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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49화 (43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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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구궁!

    콰광!

    꿀꺽-

    살벌하기 그지없는 전쟁터 속에서 마른침이 목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미친, 정말로 그 잠깐의 난리통을 틈타 잠입을 시도할 줄이야.’

    그 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신창, 제넥이었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이강호에게 자신만만하게 딜을 하여 팀에 합류하고, 이후 그러한 모습을 보인 이유를 증명하듯 지금까지 잘 행동 해온 그였지만 현재 제넥은 이 일행의 무모함에 질려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강호의 무모함에.

    ‘대체 무슨 아이템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도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는 빠져나가고 싶어도 그냥은 빠져나가기 힘들다.’

    슬쩍 떠본 말에 이강호가 잠입할 수 있다고 답했을 때 솔직히 제넥은 다른 동료들이 막아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눈앞에 아무리 대단한 아이템이 있다 한들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현재 팀의 인원수는 자신을 포함해서 고작해야 여섯 명인데 반면 적들은 수십, 아니 수백을 가뿐히 넘겼으니까.

    ‘...아니면 설마 이 정도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들이 그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제넥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이강호를 흘겼다.

    이강호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수화를 했다.

    -잠시 뒤 이동한다.

    ‘또?’

    제넥은 감히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봤을 때 일행은 이미 핵심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아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여성형 드래곤...’

    장애물도 있고 거리도 약 100m정도로 제법 되었지만 감시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가가겠다니?

    그것도 바로 앞에 드래곤이 떡하니 본체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상황에서!

    들키려고 작정한 것인가?

    제넥은 그 마음을 대변하듯 다급히 수화를 건넸다.

    -지금 움직이면 무조건 들킬 텐데?

    -알고 있다. 그래서 잠시 뒤라고 하지 않았나.

    ‘......’

    이강호 일행에 대한 의문을 일부라도 해소하기 위해 이곳에 따라온 제넥이었지만 되레 그는 따라온 지금이 이전보다도 더 혼란스러웠다.

    이들은 뭐 때문에 이렇게 무리를 하는 것일까.

    이종족들은 왜 난데없이 이곳으로 모이는 것일까.

    모든 게 의문뿐인 상황.

    제넥은 이동을 한 뒤에서야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일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곳이 목적지인 것 같은데. 여기 혹시 인간이 오지 않았나?”

    여성형 드래곤의 앞에 등장한 어떤 존재가 내뱉은 말에 의해.

    ‘...설마?!’

    이강호를 바라보는 제넥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갔다.

    * * *

    쿠쿠쿠!

    콰과광!

    크라베스와 엘라뉘스의 전투가 시작되자 천지가 무너질 듯한 폭음이 공간을 가득 메웠지만 그러한 소리는 현재 제넥의 귀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설마... 이 소동의 원인이 우리라니...!!’

    전투보다도 훨씬 거대한 충격이 그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넥이 이강호를 향해 수화를 보냈다.

    -이강호,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강호는 그 말에 무표정한 모습 그대로 답했다.

    -지금 말할 여유는 없다.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다면 그때 알려주도록 하지.

    그것을 끝으로 이강호는 다시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는 제넥과 여유롭게 잡담을 나눌 시간 따윈 없었다.

    -세현아 카그네프는? 어디로 간 건지 파악 돼?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고 또 예측해야 됐으니까.

    -모르겠어. 전투로 인해 흐름의 흔들림이 너무 커. 지금 상태에서는 찾기 힘들어.

    -흠... 그렇단 말이지.

    유세현의 말을 들은 이강호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놈들이 아까 제대로 붙었다면 지금 결판이 났을 리가 없다. 저렇게 쌩쌩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사원 입구를 통과한 뒤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쯧.’

    이강호가 원하는 것은 공멸이었다.

    서로 피 터지도록 싸우다가 죽어줘야만 이곳에 잠들어 있는 게 무엇이던 보다 쉽게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치고받아줘야 될 세력이 되려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달갑지 못한 건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이강호는 이내 괜찮다 판단했다.

    범주 내였기 때문이다.

