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90화 (476/612)
  • -------------- 484/606 --------------

    콰광!

    산산조각 부서지는 일대와 대기를 뒤덮는 고열의 화염.

    “큭! 젠장할! 위치를 파악 해!”

    갑작스러운 급습에도 사람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적은 분명 끔찍하기 짝이 없는 존재임이 분명했으나, 허둥대기에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겪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

    ‘보통의 상황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우리에겐...’

    ‘그게 있다!’

    이강호와 그의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획득해온 패널티를 제거시켜주는 결정.

    “N62 방향이다!”

    휘이잉-

    기척을 읽은 한 여성의 외침과 동시에 거센 바람이 일대에 휘몰아쳤다.

    우거진 나무 위로 본체화를 한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낸 것.

    사람들은 곧장 반격을 위해 자세를 취했으나, 그들의 진형은 처음에 날아온 마법으로 꽤나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그들의 대응보다도 드래곤의 후속타가 먼저였다.

    후웁!

    콰과과과과과!

    입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화염 브레스가 일대에 쏟아진다.

    천마군림보를 운용하여 다급히 회피한 유세현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젠장, 어째서... 놈들이 이렇게 접근할 때까지 모를 수 있던 거지?’

    특수한 고유특성을 지닌 놈이 드래곤 쪽에 있는 것인가?

    그것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의 타파.

    유세현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 마력을 읽기 시작했다.

    적의 규모는 아직 전부 파악하지 못한 상황.

    적의 규모를 알아야지만 보다 대응하기 용이하다.

    그리고 적을 인지한 이상 유세현은 집중만 한다면 충분히 놈들의 수를 읽어 낼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심장에 부하가 걸려도 버텨낼 수 있도록 지금까지 계속 단련해왔다. 그러니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러나 그런 유세현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주위에 숨어 있는 적의 마력이 읽히기는커녕, 모습을 드러낸 채 마력을 사용하고 있는 드래곤 쪽의 흐름도 어설프게 읽힌다.

    의구심을 품은 유세현의 이마에 작게 주름이 생겼다.

    ‘뭐지? 왜 이렇게 어설프게 읽히는...’

    그 순간 유세현의 뇌리에 한줄기의 벼락이 쏟아졌다.

    ‘...설마?’

    유세현은 속으로 아닐 것이라 여기며 드래곤이 아닌 저항하기 위해 힘을 발휘하고 있는 팀원의 한 명의 마력 흐름을 다급히 읽었다.

    ‘......’

    안타깝게도 설마는 현실이었다.

    ‘문제가 있는 쪽은... 나였나.’

    자신이 지금까지 적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 놈들 중 특별한 고유특성을 지닌 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흐름을 읽는 능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능력이 이렇게까지 쇠퇴한 것을 지금까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다니...

    물론, 다른 이들 또한 드래곤의 기습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세현이 딱히 잘못한 점은 없었으나.

    ‘큭!’

    입이 쓰고 떫다.

    마치 극독을 마신 것처럼...

    슈우우웅!

    쾅!

    콰과광!

    마법은 끊이지 않고 주위를 계속해서 난자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공습과 절벽이라는 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지휘 계통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려는 퀘루안의 계락이었다.

    “크크크. 꽤나 괜찮게 붕괴됐군.”

    흡족한 듯 바라보던 퀘루안이 손가락을 툭 튕겼다.

    슈슈슉!

    그러자 하늘뿐만 아니라 숲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을 포위하듯 무수히 많은 드래곤들이 일제히 등장했다.

    사람들은 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기겁을 했다.

    “젠장! 서쪽 퇴로가 막혔어!”

    “이쪽도야!”

    완전한 고립.

    “선배님!”

    “서쪽! 직선으로 쭉 뚫는다!”

    “예!”

    창을 쥔 양팔을 옆구리에 붙인 김주희가 돌격자세를 취하자 일부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녀의 양 옆으로 몰려들었다.

