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606 --------------
태백무를 보자 이강호 또한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상당히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이강호가 물었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그 태백무가 맞나?”
“그렇다.”
“그럼, 외부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설명해줬으면 좋겠군. 그렇지 않으면 의구심이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네가 그토록 존경하는 마존도 말이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 걱정 마라.”
“좋아. 그럼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우선 세현이가 숨어있었던 왜곡 지점으로 되돌아가도록 하지.”
그들은 곧장 장소를 옮겼다.
지점에 도착하고 자리를 잡자 태백무가 한 없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강호, 우리 본교가 너희 진형에서 떨어져 따로 행동하던 건 너도 아직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다. 마교는 항상 제멋대로였지.”
“...훗, 제멋대로라...”
태백무가 쓴 실소를 머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대한 힘으로 떵떵거릴 수 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옷도 다 떨어져가는 누더기 신세였으니까.
“기본적인 건 전부 기억하니. 본론을 말해라. 왜 갑자기 자취를 감췄지?”
“드래곤 때문이다.”
“드래곤?”
“그래. 드래곤이 또 다시 마교를 찾았다.”
그 말에 이강호와 유세현이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과거 막대한 물량과 강대한 스탯으로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트롤, 그리고 그런 트롤의 왕이었던 트루크.
그 트루크가 사실은 드래곤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린, 저항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찾아온 놈들의 수가 이번에 40을 넘겼기 때문이다.”
“......”
마교는 유세현과 레드드래곤 셀론의 대결로 인하여 드래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톡톡히 체감한 단체였다.
“양무원도 놈들의 수를 보자마자 꼬리를 말았다. 그 결과 우리는 내부로 이동될 때까지, 아니 되고 나서도 놈들의 포로로 있었다.”
“쭉 붙잡혀있었다는 건가?”
“그래, 온갖 종류의 추적마법이 몸에 걸린 턱에, 내부로 이동되었을 때도 금방 붙잡혔다.”
“흠...”
“놈들의 목적은 무공이었다.”
“뭐, 당연히 그렇겠지.”
마교는 힘의 순리를 따르는 단체, 무림인들처럼 하나의 무공을 고집하지 않았기에 마교는 각양각색의 상승무공, 마공을 다량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판도라 이동 후 무공이 소실되었음에도 일반적인 문파보다는 남아 있는 게 훨씬 많았다.
‘여전히 좋은 먹잇감이었다는 건가.’
이강호도 유세현이 사라진 직후에는 드래곤이 혹시나 또 찾아오지 않을까 많이 경계했었다. 하지만 그림자 종족을 처치하고 추가로 여러 신물파편을 획득하는 동안까지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 경계가 자연스레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트루크가 농락당했다는 걸 알았을 때 한 번쯤은 생각해봤어야 했는데...’
내부로 이동된 터라, 당장에 닥친 일을 처리하고 할 것들을 하느라 미처 겨를이 없었다.
“후...”
그 후 태백무는 겪었던 일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했다.
한 종족이 멸망하는 것을 직접 지켜본 일.
던전에서 드래곤의 뒤를 따라가다 허무하게 죽을 뻔한 일.
그 과정에서 태백무는 수많은 경험을 겪으면서 느꼈던 부분 중 중요하다 생각한 것을 꽤나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아무리 봐도 다른 드래곤들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눈치였다.”
“뭐?”
드래곤들이 연합 상태라는 건 제넥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당장에도 보지 않았던가?
그린드래곤, 블랙드래곤 등등 온갖 종류의 드래곤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일부러 감추지 않는 바에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터였다. 아니 상당히 공을 들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바로 그거다. 놈들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감추...”
태백무가 추가적으로 말하려 할 때 이강호가 툭 말을 끊었다.
“확실히... 가능성은 충분하군.”
“동감이야.”
이 게임의 승리자는 단 1명이다.
그리고 무공은 인간을 강자의 반열로 올려준 강력하기 짝이 없는 스킬이었다.
유리한 입지에 있는 이상, 강한 스킬, 비장의 수는 자신만 가지고 있고 싶은 법.
“레드드래곤이라...”
