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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58화 (44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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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신의 성전에 멋대로 발을 딛다니! 신의 분노를 받아라!]

    포세이돈이 휘두른 물의 창이 움직인 경로를 따라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김주희가 경악하여 외쳤다.

    “선배님 저놈 지성도 있어요?!”

    “있지. 그래서 위협적인 거고.”

    “노, 놈이 눈을 떴는데 세현 선배는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

    이강호가 재차 침묵했다.

    그들이 있는 지금 이곳은 격리된 공간, 자연재해들이 인식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곳은 자연재해 몬스터들이 인식하고 있을 때는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놈의 눈에 발각된 이상 놈의 인식에서 한번 벗어나야 되는 것인데...

    “방도가 없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강호를 포함해 일행은 마력을 전부 소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로 나갔을 시 죽음을 의미했다.

    “내가 미끼가...”

    아퀼라가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강호는 그녀의 어깨를 재빨리 낚아채 붙잡았다.

    “헛된 짓 하지 마라 아퀼라. 그런 걸 바랄 인물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도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럼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이냐!”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그건 네가 나가봤자 똑같아. 아니 되려 유세현의 발목만 붙잡는 꼴이 되겠지.”

    “선배님! 이쪽으로 와도 소용없대요! 다른 곳을 찾으셔야 돼요!”

    김주희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외쳤으나, 해일에 가로막혀 그녀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으...!!”

    “진정해! 천마군림보를 사용하고 있잖아! 다행히도 아직 잔여 마력이 존재하고 있어! 이제부턴 세현이를 믿는 수밖에 없어!”

    슈슈슉!

    파앙!

    가속하여 정말 아슬아슬하게 해일을 회피한 유세현의 시선이 김주희가 존재하고 있을 감춰진 공간을 향했다.

    ‘아무도 날 도우러 나오지 않고 있다. 그건 달리 말하면 도우러 나올 수가 없다는 뜻.’

    사전 이강호에게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던 유세현이었지만, 평소 생각이 깊었던 그는 그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많은 것을 유추해냈다.

    ‘만약 저 장소가 놈의 공격을 무조건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잠깐이라도 시선을 끌어주기 위해 모습을 비춰줬을 거야.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감춰진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하고, 나오게 되면 그 조건을 다신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라는 결론이 유세현의 머릿속에서 도출됐다.

    ‘그렇다면 그 조건이란... 아마도 처음부터 놈의 눈에 걸리지 않아야 된다거나. 시선에서 벗어나 있어야 된다는 그런 비스무리한 거겠지.’

    공중제비를 돈 유세현의 신형이 반대편을 향해 꺾였다.

    유세현이 반대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하자 그의 목에 매달려 있던 제넥이 잔뜩 당황하여 다급히 외쳤다.

    “유세현! 거긴 반대편이다!”

    “......”

    “반대편이라니까!”

    설명할 여유가 없었기에 유세현은 말을 무시한 채 오직 회피에만 전념했다.

    제넥은 100m를 이동하고 나서야 그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물러나고 있는 거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잘라낸 물기둥에서 튄 물방울이 피부를 스쳐지나가자 제넥이 혀를 대차게 찼다.

    ‘젠장, 이 물... 보통 물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하다.’

    설상가상으로 유세현의 스피드는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

    ‘지금 상태로는 절대 놈에게서 못 벗어난다.’

    그리 판단한 제넥이 말했다.

    “유세현! 내가 어떻게든 막아보고 있을 테니 당신은 동료들이 숨었던 곳과 비스무리한 장소가 주위에 있는지 찾아봐라!!”

    “찾는다 해도 소용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하지만 이대로라면 따라잡혀 죽는다! 당신 지금 마력 거의 다 떨어졌잖아!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제는 그거에 걸 수밖에 없어!”

    “......”

    맞는 말이었다.

    유세현의 마력은 이제 곧 전부 소진된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 1분 정도가 한계일거다.”

    순식간에 양발로 유세현의 허리를 붙잡아 자세를 바꾼 제넥이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나선극회공(螺線戟廻功)]

    [방어절기]

    [적방회경(赤防廻傾)]

    훙! 훙! 훙! 훙!

    발생된 강력한 풍압과 함께 고속 회전하는 창이 해일을 분쇄해 나간다.

    유세현은 그 사이 특이 지점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다 했다.

    ‘강호는 특별한 아이템을 지니고 있지 않았어. 그건 곧 나도 찾을 순 있다는 뜻이다.’

    30초가 흘렀을 때였다.

    [어딜 쥐새끼들이!]

    퍼엉!

    ‘큭!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위력적이다...!!’

    제넥의 표정은 오만 인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진원진기까지 운용하고 있건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긴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유세현! 아직 못 찾았나?”

    “......”

    유세현의 눈동자가 멈출 새 없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마력을 읽어나가고 있는 그의 눈에서는 강렬한 휘광과도 같은 밝은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어디지? 어디에... 설마 이 주위에는 더 이상 없는 건가?’

    그때였다.

    [끝이다! 오만한 필멸자들이여! 죽음으로 그 죄를 사죄하라!]

    포세이돈의 외침과 함께, 묘한 뒤틀림이 유세현의 시야에 포착됐다.

    ‘저긴가!!’

    파앙!

    유세현은 순식간에 가속하여 그 장소에 다다랐으나, 포세이돈의 공격은 멎지 않았다.

    ‘역시 놈이 보고 있을 땐 소용이 없는 건가!’

    “유세현!”

