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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80화 (46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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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후우...”

    낮은 자세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가고 있는 베라스트라의 뇌리에는 불과 방금 전에 있었던 있이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쿠구구!

    재해를 쓰러뜨리기 직전, 기묘한 기술과 함께 등장한 한 백발이 굉장히 눈에 띄는 인간 여자.

    이 여자가 인원들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 사냥조들은 베라스트라를 포함해서 전부 콧방귀를 뀌었다.

    ‘훗, 어딜 감히 인간 따위가.’

    힘을 꽤나 많이 소진했다고 하나,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벌레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잠시 뿐이었다.

    찌잉-

    백발의 여자가 무엇인가를 하자 눈앞에 환각이 나타났다.

    ‘아니, 아니야... 돌이켜보면 그건 환각 같은 게 아니었다.’

    추측조차 가지 않는 기묘한 능력.

    아무쪼록 당시 사냥조 드래곤들에게 있어선 어마어마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드래곤인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뚫리다니?

    게다가 구태여 드래곤이 아닐지언정 SS랭크를 넘는 대다수의 대리자들은 정신계 공격에 상당한 면역력을 지니고 있었다.

    환각, 마인드 브레이크 등등 적을 상대하며 수많은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본래 꿈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유세현의 권속 아퀼라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환희공과 본인의 능력을 합쳐 환각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오직 고등의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뿐만이 적의 정신을 통째로 부수고 세뇌시키는 게 가능한 것!

    현재 백발 여자는 완전 특이하기 짝이 없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후우... 빨리 한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야 된다.’

    완전한 상태라면 몰라도, 재해사냥으로 인해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한 지금 백발 여자의 능력은 자칫 최악을 초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환각에 빠진 사이 인간들이 각자 최강의 기술을 집중시켜 공격해 오면 목숨을 빼앗길 가능성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베라스트라는 통로를 빠져나가기 무섭게 다급히 외쳤다.

    “세레나님! 당장 여기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머지 않...”

    그러나 그녀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자신보다도 한 발 앞서 이미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 백발?!”

    그 여자, 루시아가.

    * * *

    ‘어, 어떻게? 어떻게 나보다 이곳에 먼저 당도할 수 있었던 거지? 여긴 외길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베라스트라의 낯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게 될 가능성이 너무도 높았으니까.

    “오, 돌아왔구나. 베라스트라. 수고 많았다.”

    반면 베라스트라를 맞이해주는 세레나는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여유로웠다.

    베라스트라는 속이 타들어가는 감각을 맞봤다.

    “세레나님! 죄송하지만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몰려오고 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 지는 대충 예상이 된단다. 그래, 이만 물러나도록 하자꾸나.”

    “어딜!”

    세레나가 몸을 휙 돌리자, 루시아가 능력을 사용하여 재공격에 들어갔다.

    스스스!

    세레나의 주위에 있는 입자가 공명하기 시작하자, 베라스트라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저건!’

    환각에 당할 때가 떠오른 것이다.

    “세레나님! 정신계 환각 마법이 올 겁니다! 조심 하십...”

    “걱정 말거라. 나는 괜찮으니.”

    세레나가 손을 휙 휘젓자, 그녀 주위의 입자가 그대로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세레나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째서?’

    루시아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렸다.

    ‘분명 확실히 걸렸어. 걸렸는데...’

    이상하게도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생명체라면 반드시 하나씩은 존재하는 부정의 근원이 세레나에겐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니건만.

    ‘뭐하는 여자지? 대체?’

    한 번의 우연은 있을지언정 두 번의 우연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이 세계.

    루시아가 그러거나 말거나 데프하우어를 쓱 훑은 세레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기억이 미세하게 남아있다니 신기하네. 내가 실수한 건가?”

    처음 세레나와 나란히 능력에 적중당한 데프하우어는 머리를 붙잡고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 나는... 데프하우어... 블랙의...로...드... 난 딸을... 딸을...”

    “세레나님 이분은 설마...”

