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71화 (45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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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길을 걷는 자가 한낱 나 같은 피조물에게 말인가?]

    “예.”

    [흐음...]

    먹힌 것일까?

    그림자가 흥미롭다는 듯 손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물체를 움직여 턱을 짚었다.

    [그래, 위대한 길을 걷는 자여 무엇을 나에게 묻고 싶은가.]

    이윽고 그림자가 그 거대한 머리를 들이밀며 물어왔다.

    “...!!”

    그 행동에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재해는 기본적으로 그 속도와 공격범위가 장난이 아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그림자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할 시엔 그들은 순식간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 누가 이 상황에서 쫄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두근- 두근-

    루시아의 가슴도 매섭게 고동쳤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들과 달리 불안에서 오는 증세가 아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고양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위기는 그녀에게 있어서만큼은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둘도 없는 찬스였다.

    ‘잘만 한다면 내 능력을 진보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흥분하여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하는 것으로 보건대 지금 저 재해는 나를 보다 높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즉, 재해가 그녀를 존중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보다 위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칫 잘못 질문하여 상대가 실망하게 될 시엔 관계가 단번에 역전 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는 것.

    ‘그러니 여기선 질문 선택을 잘해야 해.’

    상대가 자신을 하찮게 느끼지 못할 정도의 수준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수준이 못 됐다.

    아무리 봐도 재해에 비해 특성의 이해도가 딸렸으니까.

    ‘......’

    그렇기에 루시아는 머리를 최대한 회전시켜 10초도 안 되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얕보이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언어였다.

    “벽에 박혀 있던 대리자들을 봤어요. 당연히 당신이 한 거겠죠?”

    [물론이다.]

    “무척 흥미롭더군요.”

    [흥미롭다?]

    그림자의 고개가 대뜸 갸웃 꺾였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제스처였다.

    “저는 능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 말에 비로소 그림자가 반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강철 같던 그림자의 육신 일부가 갑자기 꿀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부여받은 권능은 극히 일부... 그렇기에 당연히 본연의 힘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응용을 해야 하지.]

    목소리가 살짝 고양된 것이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대는 지금 내가 편법을 사용한다고 하찮게 보이는 모양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저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응용력... 당신의 기술이 배우고 싶습니다.”

    [......]

    스스스-

    꿀렁거림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야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

    “닥쳐 멍청아. 분위기 파악 안 되냐?”

    대리자들은 잔뜩 숨죽인 채 둘을 지켜봤다.

    잠시 침묵하던 그림자가 입 열어 웃었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폭소였다.

    “......”

    사람들은 그러한 그림자의 폭소에 쎄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잘못된 듯한 감각.

    [하하하하! 나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라!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예, 저는 지금 벽에 부딪친 상태거든요. 당신의 기술을 배운다면 그 벽을 깨부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루시아가 정중하면서도 진중하게 말하자 그림자의 폭소가 뚝 끊겼다.

    웃음기를 싹 지운 그림자가 말했다.

    [위대한 길을 걷는 자여, 내가 그대의 의도를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나?]

    “......”

    [비록 내 권능이 티끌에 불과하다만 현재의 난 그대보다 훨씬 많을 것을 깨치고 있다. 그대는 아직 내 아래지.]

    “염병할.”

    대리자들 다수가 지그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불길한 예상이 점점 들어맞고 있었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림자씨. 하지만 저는 언젠간 당신을 뛰어넘게 될 겁니다. 저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길을 걷는 자니까요.”

    [지금과 같이한다면 아마도 몇천 년 이상이 걸리겠지. 어찌하여 이 길을 걷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대는 이 위대한 길과는 성향이 맞지 않아 보이니.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나?]

    “......”

    [아니, 단언컨대 그대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전에 이 세계가 끝이 날 테니.]

    “...?!”

    루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방금 그림자가 한 말은 이 세계의 진실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당신...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군요.”

    [그렇다. 알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지. 그렇기에 난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머저리들과 달리 내 처지를 무척이나 잘 안다. 대리자들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단순 프로그램.]

    그림자의 말에서는 씁쓸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루시아가 측은하게 바라보자, 그림자가 다시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역시 그대는 이 길을 걷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상대를 끝없이 후벼 파야 될 존재가 되려 연민의 감정을 품다니.]

    “......”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방금 전 띄워주기, 썩 나쁘지 않았다. 나를 인정해주는 존재는 여태껏 아무도 없었지.]

    “......”

    [본랜 너를 골려 놀려먹다 유린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위대한 길, 악몽의 길을 걷는 자여 내 친히 그대를 앞으로 인도해주도록 하마.]

    스스스-

    그림자가 거대한 손을 천천히 루시아의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트드드드-

    곧 각 손가락의 마디에서 뿜어져 나온 쇠사슬이 루시아의 전신을 휘감았다.

    각 쇠사슬에는 수많은 망령들이 노예처럼 치렁치렁 묶여있었다.

    망령은 순식간에 루시아의 몸속으로 강제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빠르게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의식을 잃기 직전 그림자의 마지막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던 길을 망령이 밝혀줄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라.]

    * * *

    “아르펜 어째서 마족을 덮치라고 명령한거냐. 아무리 약화되어 있다 한들 벨제뷔트의 세력이다. 피해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을 텐데.”

    복귀하기 무섭게 엘라뉘스가 물었다.

    아르펜은 이에 비릿한 미소를 내지었다.

    “이 정도는 해야 걔가 움직일 것 같았거든.”

    “걔?”

    “그래 걔... 세레나의 심복 카스디아.”

