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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9화 (4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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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도라를 여행하는 모든 대리자들의 목표는 12개의 파편 조각을 모아 이 게임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비록 적과의 힘의 차이, 능력의 차이에 절망하여 이를 포기하고 오직 생존으로만 방향을 전향하는 대리자들이 수두룩했지만 적어도 이 철의 성 내부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모든 걸 이용하여,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파편을 쟁취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서라면 그 높은 자존심이 짓밟혀도 인내할 수 있었다.

    크라베스와 벨제뷔트의 세력이 전투를 시작한지 5분이 경과할 무렵, 벨제뷔트의 미간이 좁혀지며 표정에 순간적인 변화가 생겼다.

    데프하우어가 보낸 통신 마법 때문이었다.

    ‘놈들이 목표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데프하우어는 현재 벨제뷔트와 합류하지 않고 병력을 대동하여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렘벨크나 제사장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에 걸어놓은 추적마법을 토대로 되려 지금까지 같은 편인 크람베르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벨제뷔트가 크람베르의 뜻대로 이곳에 남아준 이유였다.

    의심이 많은 벨제뷔트는 크람베르 세력을 마냥 맹신하지 않았다. 크람베르는 맹약은 지킨다 하고 있었으나 그의 태도는 너무도 오만 불손했다.

    지금도 이런데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는가?

    때문에 그는 되려 이 상황을 이용해 판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배신하지 않은 척하여 뒤탈이 없는 식으로.

    ‘패는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눈을 빛낸 벨제뷔트가 공격을 가하는 척 하며 크라베스에게 속삭였다.

    “크라베스, 우리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텐데?”

    “......”

    “광역스킬을 사용하여 우리 군세를 밀쳐내는 척 해라. 그럼 내가 그 틈을 타 전부 데리고 빠지겠다. 추종자들은 알아서 처리하고.”

    “...그러지.”

    크라베스가 곧장 동의를 표했다.

    크라베스도 벨제뷔트가 하는 행동에서 그가 사력을 다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는 걸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이해가 일치한 두 사람이 연기를 시작하자, 거대한 폭발이 일대를 장식했다.

    쿠웅!

    후폭풍이 지나난 뒤, 장소에 남아 있는 이들은 정신없이 최선을 다해 싸우던 추종자들뿐이었다.

    “아, 아니?”

    추종자들은 무척 당황해했다.

    “이, 이런! 벗어나라!”

    그들은 다급히 장소에서 이탈하기 위해 움직였으나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많은 군세가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마족이 돌아와 주지 않는 이상 도주의 가능성은 제로.

    “끄아아아악!”

    추종자들의 비명이 귓가로 들려오자, 군세를 이끌고 거침없이 통로를 이동하던 벨제뷔트가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데프하우어와 교신을 했다.

    [데프하우어,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니 이제 놈들을 크람베르에게 인도해라.]

    [예, 알겠습니다.]

    데프하우어가 답하자 벨제뷔트의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불과 3분전까지만 해도 인상을 바득바득 쓰고 있던 인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소였다.

    ‘좋아. 이로써 크람베르의 세력도 일시적으로 발목을 잡히겠군.’

    벨제뷔트는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른 계략을 무수히 많이 구상해 놨었는데 이는 그중에서도 13번째 플랜이었다.

    크람베르에게 협력하는 척 뒤통수를 치고, 적을 이용해 이이제의 하며 놈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사이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제치고 정수라 불리는 것에 다다른다.

    ‘전부 데프하우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법이었지.’

    데프하우어는 마법의 종주이자 차기 블랙드래곤 로드로써, 다른 드래곤들과는 한 차례 차원을 달리 하는 드래곤이었다.

    마법을 이용해 특정 장소를 통과한 생명체를 감시하고, 은근슬쩍 유도할 수 있는 이는 데프하우어 정도밖에는 없는 것이다.

