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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76화 (46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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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대개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져 마침내 잊게 된다.

그러나 강렬한 꿈, 악몽 같은 것은 대개 기억 한편에 자리 잡으며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

쿠오오오!

루시아가 눈을 떴을 때, 스토크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안절부절 못한 눈초리로 루시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드래곤을 보는 듯한, 그것은 필히 두려움이 담긴 눈빛이었다.

“끄... 끝난 건가?”

“후... 끔찍한 경험이었어.”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치를 떠는 반면, 오직 스토크만이 천천히 루시아에게 접근했다.

“정신이 들었나?”

“......”

루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스토크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고마워요.”

루시아가 마다하지 않고 손을 지지대 삼아 일어서자, 스토크가 그림자가 사라진 저편을 응시하며 곧바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웬만하면 자세히 듣고 싶다만... 지금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림자가 말하길 이곳에...”

“드래곤이 있군요.”

“음?! 그때 깨어있었었나?”

“아뇨.”

루시아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분명 벽을 보고 있지만, 벽이 아닌 다른 것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기이한 눈빛.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림자가 말한 10분이 경과하기 바로 직전에 깨어났다.’

스토크는 그녀가 뭔가 크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만약 나와 다른걸 보고 있는 거라면 알려줄 수 있겠나?”

“드래곤이요. 싸우고 있군요. 그림자씨와.”

“그래, 놈도 그렇게 말했다. 본체가 공격받고 있다고 하더군.”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거예요.”

시련을 통과했기 때문일까?

현재 루시아의 눈에는 권능의 일부로 구현화 된 이 동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훤히 꿰뚫어 보였다.

그녀는 곧장 마르크를 불렀다.

“마르크씨.”

“예, 예! 루시아씨.”

“지금부터 길을 일러드릴 테니 이벨린씨를 이곳으로 유도해주세요.”

“예... 예? 그게 무슨...”

“이벨린씨가 우리를 찾기 위해 본대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온 것 같아요.”

“!!”

“그리고 에밀리씨.”

“...예!!”

마르크의 연인인 에밀리가 루시아가 부르기 무섭게 잔뜩 군기 잡힌 자세로 답했다.

“마찬가지로 길을 일러드릴 테니 에밀리씨가 여기에 남아 있다가 본대의 길잡이가 되어주세요.”

“예... 예? 제가요? 그런 건 루시아씨가 직접 하시는 게...”

“저는 당장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

에밀리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그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분명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합류하여 다함께 이동하는 게 추후 뭘 해도 유리하게 작용하기에 만류해야 되는 게 정상이건만...

‘지금의 루시아씨... 이강호씨 같아 보여...’

선구자로서, 길잡이로서 인간 진형을 이끌어 온 그와 겹쳐 보인다.

강렬한 카리스마.

“그럼 말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어 한 번밖에 일러드릴 수 없으니 잘 기억해주세요.”

* * *

쿠궁!

쿠구구궁!

강렬한 진동으로 인해 균열이 간 천장의 일부가 힘을 지탱하지 못하고 의식을 거행하고 있던 술법사들에게 우수수 떨어졌다.

이에 양무원은 순간적으로 아연실색했다.

‘미친! 저 돌이 낙하하게 되면 의식은 끝장이다!’

그러나 술법사들은 술법을 진행하는 동안 움직일 수 없었기에, 의식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던 양무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약 움직이게 되면 의식은 그 순간 실패해버린다.

“리버스 그래비티.”

그 순간 상공의 중력이 반전하며 낙하하던 돌덩이가 다시 천장으로 되돌아갔다.

세레나였다.

그녀는 눈동자만을 힐끔 돌려 쳐다보는 양무원을 향해 여유롭게 손짓했다.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 계속해라.”

‘저 빌어먹을 년이... 완성되기만 해봐라. 그렇게 잘난체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다.’

양무원은 마음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다시금 집중에 들어가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제길, 대체 어떤 놈이 쳐들어 왔길래 이 지랄인 거지?’

한 번 쓰인 신경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법.

‘본래라면 진즉에 정리가 되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비등한 존재가 쳐들어왔다는 뜻.

‘흠... 이 빌어먹을 빨간 도마뱀들한테 대들 수 있는 세력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의구심이 점점 증폭되기 시작한다.

양무원은 잡념을 없애기 위해 다급히 고개를 휘휘 털었다.

‘안돼! 이러면 안 된다! 이러다간 실수해버린다! 집중해야 해... 어이없게 실패할 수는 없어!!’

양무원은 의지를 발휘해 다시금 무아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카실리아가 절뚝거리며 나타난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세레나님... 죄송해요... 제힘으로는 놈을 죽이는 게 불가능했어요.”

“괜찮단다. 수고가 많았구나.”

세레나는 구태여 뭐라 하지 않고 그저 다가가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세레나가 카실리아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래서 적은?”

“아직은 방어선에 붙잡혀 있어요. 하지만 머지않아 한 명 정도는 뚫고 들어올 거예요.”

“흠... 결정가지고 있니? 애들에게 넘기지 못한 것 같은데.”

“예. 주고 싶었지만 놈이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아서...”

카실리아가 결정을 꺼내 세레나를 향해 힘겹게 내밀었다.

받아든 세레나는 볼을 긁적이며 난색을 표했다.

“흠...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한데...”

“죄송해요. 세레나님...”

“아니야. 카실리아. 방도는 남아있으니까. 아직 불완전하지만 어쩔 수 없지.”

