?”

    “모르겠어. 아리우스, 스킬에 뭐 감지되는 거 없어?”

    “전혀 없다. 김다혜, 넌 어떻지?”

    “나도 마찬가지야.”

    “정신 똑바로 차려라, 김다혜. 한 순간에 죽게 되는 수가 있으니.”

    “알고 있어. 당신도 주의해.”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둘의 경계심은 오히려 더 깊어져만 갔다.

    둘은 마치 진짜 오랜 동료처럼 서로 양옆을 경계해주고 봐주며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한 시간이 더 흐른 뒤, 나란히 가고 있던 아리우스의 오른쪽 발이 지면을 밟은 순간이었다.

    덜컥!

    드르륵!

    갑자기 밟은 바닥이 움푹 들어가더니 동굴 천장과 양옆 외벽이 전부 활짝 개방됐다.

    “...!!”

    “이런!”

    슈슈슉!

    화살이 사방에서 발사됨과 동시에 김다혜가 아리우스의 몸을 순간적으로 확 잡아끌었다.

    트드득! 턱!

    그 덕에 둘은 지면 데굴데굴 나뒹구는 신세가 될지언정 다행히도 피해를 입진 않았다.

    “후우... 후우...”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난 아리우스가 김다혜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설마 마력이 아닌 원시적으로 작동하는 트랩이 있을 줄이야...”

    “조심해. 다음번엔 못 구해줄 수도 있어.”

    “알았다. 백 번 주의하도록 하지.”

    대화만 듣고 있자면 정말 영락없는 동료.

    아니,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이들이 본다면 필히 두 존재들을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동료라고 판단할 터였다.

    생사의 존망이 걸려있는 던전의 공략, 둘은 힘을 합쳐 계속해서 트랩을 파해해 나갔다.

    * * *

    김다혜와 아리우스가 던전에 들어간 지도 오늘로 10일째.

    쿵! 쿵! 쿵!

    거대한 울림이 땅에 울려 퍼지더니 유세현과 퀘루안 바로 오른편에 흡사 거암 같은 거대한 발이 툭 떨어졌다.

    파수꾼이 단순히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적 현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과 드래곤에게는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놈이 완전히 사라지자 퀘루안이 승질을 버럭 냈다.

    “아오!! 저놈의 파수꾼,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그간 그들의 10일 간의 행보로 알아낸 것은, 파수꾼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다섯 마리 이상.

    한 번에 두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난 적이 있었고, 한 놈이 사라진지 얼마 안 되어 사라진 반대편에서 다른 파수꾼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이제는 풀뿌리도 마음 놓고 못 뽑아 먹겠네.”

    퀘루안의 고유특성은 분명 대단했으나,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지 오래된 지금 오랫동안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현재 그들은 생존에만 치중하기에도 무척이나 벅찼다.

    “크윽...”

    유세현이 털썩 한쪽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10일이 흘렀음에도 영양 상태 때문인지 이전과 달리 전혀 회복이 안 되고 있었다.

    “어휴... 아주 잘하다 잘해. 또냐? 그냥 차라리 업혀서 다니지?”

    이 모습을 본 퀘루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깥에 있을 때 놈이 저랬더라면 쾌재를 불렀을 터지만, 지금은 우습게도 얼마 없는 전력 중 하나였다.

    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

    퀘루안은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방도를 모색해보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역시 그 둘이 복귀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걔네들이 들어간 장소는 무너져 내렸는데...’

    아리우스와 김다혜가 클리어하고 나온다 하더라도 어디에 나타날지 도무지 예측이 안 된다.

    “으아아아! 제기라아아알!”

    결국 폭발한 퀘루안이 발광을 일으켰다.

    이에 라플라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골머리를 붙잡았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이런 임무를 맡아서...’

    임무고 자시고 당장 죽게 생겼으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후우...”

    “하아...”

    한숨이 전염병처럼 도지며 무기력함이 모두를 뒤덮는다.

    이대로 있으면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퀘루안... 일단 움직이는 게 어떻겠나.”

    “어디로 임마! 어차피 어딜 가든 다 똑같은데! 내가 생각 안 해본 줄 아냐?”

    “......”

    “아무튼... 일단은 좀 더 체력을 회복...”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지면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또 뭐야?!”

    그리고 그 여느 때와 같이 터져 나오는 퀘루안의 짜증과 동시에.

    저 멀리 하늘을 뒤덮고 있던 적란운 사이에서 파수꾼보다 더욱 거대한, 크기가 추정 불가능한 거대한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비석은 사람들이 반응할 새도 없이 마치 메테오처럼 불꽃과 함께 지상을 향해 낙하를 시작했다.

    후우웅!

    “미, 미친!”

    “배, 배리어를 쳐!”

    콰아아앙!!

    이윽고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지면에 꽂히는 비석.

    “으으!”

    그들은 다급히 날아올 고열과 후폭풍에 대비했다.

    태초의 정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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