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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44화 (4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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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격?”

    레피아의 근처까지 왔던 에르비아크의 시선이 소동의 근원지를 향해 휙 돌아갔다.

    “한 명이 아니야...”

    그는 레피아의 존재를 의식하고 공격해올 때조차도 평온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포커페이스가 깨진 상태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우리의 감시 마법을 뚫고 이곳까지 접근하다니... 게다가 이 마력... 마왕?”

    에르비아크가 마치 재확인을 하듯 엘라뉘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에르비아크의 시선을 느낀 엘라뉘스가 의견에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순도... 마왕이 아니고서는 지니고 있을 수 없는 어둠이구나.”

    “그렇다면 역시...”

    “하지만 뭔가 이상하구나. 군세야 숨겨 놨다 치더라도 제 아무리 마왕이라 할지언정 결계 때문에 이쪽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을 텐데 본인 스스로가 직접 파고드는 우를 범하다니. 게다가 그 자존심에 잠입?”

    엘라뉘스가 의구심 어린 눈빛을 발산했다.

    그녀가 현재 일어난 상황에 대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에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인지 알고 있는 오직 단 한 사람, 레피아가 스스로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순간적으로 안심해 버렸어...’

    말로만 떵떵거렸지 결국엔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걸린다 하더라도 그들이라면 어떻게 해줄 거라고.

    ‘젠장...’

    그녀는 지금 상황이 너무 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들이 만들어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빠져나가!’

    스스슥-

    레피아는 그들의 정신이 팔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벽을 타고 이동을 개시했다.

    에르비아크가 말했다.

    “확실히 행동 면에서는 그렇군요. 설마 벨제뷔트가 마침내 진화를?”

    “아니, 벨제뷔트도 규모를 모르는 상태에서 잠입을 시도할 배짱을 지닌 놈은 아니다.”

    “일단은 가봐야겠군요.”

    “그렇구나. 바로 이동...”

    그리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엘라뉘스의 말이 일순간 뚝 멈췄다.

    동공이 살짝 확대된 것이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이런! 에르비아크! 놈들은 미끼다!”

    “예?”

    “이 주위를 샅샅이 뒤지거라!”

    말을 함과 동시에 엘라뉘스가 마법을 전개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레피아는 그들이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이미 이곳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완전히 당했구나...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의 정체라도 알아내야 된다.”

    “예? 놈의 정체는 마왕이나 벨제뷔트가...”

    “아니, 지금 침입한 놈들은 둘 다 아닐 확률이 크다.”

    “큭, 무슨...”

    마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에르비아크는 그리 믿는 자였기에 엘라뉘스의 말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린드래곤의 로드였다.

    그의 믿음과는 별개로 허튼소리를 할 드래곤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런... 좌표만 정확하면 순간이동으로 한 번에 도찰할 수 있거늘...’

    이내 엘라뉘스와 에르비아크가 장소에 도달했다.

    “이런...”

    그곳에는 세 그린 드래곤의 육신이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본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 불꽃이 처음 치솟았을 때 당한 게 틀림없었다.

    모습을 본 에르비아크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이럴 수가 얼마나 강한 화력을 내뿜을 수 있기에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그린드래곤은 특성상 레드드래곤에 비해서 낮은 화염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입장에서이고 일반적인 대리자의 입장에서는 레드드래곤이나 그린드래곤이나 똑같이 높은 화염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들이었다.

    무려 SS랭크.

    인간으로 폴리모프해도 속성저항력은 변하지 않으니 사실 웬만한 속성 공격으론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 것이 정설인 것이다.

    그런데...

    “놈들의 정체는 제가 직접 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소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엘라뉘스 님께서는...”

    “그래, 알았다. 무리는 하지 말거라.”

    “예.”

    말을 마친 에르비아크의 신형이 순식간에 엘라뉘스의 곁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유세현과 일행들은 전속력으로 내달리며 날아오는 마법을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쳐 모조리 회피했다.

    그건 실로 드래곤들이 혀를 차게 만들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허, 이걸 피해?”

    이대론 안되겠다 생각한 많은 드래곤들이 방법을 바꿔 포박마법을 시전했다.

    곳곳에서 강철의 벽이 생겨나고 다이아몬드보다도 강한 경도를 지닌 덩굴뿌리와 촉수가 그들의 전신을 에워싼다.

    “태워버려 강호야!”

    “그럴 생각이야!”

    쿠우웅!

    화염이 뻗어나가며 허공에 원형의 통로가 만들어지자, 일행은 마치 장애물을 뛰어넘는 서커스의 사자처럼 도약하여 그 길을 통과했다.

