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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74화 (4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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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치이이이익!

    독액은 그가 있던 자리를 휩쓸며 주위의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유세현이 곧바로 상공을 살폈다.

    ‘저건...’

    독액에 몸체 대부분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뛰어나기 그지없는 눈은 그 약간으로도 색 구별을 가능케 해준다.

    ‘블랙... 인가? 역시 저 독액은 브레스였군.’

    콰과과!

    애쉬드브레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세현을 뒤쫓아왔다.

    유세현은 점점 다가오는 브레스를 보며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빠르다. 속도만 따지자면 데프하우어와 동급...’

    유세현이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 드래곤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브레스의 속도는 개체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었다.

    데프하우어는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빠른 쪽에 속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것!

    ‘설마 데프하우...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놈은 벨제뷔트의 수하... 레드드래곤과 함께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다면 저 블랙드래곤은 누구인가. 아니, 당최 어째서 블랙드래곤이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레드드래곤이 취한 행동 양상들을 보면 그들은 무림인과 무공을 동족에게 숨기고 있는 게 거의 분명했다.

    ‘블랙과는 공유하는 사이란 건가? 아니, 그렇다 치면 조금 이상해. 만약 그랬다면 더 많은 블랙드래곤이 배치되어 있어야 정상일 텐데... 대체...’

    아무쪼록 레드드래곤을 제외한 여타 드래곤의 존재 유무는 유세현 일행에게는 께름칙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유세현의 눈에 붉은 휘광이 번뜩였다.

    휘이이이!

    그의 육신 주위로 어둠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마력재생]

    보험을 남겨두는 건 여기서 끝.

    속전속결로 목표를 달성한다.

    피잇!

    그때 밝은 휘광과 함께 인간형으로 폴리모프를 한 블랙드래곤이 낙하하여 유세현의 앞에 섰다.

    카실리아가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다 인간.”

    “......”

    유세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스킬을 사용할 뿐.

    [마족화]

    쉬이이익!

    유세현의 몸이 어둠이 휩싸이기 시작하자 카실리아의 표정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따지고 보지 않아도 적은 탑의 패널티에서 해방된 상태.

    거기에 엄청난 강자다.

    그러나.

    “크크. 지금까지 잘도 날뛰었겠다. 하지만 이제부턴 쉽지 않을 거야.”

    목소리가 울렸다.

    카실리아가 말한 것이 아니었다.

    통로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세 마리의 드래곤 중 중간에 서 있는 여성형 드래곤.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키르쉬나의 입꼬리는 비릿하게 치솟아 있었다.

    * * *

    ‘카스디아 자식... 대체 언제까지 이동할 셈이지?’

    아르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카스디아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1시간 째.

    아무리 카스디아가 주위를 경계하며 움직이고 있다 하나,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기에 그들은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온 상태였다.

    타닥-

    그 순간 카스디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르펜은 재빨리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뭐지? 왜 여기서 갑자기 멈춘 거지? 이 근방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 근방은 과거 블랙드래곤이 담당하여 조사했던 장소로써 별것 없는 곳이라 결론이 난 장소였다.

    ‘......설마, 특별한 게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건가?’

    아르펜은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카스디아가 누군가를 몰래 만나러 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지켜보고 있으면 답이 나오겠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카스디아가 이윽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특정 패턴으로 무엇인가를 조작하자 땅이 울리며 거대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아르펜의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레드 자식들...... 대체 언제 여길 조사한거지? 아니, 어떻게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아낸 거지?’

    아르펜은 레드드래곤들에게 뭔가가 있음을 느끼며 카스디아의 뒤를 쫓았다.

    비밀장소에 존재하는 더 깊은 비밀장소까지... 계속해서.

    중간에 카스디아에게 들킬뻔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아르펜은 블루드래곤 로드였다.

    아르펜은 순식간에 대처했고, 이곳까지 자신이 미행당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카스디아는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조금 더 지났을 때였다.

