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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60화 (44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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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호가 이곳 절멸의 탑을 찾은 이유는 인간들의 성장을 제외하고도 다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내부 신물 파편을 지니게 된 대리자는 리스크를 부담하는 대가로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된다.

    대개 유세현처럼 고유특성이나 다른 능력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힌트를 얻기 마련이지만 이강호가 손에 넣은 정보는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을 뒤바꾼 성전]

    언뜻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유세현 때와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이 문구는 이강호에게 있어선 그 의미가 많이 달랐다.

    ‘모든 것을 뒤바꾼 성전...’

    그는 이 성전의 위치가 예측이 되었으니까.

    모든 것을 뒤바꾼 성전은 오직 그곳뿐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종족들이 힘겹게 일궈놓은 모든 것들은 강제로 덮어쓴 장소로서, 신의 회중시계가 발동 된 그곳.

    [신의 회랑]

    ‘후우...’

    처음 이강호는 이 정보를 받았을 때, 왜 이런 정보를 받은 것인지 그 본질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의 회중시계는 시간과 공간 모든 것을 초월해 오직 단 한 번밖에 작동시킬 수 없는 유일한 EX랭크 아이템.

    신의 회랑에 간다한들 그곳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의문에 찬 이강호였으나,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강호는 과거 제단에서 스스로의 손을 찌르는 자해를 한 것으로, 스스로 중요한 무엇인갈 까먹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모하게 동료를 구출하러 갔던 유세현과 루시펠을 도우러 다시 발걸음을 돌린 것이었고.

    회중시계의 부작용은 중대한 기억의 결손.

    어쩌면 인간의 존폐 그 자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억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이강호는 그 기억을 어떻게든 되찾아야 될 필요성을 줄곧 느끼고 있었다.

    신물 파편을 얻기 전까지는 당최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그저 막막했는데...

    신의 회랑과 기억의 결손, 사고의 연결고리가 한 번 이어지자 물 흐르듯 자연스레 결과가 도출되었다.

    신의 회랑에는 기억 결손을 메울 수 있는 뭔가가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신의 회랑과 연결되어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절멸의 탑이었다.

    ‘정확히는 8층, ‘그곳에’ 존재하지.’

    신의 회랑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아직 2층이나 더 올라가야 됐다.

    아직 많은 시련을 거쳐야 되는 것.

    ‘반면 무공은 이 층에서 완성된다.’

    지금까지 태백무가 내뱉은 말로 보건데 이미 꽤 다수의 레드드래곤들이 마공 및 상승무공을 교인들에게서 빼먹어 익힌 상태였다.

    그런 지금 무공제작이 실패하면 천만다행이지만 만약에라도 성공해버려 그 무공을 고룡, 로드급의 드래곤이 손에 넣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역시 이건 아무리 봐도 저지해야겠군.’

    다른 건 몰라도 천마신공이나, 태양신공급의 무공을 놈들이 익히게 될 시 그 파급력이 얼마나 될지는 이강호조차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이강호가 말했다.

    “레피아가 회복되는 대로 움직인다.”

    “저지하러 갈 거지?”

    “응.”

    “저... 저지 말씀이십니까?”

    이강호와 유세현의 판단을 들은 태백무의 낯빛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의, 의식이 치러질 그 주위는 레드드래곤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아, 아무리 마존이시라 할지라... 헙!”

    잔뜩 당황하여 말을 내뱉던 태백무가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마냥 다급히 입을 막았다.

    마존의 말은 절대적, 의심하지 않고 따른다.

    지금까지 쭉 고수하던 마교의 법칙을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가 죽을죄를...”

    “그만, 거기까지. 고개를 들어라.”

    태백무가 오체투지를 하려했으나 유세현이 이를 제지했다.

    그가 태백무를 향해 단호히 말했다.

    “난 스승님이 아니다. 나는 나고 내 스타일이 있다.”

    “......”

    “너의 그 이견은 대리자라면 누구나 그랬을 일이다. 난 이견을 내는 수하의 말꼬리나 잡는 소인배가 아니다.”

    “마존이시어...”

    “너의 생각은 이해한다만 우리가 멍청이도 아닌 바에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을 할 리가 없지.”

    “하옵시면.”

    유세현을 올려다보는 태백무의 눈은 어느새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처음은 천마대이기에 천마의 제자인 그를 따른 것에 불과했으나, 지금 이 행동으로 인해 태백무는 유세현을 자신의 진정한 참된 주군이라 여기고 있었다.

    “방도가 있다.”

    “충!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태백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제넥이 이강호의 옆구리를 슬쩍 쳤다.

    “이강호. 때가 왔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이강호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세현아, 레피아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최소 5일 이상이 소요될 거야. 너랑 태백무는 여기서 이 주위를 감시해줘. 드래곤들이 이곳에 되돌아와 살필 가능성은 낮지만 0%는 아니니. 나랑 제넥은 원래 숨었던 곳을 맡을게.”

    “그래. 알았어.”

    “이동하지, 제넥.”

    이강호는 제넥와 함께 김주희가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큰 출혈로 인해 한번 기절했었던 레피아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이강호...”

    “정신이 좀 들었나. 레피아.”

    “후... 뭐라 할 면목이 없어. 방심만 하지 않았어도...”

    “모든 걸 다 예측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던 거였다. 그보다도 레피아.”

    “응?”

    “이야기를 들을 정신은 되나? 나에 관한 거다. 너도 이제는 알아야 될 거 같아서 이렇게 된 거 같이 하려한다.”

    “너에 관한 거? 뭐 듣는 것 정도라면...”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지.”

    이강호가 운을 띄우자 김주희와 아퀼라가 보다 감시의 범위를 넓혔다.