    얼음으로 사방을 감싸 방어벽을 만든 김주희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레피아씨는 잘 빠져나갔을까요?”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이젠 그녀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어.”

    그런데 그때였다.

    그들의 머리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런...”

    드래곤이 본제화를 하여 본격적으로 따라 붙은 것이다.

    사실 이제 걱정해야 되는 건 레피아의 안위보다도 그들 본인의 안위였다.

    쿠구구구!

    무려 4마리의 그린 드래곤이 숨을 들이 삼켰다.

    “선배님! 저건!”

    “브레스다! 세현아!”

    이강호의 외침에 유세현이 발을 힘껏 내디디자 공간의 부츠에 내장되어있던 술식이 발동하며 대지가 융기됐다.

    시야를 가리고 방향을 틀어 피하려는 셈이었다.

    마력을 사용해 대응할 수도 있었으나, 놈들을 제외하고도 누가 뒤쫓아 올지 알 수 없었기에 마력은 최대한 아끼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회피하기를 두 번.

    “선배님! 저쪽에서도 와요!”

    “아퀼라!”

    “현혹해보겠습니다!”

    아퀼라가 환각을 가중시키는 입자를 흩뿌리자 이강호가 곧장 충고했다.

    “놈들은 성적 욕구가 거의 없는 생물이다! 그러니 성적인 내용의 환각은 사용하면 안돼! 트라우마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럼...?!”

    “가장 기본적인 환각을 일으켜! 완벽히 안 가둬도 되니 헷갈리게만 만들어라!”

    “알겠다!”

    아퀼라가 보랏빛의 눈동자를 빛내자 브레스의 방향이 일순간 휘어졌다.

    이후 환각에서 벗어난 드래곤들은 스스로가 환각에 당했다는 것에 쇼크를 먹었는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등한 정신을 지닌 우리가 환각 따위에 걸리다니!]

    [긴장해라!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다!]

    [큭, 그렇다면...!]

    쿠구구!

    한 드래곤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자 그곳에 균열이 생성되며 저편에서 거대한 운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는 감히 익히지 못한,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9서클 최강의 광역마법.

    “메테오다!”

    떨어지게 되면 충격도 충격이지만 일대가 완전히 풍비박살이나 은, 엄폐할 장해물이 사라지게 되기에 꼭 막아야 될 필요성이 있는 마법이었다.

    “내가 할게!”

    이에 마력의 흐름을 읽은 유세현이 메테오를 시전하고 있는 드래곤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나란히 날고 있던 드래곤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세현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슈욱-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싸늘한 음색이 스쳐지나갔다.

    [이, 이건...]

    드래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기술을...]

    스스슥-

    복부를 중심으로 횡으로 기다란 실선이 새겨진다.

    음속을 뛰어넘는 공격이었기에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드래곤은 물론이거니와 그 소리를 들은 나머지 두 마리도 모두 당한 상태였다.

    [캬아아아악!]

    이윽고 괴성과 함께 드래곤들이 추락했다.

    천마광룡참은 마력을 높이면 공간까지 잘라버리는 무척 예리하기 짝이 없는 무공이었기에, 육신이 흩어지지 않게 잘만 조치했다면 상처를 수복하는 게 가능했을 터지만 공중에 있던 그들은 그대로 육신이 두 동강 나며 죽음을 면치 못했다.

    유세현이 이마에 흐르는 땀줄기를 대충 닦으며 말했다.

    “후, 지금 한번은 놈들이 내 기술을 몰라 당한 거지 이제부턴 쉽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빨리 벗어나야 돼. 속도를 더 높이자.”

    하지만 그 순간...

    후웅!

    후웅!

    거친 날갯짓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의 드래곤과는 한 차원 덩치를 달리하는 거대한 드래곤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은...’

    인간의 기준에서 드래곤의 형태를 알아보는 건 무척 힘들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이강호는 그 드래곤을 보는 순간 놈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에르비아크.’

    수많은 그린드래곤 중에서도 3대 드래곤으로 꼽히는 드래곤.

    ‘역시 이곳에 있었던 건가.’

    이강호가 혀를 나지막이 차기 무섭게 일행을 본 에르비아크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로 둘 다 아니로군.]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놈들 입니다! 놈들에 의해 벌써 여섯이나 되는 동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망치지 못하게 벽을 세우고 마법으로 폭격해 숨을 곳을 없애라.]

    에르비아크가 지시를 내리자 지금껏 그룹별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드래곤들이 열을 맞췄다.

