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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96화 (48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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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무후무, 이강호의 회귀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드래곤과의 동맹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퀘루안이 마치 이 순간을 기념하듯 크게 박수를 쳤다.

    “하하하,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는 곧장 이어서 유세현 일행들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방금 전까지 잔뜩 닦달한 것 치고는 너무도 넉살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리고 그러한 괴리감에 김다혜와 유승혜, 강희수는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말처럼 동맹을 맺었으니 놈의 말대로 다가가긴 해야 했지만...

    마치 손바닥 뒤집듯 기분이 휙휙 바뀌는 저 미친 드래곤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다면?

    접근했는데 만약 다짜고짜 공격을 감행해온다면?

    이곳으로 오며 이렇게 될 것을 줄곧 각오한 그들이었지만, 그들도 생명체였기에 불안한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이~ 안 올 거냐?”

    이에 퀘루안은 재미없다는 듯 넌지시 한마디를 내뱉으면서도 마음속으론 웃음을 삼켰다.

    ‘크크크, 됐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퀘루안이 일부러 의도하여 만든 상황이었다.

    평소 불같이 보이는 자신의 성격과 연기를 살짝 섞어.

    상하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주도권을 확실히 가지기 위하여.

    퀘루안은 마무리를 지을 생각으로 실망했다는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허... 이럴 거면 왜 동맹을 맺겠다고 한...”

    하지만 그가 채 다 말을 내뱉기 전.

    “거기까지 해라.”

    사뿐히 지상에 착지한 유세현이 천천히 퀘루안의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떨림 하나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지만 우리가 너희들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너희들도 그럴 테고.”

    “......”

    “그보다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뭐 알아낸 게 있나?”

    어느새 유세현은 다급히 뒤따른 동료들과 함께 퀘루안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퀘루안은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팔을 못 쓰게 됐음에도 저 태도라니. 역시 리더는 리더인가.’

    “아니, 전혀 없다. 그쪽은?”

    “우리도다.”

    “설마 숨기는 건 아니겠지?”

    “그쪽이야 말로.”

    고도의 신경전이 포함된 단문단답 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어떤 경로로 이동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수색했는지.

    그리고...

    “너희들 생각보다도 안색이 좋군. 최근까지 식량을 잘 섭취한 듯한데 어디서 얻었지?”

    “원래 지니고 있던 것으로 연명했다. 다른 식량은 우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뭐?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드디어 음식을 구할 수 있을까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퀘루안의 눈빛이 답을 듣기 무섭게 단번에 험악하게 돌변했다.

    스테이터스가 높아진 대리자들은 영양원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기에, 많은 식량을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스테이터스라면 모를까, F랭크 10%로 격하된 현재, 가지고 있던 식량으로 20일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퀘루안의 상식선에선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것.

    현재 굶주린 퀘루안에게 식량문제는 무척이나 민감한 사항이었다.

    “어이, 처음부터 이러면 우리 동맹은...”

    기분이 나빠진 퀘루안이 뭐라 더 말하려던 찰나였다.

    “이게 증거다.”

    포켓에서 육포를 꺼낸 유세현이 퀘루안을 향해 쓱 내밀었다.

    퀘루안은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감히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미, 미친놈인가? 아직도 남아있는 게 있다니... 대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양을 들고 다닌 거야?’

    여타 드래곤들도 그 사실이 여간 놀라운 게 아닌지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육포를 봐라봤다.

    퀘루안이 살며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좀 줘 봐라. 동맹이지 않냐.”

    유세현은 단호히 잘랐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이건 동맹를 맺기 전부터 내가 지니고 있던 개인 식량이다. 줄 이유는 없다.”

    “......”

    그 말에 퀘루안의 입이 쏙 다물어졌다.

    다른 드래곤들의 어깨도 미약하게나마 축 쳐졌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드래곤들은 생각보다 더 배고픔에 굶주려있었다.

    유세현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잘만 하면 이것을 이용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드래곤과의 불편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 * *

    “그쪽도 다 왔나?”