    ‘카시우스... 그리고 카그네프... 어디 한 번 놈들과 죽도록 싸워봐라. 난 그 사이에 정수를 손에 넣어주지.’

    벨제뷔트의 자색 눈동자가 재차 빛을 발했다.

    * * *

    흔적을 읽어 나아가던 카그네프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강호와의 전투이후, 놈을 뒤쫓으려 수색을 펼친 카그네프는 카시우스와 조우하여 어쩔 수 없이 추적을 포기하고 함께 이동해왔는데, 지금 그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망령들이 하늘을 유영하며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적의를 내뿜고 있었다.

    이내 망령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렘벨크가 놀랍다는 어조로 말했다.

    “대단하구나,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

    “비켜라, 비킨다면 이번만큼은 그냥 돌려보내주겠다.”

    이에 카시우스와 카그네프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한순간 서로를 마주봤다.

    망령들이 많다고는 하나, 곳곳에서 전투가 이뤄지고 서로 대치하고 있는 바람에 이곳에 있는 망령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차이가 나긴 하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준까지는 아닌 것이다.

    카그네프와 카시우스가 시선은 적에게 고정한 채 의견을 나눴다.

    “카시우스... 이 앞에 중요한 게 있나본데?”

    “그런가보군.”

    “어떡할까.”

    솔직히 이 앞에 중요 물품이 있다고 하나 그들 입장에서 전면대전은 전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벨제뷔트도 보이지 않고,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운이 좋아 파편을 획득한다 한들 죽는다면 무엇이 소용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건 딜레마였다.

    비켜주면 파편을 빼앗길 거 같고, 싸우자니 좀 그렇고.

    때문에 그들이 바라던 것은 크라베스와 크람베르의 세력이 바로 눈앞에서 공멸해주는 것이었다.

    “아직 기회가 있을까?”

    “모르지... 거의 끝자락인거 같긴 한데...”

    그때였다.

    화르륵!

    망령들 틈 사이를 비집고 어둠으로 된 불덩이가 날아왔다.

    “?!”

    기습!

    대응이 빨라 피해는 없었지만, 당한 측 입장에서는 무척 기분 나쁜 일이었다.

    심경이 뒤틀린 카그네프의 안면이 씰룩였다.

    “큭, 역시 그럼 그렇지.”

    그가 중얼거리자, 되려 기습당한 쪽보다 놀란 얼굴이 된 렘벨크가 외쳤다.

    “잠깐! 기다려라! 우리가 공격한 게...”

    크람베르 측은 사실 진짜 공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이야기 해봤자 이를 믿을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웃기고 자빠졌군! 자아! 우리 연합군을 상대로 얼마나 하는지 보겠다!”

    전투가 발생했다.

    연구소 천장에서 낙뢰가 떨어지고, 화염폭풍이 일대를 새카맣게 태워버리는 등 온갖 스킬들이 난무했다.

    서로가 목숨을 걸고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그리고 이를 보며 웃고 있는 한 존재가 있었다.

    데프하우어.

    화염구를 날려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

    ‘좋아... 나쁘지 않군. 이대로라면...’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웃고 있던 데프하우어의 표정이 돌변했다. 미간이 좁혀지고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예기치 않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근처에 만들어 놓은 감지마법이 누군가에 의해 부서졌다.’

    그 누군가는 과연 어떤 자인가.

    분명한건 이들이 변수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군. 직접 확인 해보는 수밖에.’

    광학미채에 의해 안 그래도 보이지 않고 있던 데프하우어의 몸이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 * *

    ‘후... 다 왔다.’

    근처의 마력을 느낀 유세현의 입에서 긴 날숨이 뿜어져 나왔다.

    현재 이 공간 주위는 하나의 먹잇감을 두고 여러 동물들이 에워싼 것 마냥 혼돈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엘프, 델바람, 마족, 그리고 마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이 근처에 있을게 분명한 크람베르나 크라베스.

