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65화 (45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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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난리 났군.”

    장내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당연한 것이었다.

    대리자들은 웬만한 일로는 실종되지 않는다.

    그들은 튜토리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환각, 사술, 정신공격 등등 입에 오르내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일을 경험한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각 팀에는 만약을 대비해 정신공격에 특화된 능력자들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즉, 지금의 문제는 결코 단순한 실종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서큐버스가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필히 전투가 발생했겠죠. 저항의 흔적이 아예 없었어요.”

    “일단 실종된 팀의 공통된 특성을 종합해보도록 하죠.”

    팀의 활동 경위를 들은 이벨린이 중얼거렸다.

    “장시간의 활동...”

    실종자들은 전부 장시간 동굴에 노출된 이들이었다.

    최소 16시간 이상.

    “16시간 이상 노출되면 뭔가가 발생하는 걸까요?”

    “우리 문파인중에서도 16시간 이상 활동한 사람들이 있다만... 그들은 잘 돌아왔네만?”

    “흠...”

    이벨린이 시선을 슬쩍 루시아를 향해 옮겼다.

    뭔가 알아냈길 바란 것인데 그것을 본 루시아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고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는 탓이었다.

    이에 잠시 고심하던 이벨린이 결연하게 말했다.

    “수색 인원을 세 배로 늘리겠어요.”

    “세 배나요? 경계가 많이 느슨해질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 배로 늘리겠습니다.”

    이건 결코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종자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합 그 자체를 부숴버리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아슬아슬할 정도의 인원을 투입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것이 이벨린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수색방식도 바꿨다.

    “나뉘어서 수색하지 않고 모여서 한 곳 한 곳 확실히 살피도록 하죠. 뭉쳐있으면 만약의 경우 실종자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시간은 더 걸리겠다만... 괜찮은 생각이군. 이럴 때는 뭐든 뭉쳐서 하는 게 좋지.”

    “그럼 30분 후 작전을 실시하는 것으로 하고 이만 해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루시아씨 팀은 잠시 남아주세요.”

    모두가 우르르 자리를 떴다.

    그러자 이벨린이 남은 팀원을 향해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들은 팀을 해제하고 각 다른 팀에 소속돼 주셔야겠어요.”

    루시아를 포함한 모두는 금방 수긍했다.

    “알겠어요. 이벨린씨.”

    “확실히... 이렇게 된 이상 이렇게 팀을 짠 의미가 없긴 하지.”

    “그럼 모두 조심하세요.”

    일행과 나뉜 루시아는 곧 팀 솔로라는 길드에 편입됐다.

    그녀가 차분히 인사를 건네자, 길드장 마르크가 대뜸 그녀의 손을 잡으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루시아씨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지금까지 쭉 봐와서 알고 있습니다. 제발... 제발 실종된 우리 팀원을 꼭 좀 찾아주세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렇게 3차 수색, 아니 실종자 탐색이 시작되었다.

    * * *

    “최대한 빨리 움직여!”

    확실하진 않다만 그나마 실종의 원인으로 꼽힌 것이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은 촉박하게 움직였다.

    전후좌우.

    수많은 인원을 대동했기에, 그리고 수없이도 합을 맞춰왔기에 그들의 감시에 빈틈 따윈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첫 번째 갈림길.

    [괴...로워...]

    루시아를 향해 길 전체에서 귀곡성이 울려왔다.

    그녀가 길을 확정하지 못한 제일 큰 이유였지만, 이번 작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실종자 수색이었기에 그녀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사람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에밀리! 에밀리!”

    “마르크씨! 아무리 그래도 소리는 지르지 마세요!”

    “뭐 어때서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어차피 누군가가 있었다면 진즉 움직임을 읽혔을 겁니다!”

    “후... 그러니까예요. 마르크씨 말마따나 그들이 우리가 온 걸 모를까요?”

    “......큭, 미안합니다. 잠시 정신을 놨군요.”

    흔적을 추적하던 사람들은 정말 이 잡듯이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없어요. 흔적이 끊긴 장소로부터 벌써 1km는 더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보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만 12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후... 모두 잠시 휴식하도록 하죠.”

    “휴식!”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은 호흡을 고르며 제각기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생명체인 이상 흔적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티끌만큼은 남게 되어있는 법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사람들은 무슨 작업을 할 때 일부러 동료들만 알아 볼 수 있도록 은밀한 흔적을 남겨왔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과 같이 초반부과 중반부에는 이러한 흔적이 확실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빌어먹을.”

    어느 곳을 기점으로 난데없이 흔적이 완전히 끊겼다.

    마치 증발하기라도 한 것 마냥.

    이건 그들이 보기엔 더 이상 실종이라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타임 리미트까지 4시간 남았어요. 2시간 정도는 더 수색할 수 있지만... 솔직히 단서를 얻을 거라 생각지는 않아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죠.”

    그렇게 2시간을 더 수색했지만 사람들은 역시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시간 됐어요. 퇴각하죠.”

    사람들은 서둘러 퇴로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우리도 일단 나가도록 하죠.”

    루시아가 마르크를 향해 말했다.

    그때까지도 마르크와 그의 길드원들은 새까맣기 그지없는 동굴의 더 깊은 부분, 심층부를 보고 있었다.

    “마르크씨?”