    “그렇다.”

    “좋아. 그럼 기록저장 장치를 꺼내라.”

    퀘루안의 말에 따라 여타 드래곤과 유세현의 팀원이 청렴결백한 정보전달을 위해 드래곤에게서 지급 받은 조작 불가능의 고급 기록저장 장치, 탈리스만을 품에서 꺼냈다.

    “그럼 라플라스부터 보고를 시작해라.”

    “그러도록 하지.”

    툭 대답한 라플라스가 탈리스만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탈리스만은 오늘 라플라스가 본 것들을 3D로 빠르게 투사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전부 다 그저 숲을 거니는 모습뿐이었다.

    라플라스가 영상에 맞춰 보고를 일축했다.

    “발견 한 것 없음, 특이사항 없음, 이상.”

    “젠장... 다음.”

    보고는 순번대로 차근차근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보고가 전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한결 같았다.

    “발견 한 것 없음, 특이사항 없음, 이상.”

    “......”

    “......”

    마침내 유세현을 끝으로 보고가 전부 끝나자, 풀벌레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숲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이 동맹을 맺은 지 5일 째.

    그들은 2인 1개 조로 하여 이전보다 몇 배나 넓은 지역을 조사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한 드래곤이 중얼거렸다.

    “젠장... 1인 1개 조로 바꿔야 하나?”

    2인 1개 조 체제도 원래 사실은 혹시 모를 천재지변이나, 배신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다.

    서로 견제하지 않고 6팀을 운용하다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남은 일수는 75일... 아니 74일인가?”

    “후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솔직히...”

    “숲의 크기가 짐작이 안돼.”

    “퀘루안님.”

    판단을 맞기겠다는 듯 이하 드래곤들이 퀘루안을 묵묵히 봐라봤고, 강희수나 나머지 사람들 또한 유세현을 차분히 응시했다.

    “......”

    퀘루안과 유세현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이내 두 인물이 동시에 말했다.

    “1인 1개 조로 해서 더 범위를 넓혀 조사하도록 하지.”

    * * *

    무저갱이 방벽에 의해 격리 된지 어느덧 50일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췄던 골드의 대표 알리크스와 실버의 실라우벨은 일부 용들만 대동한 채 조심히 자리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실라우벨이 알리크스를 향해 물었다.

    “알리크스, 그래서 일은 잘 되어가나?”

    “어, 어제 마침내 두 명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호오, 그래? 결정을 꽤나 쏠쏠히 얻었겠군.”

    “훗, 그렇지.”

    사냥감은 당연히 인간이었다.

    “인간 놈들, 역시 그곳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인 것 같다. 예상대로 인원을 줄이고 팀을 늘려서 경계범위를 넓혔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위해 정보를 얻어놓기 위함이겠군.”

    “그렇지.”

    “크크크, 바보 같은 지휘관.”

    이전 레드와 인간의 격돌로 알리크스와 실라우벨은 그들이 결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정을 지니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크지.’

    ‘그냥 맞붙게 되면 필히 엄청난 피해를 볼 터.’

    그들이 빠르게 물러났던 것도 이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은거한 그들은 주위 지형을 파악함과 동시에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기에 인간진형은 뭔가가 이상했다.

    그냥도 아니고 무척이나.

    ‘왜 퇴각하지 않는 거지? 아니 왜 제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고 있는 거지?’

    이상 현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퇴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뭐? 퀘루안이 행방불명이라고?”

    “예, 저와 같이 빛에 휩쓸리셨는데 그 직후 완전히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아마 격리된 공간 속에 빨려 들어간 게 아닐까 추측됩니다.”

    “오호, 그래서 너희도 이 금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던 거로군. 인간 쪽도 그렇겠고.”

    “예,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무저갱 중심부 쪽에 계시는 로드님과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습니다.”

    “하긴 당연히 그렇겠지.”