    삼파전에서의 두 세력의 결합은 어마무시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만, 이건 다섯 개의 세력이 격돌하는 오파전.

    만약 두 세력이 힘을 합했을지언정 아직 세 개의 세력이 남아 있는 이상 미친 듯이 날뛸 수는 없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할 건 놈들의 노림수다.’

    카그네프와 함께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봐선 그들은 뭔가 계획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게 뭘까.’

    이강호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강호가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둘의 전투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슈유우우우!

    쿵!엘라뉘스가 허공에 만들어낸 몇 백개의 화염구가 크라베스를 향해 낙하한다.

    말이 크라베스를 향한 것이었지 사실상 거의 난사나 다름이 없었기에 일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큭! 무슨...”

    이에 로드의 힘을 체감한 크라베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망령들로 이루어진 벽을 세워 방어한 그였지만 생각보다 위력이 강해 완벽히 막아내지 못했는데 그 높은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너 이놈...”

    지그시 곱씹은 크라베스의 손에 어마어마한 양의 망자가 모인 순간이었다.

    트득... 트득... 특... 특... 특.

    딸깍!

    마치 회전하던 기계장치에 전기가 끊어지듯 끝없이 변화하고 있던 구조물이 일제히 멈췄다.

    파앗!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빛이 엘라뉘스와 크라베스가 마주하고 있는 정 가운데에서 솟아올랐다.

    ‘...!!’

    빛 내부에는 어떤 물체가 두둥실 떠 있었다.

    ‘저건 역시!!’

    강렬한 밝기 때문에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미리 예측하고 있던 이강호는 그것만으로도 저 물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진리의 반지!’

    타다다닥-

    서로 치고 박고 싸우던 두 존재가 동시에 움직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차지한다!’

    코앞까지 다다른 크라베스는 목표물을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됐...’

    그러나 목표물과의 거리가 3cm도 채 안 남았을 때 빛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아슬아슬하게 먼저 물체를 낚아챘다.

    “큭!”

    0.3초, 크라베스가 스킬을 해제하는데 걸린 시간으로 인해 발생된 간발의 차였다.

    엘라뉘스는 손에 물체를 쥐기 무섭게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엘라뉘스는 블링크를 사용한 장소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상공위로 마법 하나를 날렸다.피이잉~

    펑!

    쏘아 올려진 마법은 폭발하기 무섭게 형형색색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그건 퇴각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젠장할...”

    이에 크라베스가 엘라뉘스를 발견하기 무섭게 다급히 뒤쫓기 시작했으나 엘라뉘스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되려 연속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점점 거리를 벌려갔다.

    후웅!

    신호탄을 본 드래곤들은 여태껏 사수하고 있던 자리를 버리고 비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난리법석이었던 사원이 고요해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제넥이 무너진 구조물에 몸이 깔아뭉개진 상태 그대로 옆에 있는 이강호에게 물었다.

    -저걸 탈취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었나?

    -그렇지.

    -저 여자가 갖고 튀었다만?

    어떻게 할 것이냐.

    제넥은 그걸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넥은 은연중에 비로소 이강호가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뒤쫓는다.

    허나 이강호는 단번에 그의 예상을 깨부쉈다.

    그 말에 제넥이 흡사 미친놈을 보듯 이강호를 응시하며 재차 물었다.

    -진심이냐? 잠복해서 지켜보는 것과 추격은 아예 차원이 다른 걸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저건 이 정도의 리크스를 져볼 만한 아이템이다.

    -뭐?

    이 순간 제넥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사람들에게 말이 튀어 나올 뻔했다.

    이놈 좀 어떻게 해보라고.

    그러나.

    ‘뭐야... 대체 왜 아무도...’

    이강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유세현과 김주희, 아퀼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피아조차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제넥은 답답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

    -후... 그래 뭐, 전부 맞춰준다 하고 따라왔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진 않겠다. 뜻에 얌전히 따라주지. 다만 그 전에 이건 꼭 듣고 싶다.

    -뭘 말이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제넥이 진심어린 어조로 물었다. 비록 손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표정에 역력하게 드러났다.

    이강호는 이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딱 한 마디 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승리하기 위해서다.

