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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족은 본인이 이토록 허무하게 당한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
이에 제넥의 동공 또한 살짝 확장됐다.
‘엄청나다.’
제넥은 지금까지 함께하며 이들의 전력을 똑똑히 확인했다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군.’
허나 그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이들은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여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모든 전력을 사용했다는 의미는 되지 못 했다.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만약 지금까지 일정 이상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던 것이라면?
‘소름이 돋는군.’
그렇다면 과연 힘을 감추고 있던 그들의 최고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
순식간에 마족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 유세현이 한 마디 했다.
“지금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끝내야 되니 만약 적과 마주치게 되면 움직임을 크게 해서 시선을 끌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지금처럼 발생된 틈을 노려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끼가 되라는 건가?”
언뜻 들으면 무척 굴욕적인 이야기였다.
이전 화산지대에 있을 적에는, 아니 이들과 조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좋아, 제대로 시선을 끌어주지.”
제넥은 인상을 구기지 않고 되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한 약속도 약속이지만 그는 이들이 하고 있는 이 미친 짓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 * *
엘라뉘스의 도주로 인해 발발된 추격전.
그것은 유세현 일행을 노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인간의 목적이 엘라뉘스가 얻게 된 무언가라면 마찬가지로 뒤쫓아 와야 되는데, 그런 형태라면 몸을 바짝 사리고 숨어있는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발견해낼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후... 어디냐!’
그런 이유로 엘라뉘스와 크라베스를 뒤쫓고 있던 벨제뷔트는 둘의 싸움보다 주위를 감시하기 바빴다.
엘라뉘스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덤일 뿐 파편 조각 회수가 최우선 사항이었다.
그렇게 5분.
‘젠장...’
주위를 살피던 벨제뷔트의 미간이 씰룩였다.
‘설마 포기하고 빠져버린 건가?’
줄곧 생각해오던 가능성이 다시 한 번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놈들에게는 뒤를 받쳐줄 지원 병력이 없었으니 그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후... 하지만 단언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벨제뷔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당시에도, 놈들은 지원병 하나 없는 소수의 인원이었다.
‘게다가...’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한들, 주위에 많은 이들이 달라붙었다는 것을 알아챈 크라베스가 제대로 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놈들에게는 모종의 탐색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알고 일부러 접근을 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벨제뷔트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제길... 어떻게 해야 되지?’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퍼져있던 드래곤들이 점점 집결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엘라뉘스와 무사 합류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 공방전을 치르게 된다면?
‘자칫 병력만 잃고 나가리가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공방도 잃어나지 않고 서로 간 견제 속에 흐지부지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엘라뉘스가 단순 방어를 방책이랍시고 구비해놨을 리가 없다.’
동쪽에 위치해 있는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모종의 탈출 방법을 마련 해놨을 수도 있는 것.
‘크...’
벨제뷔트는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일단 다시 한 번 부하들에게 상황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난전으로 인해 마족의 진형은 거의 찢겨진 그물 마냥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기에 주위를 제외한 정확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충복, 뤼비우스도 이젠 결단을 내려야 된다고 판단했는지 물어왔다.
뿌득.
잘근잘근 입술을 곱씹던 벨제뷔트의 이가 악물렸다.
본디 정석적인, 옳은 판단은 지들끼리 치고받으라 하고 빼는 것이었다.
어떻게 될지 미지수였으니까.
그러나.
뿌드득.
‘크으으으...!!’
그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5번째 신물파편이 해방 된 이후 더없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는 판도라의 세계.
만약 가까운 시일에 6번째, 마지막 신물 파편이 해방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내부 신물 파편을 지니지 못한 이들은 자격이 없다 판단되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
혹은 그렇게까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페널티를 받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강해질 수 있을 때 강해져야 된다.
“뤼비우스. 놈들을 치고 우리가...”
아직 벨제뷔트의 말이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치지직!
대기가 진동하며 일대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전류가 발생되어 솟아올랐다.
쿠구구구!
땅속으로부터 수천, 아니 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올라온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위이이잉-
이윽고 땅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위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설마 붕괴?’
‘이런 염병할!’
빨려 들어가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붕괴가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그런 일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저 멀찍이, 서쪽에 위치해 있는 숲으로부터 거대한 물체가 솟아올랐다.
일찍이 이 섬을 한차례 조사한 이력이 있던 모든 종족들은 그것이 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게이트!!”
그렇다. 게이트였다.
* * *
“역시! 다른 수단을 지니고 있었군!”
벨제뷔트의 자색 눈동자가 번뜩 빛을 발했다.
쿠구구구!
그의 전신이 당장 폭발이라도 할 듯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인간의 모습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탈피한 그가 입을 쩍 벌렸다.
“전 마군은 들어라-! 지금 즉시 나에게로 집결하라-!”
쿠구궁!
그의 목소리가 마치 사자후를 내뿜는 것처럼 바람을 동반하며 퍼져나갔다.
이에 엘라뉘스의 바로 뒤꽁무니를 쫓고 있었던 크라베스가 지긋이 혀를 찼다.
“쯧, 더 이상은 안 되겠군.”
스스스-
크라베스의 전신에 새겨져 있는 문신이 빛을 발한다.
