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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25화 (4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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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이이잉-

    쿠구구궁!

    팡!

    총알이 발사되듯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유세현의 신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벨제뷔트를 향해 쇄도했다.

    벨제뷔트는 다급히 마력을 일으켜 오감이 차단되는 것에 대항했지만, 한번 일어난 동요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어떻게? 사용하지 못 하는 게 아니었나?!’

    만약 진즉에 사용했었더라면 마력과 체력을 아끼면서 훨씬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했을 터였다.

    비장의 수단으로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머저리나 할 짓이라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설마 이 위기 속에서 각성을 했다는 거냐?!’

    그러나 벨제뷔트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파앙!

    “크윽!”

    유세현의 전투 방식이 달라져도 너무나도 달라진 탓이었다.

    검만 해도 그랬다.

    지금까지 잘만 사용하던 검의 형상을 구태여 바꾸다니?

    그럴 필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궁지에 몰리기 전도 아니라 몰린 후인 이제서야, 다른 무기도 아닌 보통 사람은 다루기 힘든 대검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제 아무리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오르엠이나 마왕이라 할지라도...

    “어... 어?”

    푸념하듯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벨제뷔트의 안면이 난데없이 돌처럼 뻣뻣이 굳었다.

    대검, 그리고 흑암... 그것과 더불어 발산되어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권능까지.

    마치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천재지변을 마주한 사람처럼, 얼마나 놀란 것인지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턱까지 벌어졌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파고든 유세현이 거대한 대검을 내리꽂으며 지그시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벨제뷔트.”

    “?!”

    벨제뷔트의 눈동자가 흔들리다 못해 지진을 일으켰다.

    고작 단순한 인사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지금 유세현이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다 못해 그의 간담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말이었다.

    벨제뷔트가 다급히 외쳤다.

    “너, 넌 누구냐! 유세현이 맞는 거냐!”

    굉장한 우문이었다. 연기라면 상대방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머리 회전이 빠른 너라면 이미 대충 눈치 챘을 거라 생각했다만...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고 싶은 건가? 지옥마수 총단장 벨제뷔트.”

    벨제뷔트는 그럼에도 꼭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각이 단순한 착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그리고 지옥마수 총단장은 과거 이 세계에 불려오기 전의 벨제뷔트의 직책이었다.

    정확한 직책 같은 건 대적자였던 천사들조차도 모르기에, 한낱 인간 따위가 정확히 거론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물론 지옥마수라는 말이 굉장히 특이한 게 아니기에 넘겨 집어 맞췄을 가능성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다른 마족에게서 정보를 캐내었을 수도 있었으나, 벨제뷔트는 그럼에도 놈이 적어도 지금까지 보아온 유세현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지금 스스로 마왕 루시뷀트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

    유세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벨제뷔트는 마치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멋대로 계속 말을 내뱉었다.

    “웃기지 마라! 그럴 리가 없다! 루시뷀트는 네놈 따위가 아니다! 네놈이 루시뷀트 일리가 없어! 루시뷀트는 지금도 이 순간에도 마족들을 이끌고 판도라 어딘가를 헤집고 다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후우웅-

    파앙!

    “넌 ‘진짜’가 아니야!”

    그 지긋한 말에 유세현, 아니 루시뷀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럴지도.”

    퍼엉!

    “크으으윽!”

    어둠과 대검이 함께 날아온 강력한 일격에 벨제뷔트가 땅을 뒹굴었다. 재빨리 자세를 잡은 그의 눈에 어둠을 흩뿌리며 다가오고 있는 유세현의 모습이 일순간 루시뷀트와 오버랩 되어 겹쳐보였다.

    벨제뷔트는 그 흉흉한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과거, 처절하게 패배한 뒤 벨제뷔트는 줄곧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굉장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

    머리로는 대항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몸이 반응해버리는 것이다.

    몸이... 눈앞의 사내가 루시뷀트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루시뷀트가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분명 난 복제다. 그러나 난 지금 이곳에, 나의 의지에 의해 존재한다.”

    “......”

    “난, 나일 뿐이다. 그 누구도 나를 정의할 순 없다.”

    푸슛!

    콰과과광!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던 어둠이 변화하여 5개의 발톱이 되어 쏟아졌다.

