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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83화 (46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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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유세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졌다.

    김주희는 그런 그를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간호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다섯 시간, 열 시간.

    그렇게 열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녀의 곁에는 어느새 한 남자가 다가와 있었다.

    “......”

    그 남자는 한눈에 봐도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김주희가 반응을 하지 않자, 남자가 고개를 불쑥 숙였다.

    “미안하다. 내 고집 때문에...”

    “......”

    김주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제넥을 올려다보았다.

    제넥이 계속 말했다.

    “만약 네가 날 패고 싶은 기분이라면 네 기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패도 좋다. 전부 감수하겠다.”

    “......”

    그 말에 순간적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울컥 치솟은 김주희의 눈썹이 일순간 움찔거렸다.

    뭐? 패고 싶으면 패도 좋다고?

    지금 그게 할 소리인가?

    “......”

    안 그래도 무거운 공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그런 둘의 모습을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들은 김주희가 겉으로 표현을 안 하고만 있을 뿐 사실 머리끝까지 화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넥은 지금 저 발언을 해서는 결코 안 되었다.

    “으으음...”

    차마 더 이상 지켜보지 못 하겠는지 이한별이 이용석의 어깨를 툭 쳤다.

    “용석아. 가서 중재 좀 해봐. 이러다 자칫 칼부림 나겠다.”

    “누님, 지금 저보고 가서 제넥 대신 죽으라는 겁니까? 주희 쟤 세현이 일이면 눈 돌아가는 거 잘 알잖아요. 저걸 뭐 어떻게 중재해요?”

    “너 주희씨랑 친하잖아.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누님, 저 쟤랑 안 친... 아니, 뭐 지금은 좀 관계가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무튼 전 못 갑니다. 못가요!”

    “에휴...”

    김주희가 침묵을 유지하는 것으로 장내엔 팽팽한 긴장감이 끝없이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1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넥씨.”

    “...예.”

    당장에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녀가 되려 굉장히 차분히 반응하자 평소 이강호에게조차도 반 존대를 하던 제넥의 입에서 존댓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앞으론...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 말에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일부 관중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것은 즉 슨 봐주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흠씬 두들겨 패거나, 정식으로 건의하여 제대로 된 처벌을 해도 모자랄 망정에 그냥 용서해준다니?

    “주희씨가 잘 참았네.”

    “그러게요. 저는 칼부림까진 아니더라도 처벌을 건의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쑥덕였지만, 이들은 전부 제넥의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제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나 무림인들은 되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넥, 저거 완전히 코 꿰었구먼.”

    “그러게 역시 무서운 처자야.”

    김주희가 내뱉은 말은 제넥에게 있어서는 심장을 찌르는 것보다도 되려 더 큰 쓰라림이었다.

    치명적인 실수를 되새기게 만드는...

    “...알았다. 미안했다.”

    그는 앞으로 적어도 김주희의 앞에서는 절대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가서 더 쉬세요. 제넥씨. 라플라스를 상대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

    제넥은 조용히 물러났다.

    김주희는 그가 떠나자, 유세현을 응시하며 복잡한 표정으로 작게 속삭였다.

    “이걸로 잘 된 거겠죠? 선배?”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행동을 유세현이 바라지 않으리란 것을 김주희는 알고 있었기에 하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울컥해버리긴 했지만 김주희 또한 알고 있었다.

    제넥은 그저 사과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서투를 뿐이란 것을.

    ‘뭐 그걸 제외하고도 평소 싸가지가 조금 없기 하지만...’

    “빨리 나으세요 선배.”

    물수건을 쥔 김주희의 손이 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는 유세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 * *

    유세현이 힘겹게 고통을 이겨내며 자고 깨기를 반복할 동안, 사람들은 주변을 정찰하며 은밀하게 정보를 모았다.

    엘프의 이동경로, 델바람의 움직임 등등.

    그중에서도 이강호가 제일 중요시 했던 것은 블루와 그린드래곤의 동향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만약 레드가 놈들에게 우리의 습격에 대해 알렸다면 반드시 뭔가 반응이 있을 거다. 하지만 알리지 않았다면...”