    “그래, 데프하우어란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데프하우어를 좀 챙겨주겠니? 길은 내가 뚫도록 하마.”

    “예? 어, 어찌 세레나님께 그런 역할을...”

    “후훗. 신경써주는 건 고맙다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잖니? 체면은 중요하지 않단다. 너희들이 중요하지.”

    “세레나님...”

    감격한 듯 베라스트라의 표정이 잔뜩 상기됐다.

    그사이 힘겹게 루시아에게 다가선 유세현이 그녀의 손에 결정이 든 포켓을 쥐어주었다.

    “루시아씨 이걸...”

    “이, 이건...?”

    [탑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루시아는 유세현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세를 고쳤다.

    지금까지야 기본적인 피지컬에서 밀리는 것을 느껴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순식간에 세레나에게 도약한 그녀는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슈슈슉!

    검풍이 휘몰아치며 보이지 않는 칼이 되어 세레나의 전신을 스쳐지나간다.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의 빠르기.

    현재 루시아의 검격은 유세현과의 전투로 체력이 소비된 세레나의 속도를 웃돌고 있었다.

    세레나가 툭 말했다.

    “빠르군. 하지만 그게 전부다.”

    “......”

    “너무 단조롭고 직선적이야. 저 남자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다.”

    줄곧 신경 쓰고 있던 사실을 세레나가 자극하자 루시아가 입을 악물었다.

    그녀의 실력은 그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난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지 않아.’

    후우웅!

    그래서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동료들의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쿠구구구구!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가르쉬우스의 검신에 붉은 검기가 실렸다.

    막대한 악몽의 힘을 쏟아 넣어 만든 검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콰과과과!!

    약간의 틈이 생기자 스토크가 곧장 세레나를 향해 쇄도했다.

    세레나는 그런 스토크를 발로 뻥 차 날려버린 뒤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정말 독특한 능력이군. 어둠의 마력과 굉장히 흡사하면서도 다른 힘이라니... 이건 마치 여기 있던 재해의...’

    세레나는 루시아를 붙잡아 해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불가능.’

    단념한 그녀는 손가락을 지상을 향해 뻗었다.

    그리곤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는 루시아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이 기술을 지금의 저 남자가 피할 수 있을까?”

    “?!”

    콰아아앙!

    [귀혼마패공(鬼昏魔覇功), 광신(狂神)]

    천마의 천마혈사장에 빗대어 만든 무공이 폭음을 토해내며 유세현에게로 낙하했다.

    유세현을 포기하고 세레나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냐, 아니면 목을 포기하고 유세현을 구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루시아의 시야에 비친 것은 세레나의 음흉한 미소였다.

    마치 루시아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 마냥...

    ‘저 여자는 저 남자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런 내 조소를 보면 더더욱.’

    쉬이익!

    루시아는 세레나의 예상처럼 유세현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스토크가 재빨리 뇌격을 날려 공격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세레나를 포함한 셋은 어느새 그 공간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 * *

    “공격해!”

    “강호씨를 도와라!”

    “큭!”

    사람들과 스토르 벤이 우르르 쏟아지자, 드래곤들이 허겁지겁 도주를 시작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진귀한 광경이었다.

    ‘내가... 운이 좋을 때도 있군.’

    이강호가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딛자, 포위된 키르쉬나가 몸을 움찔거렸다.

    섣불리 움직여 틈을 보였다간 그 즉시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제길... 어떻게 해야 하지? 본체화? 도약?’

    “상대는 체력이 다했습니다. 이대로 천천히 몰아붙입시다.”

    “그러도록 하죠.”

    그사이 포위망이 서서히 죄여오기 시작했다.

    키르쉬나는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젠장. 대체 어떻게 해야...!!’

    마왕성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들어간 자의 행동거지와는 상관없이 마왕의 심경변화에 따라 죽고, 살고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기랄...’

    지금 키르쉬나의 상황이 딱 그랬다.

    아무리 키르쉬나가 잘 대처한다 한들 적이 실수하지 않는 한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답이 안 보인다.’

