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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22화 (40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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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로 들어오는데 성공한 벨제뷔트의 계획은 이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핵심에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곱게 보내줄 리가 만무.

    “각오는 돼 있겠지?”

    어처구니없게 일이 틀어지자 벨제뷔트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적의를 내뿜으며 단숨에 루시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빠바박-

    거칠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사정없이 몰아치는 주먹에는 감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라면 실패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데프하우어의 마법은 조금 스치는 정도로는 해제되지 않으니까.

    그러니 이 어찌 열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머리를 터트려주마.”

    그 끝없는 압박에 루시아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벨제뷔트는 천족과의 전투이후 엄청난 코인을 습득하여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져, 그녀가 고유특성과 특수특성을 적극 활용하더라도 도무지 감당키 힘들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방어에만 전념하지 않고, 어떻게 든 공격을 가하여 활로를 찾아야 한다.

    결의를 다지자 그녀의 눈동자가 일순간 검붉은 빛으로 타올랐다.

    스스스-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몸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를 휘감고 있던 검붉은 마력이 의지를 떠받들기라도 하듯 벨제뷔트를 덮쳤다.

    줄곧 사용해온 심마의 절규보다도 한 층 더 깊이 있는 절규를 담은 힘.

    벨제뷔트가 재빨리 어둠의 장막을 만들어냈지만, 전력을 다한 그 힘은 일정수준의 방어막으로 막힐 능력이 아니었다.

    트드득-

    쨍그랑!

    ‘?!’

    이윽고 배리어가 관통되고 벨제뷔트의 육체와 정신에 고통이 가해지자 그는 오만 인상을 찌푸렸다. 이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수도 없이 많은 고통을 느껴봤던 그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격통이었다.

    “크윽! 이년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벨제뷔트가 손을 거칠게 휘두르자 절규의 방향이 꺾였다.

    유세현이 과거 마력 덕택에 악몽의 신전의 영향을 받지 않았듯, 벨제뷔트의 어둠의 마력과 루시아의 악몽의 마력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닮은 부분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순수 특수특성으로 발현한 절규의 위력이 약화된 탓이었다.

    “으...”

    루시아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루시아는 곧장 검을 휘둘러 절규를 쳐내기 위해 한 순간 틈이 생긴 벨제뷔트의 팔을 노렸다.

    팔을 하나라도 잘라낸다면 그녀는 이기는 것까진 불가능할지언정 버티는 것은 가능하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드드-

    그 순간 벨제뷔트의 몸이 팽창했다.

    ‘이건...’

    본체화.

    후웅!

    결국 더욱 빨라진 벨제뷔트의 몸놀림에 루시아의 검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후, 잘하는 구나. 그래 빨리 처리하고 이쪽도 도와라.”

    벨제뷔트가 몰아치기 시작하자 상황이 역전되었음을 느낀 크람베르가 웃음을 흘렸고, 반대로 크라베스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루시아도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하지?’

    본래 그녀가 내부로 들어온 이유는 크라베스 따위를 돕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동료와 조우하지 못한 이상, 난전이 펼쳐지는 바깥보다도 이쪽에 붙는 게 생존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되려 사지로 뛰어든 것과 같았다.

    “후우...”

    루시아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긴 했으나, 이건 단지 운이 안 좋았던 것이지 그녀가 오판했기에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전력을 쏟아 부어야 해.’

    뒤를 생각하는 건 이 상황에서 무척 큰 사치였다.

    “하아아압!”

    루시아의 기합을 담은 일격이 벨제뷔트를 강타했다.

    * * *

    연구소의 중심지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수호자와 이하 인원들이 격렬한 접전을 치르고 있는 그곳에 세 명의 인물이 당도했다.

    ‘후... 어찌어찌 도달하긴 했군.’

    그 인물들은 다름 아닌 유세현과 루시펠, 아퀼라였다.

    -크아아아아

    수호자의 쩌렁쩌렁한 포효가 귓전을 때린다.

    수호자는 처음보다도 그 공세를 더 거세게 이어가며 넘어가려고 하는 추종자와 사도를 막고 있었는데, 유세현은 놈이 아닌 그 저편을 응시했다.