    반응이 없을 터이고, 그것은 곧 그들의 협력이 완벽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추측대로군.”

    블루와 그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인간세력이 머무르고 있는 이 지역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모른다고 가정할 때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동굴은 독특하기 짝이 없는 귀찮은 재해가 머무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그리고 이것이 큰 싸움이 있었음에도 인간세력이 이동하지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곳 한정, 비밀통로까지 완전히 깨고 있는 루시아가 그들의 편인 이상 이 장소는 이 층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으으으...”

    일주일이 더 흘렀을 무렵, 유세현이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 선배님!!”

    회의를 하고 있던 일행은 이 사실을 듣기 무섭게 한걸음에 달려왔다.

    “유세현!”

    “세현씨...”

    이강호, 루시펠, 루시아, 아퀼라... 무수히 많은 동료들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빙 둘러쌌다.

    유세현은 왠지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숨기며 툭 말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올 필요까진 없는데...”

    “흐아아앙! 오빠아아!!”

    유혜인이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유세현은 그답지 않게 괴성을 질렀다.

    “야... 야! 갑자기 왜 이래! 떨어져 임마! 아파! 아프다고!”

    “아...!!”

    유혜인이 깜짝 놀라하며 황급히 떨어졌다.

    “미...미안! 괘...괜찮아 오빠?”

    그녀의 눈썹이 축 늘어졌다.

    좋은 의도건 아니건, 해를 끼쳤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이에 유세현이 손을 코 주위에 대고 쉬쉬 저었다.

    “어후... 냄새... 안 씻냐? 유혜인?”

    그녀를 위해 일부러 건 장난이었다.

    “뭐어?? 냄새에에에?”

    “야, 아무리 상황이 열악하다지만 좀 씻고는 다녀야지 안 그러냐?”

    “이게... 숙녀한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효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축 처져 있던 그녀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대번에 돌변한 것이다.

    “너가 언제부터 숙녀였냐? 멧돼지도 때려죽이는 오크 그 자체...”

    “아놔 진짜~ 기껏 걱정해주니까 이게...!!”

    유세현이 계속해서 유혜인을 놀렸고, 유혜인은 격분하여 방방 뛰었다.

    루시펠, 아퀼라, 모두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는 오직 이강호 뿐이었다.

    이러한 광경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지... 이제는 그 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까.

    분명한 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세현아 이제 얘기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거지?”

    “응.”

    “알아낸 걸 알려줄게.”

    “어 그래, 근데 그전에 보여줄게 있어.”

    유세현이 포켓을 주섬주섬 뒤져 비급서를 꺼냈다.

    “이건...”

    “아 진즉 보여줬어야 됐는데, 정신이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어. 양무원이 제작한 무공서야.”

    “양무원의?”

    “응.”

    정보를 순식간에 읽은 이강호의 눈가가 일순간 파르르 흔들렸다.

    그것이 엄청 대단한 랭크의 비급서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이상한 점.

    ‘SSS...마이너스?’

    SSS-랭크는 그조차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등급이었다.

    “그거 흡수하면 안돼. 심각한 부작용이 있거든.”

    “그럴 거 같군.”

    유세현이 숨겨진 정보에 대해 일러주자 이강호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과연...”

    “흠... 그런 부작용이 있다니. 저도 한 번 봐봐도 돼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비급서의 정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세현과 이강호는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양무원이 용케도 저 비급서를 너에게 넘겼네.”

    “뭐... 어지간히도 분해하는 것 같았으니... 적에게 익히게 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쓸만할 거라더라.”

    “오~ 나쁘지 않은 방법인데? 정보가 감춰져 있어 부작용에 대해 발견할 수 없을 테니. 마이너스 랭크인 게 마음에 걸리긴 할 테지만 아이템이 아이템인 이상 욕심을 뿌리치지 못하는 놈이라면 결국 흡수하겠지.”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응?”

    “네 말해준 대로라면 저 비급서... 우리 중에 익히기 적합한 사람이 있는 거 같다.”

