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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20화 (40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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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격하면 또 회피할 가능성이 높으니...’

타이밍이 올 때까지 데프하우어는 상황을 지켜볼 것을 택했다. 지금도 아마슈라, 바란스 등등 자칭 백작급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태였으나, 그의 입장에서 보기에 확실한 한방을 넣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슈슉-

퍼버벙-

폭발이 난무하고, 폭풍이 끊이질 않는다.

데프하우어는 그 격렬한 전장 속에서 유세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동향도 살폈는데 문득 한 인물이 눈동자에 비쳤다.

‘?!’

그 인물은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형 천사였다.

백색과 흑색으로 반반 나뉘어져 있는 날개가 유난히 돋보인다.

현재, 이 세계에서 이 날개는 오직 단 한 명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 날개는 벨제뷔트의 마력에 침식되었다는 증거물이었다.

이에 데프하우어가 넋이 나가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루시퍼가 상대하고 있는 이는 연합군이 아니라 마족이었다. 이는 곧 루시퍼가 벨제뷔트의 수중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데프하우어의 입장에서 볼 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벨제뷔트의 특성인 동화는 너무도 강력하여 자신까지도 완벽하게 물들였으니까.

하지만...

“흐읍!”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루시펠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강제력이 작용하고 있다면 결코 저럴 수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벨제뷔트는 오르엠을 잡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루시펠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루시펠의 생존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그녀가 완벽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영향력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도 되었다.

‘......’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데프하우어의 내면에서 순간적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간다.

부러움, 시기, 질투심... 동화로 인해 잊혔던 기억이 한순간 떠올랐기 때문이었지만 그는 이내 다시 기억을 잊으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동화는 이 정도의 능력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적이란 말이군...’

데프하우어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상성 상 유세현을 더 의식하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적개심은 루시펠에게 더 들었다.

“하압! 이것도 받아봐라!”

치지직!

콰광-

악마가 시전한 마법이 천둥번개가 되어 루시펠의 몸을 사방팔방에서 노렸다.

루시펠이 침착하게 방어했지만 수적으로도 열세인데다가 몸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틈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모습을 드러낸 데프하우어가 루시펠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 * *

“크윽... 빌어먹을...”

하이엘프, 데르비안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녀는 드람의 동료로써 유세현과 함께 이곳까지 당도한 강자였으나, 지금은 마족의 공세를 감당키 힘들어하고 있었다.

빠악-

“커헉!”

이윽고 악마의 발이 흉부를 정확히 가격하자, 데르비안의 몸이 날아가 연구소 곳곳에 있던 기물을 박살내며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데르비안!”

이를 본 드람이 다급히 도와주려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도 여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기 목숨을 간수하기 바쁘다.

마족에게 엄청난 적의를 내뿜고 있는 대천사들조차도 협공에 조금씩 밀리고 있었으니 말은 다한 것!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 연합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단 한 가지뿐이었다.

‘무조건 이곳에서 이탈해야 된다.’

하지만 어떻게?

어설픈 도주는 되려 독이었다. 등 뒤에서 강대한 마력을 담은 스킬을 제대로 가격당하기라도 한다면 도주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보통 도주를 할 때는 상대의 정신을 빼놓거나, 시선을 일부 다른 곳으로 돌린 다음에 하는데...

‘뭘 할 틈이 없다.’

‘크윽! 너무 밀린다!’

게다가 연합군은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탓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추종자들의 안내를 받아 편안하게 당도한 마족에 비해 온건치 못했다.

길은 유세현이 소유한 지도를 훑어봐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장소에 또 어떤 적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연합군은 손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오직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루시펠에게 쇄도한 데프하우어의 공격을 막아낸 유세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에 퍼졌다.

“우리가 진입한 곳의 맞은편을 뚫어라!! 그곳이 활로다!”

그 순간 연합군이 눈을 번뜩 빛냈다.

이전 데프하우어를 상대할 때도 그렇고, 적일 때는 몰라도 아군일 때의 유세현은 그들에겐 이제 꽤나 든든한 존재였다.