    ‘루시아씨...’

    루시아 아인셰르, 그녀의 힘이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다.

    ‘가서 돕지 않으면 당한다.’

    문제는 저 수호자를 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

    순간적으로 틈이 생겼을 때 날아든다 해도 수호자가 커버하고 있는 범위를 봤을 때, 셋 전부는 넘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그리고 만약 그럴 시에는 저 너머에 있을 적과 마주했을 때 승산이 엄청나게 내려간다.

    저편에 있을 벨제뷔트보다도 유세현의 몸 상태가 더 안 좋았기 때문이다.

    마족과 펼쳤던 전투, 거기에 더해 그는 자신이 끌고 온 연합군까지 상대했다.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드람과 데르프푸스가 카시우스와 카그네프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기 무섭게 손바닥을 뒤집어 공격을 감행해왔던 것이다.

    그나마 지도를 지니고 있어 미로처럼 꼬인 길을 이용해 가까스로 떨궈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을 거다.’

    아무쪼록 셋이 함께 넘어갈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용할만한 게 없다.’

    카시우스와 카그네프는 마족을 상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와주는 척하며 시도를 해볼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나, 잘못했다가는 렘벨크나 이브가 넘어가는 수가 있었다.

    이브야 넘어가게 되더라도 크라베스의 편이라 별 상관이 없었지만, 만에 하나 렘벨크가 넘어가게 되면 그곳은 지옥 그 자체가 펼쳐지게 될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카시우스나 카그네프가 넘어가게 되도 뒤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왔던 길을 조금 돌아가면 대리자들이 전투를 치르고 있긴 했으나, 놈들 또한 하나하나가 다 알아주는 강자들이었다.

    애초 쉽게 이용할 상대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끼리 해보죠. 세현씨.”

    “저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됩니다.”

    “......”

    유세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 * *

    [벨제뷔트님, 정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잔뜩 짜증난 얼굴로 루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던 벨제뷔트의 표정이 데프하우어의 교신을 듣기 무섭게 밝게 펴졌다.

    루시아 때문에 발각당하긴 했으나 벨제뷔트는 분노를 삼키고 데프하우어에게 협공대신 정수를 찾으라는 명령을 하달했었다.

    단순히 싸움에서만 보자면 두 사람이 합세하는 편이 루시아를 죽이기 수월했으나, 일을 끝낸 뒤에 정수를 찾으러 나서려 하면 크람베르가 크라베스와의 전투를 중지하고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벨제뷔트는 추후 발목을 잡힐 바에야 미리 정수를 찾아 놓자는 생각을 했다.

    [확실한 거냐?]

    [예, 확실합니다. 이곳에는 이것을 제외하고는 정수라 칭할 물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크크, 그렇단 말이지... 이곳과의 거리는?]

    [얼마 멀지 않습니다 고작 해봐야 2km정도 입니다.]

    [2킬로미터?]

    [예.]

    [좋아. 좋아. 그럼 돌아와라. 네가 돌아오는 대로 마무리를 짓겠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루시아가 살아 있을 수 있던 이유였다.

    죽여 버리면 크람베르가 도와달라고 할 게 뻔했기에 일단은 살려두고 있다가 죽이자마자 두 놈들이 뭘 할 틈도 없이 정수를 탈취하려는 것!

    정수를 손에 넣은 다음에는 이를 이용해 크람베르를 움직일 생각이었다.

    ‘아니, 어쩌면 손에 넣는 순간 유적이 클리어 될지도 모르겠군.’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드디어 신물 파편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는 기분이 갑자기 너무 좋아져 티를 내지 않는 게 루시아를 상대하는 것보다도 힘들었다.

    “크크크크! 아까 전의 맹공은 어디 갔나? 더 열심히 움직여봐라 계집!”

    빠악-

    벨제뷔트의 커다란 주먹이 루시아의 깨진 갑주 사이를 뚫고 들어와 복부에 박혔다.

    그건 물리저항력을 깨부수는, 실로 어마무시한 힘이었다.

    “커, 커헉!”