    “퀘루안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 지역을 사수하는데 부디 힘을 빌려 주십시오. 알리크스, 실라우벨님.”

    “흐음, 글쎄...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 걸?”

    “예?”

    “퀘루안이 그렇게 된 건 지 멋대로 나섰기 때문이다. 인과응보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 맞아. 멋대로 한 대가다. 그러니 도와줄 의무는 없어.”

    “......”

    “뭐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로드와의 연결이 끊기 블랙 쪽에서 필히 나서줄 게 분명하니.”

    그렇게 무심하게 통보한 알리크스와 실라우벨는 그대로 레드드래곤 진형을 떴다.

    그리고 인간사냥을 위한 발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레드와 조만간 몰려들 블랙 때문에 필히 경계지역을 넓히려 할 거야. 그때가 기회다.”

    “후후, 알리크스 네가 남서쪽을 맡아라. 내가 남동쪽을 맡지.”

    “좋아. 괜찮군.”

    그들은 그렇게 기다렸다.

    경계와 수색지역을 넓힌 그들에게 틈이 생길 때까지.

    “후후후, 나 같았으면 그냥 버렸을 텐데.”

    “무정하군.”

    “합리적인 거다, 실라우벨. 이것 봐라 지휘관이 저따위니 이 귀한걸 우리에게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았나.”

    알리크스가 결정을 만지작거리며 히죽 웃었다.

    “실라우벨 너희 쪽에도 조만간 기회가 올 거다. 확실히 잡아라.”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좋아, 그럼 해산하도록 할까.”

    “그러도록 하지.”

    이윽고 알리크스와 실라우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 * *

    “팀장님! 서쪽 맨 끝을 경계 중이던 레겐씨와 리샤씨가 실종됐습니다!”

    “레겐씨와 리샤씨가?”

    다급히 들어온 보고에 예상보다 더 길어지고 있는 대치에 대한 대책을 구상하고 있던 루시펠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염려하던 일이 기어코 발생한 탓이었다.

    “그녀들이 사라진 곳 주위가 무엇인가에 의해 녹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애쉬드브레스를 사용하는 드래곤의 소행임이 분명합니다.”

    “그럼 골드일 확률이 높군요.”

    “예.”

    “실종된 시간은?”

    “놈들이 뭔 짓을 했는지 팀원들이 멀지 않는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그녀들이 사라진 걸 아무도 몰랐다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 외에는?”

    “다른 보고는 아직 없...”

    그때였다.

    타다다닥!

    레드지역, 전방을 맡고 있는 조의 조원 한 명이 허겁지겁 막사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그가 다급히 외쳤다.

    “팀장님! 레드가 있는 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지점에 블랙 드래곤 다수가 출현했습니다!”

    “블랙이? 정확히 몇이죠?”

    “30마리입니다!”

    수를 들은 루시펠이 미간이 스르륵 좁혀졌다.

    30마리면 많은 숫자는 아니다만 그렇게 적은 수도 아니었다.

    ‘레드를 지원하기 위해 온 건가? 설상가상이군.’

    하지만 그들은 결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직 밀린다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전면전은 여전히 섣불리 못 걸어올 터.

    ‘하지만 만약 병력이 계속 충원이 된다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야 된다.

    아니면 이쪽도 지원이 오던가.

    “후우, 알겠습니다. 1조는 계속해서 놈들의 동향을 감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그리고 라필드씨.”

    “예.”

    “지금부터 제 10팀과 9팀을 이끌고 가 레겐씨와 리샤씨가 있던 지역 주위를 샅샅이 조사해주세요. 은거지가 있을 확률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경계가 많이 허술해집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할 순 없어요.”

    “하긴...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게 답한 라필드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루시펠은 막사 내에 모든 인원이 사라지자 대충 만든 간이식 의자에 등을 기대곤 머리를 식혔다.

    ‘현재로써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남은 건 유세현이 한시라도 빨리 귀환하는 걸 기다리는 것.

    “세현씨...”

    루시펠은 조용히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태초의 정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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