    “뭐... 뭐지?”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카스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아르펜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뭐지?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설마 눈치챈 건가? 아니, 반응을 보면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때 카스디아가 마그마가 들끓는 용암 아래나, 바위 뒤를 살피는 등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르펜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곧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 행동... 나를 찾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이윽고 다시 카스디아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없어... 아무리 봐도 없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뭐가 없다는 거지? 애초에 여긴 아무 것도...’

    그때 문득 아르펜의 시야에 발밑에 나뒹굴고 있는 한 개의 결정이 비쳤다.

    아르펜은 혹시나 하며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어 올려 정보를 살폈다.

    ‘...이건!!’

    아르펜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 * *

    ‘빨라... 확실히 빠르다. 설마?’

    공격을 이어나가던 유세현을 포함한 일행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새롭게 등장한 1마리의 블랙드래곤과 3마리의 레드드래곤.

    그들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다른 드래곤이 보여준 움직임과는 한차례 차원이 달랐다.

    마치... 그렇다. 그들마냥 패널티가 사라진 것처럼...

    챙!

    콰과과광!

    아퀼라와 레피아의 곁으로 폭격이 떨어졌다.

    둘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환영마법과 빠른 이동속도를 이용해 회피하려 했지만...

    “벌레 따위가 지금까지 잘도... 짓이겨져 죽어라!”

    퍼엉!

    “큭!”

    패널티가 사라진 두 드래곤의 방해 때문에 제대로 된 회피가 안 된다.

    ‘아퀼라! 레피아!’

    “큭!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한 눈을 팔다니.”

    쾅!

    이강호의 창과 키르쉬나의 클로가 부딪쳤다.

    이강호는 키르쉬나를 튕겨내기 위해 곧바로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쿠구구구!

    그러나 키르쉬나는 밀리지 않았다.

    ‘이놈들... 역시...’

    이강호는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제길, 낭패로군. 설마 패널티에서 완전 벗어날 정도의 결정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 넷이나 있을 줄이야...’

    결정은 그들처럼 편법으로 얻기 전까지는 좀처럼 모으기 힘든 물품이었다.

    재해를 사냥해서 얻어야 되는데 무지막지하게 강해 잡는데 많은 수의 대리자가 필요할 뿐더러 잡는다 해도 결정을 그리 많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백무의 말에 따르자면 레드드래곤들은 층을 올라가는데 전념했다.

    본래라면 이렇게 많은 결정을 지니고 있을 수 없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 맞아... 본래라면 이렇게 많은 결정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챙!

    채재쟁!

    ‘큭, 어째서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걸리는 게 딱히 없었기 때문...

    ‘아!’

    그렇게 생각 되는 순간 이강호의 뇌리 한편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결정을 회수하러 갔을 때 보이지 않던 가디언.

    ‘설마 그때 가디언이 보이지 않던 이유가...’

    한 발 앞서온 놈들이 처리해 두었기 때문인 것이라면?

    치지직!

    챙!

    공격을 흘린 이강호가 2보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긴 된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놈들은 결정을 왜 전부 챙기지 않은 거지?’

    이강호는 순간 그리 생각했으나, 곧 어림짐작해낼 수 있었다.

    ‘여타 드래곤들의 감시 때문이겠군.’

    레드드래곤들은 무림인, 무공부터 시작하여 여러 것을 동족에게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는 레드뿐만 아니라 여타 색의 드래곤들도 그러할 것이고.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것이다.

    아무쪼록...

    ‘낭패긴 하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이쪽의 수는 넷. 그리고 패널티가 없는 적들의 수도 넷.

    이렇게 되면 이번전투의 주요 승패는 능력의 차이가 결정짓게 될 것이다.

    ‘그리고 능력 면에서는...’

    이강호의 전신이 주홍빛의 화염에 휘감겼다.

    키르쉬나는 그것을 보자 일순간 흠칫 몸이 경직됐다.

    불길에서 나오는 왠지 모를 불길한 아우라.