    일순간 초점을 잃은 루시아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자세를 다잡았으나, 벨제뷔트는 그녀가 몸을 추스를 시간 따윈 주지 않았다.

    빠바바박!

    무자비한 주먹이 얼굴, 몸통, 허벅지. 온갖 곳을 두드렸다. 내장이 파열됐는지 입에서는 각혈이 터져 나왔고, 몸 전체가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벨제뷔트님.]

    마무리를 짓기 위한 벨제뷔트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녀의 목과 얼굴로 향했다. 그는 루시아의 목을 빨래 쥐어짜듯 비틀어버릴 생각이었다.

    “아...”

    정신이 없던 루시아는 좀처럼 반항하지 못했다.

    “끝이다.”

    벨제뷔트가 나직이 선언한 순간이었다.

    파앗-

    쿠구궁!

    저편에서 날아온 가공할만한 위력의 스킬이 벨제뷔트가 뻗은 팔이 있던 장소를 관통했다.

    * * *

    “유세현... 루시펠...”

    벨제뷔트의 들끓는 목소리에 유세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루시아를 땅에 살며시 내려놨다.

    유세현이 곧장 루시펠에게 말했다.

    “루시아씨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하지만...”

    “당신도 한계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애써 지친 기색을 숨기고 있던 루시펠의 동공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의 말처럼 회복할 시간이 부족하여 본래부터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루시펠은 방금 전 돌파하는 것에서 모든 힘을 다 사용한 상태였다.

    심각한 피해만 입지 않았을 뿐,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무리 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구나...’

    루시펠은 방해라는 것을 깨닫고 루시아를 둘러업었다.

    그러자 벨제뷔트가 재차 유세현을 향해 으르릉 댔다.

    “네놈... 내 루시퍼을 채가다니...”

    “흥, 무슨 물건인 마냥 말하는 군.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거다.”

    “선택? 크으으으!!”

    보랏빛으로 변한 벨제뷔트의 얼굴에 붉은빛이 더해졌다.

    안 그래도 유세현이란 존재 자체가 아니꼬웠는데 놈이 등장함으로써 또 계획이 틀어져 그는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네놈... 주제도 모르고 나선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이내 벨제뷔트가 유세현에게 날아들었다.

    유세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했다.

    [암흑투기]

    [마족화]

    [영역선포]

    쿠오오오-

    어둠의 힘이 일대를 잠식했다.

    * * *

    모든 힘을 발현했으나 유세현은 밀렸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연이은 강행군에 피로가 중첩된 상황이었고, 스텟도 벨제뷔트와 데프하우어가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모습을 드러낸 데프하우어는 벨제뷔트를 앞에 내세우고는 뒤에서 마법만 퍼부었는데, 이 하나하나가 위력이 말이 아닌데다가 정확도가 날카롭기 그지없어 곡예를 펼치지 않고서는 회피가 불가능했다.

    “크윽!”

    맞으면 그날로 끝장!

    이 실정에 그나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이는 암흑투기의 수혜를 받은 크라베스 정도였다.

    “크윽... 뭐냐 이 압박은...”

    “크크크! 압박은 무슨 압박! 이건 너와 나의 차이다!”

    빠바바박-

    거친 맹공이 크람베르를 압박한다.

    크라베스는 유세현이 나타났을 때 마음속으로 깊이 환호했다.

    비록 루시아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었으나, 그는 크라베스에게 있어서도 구원자였다.

    ‘이건 천재일우의 찬스, 유세현이 쓰러지기 전에 놈을 처리한다.’

    그러나 정작 그런 그도 유세현이 승리하진 못하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승산을 점치고 들어온 게 아닐 터니까. 이전 제단으로 쳐들어갔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사용한다.’

    그건 크라베스의 착각이었다.

    유세현은 믿는 바가 있었다.

    이 철의 성에 들어옴으로서 얻게 된 힘.

    단 두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생명을 담보로 작동하는 힘.

    [새크리파이스]

    쉬이익-

    쉬이익-

    쿠구구구궁-

    어둠이 치솟던 유세현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유적의 마지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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