    반응이 없어 루시아가 재차 묻자, 비로소 고개를 돌린 마르크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루시아씨. 우리는 나가지 않고 더 찾아보겠습니다.”

    “예?”

    “이대로 나가게 되면 분명 우리 팀은 다시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아니, 들어올 자신이 없어요. 16시간 이상을 버틸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니까요. 저는 겁쟁이입니다. 아마 당신이 포함되었었던 첫 수색 팀이나 그 후 이상이 없었던 몇몇 팀 정도만 이곳에 들어오게 되겠죠.”

    “......”

    “그렇게 되면 수색은 당연히 더 늦어질 겁니다. 자연스레 생존률은 내려가겠죠. 그래서 저는 지금 찾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해온 길드장으로서, 가족으로서 그들을 찾아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길드원들도... 저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

    루시아는 단호하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현재의 인간진형은 제국 개념으로 통합된 것이 아닌, 여러 집단이 모여서 이루어진 연합이었다.

    비록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라지만, 마르크가 팀을 이끄는 리더인 이상 막을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루시아가 잠시 고심하다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남겠어요.”

    “예, 예? 그,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정말 의외의 답변이었는지, 마르크와 길드원들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같은 사람이라지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이상 사실 오늘 처음 함께하는 그녀가 도와줄 의리 따윈 없었다.

    “예, 저도 함께할게요.”

    그럼에도 루시아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차피 그의 말마따나 다시 들어올 예정이었다.

    게다가 호신강기를 써야 버틸 수 있는 사람들과 달리 되레 그녀는 이 공간이 마치 고향과 같이 굉장히 친숙하기 그지없었다.

    큰 물리적인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괜찮을 거라는 예감이 든 것이다.

    ‘좀, 불쌍하기도 하고...’

    에밀리라는 여자의 실종 후 마르크가 얼마나 길길이 날뛰었던가... 루시아는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유세현이 겹쳐 보였었다.

    “감사합니다! 갑사합니다!”

    마르크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고 감사를 건넸다.

    이에 평소 마르크와 친분이 있던 몇몇이 떠나가기 전 충고했다.

    “마르크... 당신 팀원이 전원 실종 되도 우리는 당신들을 찾기 위해 힘쓰지 않을 거야. 이건 당신들이 선택한 거니 말이지.”

    “만약 다른 이들을 먼저 찾게 된다면 우린 그 즉시 수색을 종료할 거다. 그래도 정말로 할 텐가?”

    “전부 감수하겠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무운을 빌어주지.”

    타다닥-

    비로소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루시아와 팀 솔로뿐이었다.

    “에밀리씨가 실종된 장소는 어딘지 기억하시죠?”

    “물론이죠. 일단은 조금 되돌아가야 됩니다.”

    “안내해주세요. 그곳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예. 알겠어요.”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마르크가 한결 기쁜 표정으로 뒤를 돌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스스스-

    그녀의 망막 속에 마르크와 길드원들의 몸 주위로 피어오르는 기묘한 검은 아지랑이가 일순간 포착됐다.

    ‘어?’

    정말 찰나,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기본적으로 세심한 성격인 데다가 유세현과 줄곧 함께 해왔던 그녀는 그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깜빡인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흔적이 온대 간데 사라진 후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예? 루시아씨가 팀 솔로 분들과 함께 남으신 거 같다고요?”

    “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요.”

    “흠...”

    검은꽃, 실리스가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정작 보고를 받은 이벨린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쁘지 않네요.”

    “예?”

    루시아는 이레귤러 중에서도 정말 특이한 이레귤러였다.

    뭐니 뭐니 해도 호신강기나 배리어 없이 동굴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니 설사 동굴에 다른 기묘한 힘이 흐를지언정 그녀에겐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만약 그런 힘이 작용해 실종이 된다면... 아마도 팀 솔로 분들이겠죠.”

    “이벨린씨 설마... 마르크씨가 그렇게 나올 걸 예상하고 그녀를?”

    “만약의 경우는 전부 고려하는 편이 좋잖아요?”

    “......”

    루시아의 배치는 의도적인 것이었다.

    격앙된 상태를 보였던 팀 솔로의 인원들이, 스스로 미끼를 자처할 때를 대비한.

    자칫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미끼 역할을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인간진형 쪽에선 되레 그들의 행동은 1석 2조라 볼 수 있었다.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최악의 경우가 도래했을 때 팀 솔로를 구하지 않아도 비판 받지 않을 명분이 생겼으니까.

    ‘무서운 사람이다...’

    실리스는 순간 소름이 돋았으나 구태여 감정을 입으로 내뱉진 않았다.

    이벨린 또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예측한 것일 뿐 비인도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벨린은 곧장 명령을 하달했다.

    “수색은 잠시 중지. 교대로 통로만 확보해 놓으세요. 적이 나타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그러도록 하죠.”

    사람들이 움직이자, 깍지를 끼어 턱을 괸 이벨린의 시선이 동굴로 향했다.

    ‘만약 루시아씨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현 상황에선 거의 미래가 없다.’

    16시간 이상 활동할 수 있던 이들도 동굴 내에서 최대로 보내본 시간은 고작 24시간.

    그렇기에 그들 또한 언제 실종자처럼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제발 단서를 찾을 수 있기를...’

    악몽을 꾸는 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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