두 명의 엘프가 먼저 잽싸게 마법을 발현했다.

[윈드 브레이크.]

[플레임 레인.]

불과 바람,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합공 마법이었다.

불의 비가 회전하는 소용돌이를 타고 휘몰아치며 나아가자, 마족들이 잽싸게 나서 각자의 방법으로 이를 제지한다.

활로가 허풍이던 아니던, 그들은 연합군이 뜻대로 움직이게 둘 생각이 없었다.

후웅!

그 사이 유세현은 데프하우어를 상대했다.

루베르크를 휘두르자, 데프하우어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진다.

평소의 데프하우어였다면 몸만 슬쩍 틀어 여유 있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겠지만, 지금의 그는 블링크를 사용해 10보 뒤로 거리를 벌렸다.

“유세현... 저 천사... 네 작품인가? 어떻게 한 거지?”

“글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만?”

“시치미 떼지 마라. 난 이곳에 있는 엘프와 델바람 중에서 동화의 특성을 끊을 수 있는 능력자 따윈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짓을 한 이가 있다면 너 정도뿐이지. 자, 다시 묻겠다. 어떻게 한 거지?”

“...왜, 너도 벗어나고 싶나? 벨제뷔트에게서?”

유세현의 말에 데프하우어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마냥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질문을 한다 해도 유세현이 말해줄 리가 없거니와, 그런 것을 떠나 사실 물을 필요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단번에 깨우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유세현의 말처럼 벗어나고 싶지라도 않은 이상에야 구태여 물을 이유가 없던 것.

‘내가...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데프하우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러한 동요는 곧 틈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린 유세현이 아퀼라를 불렀다.

“아퀼라아아아!”

그건 신호였다.

어떤 능력을 사용하라는.

그 순간 아퀼라가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전투 초반부터 줄곧 뿌려둔 입자가, 그녀의 의지에 반응하여 아름다운 자색의 빛을 내뿜으며 영롱한 자태를 뽐낸다.

“어... 어?”

입자를 들이킨 마족들은 일순간 당황해했으나 그건 정말 잠시뿐이었다.

그들의 눈은 곧 맹하게 바뀌었다.

매료.

그렇다. 매료당한 것이다.

서큐버스가 본래 지닌 능력과 최강의 색공이라 불리는 환희공을 섞은 이 거부할 수 없는 환각에.

[환희공, 주지육림(酒池肉林).]

“어... 어...”

몇몇은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몇몇은 침을 질질 흘리며 도통헤어 나오질 못했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환각에 아무리 능통하다 해도, 서큐버스 퀸이라고 할지언정 귀족들은 과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큐버스를 안으며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해봤다.

자연스레 저항력이 존재하는데다 대처법까지 알고 있었기에 마족들의 한에서는 금방 빠져나와야 정상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건 대상지정 환각도 아닌, 광역 환각이 아니던가!

“큭... 어찌 내가 서큐버스 따위에게...”

서걱-

“크헉!”

유세현이 한 마족을 스쳐지나가듯 지나치며 몸을 난도질했다. 코인을 흡수한 유세현은 곧장 천마혈사장을 날렸다.

콰아앙!

무공과 여러 마법에 의해 벽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유세현이 질주하자 그 옆으로 아퀼라와 루시펠, 그리고 연합군이 따라붙었다.

아퀼라의 혈색을 살핀 유세현이 살며시 물었다.

“아퀼라,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퀼라의 안색은 대답과 달리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정도의 대규모 적을, 그것도 최상위 대리자를 이토록 많이 현혹시키는 건 아무리 그녀라 할지라도 정신력과 심력에 부담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력도 어마무시하게 사용했고.

“크으! 놓치지 마라!”

마족들은 곧장 추격해왔다.

쫓고 쫓기는 치킨게임이 이루어진다.

지면에 착 밀착하여 뒤쫓던 데프하우어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저렇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거지? 분명 처음 보는 장소일 터인데...’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그들과 조우하게 된다.’