그 또한 지금까지는 수하들에게 인간을 찾게 하고 있었지만 게이트가 등장하고 벨제뷔트가 저렇게 나온 이상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도들은 집결하라.]
명령을 내린 그가 발을 툭 내딛었다.
쉬이익-
바람이 갈라지며 그의 몸이 지금까지와는 한차례 차원이 다른 속도로 뻗어나갔다.
‘그 반지는 내 것이다.’
슈슉!
“...?!”
크라베스는 정말 어마무시한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점점 좁혀져가는 엘라뉘스와의 간격.
이를 본 엘라뉘스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떨어졌다.
‘저 자... 역시 주위를 의식해 힘을 아껴두고 있었군.’
엄청난 마력량과 체력.
그리고 마법과 대등한 파괴력을 지닌 비상한 술수.
그녀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반지! 이리 내놔라!”
콰과과광!!
크라베스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자연재해처럼 거대수를 연속적으로 깨부수며 치고 들어왔다.
엘라뉘스는 곧바로 마법을 시전 했다.
슈슈슈!
이중, 삼중영창을 넘어선 다중영창.
크라베스의 우측으로는 화염구가, 좌측으로는 얼음으로 된 창이 생성된다.
거기에 더해 위아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체인.
하나하나가 전부 6서클이나 되는 고위마법이었다.
크라베스의 몸이 일순간 체인에 속박되자 엘라뉘스가 한 마디 했다.
“네가 너 스스로를 얼마나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를 너무 얕보진 않는 게 좋을 게다.”
슈윳!
쾅!
얼음과 화염이 부딪치며 발생한 수증기가 주위를 자욱하게 덮었다.
엘라뉘스는 그대로 거리를 벌려가며 빙계 마법을 난사했다.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도주, 그녀는 지금 일격으로 죽일 순 없을지언정 약간의 시간은 끌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큭! 얕보지 말라고?”
퍼엉!
채 0.5초도 되지 않아 크라베스가 사슬이 칭칭 감긴 상태 그대로 수증기 속에서 튀어나왔다.
크라베스는 곧 짜증스러운 얼굴로 사슬을 당겼는데, 고리가 힘없이 박살나며 그대로 끊어졌다.
“결정하는 건 바로 짐이다!”
쿠구궁!
콰과과광!!
그가 망령을 쏘아내자 망령은 사방을 깨부수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엘라뉘스가 재차 블링크를 사용해 회피하려는 순간이었다.
“?!”
그녀의 눈앞에 난데없이 거대한 육체가 드리웠다.
“오랜만이구나! 엘라뉘스으으으!!”
빠악!
“읏!”
다급히 팔을 들어 방어한 엘라뉘스의 고운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진다.
모습을 확인한 엘라뉘스가 살짝 인상을 구기며 지그시 읊조렸다.
“벨제뷔트...”
“그 유적에서 뭘 얻었지? 당장 넘겨라!”
벨제뷔트의 주먹이 엘라뉘스의 전신을 노리고 맹렬하게 움직였다.
엘라뉘스는 잽싸게 뒤로 회피하는 행동을 취했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크라베스가 위치해 있었다.
“그래, 좀 내 놓으시지?”
“...?!”
치지지직!
깜짝 놀란 엘라뉘스는 곧장 고위 배리어를 급전개 했다.
크라베스가 살짝 밀려나자 엘라뉘스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둘을 응시했다.
둘은 명백히 서로를 견제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마음을 읽은 것 마냥 벨제뷔트가 말했다.
“아, 미안하지만 우리 둘이 싸우는 전개를 바란 거였다면 그 생각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우린 바보가 아니라 말이지.”
“그렇지, 일단은 네가 도주하는 걸 막는 게 최우선 사항이지 않겠어?”
“... 네놈들...”
“자 그러니 내놓으라고? 여기서 얻은 아이템을 말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인 찰나였다.
[로드시어!]
주위에 있던 세 마리의 그린드래곤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선회하여 날아들었다.
[감히 엘라뉘스님께 그 추악한 손을 들이대다니!]
[죽음으로 갚아라!]
그리고 동시에 불룩 부풀어 오르는 그린 드래곤의 가슴.
“큭! 이브! 렘벨크!”
“뤼비우스!”
벨제뷔트와 크라베스가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나무위에서 충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대로 드래곤에게 날아들어 목숨을 노렸다.
[죽어라!]
쿠구구!
하지만 약간 더 빠른 쪽은 드래곤 쪽이었다.
애쉬드브레스가 엘라뉘스를 포함한 둘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쯧.”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벨제뷔트와 크라베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회피하여 피할 수밖에 없었다.
[캬아아아악!]
동시에 충복들에게 공격당한 드래곤들의 비명이 상공을 울렸다.
한 개체는 뱃가죽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왔고, 또 한 개체는 몸통에 구멍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육체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스를 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가, 가십시오! 엘라뉘스님!]
[빨리 부대와 합류를!]
아니, 되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그 끔직한 독액을 광범위하게 흩뿌리며 적들을 좀 더 괴롭히는데 치중했다.
“너, 너희들...”
[어서!]
“너희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마.”
엘라뉘스는 그들의 희생으로 잠시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리의 반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