    이 이야기는 이곳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난...”

    이강호가 비로소 자신에 대해 털어 놓자, 이강호의 능력을 대충 지레짐작하고 있던 레피아를 포함해 제넥의 턱이 동시에 벌어졌다.

    * * *

    “그랬구나. 그래서...”

    레피아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사기꾼에게 크게 당한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독이 통하지 않을 법도 했네. 아니 통했을 터가 없지.”

    이강호와 유세현, 김주희를 급습하려다 독이 통하지 않아 되려 크게 당한 적이 있었던 과거의 일을 레피아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독제를 제조한 것인지, 어떻게 자신보다도 상위의 독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내내 궁금했었는데...

    “내가 알려준 거였다니... 내 기술에 내가 당한 거였잖아?”

    “훗, 억울한가?”

    “음... 조금?”

    “조금인 표정이 아니다만.”

    “응, 사실은 많이.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진짜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니까?”

    “오래전의 추억이군.”

    “너한테야 추억이겠지.”

    레피아가 피식 실소를 내뱉자 이강호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넥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어쩐지, 이강호 당신이 사용하던 그 창술, 내 창술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뭐, 당신이 알려준 것이었으니, 눈치 챌 거라 생각했다만?”

    “그걸 어떻게 눈치 채? 그냥 재능이 좀, 아니 많이 뛰어나구나 라고 생각하지.”

    “훗.”

    “아... 옘병. 이미 만날 때부터 내 밑천은 다 털려 있었구만.”

    이윽고 제넥이 쯧 하고 혀를 찼지만 기분은 그닥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뭐, 그래도 미래를 아는 자가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건 천만 다행인 일이로군. 만약 이강호 당신이 아니라 다른 종족의 누군가가 과거로 돌아갔었다면...”

    “아마 지금쯤 벌써 승패가 결정 나 있었겠지.”

    “역시 그렇겠지?”

    그 누가 들었더라도 이런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문득 미래에 불리게 될 자신의 별명을 떠올린 제넥이 재밌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창이라... 훗, 확실히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 성격은 도저히 어딜 가지 않는군.”

    “그야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이니 당연한 거지. 아, 그보다도 그럼 과거 유세현은 뭐라 불렸었나? 궁금하군. 검신? 신검? 지금은 딱히 별명이 없는 것 같은데...”

    “세현이 말인가? 걔는...”

    김주희와 아퀼라를 쓱 훑은 이강호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다.”

    “...응?”

    그 말에 제넥은 물론이거니와 레피아의 고개 또한 갸웃 꺾였다.

    당연한 것이었다.

    레피아는 처음부터 그가 얼마나 강했는지 몸소 체감한 인물이었고, 제넥은 유세현 정도라면 지금까지 능히 살아남았으리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과거 유세현... 그리고 여기 있는 김주희는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바보 같이 나대길 좋아하던 한 머저리 때문에.”

    “흐음... 어지간히도 바보 같은 놈과 동행했었나 보군. 이런 재목들이 고작 튜토리얼에서 리타이어를 하다니.”

    “뭐, 그렇지.”

    이강호가 쓴 미소를 머금었지만, 제넥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나 명칭으로 눈치를 챘을 터지만, 당초 큰 의미를 두고 물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넥에게 있어서 과거는 과거였고, 현재는 현재였다.

    “제가 재목이요? 저도 처음엔 잘 싸우지 못했거든...”

    김주희가 순간적으로 욱 치밀었는지 뭐라 한 마디 하려했지만, 이강호가 고개를 젓자 그 앵두 같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제넥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쪼록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고. 그보다 정말로 제지하러 갈 건가?”

    “물론, 레드드래곤은 거의 우승 직전에 다다랐던 세력이다. 그런 놈들이 최강의 무공까지 익히게 둘 수는 없지.”

    “하지만 어떻게?”

    인간과 드래곤과의 전력의 차는 어마무시하게 컸다. 그리고 그 차는 이곳에 올라와서 더 커졌을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언제 본대와 합류할 수 있을지 당신도 정확히 장담하지 못했지 않나.”

    이강호가 근처를 둘러서 확인해본바 그들이 떨어진 장소는 본대가 떨어졌을 시작점과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기에 당장의 합류는 불가능,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는 건 즉 우리끼리 막으러 가겠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가능하리라 보나? 솔직히 태백무라는 자에게 왜 호언장담을 했는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강호는 그 의문을 단 한 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왜냐하면.

    ‘레드드래곤이 정말로 다른 드래곤들 몰래 작업하고 있는 것이라면 많은 병력은 운용할 수 없다. 필히 소수정예를 운용할 터.’

    다수라면 몰라도 소수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게다가 진위는 이동하면서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마땅히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 수 있을 터였다.

    태백무가 설명한 장소는 이강호도 알고 있는 장소였으니까.

    “...힘이 봉인 당한 상태임에도 말인가?”

    “우스운 질문이군. 내가 누군지 설명한 걸 벌써 잊었나?”

    “?!”

    이강호가 피식 입꼬리를 올리자 제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깨달은 것이다.

    “설마?!”

    “그래, 분명 현재 우리의 힘은 봉인 된 상태다. 하지만 봉인은 깨버리는 되는 법.”

    봉인을 부수면 그러지 못한 자와 자연스레 격차가 생긴다.

    “게다가 지금 내 판단이 맞다면 레드드래곤 진형은 그리 많은 병력을 운용하지 못할 거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지?”

    “이유가 있다. 또 설명해줘야 하나?”

    “아니 됐다. 확실히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물어보게 되면 끝이 없을 테니. 그냥 믿도록 하지.”

    “좋은 생각이야.”

    말을 마친 이강호가 쓱 하늘을 살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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