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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77화 (46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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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이익!

    유세현이 휘두른 루베르크의 궤적을 따라 생긴 여러 개의 가느다란 실선이 전방의 드래곤들을 향해 날아갔다.

    “피해라!”

    드래곤들은 그 선을 확인하기 무섭게 굉장히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공간 채로 상대를 절단해 버리는 천마가 창시한 최강의 절기, 천마광룡참.

    이것에 정면으로 대항했었던 동포 한 명이 뼈도 못 추리고 그대로 몸이 반으로 잘려 죽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서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다.’

    유세현은 틈을 발견하자마자 통로를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딛었다.

    쿠구구!

    파앙!

    마력을 잔뜩 머금은 천마군림보가 어마어마한 가속력을 선사한다.

    “막아!”

    이에 키르쉬나가 어떻게든 제지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으나 그녀의 앞은 이미 이강호가 가로막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네 상대는 나다.”

    “큭...!”

    후우웅!

    이강호가 창을 뻗자, 창을 타고 날아온 불길이 키르쉬나를 덮쳤다.

    키르쉬나는 레드드래곤 답지 않게 다급히 물 마법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강호의 몸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후, 그녀가 마법으로 만든 일반적인 불꽃은 이강호가 만든 불길에 삼켜지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키르쉬나는 불에 그을려 검게 변한 자신의 팔 일부를 확인하기 무섭게 이를 빠득 갈았다.

    ‘내가 불에 데이다니...!!’

    분노가 들끓으며 눈동자에 실핏줄이 선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그녀의 감정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불로 대응하진 않는 건가? 그래도 학습 능력은 있군.”

    “이, 이 벌레가!!”

    반면 이강호는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신경을 살살 긁어대는 여유를 보였다.

    ‘후우... 빨리 끝내야 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 그의 속은 겉과는 정반대였다.

    ‘이 상태는 오래 지속할 수가 없으니까.’

    화염동화를 깨달은 이후 끝없는 노력으로 깨우친 또 다른 능력.

    주홍빛의 신의 화염을 두르는 이 스킬은 불에 대한 피해를 거의 입게 해주지 않는 반면 마력과 체력소비가 극심했다.

    유세현이 영역선포를 한 것처럼, 그 또한 비장의 수를 보인 것!

    “......”

    이강호의 시선이 일순간 유세현이 사라진 통로로 향했다.

    ‘저지하는 건 세현이에게 맡겨야겠군.’

    사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유세현과 합류하는 게 가능했다.

    전투 도중 유세현에게 불꽃 일부를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가 뒤따르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뒷일을 고려해서.

    이강호가 유세현과 합류하게 되면 결정은 체력이 많이 남은 여타 드래곤의 손에 양도 될 것이고, 그것은 생존으로 즉결되게 되리라.

    ‘그러니 난 여기 남아 저 키르쉬나라는 놈과 나머지 두 마리를 확실하게 제거한다.’

    이강호의 눈이 당장이라도 적을 잡아먹을 듯 번뜩였다.

    키르쉬나는 그 기세에 일순간 주춤거렸다.

    “이... 이... 인간 따위가...!!”

    “너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슈슉-

    빡!

    “크허억!”

    “장기인 화염을 사용하지 못하니 레드도 별 거 아니군.”

    “크... 이 자식이...!”

    퍼버벅!

    “크아악!”

    키르쉬나 육체 이곳저곳이 난자되기 시작했다.

    “키르쉬나!”

    슈슈슈!

    콰과곽!

    주위 동료들의 지원사격이 없었더라면 키르쉬나는 이 시점에서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죽어라!”

    동시에 순식간에 본체로 변화한 한 드래곤이 이강호를 향해 브레스를 발산했다.

    엄청난 열기로 상당한 속도를 지닌 브레스였지만...

    “아, 안돼! 카테로프! 브레스를 끊고 거기서 당장 피해라!”

    카테로프의 실책은 키르쉬나의 위험 때문에 지상에서 다급히 변화했다는 것이었다.

    “?!”

    실책을 느끼기도 전, 좌우에서 쏟아진 푸른 화염이 카테로프의 육신을 휘감았다.

    [캬아아아아아!]

    처절한 단말마가 울린다.

    치이익-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으나, 카테로프는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리카루라! 카테로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아, 알고 있다!”

    단번에 두 마리 아웃.

    키르쉬나는 다급히 함께 온 두 명의 동료, 텔라스크와 제크릭의 동향을 살폈다.

    “큭! 이 역겨운 창녀가... 그 따위 환상이 내게 통할...”

    “후훗, 충분히 통하는 거 같은데? 우리 귀염둥이 드래곤 오빠?”

    “귀찮은 년, 쫄래쫄래 도망만 다니기는!!”

    “왜? 못 잡겠어?”

    텔라스크와 제크릭은 키르쉬나와 마찬가지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물론, 여기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키르쉬나는 지그시 혀를 찼다.

    ‘젠장... 무공 수련을 착실히 해뒀어야 하는 건데...’

    세레나에게 하사 받아 키르쉬나도 무공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심법을 제외한 나머지의 성취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절기는 화염계 마법보다 효율이 떨어지기에 굳이 수련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하지 않았고, 격투술은 지금까지 실전에서 익힌 체술과 비등하다 여겨 심각하게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은 키르쉬나 본인이 만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크으으으!”

    모름지기 후회할 때는 항상 늦은 후다.

    어떤 이는 지금이라도 하면 괜찮다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키르쉬나는 지금 이 순간, 푸른 귀화를 내뿜고 있는 이강호가 마왕보다도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 * *

    데프하우어가 유세현의 앞에 나타났을 때 유세현은 그답지 않게 굉장히 큰 동요를 보였다.

    ‘뭐지? 왜 놈이 이곳에...’