    치지지직!

    눈에는 눈, 스킬에는 스킬.

    “크으으! 빌어먹을 드래곤 자식들아! 이거나 먹어라!”

    각양각색의 절기가 병장기 끝에서 펼쳐진다.

    퀘루안은 그것을 보며 피식 비웃었다.

    마법도 다루지 못하는 인간이 스킬을 사용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싶었던 것인지만...

    “받아라아아! 폭룡화참!”

    “파쇄풍검!”

    파아아앙!

    막상 스킬이 발현되자 퀘루안을 포함한 다수의 드래곤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화했다.

    “뭐냐 저건...”

    “7서클... 아니 그 이상, 8서클 이하인가.”

    “그건 나도 보면 알아. 그러니까 저게 뭐냐고. 어떻게 인간 따위가...”

    짜증 섞인 목소리.

    그리고 그 투덜거림을 들은 유세현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저놈들? 무공을 몰라?’

    마교인들을 포획하여 사육한 건 다름 아닌 레드 드래곤들이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저 표정... 저건 진짜다. 아니 애초에 놈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명석한 유세현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그는 순식간에 한 가지 추리를 내놨다.

    ‘설마 레드드래곤 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져 있는 건가?’

    그래야지만 아귀가 들어맞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유세현의 눈이 희번뜩 빛났다.

    조금 전 두 드래곤의 대화는 놈들에게는 투정에 불과했지만 유세현에게는 엄청난 정보였다.

    ‘놈들은 결정을 안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파앙!

    김주희의 50m 뒤에 위치해 있던 유세현의 육신이 단번에 가속했다.

    “선배님!”

    “너희 팀이 좌현을 맡아! 우리 팀은 우현을 맡는다!”

    “예!”

    김주희의 힘찬 답과 함께 두 팀이 양 옆으로 퍼졌다.

    유세현이 순식간에 다가오자, 접근을 허용한 레드드래곤의 눈동자가 일순간 파르르 흔들렸다.

    ‘뭐, 뭐냐! 이 미친 속도는!’

    후웅!

    다리 밑으로 낮게 파고든 유세현이 루베르크를 재빠르게 올려 그었다.

    레드드래곤, 루블로는 그것에 잔뜩 당황하여 다급히 양팔을 들어 올렸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늦은 뒤였다.

    서걱-

    “크아아악!!”

    순식간에 잘려나가 지면에 떨어지는 양팔.

    루블로가 다급히 블링크를 사용해 하늘로 거리를 벌리자, 유세현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예상이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놈들은 결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놈들에게서 벗어나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유세현은 도주한 루블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그 뒤에 있는 다음 타자를 노렸다.

    콰앙!

    루베르크와 건틀릿이 맞닿는다.

    이번 드래곤은 유세현의 공격을 꽤나 수월하게 방어해냈다.

    허나.

    꾸구구국!

    유세현이 힘을 더하자, 맞붙던 드래곤은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잔뜩 사색이 된 드래곤이 팔을 덜덜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크, 큭! 이놈... 무슨 힘이...”

    “넌 안 놓쳐.”

    유세현의 눈이 번뜩였다.

    쉬이익-

    부패의 어둠이 루베르크의 검신으로부터 흘러나와 드래곤의 팔을 좀먹기 시작한다.

    드래곤은 힘의 정체를 깨닫고는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결정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격차는 하늘과 땅이었다.

    ‘마무리다.’

    유세현은 그대로 천마광룡참을 운용했다.

    아니 운용하려 했다.

    두근-

    ‘...!!’

    발작이 일었다.

    심장을 짓이기고 다져 태우는 듯한, 마왕에게서 마심원을 승계 받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고통.

    유세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첫 번째 실전이었다.

    그렇기에 이겨내야 되었다. 견뎌내야 되었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동료들의 발목을 붙잡지 않기 위해서.

    “으아아아아!”

    비명과 같은 커다란 괴성과 함께 천마광룡참이 발동됐다.