    이강호와 김주희는 마력을 꼭꼭 숨기고 있어 찾을 수 없었지만 아무쪼록 여기까지 온 이상 유세현은 일부러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강호가 그랬던 것처럼, 유세현도 이제는 이들을 떨어뜨려놔야 할 시기였다.

    코너를 돌아 자동식 문을 깨부수고 내부로 들어서자, 기묘한 느낌이 유세현의 전신을 덮쳤다.

    ‘이건... 결계?’

    단순 탐지로는 파악하기 힘든,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진 마력의 차단막이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언뜻 보면 마법 같아 보이지만 그건 사실 빛에 비친 눈동자의 색이었다.

    안광.

    마족 특유의 붉은 홍채 말이다.

    마족을 발견한 드람과 데르프푸스를 포함한 연합군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혀를 내둘렀다.

    “이런 옘병할...”

    “하필이면 이놈들을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이들은 마족 중, 아니 벨제뷔트가 지니고 있는 병력 중 최정예 병력이었다.

    하급 마족 따위가 아닌, 과거 백작, 후작, 남작 등등 귀족이라 불리우며, 알테리아 대륙에도 그 악명을 떨치던 네임드.

    그중에서도 천족과의 전투로 더욱 강해진 자.

    염귀의 벨라, 카투우프 무려 100명이 넘는 마족이 동시에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연합군인가? 용케 도착했군.”

    “수가 그렇게 많진 않은데?”

    “벨제뷔트님에게 당해 뿔뿔이 흩어져서 그렇겠지.”

    “그보다도 대천사도 끼어있다.”

    몇몇 악마들이 인상을 구겼다. 이전 전투에서 대천사에게 죽은 이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래봤자 체력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우리는 그때보다도 훨씬 강해졌지.”

    “크크크, 저놈들을 먹으면 더 강해지겠군.”

    상황이 변한만큼 악마들은 당장이라도 싸울 생각이 만만이었다. 그들은 벨제뷔트의 명령 하에 움직이고 있긴 했으나, 저마다 야욕을 지니고 있는 악마들이었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언젠가는 벨제뷔트를 넘어서리라.

    “그보다도 루시퍼, 너는 왜 거기에 있는 거지?”

    “포로가 된 건가? 큭큭!”

    악마들이 노골적으로 루시펠을 비웃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루시펠은 벨제뷔트에게 온 이후로 특별대우를 받았기에 악마들은 그녀를 결코 곱게 보고 있지 않았다.

    “......”

    루시펠은 유세현을 한 번 돌아보고는 창을 뽑았다.

    이건 딱 봐도 피할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런데 그때 카투우프가 말했다.

    “데프하우어님이 일단 피할 수 있는 교전은 피하라고 했지 않나. 그러니 지금은 물러서는 게...”

    “크크, 카투우프. 네가 언제부터 드래곤의 개가 됐지? 싸우고 안 싸우고 정도는 우리가 정한다.”

    “아니, 이건 벨제뷔트님의 명령이었잖나. 게다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신물 파편은 한 명 밖에 못 얻는다고! 그럼 우리도 이참에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얻어가야 되지 않겠냐!”

    파앗-

    한 악마가 연합군을 향해 지옥의 불길을 흩뿌리는 것으로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데프하우어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전투는 실 뭉터기처럼 얽혀 치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악마들의 아둔함에 질색을 했다.

    ‘이런 멍청한...’

    이런 류의 싸움에서는 전력을 최대한 온전하게 지킨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천사들이야 또 몰라도 다른 연합군은 악마들이 물러나 줬으면 당연히 전투를 회피했을 터이니, 이는 악마들이 자신의 스탯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싸움을 건 것이 명확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놈을 확실히 처리한다.’

    데프하우어의 시선이 유세현에게로 향했다.

    그 어떤 적들도 유세현보다 상대하기 힘든 적은 없었기에, 여기서 그는 어떻게든 악마들을 이용하여 유세현을 처리할 셈이었다.

    정수 전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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