    ‘......’

    제넥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잠시 벙찐 얼굴이 되었다.

    너무도 정론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승리, 그것은 겉치레 적인 것일 뿐 가슴 한편으론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아... 나는...’

    신창 제넥, 그는 분명 이강호가 인정한 자타공인 최고의 창술사였지만 그렇다고 최강자는 아니었다.

    천족이 이유 없이 급습해 왔을 때 대응해 봤으나 맥없이 쓰러져 목숨만 간신히 건졌고, 화산지대에서 나온 이후로는 마족에게 줄곧 쫓겼다.

    그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강해진 것도 생존을 위해 강해진 것이지 딱히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겉으론 아닌 척 했지만 내적으론 영웅이라 불리는 이강호에게 반감이 있었다.

    대체 놈이 뭐기에 영웅이라 불릴 정도인가!

    그러나 지금 그는 확실히 알았다.

    ‘이 자는...’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정말로 이기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바득바득,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

    제넥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좋아 이강호. 해보자. 네 지시를 따라주겠다. 승리를 위해.

    * * *

    ‘표정이 바뀌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었나 보군.’

    이강호는 제넥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가 저런 말을 굳이 내뱉었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건가.’

    유세현이 실력으로 찍어 눌렀음에도 그가 진정으로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강호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힘으로 찍어 누른다고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제넥은 자존심이 높으니까.

    처음에는 비록 억지로 일지라도 동고동락하며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 분명 믿었던 것이리라.

    문제는 정작 있어야 될 그 시간이 단축되어 없어 졌다는 것.

    그렇기에 이 아이템의 입수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 움직이도록 하지. 포지션은 지금까지 줄곧 해왔던 그대로 가겠다.

    이강호가 손짓하기 무섭게 각자의 자리로 간 인원들이 지면에 밀착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현재 유세현 일행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심조심 움직인다면 가능할 터지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자들을 뒤쫓기 위해선 어느 정도 속도를 낼 필요성이 있는데 필연적으로 인기척, 흔적 등등 여러 가지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재는 많은 종족이 드래곤을 뒤 쫓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일행으로서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보이는 즉시 죽여.

    과거 유세현이 심심풀이로 해본 적 있었던 암살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대놓고 죽이든 숨어서 죽이든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다.

    서걱-

    “컥... 너... 넌!”

    마족 한 명의 목이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잘려나갔다. 선두에 서 있던 유세현의 검에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일행은 다른 종족보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좋은 점이 세 가지는 있었다.

    첫째, 지금 이곳에 있는 동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적이다.

    즉, 피아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누군가가 보이면 잡스런 생각할 필요 없이 곧바로 죽이면 되는 것.

    둘째, 각 종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준 덕분에 상황이 어지럽다.

    그나마 일행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셋째, 적들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다.

    적들은 일행과 달리 드래곤 혹은 이종족과 치고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당연히 체력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정상이지 않은 자가 정상인 자보다 많았다.

    촤악!

    이러한 이유로 최상위 대리자인 그들은 아직까지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쫓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분이군.”

    “덕분에 스텟은 빨리 증가하고 있지 않나?”

    “하...”

    제넥이 실소를 내뱉으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전과 힘의 차이가 똑똑히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이강호의 말처럼 스텟의 상승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문제는.

    “...?!”

    “인간?”

    아직까지도 적이 훨씬 위라는 거.

    “그러고 보니 인간을 보면 바로 보고 올리라고 공문이 내려 왔었는데.”

    “너희들이 막아라! 내가 우르샤크님께 알리겠다!”

    “쳇! 꼭 좋은 건 지가 하고...”

    “후, 힘들어 뒈지겠는데...”

    마족 다섯 중 후미에 있던 넷이 방향을 전환에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제넥이 보기에는 다들 상당한 속도인지라 그는 각오를 다지고 그와 대적했다.

    챙! 채쟁!

    창을 고작 세 번 쯤 휘둘렀을 때였다.

    촤자작-

    검풍과 함께 막 제넥에게 병장기를 휘두르려던 마족의 몸이 수십 갈래로 찢겨져나갔다.

    진리의 반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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