    * * *

    전장을 살피고 있는 퀘루안의 인상은 현재 굉장히 일그러진 채였다.

    완벽한 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처리하긴 커녕 비등비등하기 짝이 없는 형세.

    보통이라면 이건 결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 보통이라면...

    “저놈들... 전부 결정을 소지하고 있군.”

    “그런 거 같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퀘루안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치렁치렁한 적발을 올백으로 넘긴 남성형의 드래곤이었다.

    “라플라스...”

    “어떻게 할 거야? 퀘루안? 계속 할 거야?”

    “물론이...”

    “만약 하게 된다면 소모전이 될 텐데?”

    라플라스의 일침에 퀘루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족이나 천족, 엘프도 아니고 인간과 소모전이라니.

    그렇기에 본래의 퀘루안이었다면 뒤를 생각해 병력을 물렸을 터였다.

    문제는 지금 그는 블랙의 로드에게 떠들어 논 게 있다는 것.

    실컷 비웃었는데 섬멸하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트랄바루체에게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될지...

    “섬멸한다.”

    “...퀘루안... 잘 생각해라. 자존심은 한 순간에 불과하지만 죽음은 영원하니.”

    “......칫.”

    퀘루안이 지그시 혀를 찼다.

    퀘루안은 분명 다혈질이었지만 그렇다고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쳇, 퇴각한...”

    그때였다.

    유세현이 폭주한 것은.

    “으아아아아아!”

    쿠구구구구!

    정형화 되어 눈으로 관측될 정도의 대량이 마력이 유세현의 전신에서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라플라스가 모른 척 한 마디 했다.

    “저놈... 예의 그 어둠의 마력을 다룰 줄 안다는 놈인 거 같군.”

    “...그건 나도 보면 알아. 근데 저놈 왜 저래? 상태가 좀 이상한데?”

    누가 봐도 역력한 폭주 상태.

    이윽고 뿜어져 나온 어둠의 마력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부패되어 바스러지는 나무와 돌.

    어둠의 마력은 인간과 드래곤, 피아를 식별하지 않고 주위 전부에 영향을 끼쳤다.

    “선배님!”

    “큭! 팀장님! 세현씨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제, 제가 가보도록 할게요!”

    김주희가 유세현을 향해 발을 뻗었다.

    그러자 유세현이 다급히 손을 올렸다.

    “크으으... 머, 멈춰! 가까이 오지 마! 제어가 안 돼! 휘말린다!”

    “선배...”

    “크크크크크.”

    이 모습을 전부 지켜본 퀘루안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가 볼 때 이것은 기회였다.

    리더의 갑작스런 이상으로 인해 인간들은 지금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패닉에 빠진 놈들은 대응이 늦지.’

    퀘루안은 곧바로 명령을 하달했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해치워라! 그리고 결정을 강탈해라!]

    슈우우웅!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포함해 여러 최고위 마법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까지도 일대의 사람들은 유세현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상태였다.

    “세현 팀장님! 정신 차리십쇼!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유세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난 됐으니 신경 쓰지 말고 빨리 퇴로를......”

    그때 유세현의 눈에 막 발현된 마법들이 비쳤다.

    그는 하던 말을 끊고 다급히 외쳤다.

    “전원! 자리에서 회피해라! 머리 위를 봐!!”

    “예...?!”

    “이런!!”

    콰아아아앙!

    “크아아악!!”

    폭풍과 함께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아슬아슬하게 반응한 덕택에 휘말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사상자는 존재했다.

    그새 죽은 사람의 포켓에서 결정을 회수한 퀘루안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열 명이라... 큰 숫자는 아니지만 얻은 결정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소득이군.”

    “이제 뜰 건가? 퀘루안?”

    “응. 돌아가도록 하...”

    그때였다.

    지잉- 지잉- 지잉-

    무저갱이 갑작스레 보랏빛을 내뿜으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태초의 정원(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