    그가 알고 있는 한 데프하우어는 벨제뷔트의 수족이었다.

    그런 놈이 레드드래곤 세력과 함께하고 있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리라.

    ‘설마 벨제뷔트가 레드드래곤과 손을 잡은 건가? 그럼 저편 너머에는 벨제뷔트가?’

    유세현은 일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태백무에게 듣기로 이 의식에 총괄자는 키르쉬나라는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그 키르쉬나는 현재 이강호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

    총괄자가 집적 나와 싸우는 마당에 벨제뷔트는 안에서 구경만 한다?

    레드드래곤 세력이 단체로 돌아버리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 산 넘어 산이군.”

    유세현은 푸념하며 데프하우어에게 달려들었다.

    목적지가 코앞인 이상, 아무리 놈이 막아선다 한들 지금 돌아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챙!

    치지지익!

    순식간에 몇 번의 합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유세현은 뭔가 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지금까지 봐왔던 놈의 모습이 아니다.’

    행동양식, 싸움방법, 모든 것이 확 달라졌다.

    유세현은 만난 적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붙어봤던 데프하우어의 습관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뭐지? 대체? 이렇게까지 단번에 확 변화한 놈은 처음이다.’

    감정이 전혀 비치지 않는 눈.

    과묵해도 너무 과묵한 입.

    유세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더 생각해 봤자다. 집중하자.’

    유세현이 보기에 데프하우어의 전투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더 좋아진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기량이 훨씬 떨어진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그가 한 발 내딛은 순간이었다.

    쿠과과과광!!

    서 있던 대지를 포함하여 동굴 전체가 갑작스럽게 강하게 요동쳤다.

    피잇!

    파아앗!

    동시에 벽 틈 곳곳에서 빛이 새어나오며 깜깜하기 그지없던 어둠을 물렸다.

    유세현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젠장, 이건 설마...’

    -키아아아악!

    -캬갸갸갸!

    슈우우욱!

    통로 이곳저곳에 있던 망령들이 미친 듯이 둘 주위를 유영하며 날뛰었다.

    유세현은 망령이 아직 순수한 영혼이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데프하우어가 있는 통로 저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렇게 되면...’

    쿠구구!

    강대한 마력이 손끝에 모인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여기서 저격한다.’

    그는 마력 탐지로 술법사들의 위치를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전진해온 상태였기에 방해만 없다면 충분히 닿을 만한 거리였다.

    “하아압!”

    콰아아앙!

    이윽고 기합과 함께 일점에 집중시킨 천마혈사장이 발사됐다.

    * * *

    -캬아...아...아?

    -이게 어떻게 된... 으아아아아!

    망령은 순수한 영혼으로 탈바꿈되기 무섭게 양무원의 발밑에 있는 진법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뭐야!

    -사, 살려...

    슉슉슉슉!

    세레나는 그것을 그저 묵묵히 바라봤다.

    그토록 원하던 무공이 완성되기 직전이건만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진행률 99.999%

    “갈!”

    이윽고 0.1초도 지나지 않아 완성을 알리듯 양무원의 발밑에서 황금의 빛이 새어나왔다.

    대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오리지널을 가리키는 빛이었다.

    후웅!

    술법사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기상하여 마치 의식의 마지막을 거행하는 것 마냥 일순간 양무원을 감쌌다.

    양무원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방금 제작된 무공서과 이전에 창시한 무공서를 재빨리 바꿔치기 했다.

    양무원은 일부러 무공서를 높이 집어 들어 올린 채 환희에 찬 함성을 내뱉었다.

    “크하하하하! 완성해냈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최강의 무공을!! 크하하하하하!”

    “양무원.”

    “크하하하! 봤나 세레나! 이게 바로...”

    “거기서 당장 빠져나와라. 안 그러면 죽게 될 거다.”

    “...뭐?!”

    콰아아아아앙!

    바로 그 순간, 날아온 천마혈사장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허억! 허억!”

    만약 세레나가 말해주는 게 0.01초만 늦었더라도 양무원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을 터였다.

    잔뜩 사색이 된 양무원은 세레나에게 다가가기 무섭게 물었다.

    “세, 세레나! 대체 누가 쳐들어온 거냐! 어떤 세력이길래 너의 수하들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아마 너가 잘 알고 있는 놈일 거다.”

    “내가? 무슨 뜻이지?”

    “그보다도 무공서.”

    “......”

    세레나가 손을 내밀자, 양무원은 바로 주지 않고 미련을 보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주기 아깝다는 듯.

    양무원은 이런 인간의 욕망까지 보여줘야 주도면밀한 세레나의 의심을 사지 않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안 줄 건가?”

    “...약속은 제대로 지키는 거겠지?”

    “물론이다.”

    “......”

    양무원은 결국 마지못한 얼굴로 무공서를 넘겼다.

    그리고 속으로 염원했다.

    ‘자, 습득해라.’

    엄청난 부작용이 있을 무공을 한시라도 빨리 익히기를.

    “흠.”

    하지만 양무원의 바람과 달리 세레나는 무공서를 살피기만 할뿐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템 정보를 닫은 세레나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양무원.”

    “후훗. 별 거 아니였...”

    “그럼 잘 가라.”

    푹-

    “컥!”

    세레나의 팔이 양무원이 착용하고 있던 갑주와 함께 심장을 꿰뚫었다.

    무공의 초고수인 양무원이었지만 그는 스탯의 차 때문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세레나가 팔을 빼자 잔뜩 인상이 구겨진 양무원이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으르렁거렸다.

    “세레나... 네 년... 역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지킬 필요가 없지. 네가 먼저 약속을 깼으니.”

    “?!”

    “내가 파악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나?”

    양무원은 그 순간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공 창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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