    ‘저 불...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그 순간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불을 겁내고 있는 건가? 다른 것도 아니고 불을? 불의 종주인 내가?’

    키르쉬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쉬쉬 털었다.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왜 가만히 있지? 갑자기 내가 무서워지기라도 했나?”

    이강호가 툭 내뱉듯 말했다.

    키르쉬나의 이마에 힘줄이 뿔룩 돋는다.

    “이게...”

    “와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둘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가... 강하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카실리아였지만 유세현의 맹공이 시작되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과 해괴하기 그지없는 검술.

    그리고 더불어 사용하는 강력한 특수특성.

    만약 도와주는 레드드래곤들이 주위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카실리아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놈은... 아마도 로드나 그 측근 정도만이 상대가 가능하다.’

    유세현은 그 정도라 생각될 정도의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우웅!

    루베르크의 검신이 아슬아슬하게 카실리아의 목을 스쳐지나간다.

    본래라면 벨 수도 있는 일격이었지만 주위가 유세현을 가만두지 않았다.

    퍼버버버버벙!

    콰앙!

    끝임 없이 폭격을 가하는 등 결정타를 가하려하면 놈들은 어떻게든 방해를 해왔다.

    ‘칫.’

    뒤로 3보 물러난 유세현의 인상이 살짝 구겨진다.

    지금까진 무리해서 드래곤을 죽일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어떻게든 저 네 마리를 처리해야 된다.’

    이유가 있었다.

    결정은 귀속 물품이 아니라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했다.

    만약 체력이 다된 이 드래곤이 결정을 타인에게 넘기게 되면 유세현은 정황상 패널티에서 벗어난 새로운 드래곤을 상대해야 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그라고 한들 뒤를 장담할 수 없었다.

    ‘후우...’

    유세현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에게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비장의 수단이 남아 있었다.

    “하아압!”

    유세현은 절호라 생각하는 순간에 그 능력을 사용했다.

    [영역선포]

    ‘이건!!’

    순간적으로 당황한 카실리아의 눈동자에 창백한 검신이 드리웠다.

    * * *

    꿈이란 참 이상하기 그지없다.

    꿈을 꿀 때는 꿈에서 아무리 해괴망측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 그것이 꿈이다.

    “아...”

    땀에 흠뻑 젖은 루시아가 눈을 뜬 곳은 침대의 위였다.

    “나는...”

    뭔가 기억이 날듯 하면서도 나지 않는 찝찝한 기분.

    “우리 루시아 깼... 어머! 땀이 이게 뭐니? 악몽을 꾼 모양이로구나?”

    그때 천천히 다가온 그녀의 어머니, 리르샤 아인셰르가 수건으로 루시아의 땀을 닦아주었다.

    루시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악몽? 나 기억 전혀 안 나는데?”

    “꿈은 원래 그렇단다. 날 수도, 안날 수도 있지.”

    “흐음~ 그런가? 꿈은 신기하네.”

    “호호호, 우리 귀여운 공주님~ 곧 있으면 스프 다 되니까 씻고 와서 기다리렴.”

    “히잉~ 밥 먹고 씻으면 안돼?”

    “안~돼~”

    단호한 리르샤의 행동에 루시아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벽에 걸린 거울에 모습이 비친다.

    굉장히 앳된, 작은 꼬마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루시아는 흥얼거리며 자신의 예쁜 금발을 어루만지다 세수를 하기 위해 고무줄로 꽁꽁 싸매 올렸다.

    “근데 엄마, 아빠는?”

    “아빠? 아빠는 웨올씨와 사냥 나갔단다.”

    “에~ 또?”

    “후훗 왜? 아빠랑 놀고 싶어서?”

    “응!”

    “후훗 아빠가 들으면 정말 기뻐하겠네~ 돌아오면 놀아달라고 하렴~”

    “히힛 알았어!”

    루시아는 웃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굉장히 즐거운, 그런 기분이었다.

    무공 창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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