    이에 벨제뷔트는 물론이고 크라베스와 데프하우어도 다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크윽... 어디서 저런 무지막지한 힘이...”

    휩쓸려 가슴팍에 상처를 입은 크라베스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벨제뷔트가 다급히 말했다.

    “어차피 오래 가지는 못한다! 엄청난 부하를 견뎌내며 발산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버티면 된다는 건가!”

    “그렇다! 그러니 너도 지금은 어디 딴 데로 튈 생각 따윈 하지 말...”

    퍼버버벙!

    그때 2차 공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유세현이 발동시킨 새크리파이스가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동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루시뷀트의 공격은 무지막지한데다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벨제뷔트의 말처럼 육체에 걸리고 있는 부하는 어마어마했지만, 루시뷀트는 나중은 신경 쓰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유세현의 몸을 망가트리기 위함이 아닌, 티내진 않았지만 루시뷀트도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끝내야 된다. 이대로라면 마심원도, 유세현의 몸도 견디질 못한다.’

    그때였다.

    후웅!

    한 줄기의 미세한 불길과 함께 그 속에서 이강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어어언!”

    이에 벨제뷔트를 포함한 데프하우어와 크라베스의 인상이 구겨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루시뷀트가 곧장 반응했다.

    “넌... 이강호로군.”

    “...뭐?”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이강호는 눈앞에 있는 존재가 유세현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눈치 챘다.

    “넌 대체 누구...”

    “그보다도 싸울 여력이 남아있나? 설명할 시간 따윈 없다. 여력이 남아있나 없나 그것만 말해라.”

    “당연히 약간은 남아 있지만...”

    이강호도 들어오는 게 고작이었다.

    엘프에 델바람, 마족까지 전부 줄줄이 소세지처럼 붙어버린 탓에 안 그래도 강했던 수호자가 더 강해진 탓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정수라는 걸 회수하러 가라. 여긴 내가 막고 있겠다.”

    “뭐?”

    “어차피 이 상태로 모두를 상대할 순 없다. 지금 이곳에 있는 세 명을 어찌어찌 처리한다 해도 결국에는 누군가가 또 들어 올 테고 그자에게 당할 확률이 높지. 아니 100% 당한다. 그러니 걸어볼 건 정수라고 불리는 것 뿐.”

    “......”

    이강호는 도와주러온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좀 그랬지만, 굉장히 타당성이 있는 말이라 판단했다.

    사실 유세현이 이곳에 없었더라면 그는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물러났을 터였다.

    그는 모두의 희망을 등에 싣고 과거로 돌아온 존재였으니까.

    회귀자인 이상, 그는 동료들보다도 대의를 우선시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유세현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이전 제단에서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분명 내 기억이 일시적으로 돌아왔다 없어졌었다.’

    당시 스스로 입혔던 손등의 상처와 그걸 바라보고 있던 크라베스의 증언이 바로 그 증거였다.

    게다가 시나리오가 과거와 어긋나 버린 터라 현재 이 상태에서 유적을 클리어하면 어떻게 될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과거에는 클리어 되는 순간 모두가 강제적으로 마을로 이송되었었다.

    즉, 과거와 똑같이만 된다면 정수를 취함으로써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좋아. 네 판단에 따라주겠다.”

    “어딜 마음대로!”

    크라베스가 바로 훼방을 놓았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서 이강호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명이 합세해도 지금의 마왕에게 버티며 루시펠이 딴짓을 못 하도록 견제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강호의 발목까지 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파바바바밧!

    이윽고 이강호가 발에 불길을 내뿜으며 신법을 구사해 저편으로 사라졌다.

    크라베스와 벨제뷔트, 데프하우어가 뒤쫓으려 했으나, 그들의 앞을 루시뷀트가 막아섰다.

    “너희는 이곳에서 못 빠져나간다.”

    “크으... 루시뷀트...”

    그들은 루시뷀트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 * *

    퍼엉!

    철문에 구멍이 뚫리며 무려 2명의 인원이 내부로 진입했다.

    오른손에 활을 손에 들고 있는 카시우스와 두터운 도끼날이 돋보이는 워엑스를 쥔 카그네프였다.