    아르펜은 위층에 올라가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아르펜님! 여기까진 갑자기 어쩐 일로...]

    [내가 그런 거 따지는 성격 아닌 거 잘 알잖냐? 그보다도 세레나는 어디 있어?]

    [세, 세레나님 말씀이십니까? 지금은 안 계십니다만...]

    [그래? 그럼 위치 알려줘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

    [죄, 죄송하지만 극비 임무를 수행중이셔서...]

    [아 됐고,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어. 설마 극비 임무라 어디로 향한지 모르겠다는 개소리를 하지 않겠지?]

    [아...]

    [아, 빨리!]

    이후 아르펜이 더 거칠게 몰아쳤지만 레드드래곤은 어버버 댈 뿐 답하지 못했다.

    드래곤 연합 조약상, 아무리 극비 임무라고 할지라도 로드가 물어온다면 무조건 적으로 답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말이다.

    명백한 규정 위반.

    [죄, 죄송합니다 아르펜님! 어디로 향하셨는지 정말로 알지 못해서...]

    [...뭐, 됐어 그럴 수도 있지.]

    [마, 많이 급하신 겁니까? 제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급한 건 아니거든.]

    [아, 그럼 세레나님께서 돌아오시면 연락책을 보낼 테니 한 번 더 들러주시겠습니까?]

    [뭐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제가 처리가 미숙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게 된 점 다시 한 번 정말 죄송...]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까짓 규정, 뭐 한 번쯤은 어길 수도 있는 거지. 그럼 돌아오면 연락이나 줘~ 난 간다~]

    아르펜은 넘어가 주는 척했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그냥 넘어갈 수 있을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현 판국에서 신뢰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뭔가를 몰래 꾸미지 않은 바에야... 결코 하지 않을, 해선 안 될 실수인 것이다.

    “세레나가 그랬단 말이지...”

    “아무쪼록 지금 중요한건 카스디아 쪽. 내가 올라가기 전에 제렉스에게 감시를 부탁해 놨었거든.”

    “...뭔가를... 발견했나 보군.”

    “응, 모종의 암호였어. 아마 레드끼리만 알아 볼 수 있도록 따로 제작한 거겠지. 그래서 일부러 틈을 준거야. 만약 뭔가를 한다면...”

    “...지금이 적기겠군.”

    “그래 바로 그거지.”

    “감시를 따로 붙여뒀나?”

    “아니, 내가 직접 할 거야. 이런 건 원래 직접 하는 게 좋으니까.”

    이것은 엘라뉘스가 생각하기에 아르펜의 최고 장점이었다.

    스스로 움직여 확실하게 일을 처리한다.

    “고로 난 이만 가보도록 할게. 아, 그리고 네가 신경쓸까봐 하는 말인데 병력 피해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어차피 그건 쇼. 다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하다가 빠지라고 언질 해 뒀거든.”

    “......”

    “그럼 진짜 간다. 이따가 봐~ 결과 알려줄게~”

    이윽고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던 아르펜이 단번에 건너편 바위로 뛰어올랐다.

    질주하기 시작한 그의 얼굴에선 더 이상 장난기라곤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 * *

    레드드래곤들이 각 지정된 위치로 산개하자, 양무원이 준비된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술법이 완성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1시간.

    앞으로 1시간 뒤면 비로소 절대 무공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세레나님 정말 대단하시지 않냐? 트롤의 피를 연구해 그 약을 만드신 것도 그렇고 이번엔 무공이란 마법을 창시하시는 것도 그렇고...”

    “누가 아니래냐. 난 솔직히 절대 성공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

    외곽 지역 곳곳에서는 레드드래곤들의 대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일러스 마법으로 인해 바깥으로 확산 되지 않기에 그들은 목소리를 내뱉는 것에 있어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순조로웠고, 마지막도 순조로운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드드래곤 레쿠리우와 라이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삐이- 삐이-

    미리 설치해둔 경보가 울린 것은 정말 갑자기였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슈욱!

    스산한 바람이 스쳤다. 일반적인 대리자라면 그렇게 느끼고 죽었을 터였다.

    파앙!

    “크으으!”

    그러나 그 둘은 일반적인 대리자가 아니었다.

    세레나를 추종하는 레드드래곤 중에서도 특별히 뽑혀 일을 같이 진행 할 정도의 강자.

    둘은 그런 존재였다.

    “이, 이놈들이! 헬 파이...”

    기습을 가까스로 가드한 두 드래곤은 재빨리 반격을 시도하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각일 뿐 현실은 달랐다.

    쉬이익-

    양측에서 두 명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유세현과 이강호.

    둘의 검과 창은 그들의 예상을 아늑히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기에 레쿠리우와 라이시리아는 잔뜩 당황하여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들! 무슨 속도가...!!”

    “레쿠리우! 뒤! 뒤를 조심!!”

    푹!

    그것으로 끝이었다.

    유세현과 이강호의 공격에 모든 신경을 쏟아 부어야 했던 둘은 상공에서 쇄도하는 아퀼라와 제넥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한들 머리를 관통당하면 끝.

    그들도 생명체인 만큼 죽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컥... 너...흰...대체...”

    서걱-

    콰직.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동시에 목을 자른 유세현과 이강호가 그대로 머리를 짓이겼다.

    여태까지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으로서는 뭣하나 해보지 못한 너무도 허무한 죽음.

    너무 분해 길길이 날뛸 만한 죽음이었지만, 정작 처리한 유세현과 이강호는 썩 만족스럽진 못한 표정이었다.

    “역시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 건 무리였네.”

    무공 창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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