    더 이상은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한 이강호가 유세현에게 불꽃을 넘겨주며 자세를 잡았다.

    “세현아 먼저가라.”

    “괜찮겠냐? 수가 너무 많은데...”

    “뭐, 여차하면 바로 사용할 거니 걱정 마.”

    “오케이. 그럼...”

    [호오, 꽤 여유가 있군. 그 여유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겠다.]

    에르비아크의 말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유성이 일대를 향해 낙하했다.

    * * *

    슈우욱!

    쿠구구궁!

    콰광!

    무지막지한 전투가 이어졌다.

    사방에서 불기둥이 끝임 없이 치솟아 오르고, 수많은 마법들이 일대를 난무했다.

    근처는 이미 쑥대밭이 된지 오래였으며, 그들의 전투가 이어짐에 따라 여파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이강호의 불꽃을 회피한 에르비아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 불꽃... 역시 보통이 아니다.’

    그가 느끼기에 이 푸른 불꽃은 레드드래곤이 내뿜는 불길과 동급이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만물을 통틀어 타종족이 레드드래곤의 화염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왕조차도 오르엠조차도 불꽃에 한에서는 한수 접고 들어가기 바빴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종족을 확정짓지 못한 에르비아크가 또 다시 마법을 펼치며 생각했다.

    ‘잡으면 알 게 되겠지.’

    이에 이강호는 내려오지 않는 놈을 보며 혀를 찼다.

    ‘쳇! 이래서야...’

    에르비아크가 이강호의 정체를 갈망하고 있듯, 이강호는 끝낼 수만 있다면 여기서 놈을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드래곤의 마법 견제는 너무도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체력손실은 너무나도 컸다.

    시전속도가 도무지 엘프와 비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놈은 더 나아가 경각심을 느끼고 다가올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체력이 다하면 쉽게 잡을 생각인 것이리라.

    그리고 이것이 드래곤들이 여타 종족에 비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강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아냥거렸다.

    “대단한 줄 알았더니 입만 산 드래곤이었군. 이래서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흥! 내가 그따위 하찮은 도발에 말려들 것이라 생각하나? 너는 강하다 인정해주지. 하지만 넌 여기서 100% 내 손에 죽게 될 거다.]

    인간형태로 폴리모프를 한 드래곤들이 이강호의 주위를 에워쌌다. 놈들은 그 막대한 물량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다치면 그 인원은 뒤로 물러나게 하고 새로이 인원을 보충했다.

    적을 응시한 이강호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역시 혼자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유세현이 도주한지 5분이 지나지 않았다. 계산상으로는 앞으로 3분은 더 시간을 끌어줘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이강호의 마력은 스킬의 남발로 인해 벌써 거의 동이 난 상태였다.

    ‘최대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아슬아슬하게 해본다.’

    이강호가 화염을 주위로 흩뿌렸다.

    드래곤들은 각자 방어막을 만들어 내 이 불길을 막았다.

    화력을 체감한 한 드래곤이 외쳤다.

    “화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렇겠지. 화염을 그리도 남발했으니.]

    에르비아크가 거만하게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드래곤들은 더욱 거세게 마법을 난사했다.

    한계라고 생각한 이강호가 마침내 화염동화를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피익-

    수많은 마법 중 한 개가 그의 뺨을 스쳐지나가며 지금껏 얼굴을 가려주고 있던 가면을 떨어뜨렸다.

    에르비아크는 이강호의 얼굴을 본 순간 동요를 일으켰다.

    ‘인간?’

    쯧하고 혀를 찬 이강호가 그들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에르비아크를 포함한 드래곤들은 적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어, 어디로 간 거지? 갑자기 사라지다니?”

    “설마 공간이동?”

    “우리도 사용하지 못하는데 놈이 무슨 공간이동이야?!”

    드래곤들이 다급히 주위를 뒤졌으나 당연히 이강호가 있을 리가 없었다.

    홀로 유일하게 감정을 가라앉힌 에르비아크가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쫓고 있는 다른 부대를 빨리 뒤따라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때였다.

    “에르비아크님!”

    “뭐냐!”

    “D-10지역 외곽에 엘프들이 침입했습니다!”

    “뭐?”

    “지금 전투로 이변이 생긴 걸 알아채고 그 틈을 타 탐색을 하러 들어온 것 같습니다!”

    “누가 대응하고 있나!”

    “레드드래곤 카스디아와 블루드래곤 제루웬 베루가 이끄는 그룹이 대응하고 있습니다만 카시우스가 끼어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린드래곤 로드 엘라뉘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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