    세레나가 등장한 순간은 딱 그때였다.

    “흠... 내 예상보다도 더 심각하구나.”

    “예, 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적이 추가로 더 몰려오고 있는 거 말이냐?”

    “예.”

    이곳에 있는 이들과는 규모의 수준 자체가 다른, 이벨린이 이끄는 대군이 점점 접근해오고 오고 있다는 걸 세레나는 감시 마법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그 병력이 당도하게 되면 궤멸을 면치 못하게 되리라.

    “세레나님. 힘드실 것 같으면 혼자만이라도...”

    “그런 말 말거라. 내가 어찌 너희를 버릴 수 있겠느냐. 그리고...”

    세레나가 휙 손을 휘젓자 공간이 갈라지며 그곳에서 길이 130cm를 넘기는 기다란 검 하나가 튀어나왔다.

    “충분히 가능하단다.”

    검을 쥔 세레나의 눈에는 스테이터스 창에 새겨진 스킬 정보가 비치고 있었다.

    스킬명: 신살참(神殺斬)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레드드래곤 세레나가 도와 마교 교주 양무원이 엄청난 집념 하에 창시해낸 절기입니다.

    대량의 영혼을 사용해 엿본 진리의 일부, 참(斬)의 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벨 수 있으며, 무엇이든 자를 수 있습니다.

    (창시자가 검에 대한 진리 밖에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기에 검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원, 도약하여 바람을 회피하라.]

    스윽-

    휙!

    마법통신을 날린 세레나가 팔을 휘두르자 마치 물결 같은 잔잔한 바람이 일었다.

    이에 드래곤을 쫓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직 알아차린 이는 이와 거의 비슷한 능력을 눈앞에서 많이 봐왔던 일행들 뿐.

    ‘이, 이건... 설마...’

    후우우웅!

    “전원!! 몸을 숙...”

    쉬익!

    이강호가 미처 말을 끝낼 새도 없이, 바람이 사람들을 스쳤다.

    “어...?”

    적중당한 사람들은 그저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마치 짧은 바늘에 손끝이 찔린 것처럼.

    그러나.

    털썩-

    갑주와 배에 새빨간 선이 그어지기 무섭게 많은 이들의 하반신이 지면에 툭 떨어졌다.

    “으...으... 으아아아아!”

    많은 이들이 절규가 공간을 울린다.

    생명체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내 다리가!! 다리가아아아!”

    “크으으윽!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세레나는 그 모습을 보며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투자한 보람이 있구나.”

    “세, 세레나님 방금 그건? 설마?”

    “그래, 양무원이 완성시킨 무공이란다. 썩 괜찮지 않느냐?”

    “......”

    베라스트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가 보기에 이 스킬은 썩 괜찮고 자시고 따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갑주까지 단번에 잘라냈다. 그래도 A급은 될 터인데...’

    게다가 그 고요함, 빠르기.

    베라스트라도 일순간 눈치 채지 못했다.

    세레나가 뭘 행 한 것인지.

    “흠, 그럼 마무리를 해볼까?”

    툭 말한 세레나가 이번에는 검을 연속적으로 휘둘렀다.

    “괘... 괜찮아. 충분히 붙일 수 있어. 붙일 수...”

    “그래 맞아... 이 정도는 재생력으로 어떻게든 커버 칠 수 있...”

    촤좌좍!

    잘려나간 몸을 다급히 수습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어진 후속타에 어떤 일이 생진지도 모른 채 조각조각 잘려 목숨을 잃었다.

    “자, 그럼 퇴각하자꾸나.”

    “......”

    키르쉬나가 묵묵히 도약해 이강호의 앞에서 사라졌다.

    이강호는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볼 뿐 쫓을 수 없었다.

    지금 쫓는다면... 죽게 되는 건 아마 자신일 것이기에.

    ‘세현이의 천마광룡참보다 위력적이다. 그리고 고요해.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

    그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천천히 훔쳤다.

    무공 창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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