    “소용없어요! 이곳이 찾고 있었던 그 장소입니다!”

    “뭐라고? 그럼 끝장...”

    쿠구구구!

    높이 솟은 해일의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위에 드리웠다.

    절체절명의 위기.

    콰아아아아!

    그 순간, 좌편에서 날아온 광역스킬이 포세이돈을 덮쳤다.

    [아니, 어떤 놈이 감히!]

    포세이돈의 시선이 일순간 돌아간다.

    동시에 바로 앞에 숨겨져 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다!’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공간 내부로 몸을 던졌다.

    * * *

    [크아아아! 어디냐아아아!]

    유세현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포세이돈은 이리저리 창을 휘두르며 지랄발광을 했다.

    물보라가 주위를 전부 파괴해 나갔지만, 그 물줄기는 당연히 공간 내부에 있던 둘에게는 닿지 않았다.

    “후... 살았군.”

    제넥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유세현은 광역스킬이 날아왔던 장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구사일생한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호나 주희가 날린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방향이 달랐다.

    이강호가 숨은 장소는 현재 그가 보고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훨씬 동쪽이었다.

    ‘대체 누가...’

    그때 제넥이 말했다.

    “신경써봐야 의미도 없는데 지금은 회복에만 집중하는 게 어떻겠나?”

    “...확실히...”

    맞는 말이었기에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도와준 이가 누구이건 지금 이곳에 접근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후...’

    둘은 보다 좋은 효율을 내기 위해 운기조식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유세현은 수많은 생각을 했다.

    ‘마력 재생을 사용할 수만 있었어도...’

    마족화와 더불어, 유세현은 마력 재생이라는 권능까지 봉인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는 유세현에게 있어선 참으로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은 제약당한 반면, 친우인 이강호는 권능을 하나도 제약당하지 않았으니까.

    ‘차이가 있는 건가... 남에게서 받은 것과 스스로 얻은 것의 차이가...’

    일정 시간이 흐르자 포세이돈이 잠에 빠지며 자취를 감췄다.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 제넥이 말했다.

    “접근해올 가능성이 높다 유세현.”

    “예, 알고 있습니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두 사람이 밖에 발을 붙였을 때였다.

    타다닷!

    한 명이 기척을 숨기지도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대놓고 접근해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유세현은 혹시나 인간진형의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전멸하고 홀로 살아남아 떠도는 경우도 간혹 있었으니까.

    만약 적이었다면 저렇게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스스슥-

    마침내 수풀이 흔들리며 나무 위에서 베일에 싸여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외형은 인간 남성이었다.

    갈기갈기 찢겨 걸레짝이 된 도복과 식물의 줄기로 대충 묶어 올린 긴 머리카락.

    “마존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남성이 말하기 무섭게 유세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 * *

    남성의 발언은 평소 흔들림 없는 유세현조차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마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으니까.

    ‘마교?’

    마교는 과거 천마가 만든 단체로 판도라 내부로 진입하기 전, 외부 지역에서 행방불명 된 단체였다.

    외부 파편을 전부 모으면 어디에 있던 상관없이 다함께 내부로 이동되기에 마교도 살아남았다면 이동되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으나,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으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절멸의 탑이 아닌가?

    그것도 1층이 아닌 무려 6층씩이나 되는.

    “너, 정체가 뭐냐.”

    그렇기에 유세현은 검을 겨누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남성의 눈빛이 흔들리며 입가가 잔잔히 떨렸다.

    “...저를 잊으신 겁니까?”

    “뭐?”

    “하긴 그렇게 많은 시간이 경과했으니...”

    ‘내가 아는 인물이라고?’

    두 번째 충격이었다.

    마교에서 그가 얼굴을 외운 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그나마 나와 가까웠던 자라는 건데... 그러고 보니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거기까지 생각한 유세현은 비로소 가라앉아있던 기억 속에서 남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태백무.”

    “오오! 떠올리신 겁니까?”

    유세현이 차분히 이름을 읊조리자 태백무라 불린 남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가 자신을 어필하듯 다시 한번 스스로를 소개했다.

    “천마대 부대주 태백무, 마존을 다시 뵐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유세현?”

    제넥이 의구심 어린 눈빛으로 유세현을 쳐다봤다.

    당연한 것이었다.

    정작 그를 떠올린 유세현조차도 얼떨떨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

    눈앞에 있는 태백무가 진짜라는 증거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으나, 그렇다 해서 진짜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기에 유세현이 일단 물었다.

    “태백무, 묻겠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아?”

    “예. 이 탑에...”

    “선배님!”

    태백무가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우측 풀숲에서 김주희가 튀어나왔다.

    유세현이 살포시 손을 들어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녀는 잔뜩 환색이 되었다.

    “선배님!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자는 누구... 어?”

    태백무를 본 김주희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 당신?”

    “김주희, 태백무를 알아?”

    “예, 아주 옛날 선배님이 사라져 수색할 때 그가 이끄는 천마대도 도움을 줬거든요.”

    “아... 그래?”

    “예, 그런데 이자가 어떻게 여기에? 일반적인 성장으로는 이 탑을 오를 수가 없었을 텐...”

    “주희야.”

    “예?”

    “강호 좀 불러와라. 같이 들어야 될 것 같으니까. 걔 지금 레피아씨 돌봐주고 있지?”

    “예. 돌봐주고 있어요. 제가 대신 바통 터치하고 강호 선배는 이쪽으로 보낼게요.”

    “그래, 고맙다.”

    김주희가 사라지고 곧 이강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기치 못한 만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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