크람베르의 세력과 전투를 하고 있을 연합군과.

‘설마 알고 가고 있는 건가?’

아무쪼록 이대로 계속 추격하게 되면 크람베르가 알아차리게 될 것이므로 일이 틀어지게 될게 자명하다.

때문에 데프하우어는 일단 추격 종료 명령을 내리려했다.

“전군! 추격을 정지...”

허나 그 순간.

쿠구구궁!

그들의 후방에서 갑작스레 망령들이 치고 들어왔다.

‘이건!!’

크람베르의 망령들이 아니었다. 크라베스의 망령들이다.

“젠장! 하필이면 왜 지금...”

“죽여 버려!”

콰아앙!

마족들이 대응했다.

그리고 그건 선두에 있는 유세현에게 시간을 끌어주는 꼴이었다.

이윽고.

콰앙!

유세현이 줄곧 경계를 나눠주고 있던 마지막 벽을 허물었다.

휘이잉-

싸늘하면서도 세찬 바람이 전장에 분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카시우스와 카그네프, 그리고 여러 추종자들과 크람베르의 움직임이 일제히 멎었다.

지금 그들의 시선은 마족과 유세현이 있는 뻥 뚫린 구멍을 향해 있었다.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마족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고 있던 데프하우어가 지그시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이런 젠장할...”

개판의 시작이었다.

* * *

“이런...”

크람베르가 통로를 향해 몸을 휙 돌렸다. 마족과 연합군, 그리고 크라베스의 망령까지 이곳에 전부 모여 버린 이상 더 이상 싸움 같은 걸 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먼저 가십시오! 왕이시어!”

추종자들이 크람베르를 엄호하자, 크람베르가 공간 중단에 뚫려있는 통로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에 유세현을 확인한 카그네프도 주위를 훑으며 크람베르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강호는? 놈은 도착하지 못한 건가?’

그때, 제7 제사장이 그를 막아섰다.

“여긴 못 지나간...”

후웅!

팡!

허나 제사장은 내뱉던 말도 채 마칠 수 없었다. 카그네프의 호위군들이 마찬가지로 길을 뚫기 위해 제사장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놈들...”

“가십시오! 카그네프님!”

제사장이 부들부들 거렸으나, 이미 상황은 개판이었다. 크라베스의 망령들과 사도들이 끼어든 턱에 이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이쪽도 적, 저쪽도 적!

“벨제뷔트! 벨제뷔트는 어디 있지?”

이 와중 가브리엘과 대천사들도 혈안이 되어 벨제뷔트를 찾아 나섰다. 그는 이런 난전속이라면 합공만 잘할 시 처리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없다!’

가브리엘과 대천사들은 이내 깨달았다. 벨제뷔트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걸.

게다가 데프하우어도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간 거지?’

가브리엘의 눈이 자연스레 크람베르가 사라진 통로로 향했다. 만약 데프하우어가 이동했다고 치면 저쪽과 이어져 있을 길밖에 없었다.

‘반드시 찾아내 죽여주겠다.’

그가 마음을 다잡고 뒤쫓으려 할 때였다.

“크윽! 미카엘님!”

천사들이 애타게 대천사들을 찾았다.

천사들은 그 수가 이곳에서 제일 적었기에 난전임에도 불구하고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이에 가브리엘과 대천사는 선택해야만했다.

천사들을 지휘하여 그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가, 아니면 복수만을 위해 저편으로 쫓아가던가.

‘크윽!!’

가브리엘은 결국 천사들에게 향했다.

그가 오르엠에게 맹종했던 만큼, 가브리엘은 천사들에게 강한 애착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어서 연합군을 포함한 여러 인원들이 한두 명씩 이 지역에서 이탈을 시도했다.

개중에는 왔던 길로 퇴각하는 인원도 있었지만 크람베르가 향했던 통로로 들어가는 인원도 있었다.

콰아아앙!

이윽고 연쇄 폭발과 함께 유세현과 루시펠, 아퀼라 또한 그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정수 전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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