“예?”

세레나가 손가락을 툭 튕겼다.

슈슉!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의 인형(人形)이 순식간에 낙하해 둘 옆에 자리 잡았다.

“아...”

카실리아는 나타난 자를 확인하기 무섭게 즉각 반응했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으며, 입술이 달짝였다.

그는...

“아버님!!”

그토록 살리고 싶었던 데프하우어였으니까.

* * *

“주, 주박에서 완전히 풀려난 건가요? 이제 괜찮은 거예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카실리아는 물었다.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말했잖니 카실리아. 성공했다고. 그는 이제 주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단다.”

“하... 하...!!”

카실리아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카실리아는 다친 것도 잊고 데프하우어를 와락 끌어안았다.

“흐엉... 흐어어엉...!!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이내 울음이 터졌다.

행복에 겨운 울음이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훈훈한 장면.

그러나 그 장면을 응시하는 세레나의 표정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님... 이제 우리 떨어지지 말아요...!!”

“......”

“아버님, 뭐라 대답을 좀 해보세요. 예? 놈의 주박에서 벗어난 거라고요? 드디어? 아버님은 기쁘지 않으신...”

카실리아가 포옹하던 것을 풀고 데프하우어의 얼굴을 바라봤다.

데프하우어는...

“어... 어?”

그 어떠한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어... 어... 세레나님? 아버님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거...”

그때 세레나가 대뜸 그녀의 말을 뚝 끊었다.

“카실리아. 넌 상대를 강렬하게 옭아매는 벨제뷔트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 줄 아니?”

“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그보다도 아버님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다니까요? 혹시 비술이 잘못된 게...”

“바로 기억이란다.”

“......”

“기억은 그자가 살아온 일생, 모든 것, 곧 영혼이지. 벨제뷔트는 기억에 자신의 사념을 주입 및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기에 데프하우어를 수족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거야. 그럼 이 굴레를 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반쯤 멍해 있던 카실리아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다.

세레나가 계속 이어 말했다.

“그래 맞아. 직접적인 원인, 기억을 제거하면 된단다.”

“...!!”

“하지만 판도라로 넘어와 저항력이 너무 강력해진 지금 어떠한 강력한 정신계 마법으로도 기억을 싹 날려버리기란 불가능. 그래서 난 다른 방법을 사용했단다. 정말 단순한... 물리적인 방법을...”

“그, 그게 무슨... 서, 설마 지금 아버님의 머리를 열었다는 건가요? 뇌를 잘라냈다는 겁니까!!”

“맞아.”

“이런 미친!! 왜 그런 짓을!! 뇌는 재생이 되지 않는...”

“된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되게 만들었지.”

“?!”

“돌연변이 트롤, 트루크. 놈은 감히 말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 같은 재생력을 지닌 생물이었다. 난 놈의 체세포 일부를 조금씩 훔쳐 끝없이 연구, 마침내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뇌까지 재생이 가능한 최고의 포션을... 뭐, 아쉽게도 아주 소량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그걸 아버님께 사용한 건가요?”

“그렇단다. 블랙드래곤 로드를 살려내는데 사용했으니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한 거라 할 수 있지.”

카실리아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꺼졌다.

개똥밭이어도 이승이 좋다고 부작용이 있다 한들 벨제뷔트의 손아귀에서 데프하우어를 해방시켜준 이상 세레나, 그녀를 매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흑... 흑흑...”

하지만 카실리아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기억은 세레나의 말처럼 영혼이고 전부였다.

그가 알던 데프하우어는 죽은 것이다.

세레나가 다가와 그녀의 눈물을 훔쳐 준다.

“슬프니?”

“...세레나님......”

“미안한데 아무리 공감하려 해봐도 공감이 되지 않는구나.”

“?!”

푹-

창보다 날카로운 손이 카실리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데프하우어가 뒤에서 내지른 일격이었다.

“아버님?”

“지금 데프하우어는 네 부모가 아니야, 내 충족한 개지.”

“세, 세레나님 어째서...”

“넌 봐선 안 될 걸 봐버렸으니까. 만나선 안 될 걸 만나버렸으니까. 네 죽음은 나를 만난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풍부하던 세레나의 표정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세레나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널 살려둔 이유는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너의 그 애틋함이라면 어쩌면 혹시나 내 감정을 이끌어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커, 컥...”

데프하우어가 카실리아의 목덜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역시나 안 되는 군. 공감은 커녕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아. 왜 슬픈 거지? 아니 당최 슬픔이란 뭐지?”

“컥... 커컥...”

“데프하우어는 내가 잘 사용해주겠다 카실리아. 이만 눈을 감아라.”

세레나가 손을 올리자 데프하우어의 손이 목을 죄기 시작했다.

“아버...”

투드득-

콰직-

카실리아는 서글픈 얼굴 채로 아버지인 데프하우어의 발에 짓이겨져 최후를 맞았다.

세레나는 그런 카실리아의 시체를 잠시 무미건조하게 응시하다 이내 데프하우어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보았다.

“으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데프하우어를.

“호오... 기억은커녕 의지 자체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세레나는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크게 개의치는 않아했다.

이런 것을 보고 큰 동요를 일으키기엔, 판도라라는 세계는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부작용, 찰나의 오류 그 외 기타 등등.

그녀는 그렇게 치부하고 데프하우어에게 결정을 쥐어주며 말살 명령을 내렸다.

무공 창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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