    “후우... 제기랄... 이강호에게 선수를 빼앗겨 버리다니.”

    “그보다도 이건...”

    둘의 눈동자 속에 격전 치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유세현...”

    퍼버벙!

    그때 또다시 폭발이 일어나며 추가적으로 5명이 인원이 문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크샤와 파라간 그리고 렘벨크와 이브, 마지막은 김주희였다.

    “서, 선배님!”

    그녀는 유세현을 돕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으나, 그보다도 빠른 것은 렘벨크와 이브, 그리고 아크샤와 파라간이었다.

    “크라베스님!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왔습니다! 벨제뷔트님!”

    “큭! 빨리 이 녀석을 떼어내라! 시간이 없다!”

    벨제뷔트와 크라베스가 이구동성이 되어 외쳤다.

    그들의 마음이 그만큼 급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

    “선배님! 저도 왔어요!”

    “......”

    쿠구구궁!

    폭풍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모두가 일사불란했다.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광풍 속에서도 카그네프와 카시우스는 전투에는 일절 눈도 주지 않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강호! 이강호는 어디에 있는 거지?!’

    특히나 둘 중에서 카그네프는 아예 혈안이 된 상태였다.

    ‘젠장할! 설마 동료를 놔두고?!’

    “카시우스! 전투는 아무래도 좋다! 이강호부터 찾아야 된다!”

    “알고 있어!”

    그러나 카시우스의 눈에도 이강호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강호는 출발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연구소를 내달리고 있었으니까.

    ‘분명, 신물 파편은 최심부에 있을 거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초입부에는 없을 터!’

    그는 과감하게 아니라고 판단되는 기기 따위는 살펴보지 않았다.

    유세현의 일지 덕분에 영혼 제어장치가 신물 파편 조각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려 100억이 넘는 인원을 수용하려면 장치의 크기 또한 상당하겠지. 이 연구소는 아마도 그래서 거대하게 지어진 거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강호는 거대한 기둥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4명의 인물들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뒤쫓았다.

    “크으으으으!”

    벨제뷔트와 크라베스.

    그리고 카시우스와 카그네프.

    그중에서도 제일 빠른 인물은...

    ‘이 방향... 저 거대 기둥 쪽인가!’

    카시우스의 전신에 바람이 일었다.

    카시우스는 순식간에 세 명을 제치며 선두에 올라섰다.

    “크으! 카시우스! 어떻게든 이강호를 붙잡아라!”

    우습게도 이런 카시우스를 뒤처진 세 명이 응원했다.

    만약 다른 이들이 봤다면 깜짝 놀라 눈을 비볐을 만한 그런 일이었다.

    이윽고 카시우스의 눈동자에 이강호가 잡혔다.

    이강호는 무려 700m나 되어 높이 솟아올라 있는 기둥을 타고 있었는데, 카시우스는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기둥의 정중앙, 사람의 눈으로는 좀처럼 구별이 힘든 희미한 틈 사이에 고이 모셔져 있는 보석!

    그리고 그건 이전 데프하우어가 발견하여 벨제뷔트에게 보고했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카시우스가 지면에 착 밀착하여 달리는 그 상태 그대로 활시위를 당겼다.

    균형과 각도를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들기에 감히 카시우스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특기였다.

    “카시우스! 쏴라!”

    “반드시 떨궈라!”

    파앗-

    일정 높이에 다다른 이강호가 도약한 순간, 화살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이강호를 향해 날아갔다.

    어마무시한 속도였기에 적중할지 적중하지 않을지는 쏜 당사자조차도 좀처럼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카시우스는 확신했다.

    ‘맞았다.’

    다다닷-

    고유특성을 아낌없이 활용한 카시우스의 속도가 더더욱 가속했다. 이강호가 맞고 떨어지면 자신이 저것을 쟁취하기 위함이었지만...

    후우웅!

    화살이 닿으려는 순간 이강호의 몸이 불꽃이 되어 사라지더니 보석 앞에 나타났다.

    한 번 당해본 카그네프의 인상은 더없이 구겨졌고, 크라베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강호의 손이 마침내 보석에 닿았다.

    [유적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유적 내 존재하는 모든 대리자들이 마을로 강제 이송됩니다.]

    세력 붕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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