이강호의 머릿속에 오만한 용 한 마리가 떠올랐다.
레드드래곤 로드, 퀴르벨 레퀴아르크.
강력하기 짝이 없는 파이어 브레스로 시신조차 남기지 않는 전장의 폭군.
놈은 그 특성상 엘라뉘스와 더불어 이강호가 상대하기 제일 껄끄러워했던 대리자 중 한 명이었다.
불꽃의 격하, 놈에게는 이강호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불꽃이 잘 듣지 않았으니까.
‘과거 놈은 무공을 지니고 있지 못했음에도 어마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런 놈이 무공까지 지니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껄끄럽군.’
마교가 살아남은 것이 설마 좋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게 될 줄이야.
이강호는 그리 생각하다가 뭔가 큰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잠깐만... 애초에 마교를 무너뜨린 건 드래곤이잖아?’
회귀를 하기 전까지, 이강호는 마교가 왜 멸망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제 한 몸 챙기기 급급했던 자신을 포함하여 이벨린이나 에반 그리고 무림인인 남궁시영까지, 원인을 파악한 인물이 아무도 없던 탓이었다.
‘흠...’
하지만 회귀를 하고 과거를 비틂으로써 지금 그는 과거 마교가 왜 사라졌는지 원인을 깨달은 상태였다.
‘목표를 이룬 레드드래곤 셀론, 놈이 없앴겠지.’
그러나 그렇게 되면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어째서 퀴르벨은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단순히 숨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 정도였다.
퀴르벨이 총애하는 다른 이에게 양도했다거나 혹은...
‘퀴르벨의 손에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던가.’
“태백무. 다른 건 이제 됐으니 탑에 들어오게 된 경위 대해서 말해봐라. 그리고 어떻게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건지도.”
“그래... 그러도록 하지.”
태백무의 말이 이어지자, 그것을 듣는 모두의 낯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 *
최강의 무공을 만들어낸다.
그건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소망이었으며, 과거 마교 교주 장사월이 제물을 바쳐 이루려 했던 일이었다.
완성되기 직전 일행의 제지로 인해 비록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장사월은 분명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다.
장사월과 함께 대다수들의 술법사들이 사망하여 술법의 상당부분이 소실되었지만 교주로 등극한 양무원은 그것을 이어받아 무공 개발에 신경을 다했다.
셀론과 유세현이 보여준 그 어마어마한 전투, 그 또한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장사월이 사용했던 마수보다 강한 마수를 집어넣고, 이종족의 처녀까지 붙잡아 제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씩 계속 틀어져 무공은 좀처럼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차례 실패했을 때였다.
양무원과 술법사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왜 지금까지 무공을 만들어 낼 수 없었는지.
“이 세계가 본래 세계가 아닌... 판도라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결론을 내놓았다.”
이 세계가 온갖 종류의 법칙이 합쳐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세계이기에 기존의 법칙을 따르는 술법으로는 무공을 창시할 수 없던 것이다.
“양무원은 그때 비로소 포기했다. 무공을 만들어 내는 것을.”
하지만 드래곤들에게 붙잡힌 이후, 드래곤들은 양무원과 술법사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여러 가지 법칙을 일러주었다.
왜 일까?
답은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무공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 무공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마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다.
무공서는 힘으로 뺏을 수가 있으니까.
“드래곤들은 목숨을 담보로 우리를 협박했다. 하지만 우리는 교인, 모든 것을 뺏기고 허무하게 죽을 바에야 차라리 싸움을 선택하는 족속이지.”
살아날 길이 없으면 마교의 교인들은 죽기 살기로 대들 터였다.
“그래서 드래곤들은 양무원과 우리 교인들에게 약조했다.”
“뭘...”
“만약 최강의 무공을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동족으로 만들어주고 마땅한 지위까지 주겠다고.”
“...뭐?”
“그리고 이 탑에는 무공의 소재가 되어줄 재료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현재 여기 있는 이유다.”
태백무가 차분히 입을 닫았다.
제넥이 꽤나 놀랐는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이 어이 잠깐만. 동족으로 만들어 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설마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겠지?”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그러니까. 드래곤화를 시켜준다? 인간을?”