    “에? 누구? 설마 루시펠씨? 안 될...”

    “아니, 루시펠씨가 아니야.”

    이강호의 시선이 대번에 한 여성에게로 향했다.

    이번 전투의 구원자, 루시아였다.

    * * *

    “그... 그게 적혀있던 데로 그 장소에 가봤으나 대량의 결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스디아가 세레나에게 보고를 올렸다.

    “뭐? 없어?”

    이에 발작을 일으킨 것은 세레나가 아닌 바로 옆에 있던 키르쉬나였다.

    “그럴 리가! 카스디아! 정말 그곳에 가보기는 한 것 맞나?”

    “봐라.”

    카스디아가 키르쉬나의 발밑으로 결정 한 개를 툭 던졌다.

    키르쉬나는 그걸 보자마자 벙찐 표정이 됐다.

    “됐냐?”

    “어... 어...”

    “제발 내가 숨긴 거 아니냐는 개소린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럼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으니까. 난 확실히 그곳에 갔고,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겠지.”

    세레나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르쉬나가 즉각 반응했다.

    “서, 설마 세레나님께서는 누가 빼돌린 건지 예측이 되시는 겁니까?”

    “그래, 된단다. 너도 알고 있는 자들이란다.”

    “예? 그럼 서, 설마 블루쪽에서 운 좋게 알아채 먼저 선수를?”

    “아니. 걔들이 아니다. 그곳은 운이 좋다고 해서 다다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지. 머리를 식히고 잘 생각해 보거라. 직접 몸소 경험해보지 않았더냐. 그들의 힘을.”

    “...!!”

    그 말에 벼락을 맞기라도 한 것 마냥 키르쉬나의 눈이 일순간 동그랗게 커졌다.

    “설마... 인...간...?”

    “...뭐?”

    이번에는 카스디아의 눈에 동요가 일었다. 키르쉬나가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인간이 가로챈 거라면... 모든 게 말이 된다.”

    “키르쉬나, 그게 무슨 말이냐. 놈들은 이곳에 올라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곳에 대해 알았...”

    “그렇기 때문이다.”

    “무슨...”

    “놈들은 결정을 지니고 있었다. 무려 일곱 명의 패널티를 전부를 무마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양의 결정을.”

    단시간 만에 너무도 많은 양을 얻었다.

    믿기진 않지만 그들이 가로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곳에 대해... 행여 우리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해도 그곳은 블루드래곤들이 지키고 있어 접근할 수 없었을 텐... 아니 잠깐만... 만약 몰래 접근해서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한들 그러면 시간이 부족할 텐데?”

    그들의 계산상 인간들이 술법이 끝나기 전 의식 장소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올라오자마자 거의 곧바로 결정을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즉 슨 결과로만 따지자면 그들은...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결정을 손에 넣었다는 건데...”

    아무런 정보도 없을 그들이 올라오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자 또 다시 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기 시작했다.

    세레나가 고뇌하는 둘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자, 키르쉬나가 물었다.

    “세레나님... 세레나님께서는 뭐 짐작 가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흐음... 짐작 말이냐?”

    “예.”

    “뭐 생각해보면 가능성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 아래층에 정보가 존재했고 그걸 알아내 올라왔다던지... 아니면 이 탑과 관계된 어떤 던전을 클리어 했다던지...”

    세레나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말했으나 아쉽게도 카스디아와 키르쉬나에겐 별로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들이 과거 진즉 열심히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다닌 바, 탑 내부에 대해 알려주는 던전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굉장히 기본적인 것만 직접적으로도 아닌 힌트로서 던져주었기에, 같은 드래곤들도 모르는 이런 특급 중에 특급 정보를 외부 던전에서 얻는 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쓱 몸을 일으킨 세레나가 마지막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든지...”

    “예?”

    “아무 것도 아니다. 이만 올라가자꾸나.”

    “아... 예.”

    키르쉬나와 카스디아가 세레나의 말마 따라 뒤를 따랐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길의 앞에는 8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빛의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의 회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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