“그렇다.”
“큭, 개소리.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가능은 하다. 일시적이지만.”
“뭐?”
태백무가 포켓을 뒤적였다.
“어이! 멈...”
제넥이 잔뜩 경계하여 재빨리 창을 올렸으나 유세현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윽고 병 하나를 꺼낸 태백무가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상태로 읽을 테니. 정보를 개방해라. 태백무.”
“존명!”
이윽고 일행의 눈앞에 아이템의 정보가 나타났다.
아이템명: 변화의 신약
등급: 에픽 [A Rank]
상세정보: 레드드래곤 ***가 제작한 신약입니다. 복용자를 일시적으로 레드드래곤화 시킵니다.
“정보가 전부 공개 되어있지 않군. 조작의 가능성이 있어. 이건 쓰여 있는 데로 믿어선 안 된다.”
이강호가 감상을 말하자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확실히... 태백무, 이걸 마셔본 적이 있느냐?”
“예. 지금까지 총 열 번 마셔봤습니다.”
“열 번 씩이나? 뭔가 부작용은 없었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모종의 이물감이 드는 것 빼고는 아직까지는 딱히...”
“흠...”
이강호가 팔짱을 꼈다.
태백무의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바 논리정연하고 잘 들어맞았다.
‘추적마법도 달려있지 않았고 말이지.’
“그 약 언제 언제 마셨는지 기억하나?”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억은 하고 있지. 이런 꺼림칙한 걸 마셔야 했었으니. 처음은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해보기 위해 마셨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로드급의 드래곤들이 진형에 찾아왔을 때,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말을 이어나가던 태백무가 말했다.
“이 탑을 들어오기 직전... 그때도 마셨군.”
“......”
이강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가 알고 싶었던 건 바로 이것이었다.
‘비약은 복용한 자를 드래곤화 시킨다.’
그건 곧 드래곤으로서 취급이 된다는 뜻.
절멸의 탑에 진입함으로써 자연스레 나뉘어졌어야 될 마교와 드래곤이 같은 장소에 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머리 좀 굴렸군.’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정보이기도 했다.
‘드래곤들... 아니 최소 레드드래곤 진형은 이 절멸의 탑을 오르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랬다면 종족이 분류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교인들은 약물을 섭취하지 않았을 테고, 드래곤과 나뉘게 되어 전멸하였을 테지.
태백무에게 들어본바 교인들의 스텟은 그리 높지 못했다.
도주의 위험성이 있어 관리되어지고 있었기에 1~10순위 되는 강자가 SS랭크 중급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도망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친 거지? 추적 마법은 어떻게 제거한거고?”
“운이 좋았다. 이동하고 있는 도중 갑작스레 재해가 덮쳤지.”
바람의 성질을 지닌 재해였다.
“놈이 일으키는 바람의 칼날은 나와 드래곤을 이어주고 있던 술식을 끊어버렸다. 줄곧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난 곧바로 천마대를 이끌고 탈출했다.”
“천마대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추격이 이어졌고 안타깝게도 다수가 사망. 우린 흩어지는 걸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기회를 엿본 거지? 만약 양무원이 무공을 만들어 낸다면 그 강한 드래곤과 같은 일족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첫 번째로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다시피 이 비약은 불완전하다. 완전한 게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그래도 생각이란 걸 하는 군.’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는 탈출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출구를?”
“그래, 이 탑의 곳곳에는 이곳을 벌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존재한다. 자세한 위치는 설명하기 어려워 할 수 없다만... 아무쪼록 난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흐음...”
“마존이시어! 이제 드릴 수 있는 말은 전부했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태백무가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며 이강호와 마음을 맞춘 유세현이 말했다.
“태백무, 네가 한 말... 신뢰하겠다.”
“충!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말만 하십시오. 만약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전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강의 무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제물이 여기에 존재한다고 했었지?”
“예!”
“그것이 뭐냐?”
“그건...”
태백무가 읊조리자 차분히 턱을 짚은 이강호가 생각에 잠겼다.
예기치 못한 만남(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